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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905화 (905/1,214)

905화. 은밀한 곳

심협이 거대한 귓구멍에 들어서는 순간, 밖에서 요란한 굉음이 들려왔다.

걱정이 됐지만, 지금은 중요한 순간인 만큼 눈앞의 입구에 있는 청호를 경계해야 했다.

“조심해!”

그가 뒤에 있는 섭채주에게 전음으로 당부하기가 무섭게 앞에서 굉음이 울려 퍼지더니 검은색 불꽃이 뿜어져 나왔다.

이를 본 심협은 소매에서 순양비검을 날렸다. 순식간에 불꽃의 날개가 펼쳐지더니 날카로운 칼날처럼 검은색 불꽃을 베고 좁은 통로를 뚫었다.

“채주, 내가 앞에서 길을 열 테니 조심히 따라와.”

당부를 남긴 심협은 양팔에서 금과 청의 빛을 뿜어내며 진시천리 비술로 좁은 통로 안으로 들어갔다.

금과 청의 빛이 서로 교차하면서 번쩍이더니 순식간에 사라졌다.

거의 동시에, 경천지계의 머리로 들어가는 입구를 지키고 있던 청호의 눈앞에 희미한 사람의 모습이 순식간에 나타났다. 그리고 그녀가 반응하기도 전에 타오르는 불꽃을 감싼 붉은색 비검이 그녀의 심장을 찔렀고, 후산은 뒤로 날아갔다.

금청(金靑) 빛의 둔광은 이 충돌의 힘을 이용해 가까스로 멈췄다.

땅에 내려온 심협은 빠르게 전방을 둘러봤다. 경천지계의 머릿속은 밖에서 봤던 것보다 훨씬 넓은 공간이었다. 마치 넓은 실내의 대청 같았다. 다만 이 대청 바닥과 벽에는 언문이 빼곡해 마치 하나의 몸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이때, 거청천은 왼쪽 전방에서 손을 3척 높이의 평대(平臺) 위에 올려놓고 있었다.

평대도 마찬가지로 언문이 빼곡했고, 홈이 여덟 개가 파여 있었다. 그중 세 개에는 어떤 물건이 박혀 있었다. 하나는 흑옥천기령이었고, 나머지 두 개는 막망, 만벽 두 장로의 장로 영패였다.

거청천의 얼굴에는 푸른 핏줄이 솟아 있었고, 이마에는 땀이 가득했다. 심신을 오롯이 집중하고 있어서 심협이 온 것을 전혀 모르는 듯했다.

“이놈들, 선조님의 경천지계를 장악하기 위해 언문 법진을 이렇게 바꿔놓다니. 혹시나 해서 장로 영패 두 개를 갖고 왔건만, 그래도 못 여는 건가……?”

이를 본 심협은 내심 안도했다. 한참 동안 보이지 않았던 거청천은 경천지계의 법진을 발동하느라 전력을 다하고 있었던 것이다.

“안 되면 괜히 힘쓰지 말고 그만두지.”

심협이 웃음을 머금은 목소리로 말하자 그제야 거청천은 뒤를 돌아봤다.

“이런 쓸모없는 것들. 진선기 애송이 하나 못 막다니.”

말이 끝나기 무섭게 순양비검 공격에 튕겨나갔던 청호가 다시 심협에게 돌진해 왔다.

그녀의 가슴 한구석에는 보기 흉한 관통상이 선명했지만, 그보다도 더 흉한 표정으로 눈을 부라리며 심협을 노려보고 있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갈기갈기 찢어서 씹어 먹을 기세였다.

그녀가 푸른 연꽃을 휘두르자 검은 불꽃이 심협을 향해 날아갔다.

이와 동시에 신념 비술도 발동됐다.

그녀의 극독으로 물든 신식의 힘이 아무런 흔적도 없이 식해로 파고들었다. 손을 들어 검은 불꽃을 막으려던 심협은 둔해졌고, 그 자리에 우뚝 굳어버렸다.

청호는 흡족한 듯 웃었다. 이 술법에 당하지 않은 진선기 수사는 지금까지 한 명도 없었던 것이다.

“흥! 전에 법력 소모가 컸던 나를 공격해놓고 그걸로 날 이겼다고 생각했냐?”

그녀가 경멸의 미소를 짓더니 검은색 장검을 꺼내 심협의 목을 쥐려 했다.

한데, 그 순간 갑자기 표정이 굳어졌다.

“이 느낌……?”

심협을 향해 뿜어낸 신혼의 힘이 마치 거대한 산에 막힌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강력함은 여전했고 흔들림이 전혀 없었다.

“기분이 어때?”

심협이 갑자기 씩 웃었다. 그러더니 손을 들어 내리쳤고, 공격을 당한 청호는 피를 뿜으며 뒤로 날아갔다. 뒤이어 순양비검이 다시 날아와 머리를 찌르려 들었다.

