906화. 선릉(仙綾)으로 적을 막다
심협의 말을 들은 섭채주는 아직 조금 어지러운 머리를 한두 번 흔들더니,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거청천은 어디로 보내졌는지 모르겠구나. 몸이 괜찮으면 출구나 금제가 약한 곳이 있는지 같이 찾아보자.”
섭채주도 고개를 끄덕이고는 맞은편의 벽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함께하니 일이 수월해 금방 대전의 절반을 살펴볼 수 있었다.
“오라버니, 여기요!”
섭채주의 부름에 심협은 얼른 그쪽으로 향했다.
그녀는 대전의 어느 벽 앞에 서 있었는데, 다른 곳처럼 형광이 반짝이긴 했지만 확실히 더 어두웠다.
“이쪽 벽에도 금제가 있지만 다른 곳처럼 강하지는 않아서 신식으로 조금 살펴볼 수 있어요.”
그 말에 심협은 곧장 신식을 운공하여 안을 살펴봤다. 벽에는 부드러운 금제가 있었지만, 다른 곳보다는 약해 신식이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다만 이 부드러운 금제는 다른 것과 달리 신식이 파고들수록 저항이 더 커졌다.
신식은 1척 정도 들어가자 더는 파고 들어갈 수 없었다. 부드러운 금제는 그대로였다.
심협은 운사여전결을 운공하여 흐트러진 신식을 바로 혼사로 바꿔 계속해서 저항하는 금제를 뚫고 안으로 들어갔다. 반 척 정도 더 들어가자 어떤 둥근 물건에 닿았다.
그것은 마치 돌덩이 같았고, 위에는 복잡한 언문이 가득했다. 언갑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이게 뭐지?”
그가 이 돌덩이의 언문을 자세히 살펴보려 할 때, 그 위의 언문이 갑자기 번쩍이더니 강력한 흡입력이 그의 신식을 빨아들였다.
콰쾅!
대전의 바닥이 갑자기 흔들리기 시작했고, 중앙 구역에서 하얀 빛이 흘러나와 하늘로 솟구쳤다.
“무슨 일이에요?”
“아무래도 내 신식이 벽 안의 어떤 장치를 건드린 모양이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조심해!”
그때, 대전 중앙의 하얀 빛이 갑자기 사라지더니 바닥에 몇 장 크기의 검은색 구멍이 나타났고, 그 네모난 구멍에서 거대한 언갑이 천천히 올라왔다.
이 언갑의 높이는 대략 6장 정도였고, 온몸이 청옥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양손과 양발이 모두 있어서 외형은 사람 같았지만, 머리는 뱀이었고, 뒤로는 긴 꼬리가 늘어져 있었다.
뱀 머리 언갑은 손에 푸른 빛이 감도는 곡도(曲刀)를 들고 있었는데, 매우 날카로워 보였다.
언갑은 나타나자마자 심협과 섭채주를 돌아보더니 거대한 두 발로 땅을 박차고 쏜살같이 돌진해왔다.
심협이 현황일기곤을 꺼내 응전하려 했다.
“오라버니는 잠시 쉬세요. 이번에는 제가 할게요.”
섭채주가 한 발 앞서 나서더니 고운 손을 휘둘렀다.
비단이 빠르게 뱀 머리 언갑을 향해 날아갔는데, 아까 봤던 벽파표대가 아니라 분홍색 비단이었다.
이 비단은 빠른 속도로 순식간에 뱀 머리 언갑 앞에 도착했다.
뱀 머리 언갑이 낮게 으르렁거리더니 푸른 곡도로 베었지만, 분홍 비단은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은 듯 가볍게 그 공격을 흘려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뱀 머리 언갑은 분홍색 고치가 되어서 더는 달릴 수도, 움직일 수도 없게 됐다. 두 자루 곡도 또한 분홍색 비단에 겹겹이 싸여서 푸른 도광을 아무리 뿜어냈지만, 그 비단에는 어떤 손상도 줄 수 없었다.
“구천선릉(九天仙綾)? 구천의 선운(仙雲)이 정화와 해, 달의 현령(玄靈)을 융합하여 만든 것이라 그 어떤 공격도 흘려보내 아무런 손상도 입지 않는다더니, 직접 보니 사실이었군!”
화령자의 감탄에 심협도 그 분홍색 비단을 유심히 살펴봤다.
섭채주가 손을 휘두르자 짧은 금색 봉이 손에 나타났다. 머리 부분은 금색 용의 머리였고, 막대기는 구불구불하여 마치 용의 몸이 변한 것 같았다.
그녀가 주문을 읊고 고운 손을 다시 휘두르자 영력 파동이 뿜어져 나오더니 금빛 허상으로 변하여 뱀 머리 언갑의 머리를 공격했다.
땅!