그녀는 재빨리 머리를 비틀어서 이 치명적인 일격을 피했다.

심협이 다시 쫓아가려는 순간 뒤에서 섭채주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조심해요!”

심상치 않음을 느낀 그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몸을 숙였다. 차가운 바람이 아슬아슬하게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갔다.

곧이어 굉음이 울려 퍼졌다.

섭채주가 벽파표대를 빠르게 휘둘러 허공에 숨어 있는 그림자를 공격했다.

심협은 일어나 순양비검을 쥐고 바로 섭채주 옆에 나란히 섰다.

그제야 거의 투명에 가까운 인간 형상의 그림자가 보였는데, 기이하게도 영력 파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거청천은 심협에 이어 섭채주까지 나타나자 표정이 더욱 일그러졌다.

이번 천기성 탈환 계획은 주도면밀했다. 하지만 후산이 뜻하지 않게 대결에서 실패하면서 어쩔 수 없이 영패를 하나 빼앗아야 했다. 이를 위해 성동격서로 천기성을 혼란에 빠트리는 계획까지는 성공했건만, 경천지계를 조종하는 단계에서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한데 이번에는 또 두 명의 진선기가 여기까지 쫓아왔다. 여기서 소부자까지 나온다면 이번 계획은 완전히 실패로 돌아갈 것이다.

“우리 거씨 가문의 경천지계다! 한데 왜 내가 조종을 못 하는 거냐?”

거청천이 차갑게 외쳤다.

이때, 그의 머릿속에서 어떤 생각이 떠올랐고, 눈에 의아한 빛이 스쳤다.

“설마……?”

심협은 그의 표정이 여러 번 바뀌자 처음에는 실성한 줄 알았다.

“채주, 내가 저자에게 달려들어서 공수지술로 이곳을 휩쓸 거야. 너는 전력으로 저들을 얼려. 그 틈에 영패를 빼앗고 바로 빠져나가자.”

“알겠어요.”

심협의 전음에 섭재주가 바로 답했다.

한데 그때, 갑자기 거청천이 소리쳤다.

“우리 거씨 가문의 경천지계란 말이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갑자기 그가 자신의 손을 긋더니 앞에 있는 평대에 피를 뿌렸다.

똑! 똑!

거청천의 피는 바닥의 홈을 타고 흘러 평대 대부분을 붉게 물들였다.

심협은 거청천이 혈맥의 힘으로 자신과 경천지계의 연결을 시도해보려 한다는 것을 알아채고는 일순 긴장했다. 어찌 됐건 이것은 거씨 가문 선조가 만든 언갑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대의 언문과 홈이 거청천의 피로 잔뜩 물들도록 경천지계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아무래도 거원 선배는 공과 사가 뚜렷한 분이라 혈맥으로 움직일 방법은 남기시지 않은 모양이군.”

심협은 안도하며 씩 웃었다.

거청천은 그의 조롱에 두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떴을 때, 두 눈은 분노와 살의로 가득했다.

그는 일그러진 표정으로 평대에서 묵옥천기령을 빼내 성질을 부리며 바닥에 내던졌다.

콰직!

묵옥천기령이 깨지자 대량의 초록색 부스러기와 물들었던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내가 갖지 못하면 천기성도 가질 수 없다!”

분노로 이성을 잃은 거청천의 몸에서 기운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경천지계를 완전히 부술 생각인 듯했다.

한데 그때, 기이한 일이 이어났다.

그의 발 언저리 멀지 않은 곳의 소용돌이 모양의 언문 중앙. 묵옥천기령의 부스러기와 섞인 핏방울이 똑 떨어지더니 언문 중심으로 서서히 스며들었다.

곧이어 소용돌이 언문에서 갑자기 환한 빛이 번쩍였고, 중심에서는 강력한 영력 파동이 느껴졌다.

“됐다!”

경천지계가 발동됐다고 생각한 그가 희열에 찼을 때, 갑자기 소용돌이에서 강력한 힘이 뿜어져 나왔다.

그는 심상치 않음을 깨닫고는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그 힘은 점점 강력해져서 그를 소용돌이 속으로 빨아들였다.

“크아악!”

처참한 비명과 함께 그의 몸은 산산조각이 나 이내 소용돌이에 완전히 흡수되었다.

이를 본 심협은 깜짝 놀라 서둘러 섭채주를 데리고 둔술을 시전하려 했다.

하지만 그가 움직이기도 전에 그 힘이 덮쳐왔고, 그들을 소용돌이로 끌어당겼다.

심협은 도망칠 수 없음을 알고는 섭채주를 입구 쪽으로 내던졌다.

한데 그 순간, 저 멀리 튕겨나갔던 청호가 비열하게 웃으며 기습적으로 달려들어 섭채주를 다시 이쪽으로 날려버렸다.

“안 돼!”

절망한 심협과 달리 섭채주는 심협과 눈이 마주치자 환하게 웃었다.

마지막 순간, 심협은 소요경을 꺼냈다.

거울에서 날아온 빛이 섭채주를 감싸고 거울 속으로 다시 들어갔다.

‘이제 채주는 무사하겠지…….’

그 생각을 끝으로 심협은 소용돌이로 빨려 들어갔다.

형용할 수 없는 극심한 고통이 온몸을 감쌌고, 그의 몸도 거청천처럼 갈기갈기 찢기며 이내 소용돌이 속으로 사라졌다.

* * *

심협은 천천히 눈을 떴다.

전신에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심협은 황정경의 치료 비술을 운공하여 빠르게 몇 주천을 했고, 그제야 통증이 좀 사라졌다.

주위를 둘러본 심협은 흠칫 놀랐다.

현재 그는 백옥 대전 안에 있었다. 천장은 족히 50장에 이르렀고, 폭은 백여 장 정도였다. 그 웅장함에 그는 혀를 내둘렀다. 그 속에 있는 자신이 너무나 보잘것없어 보였다.

“여기가 어디지? 천기성의 대전 중 하나인가? 거청천은 어디 있지?”

심협이 간신히 몸을 일으켜 앉고는 주위를 둘러봤다.

대전은 텅 비어 있어 주위에는 사람은커녕 기둥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 웅장한 대전 주위에는 출구도 없어서 마치 완전히 봉쇄된 공간 같았다.

“아, 채주.”

섭채주가 생각나 서둘러 신식을 운공하여 소요경을 안을 탐색하려던 그는 표정이 굳었다.

대전에는 금제의 힘이 충만하여 신식이 겨우 30여 장밖에 펼쳐지지 않았고, 운공하는 것조차 매우 힘들었다. 마치 진흙탕을 걷는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심협은 계속해서 신식을 운공하여 소요경 안을 살폈다.

전송 과정에서 의식을 잃긴 했어도 호흡이 안정된 것이 섭채주에게는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심협은 안도하며 가부좌를 틀고 치료 단약을 먹은 후 부상부터 치료했다.

황정경을 운공하자 단약이 빠르게 녹아서 뜨거운 기운이 몸 곳곳으로 퍼졌다.

부상 대부분은 전송 과정에서 생긴 것으로 심각하지 않았기에 단약과 황정경의 강력한 회복력이 더해지자 금방 회복됐다.

“예사로운 곳은 아니로군.”

그는 중얼거리며 한쪽 벽 앞에 섰다.

신식을 운공하기는 힘들었지만, 대전 금제의 근원이 사방에 있는 벽임은 알 수 있었다.

그는 운사여전결을 운공하여 신식을 혼사로 바꾸어 벽 안을 살펴봤다. 하지만 벽에 닿자마자 부드러운 힘이 튕겨냈다.

이번에는 유명귀안을 발동하여 자세히 들여다봤다. 백옥의 벽에 한 겹의 형광이 덧입혀진 것이 어렴풋이 보였다. 그 위로 희미한 언문 무늬가 있었다. 천기성의 금제가 확실했지만, 이전에 봤던 그 어떤 것보다도 더 복잡했다.

“아무래도 천기성의 어떤 은밀한 곳인 것 같군. 장로님들, 용서하십시오. 어쩔 수 없이 귀성의 건물을 부수게 되었습니다. 후에 책임지고 복구하겠습니다!”

그는 주위를 향해 포권하며 예를 올리고는 수결을 맺어 크게 휘둘렀다.

붉은 빛이 감도는 수십 장 길이의 검기가 날아가 강하게 벽을 베었다.

펑!

벽에서 갑자기 형광의 빛이 번득이며 굉음이 울려 퍼졌고, 붉은색 검기는 단숨에 부서졌다. 반면 벽에는 아무런 흠집도 남지 않았다.

이 광경에 심협은 눈을 가늘게 뜨고 생각에 잠겼다.

방금 이 붉은색 검기는 첫 번째 순양검이 뿜어낸 것인데 벽의 금제에 이렇게 쉽게 부서졌다. 아무래도 이곳의 대전은 그의 생각보다 더 강력한 듯하니 여기서 빠져나가기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워낙 넓은 곳이라 벽을 타고 날아가며 살피는 데만 해도 한참이 걸렸다. 더욱이 작은 틈 하나 찾지 못했다.

이때, 소요경 안의 섭채주가 천천히 깨어났다. 몸에는 상처 하나 없었지만, 약간 어지러웠다.

심협도 이를 알아채고 손을 휘둘러서 섭채주를 꺼냈다.

“오라버니, 여기가 어디예요? 우리는 왜 여기에 있는 거죠?”

섭채주가 주위를 둘러보면서 물었다.

“나도 모르겠다. 거청천이 우연히 경천지계 안의 어떤 금제를 발동하는 바람에 우리가 여기로 보내진 것 같구나.”

심협이 자신의 생각을 간략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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