굉음이 울려 퍼지더니 금빛이 뿜어져 나왔다. 뱀 머리 언갑은 부서졌고,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섭채주는 구천선릉을 거두고는 바로 심협을 향해 환하게 웃었다. 칭찬을 듣고 싶어 하는 표정이었다.
“훌륭해! 이전보다 실력이 크게 정진했구나.”
심협은 섭채주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칭찬했다.
“스승님이 구천선릉과 반룡봉(盤龍棒)을 주신 덕분이에요.”
심협은 짧은 금색 봉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뱀 머리 언갑 옆으로 갔다.
이것은 청사(靑蛇) 언갑이었다. 천기권의 기록에 따르면 온몸을 낭사청옥(琅邪靑玉)으로 만들었고, 실력은 대승기 수사와 비슷했다. 속도는 매우 빠르고, 이 두 자루의 청사 곡도를 사용한 근접전에 능해 가까이 오면 진선의 존재도 번거로울 정도였다.
한데 섭채주는 처음부터 구천선릉으로 단단히 묶어놓아 실력을 전혀 발휘하지 못하게 했으니 실로 뛰어난 직감이었다.
심협이 소요경을 발동하자 붉은 빛이 날아가 청사 언갑을 감싸고는 다시 거울로 돌아갔다.
청사 언갑은 크게 파손되지 않았으니 조금만 복구하면 다시 사용할 수 있을 터. 그에게는 쓸모가 없어도 춘추관에는 유용할 것 같았다.
섭채주가 다가와 무슨 말인가를 하려는데, 대전 가운데의 시커먼 구멍에서 다시 어떤 소리가 들리더니 또 하나의 언갑이 올라왔다.
이번에는 늑대 머리의 언갑이었다. 2장의 높이였고 온몸이 은빛으로 빛나서 마치 은색 갑옷을 걸친 것 같았다. 손에는 금색 전극(戰戟)을 들고 있었는데, 청사 언갑의 쌍도보다 훨씬 강해 보였다.
“은랑(銀狼) 언갑!”
심협의 두 눈이 커졌다.
“오라버니, 저게 뭔지 알아요?”
섭채주는 얼른 심협 앞을 막아서며 물었다.
“조심해. 저건 진선급의 언갑이야. 청사 언갑과는 달라.”
심협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은랑 언갑은 나타나자마자 두 발에서 은빛을 뿜어내더니 은색 환상으로 변해 심협과 섭채주를 향해 돌진했다. 그 속도는 청사 언갑보다 배는 빨랐다.
이를 본 섭채주는 이번에도 구천선릉을 발동하여 은랑 언갑을 공격했다. 그녀가 구천선릉을 굳게 믿는 것은 진선 후기도 이 법보에 묶이면 절대 빠져나갈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은랑 언갑이 입을 벌리자 달빛 같은 빛이 뿜어져 나와 구천선릉을 공격했다.
퍼펑!
폭음이 울려 퍼지면서 달빛은 은색 파문이 되어 사방으로 퍼졌다. 구천선릉은 은색의 파문이 변한 은빛의 벽에 막혀 더는 접근할 수 없었다.
섭채주는 구천선릉이 막히자 눈썹을 찡그렸다.
이 선릉은 위능이 범상치 않긴 하지만 약점이 있으니, 공격력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방어류 같은 신통에 막히게 되면 기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가 없었다. 한데 이를 눈치챘으니 은랑 언갑은 역시 진선 언갑다웠다.
섭채주는 주문을 외우고 결인하여 반룡봉을 발동했다. 하지만 이미 기선을 제압한 은랑 언갑이 금색 전극에서 빛을 내뿜으며 한 발 먼저 일격을 날렸다.
금색 전극의 허상이 번개처럼 날아와 순식간에 섭채주 앞에 나타났는데, 그 속도가 번개보다도 빨라 보였다.
그러나 섭채주는 당황하지 않고 결인하며 외쳤다.
“파란(波瀾)!”
푸른색 광환이 그녀 주위에 나타나더니 순식간에 하나로 뭉쳐 몇 장 크기의 푸른 방패가 되었다.
그녀의 앞을 막은 방패에서는 파도 같은 허상이 일렁였는데, 거기에는 수많은 푸른색 부문이 섞여 있었다. 이것이 바로 보타산의 저명한 방어 신통, 파란불경(波瀾不驚)이었다.
금색 전극 허상이 방패에 떨어지자 갑자기 찬란한 금빛이 뿜어져 나왔고, 동시에 강력한 공격으로 방패를 안으로 밀어 넣었다.
푸른 방패는 안으로 움푹 파였지만, 그 위에서 파도가 용솟음치면서 부서질 기미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섭채주가 양손의 법결을 바꾸자 푸른 방패가 빠르게 돌아가고 푸른 빛이 치솟았다. 그러자 찬란한 금빛과 금색 전극 허상이 삼켜졌다.
“저건……?”
심협이 이를 보고 깜짝 놀랐다.
“불경(不驚)!”
섭채주가 양손의 법결을 바로 다시 바꾸자 방패가 일렁이더니 푸른 빛과 함께 푸른색 파문이 뿜어져 나왔다.
눈부신 금빛이 방패에서 빠르게 날아갔는데, 바로 아까 금색의 전극 허상이었다. 이 전극 허상은 쏜살같이 은랑 언갑을 향해 날아갔다.
“네 약혼녀의 깨달음이 제법이구나. 어린 나이에 보타산의 방어 신통을 불경 경지까지 깨닫다니!”
화령자가 혀를 내둘렀다.
파란불경은 보타산의 절정 방어였다. ‘파란’은 적을 막아내고 ‘불경’은 반격한다. 다만 불경은 너무 심오하여 자질이 뛰어나지 않으면 깨닫지도 못했고, 실제로 대다수 보타산 제자나 장로들은 파란에 그쳤다.
은랑 언갑은 자신의 공격이 갑자기 자신을 공격해올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음에도 진선 언갑답게 반응이 매우 빨랐다. 그는 금색 전극을 휘둘러서 전극 허상을 막아냈다.
하지만 그 충격에 두 걸음 정도 밀려났고, 몸도 미처 제대로 가누기도 전에 분홍색 비단이 옆에서 번개처럼 날아와 몸을 칭칭 감았다. 구천선릉이었다.
파란불경을 시전함과 동시에 섭채주는 반룡봉을 휘둘러 은색 방패를 깨트렸다.
은랑 언갑은 구천선릉에 칭칭 감겨 꼼짝도 못 했다.
한데 그때, 은랑 언갑이 갑자기 낮게 포효하자 온몸에서 실체 같은 은빛이 사방으로 뿜어져 나갔고, 언갑의 본체가 사라지면서 구천선릉 안도 비어버렸다.
섭채주는 물론 뒤에 있던 심협도 깜짝 놀랐다.
‘천기권에 기록된 은랑 언갑에는 저런 신통이 없을 텐데?’
그때, 은빛이 빙글빙글 돌면서 섭채주를 향해 날아왔다.
심협이 재빨리 나서려는데 섭채주가 외쳤다.
“오라버니는 나서지 말아요!”
뒤이어 그녀는 빠르게 주문을 외우더니 푸른 빛이 뿜어져 나오는 오른손을 강하게 내리쳤다. 진창해 신통이었다.
푸른 한파가 강하게 휘몰아쳐서 은빛을 전부 집어삼키고는 빠르게 회전하면서 거대한 푸른색 소용돌이로 변했다. 더욱 빠르게 회전하는 소용돌이의 위세는 천기성에서 시전했던 것보다 훨씬 강력했다. 그때 섭채주는 전력으로 시전한 것이 아니었다.
소용돌이에 휩싸인 은빛은 발버둥 쳤지만, 아쉽게도 빠져나가지 못하고 점점 소용돌이 중심으로 휩쓸려갔다.
심협은 고개를 끄덕였다. 섭채주의 진창해는 제3층 경지에 거의 다다랐을 뿐만 아니라 기술 방면으로는 자신보다 훨씬 나았다. 그가 시전한 진창해는 큰 변화 없이 오로지 강력한 한기로 적을 제압할 뿐이었다.
섭채주가 양손을 결인하자 푸른 소용돌이에서 영광이 번쩍였고, 둔탁한 소리와 함께 수십 장 크기의 빙산이 허공에 나타났다. 대전 천장에 거의 닿을 것 같았다.
은랑 언갑은 이미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는데, 빙산 중간에 얼어붙어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섭채주가 반룡봉을 결인하자 금룡의 머리가 빛나더니 입을 크게 벌렸다.
한 줄기 금빛이 번개처럼 날아가 빙산을 관통했다. 마치 종이를 뚫는 것처럼 너무도 간단해 보였다.
금빛이 바로 다시 날아서 반룡봉의 금룡 입으로 들어갔다.
심협이 자세히 보니 달걀만 한 금색 구슬이었다. 그 구슬에서는 산과 같은 중후한 기운이 느껴졌고, 위에는 팔괘 무늬가 그려져 있었다. 어떤 이보인지는 알 수 없었다.
1촌 굵기의 검은색 통로가 빙산에 생겨났고, 머리가 뚫린 은색 언갑은 이미 영광이 사라진 상태였다.
한데 심협이 막 섭채주에게 말을 걸려는 순간, 대전 중간의 검은색 구멍에서 다시 소리가 울리더니 이번에는 푸른색 언갑이 나타났다.
이 언갑은 크기나 모양이 사람과 같았지만, 온몸에 푸른 빛이 감돌고 있었다. 두 눈에서 번득이는 영광도 진짜 사람과 거의 비슷했다.
한 손에는 대검을, 다른 손에는 보라색 거북이 등껍질 방패를 든 언갑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마자 평범한 수사와 다름이 없었다. 그 경지는 진선 후기로, 이전의 두 개의 언갑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