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901화 (901/1,214)
  • 901화. 다른 속셈

    복 장로가 손을 휘둘러 주먹만 한 은색 공을 던졌다. 은색 공이 금속 비석에 닿는 순간 강렬한 불꽃이 튀면서 폭발했다.

    그 강력한 힘에 땅이 격렬하게 흔들렸지만, 불꽃은 검은색 뇌전을 뚫지 못했고, 오히려 밖으로 흘러나가지 못한 힘이 감옥 안에 거센 충격을 줬다.

    복 장로와 무명 장로 모두 술법으로 그 충격을 막아내야 했다.

    “이건 아무래도 언술 고진 중 뇌극진술(雷極陣術)인 것 같네. 곤진(困陣) 중에서도 극품이야! 천기성에서는 이미 실전됐는데 저들에게는 남아 있을 줄이야.”

    무명 장로가 감탄했다.

    “이런 상황에 감탄이나 하고 있다니, 속도 좋군. 거청천 그놈들이 자네만 노린 건지 아니면 천기성 천제를 노린 건지 모르겠군그래.”

    “그자가 정말로 성주 자리를 빼앗기 위함이었다면 아마도 나만 가둬놓고 내일 대결에 나오지 못하게 했겠지. 허나 다른 목적이 있다면…… 아마 천기성에서 또 다른 소동을 일으킬 게야.”

    “그래도 자네를 쉽게 가둘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은 모양이군.”

    복 장로가 위를 가리키며 말했다.

    무명 장로도 그의 손을 따라가 위를 바라봤다. 감옥의 꼭대기에서 검은색 뇌전이 번쩍이더니 파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검은색 번개가 조금씩 만들어지고 있었다.

    쾅!

    폭음과 함께 검은색 번개가 곧장 아래로 내려와 두 사람 머리 위로 떨어졌다.

    감옥의 꼭대기와 땅의 거리는 몇 장이었지만, 검은색 번개는 무시무시한 힘을 뿜어내며 엄청난 속도로 떨어졌다.

    절체절명의 순간, 무명 장로가 복 장로를 끌어당기고는 함께 열양 언갑 아래 숨었다.

    이와 동시에 열양 언갑의 언문도 번득였고, 커다란 손이 겹쳐져 두 장로의 위를 막았다.

    검은색 뇌전이 바로 언갑의 손에 꽂히면서 번개가 끊임없이 터져 나왔다. 그 강력함에 눌려 열양 언갑은 휘청댔지만, 그럼에도 태산처럼 위를 막아냈다.

    콰쾅!

    또 한 번의 폭음이 울려 퍼지더니 검은색 뇌전이 마침내 언갑의 손을 관통하여 두 사람 앞 땅에 깊숙이 박혔고, 그 강력한 힘은 그제야 사라졌다.

    “엄청난 힘이로군.”

    복 장로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살기가 다분해. 그들의 목적은 날 가두는 게 아니었던 모양이지. 성안에 큰일이 날 것 같아.”

    무명 장로가 굳은 얼굴로 몸을 일으켰다.

    뒤에 있던 열양 언갑도 바로 두 사람의 머리 위를 가리고 있던 손을 거두었는데, 손이 뚫려서 구멍이 생겼어도 신경 쓰지 않고 바로 두 자루의 붉은색 쌍도를 뽑았다.

    이와 동시에 머리 위 상공의 감옥 꼭대기에서 검은색 뇌전이 다시 뭉치더니 아래로 떨어졌다.

    열양 언갑이 양손으로 도를 잡고는 크게 휘둘렀다.

    두 줄기 붉은 도광이 날아가면서 서로 교차하더니 십(十)자 모양의 참격으로 변하여 검은색 뇌전과 충돌하자 굉음이 터져 나왔다.

    검은색 뇌전이 순식간에 부서지면서 수많은 불빛이 사방으로 튀었고, 두 줄기의 도광은 그대로 뇌전 감옥을 두들겼다.

    파지직!

    뇌전 감옥에서 번갯불이 번쩍였고, 도광은 금방 흡수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와 동시에 사방의 여덟 개 금속 비석에서 연달아 언문이 빛났다. 그리고 그제야 무명 장로와 복 장로는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언문 중앙에 있는 무늬는 바로 오래전에 실전되어 사라진 고언도철문(古偃饕餮紋)이었다.

    무명 장로와 복 장로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고언도철문은 다른 진문과 배합되면 거의 완벽한 곤진이 된다. 여기 갇힌 사람의 모든 공격과 위능을 흡수하니 법진을 부수기 힘들다. 오히려 그 힘이 법진에 전가되어 법진을 더욱 난공불락으로 만든다.

    이렇게 된 이상 대진을 부수는 방법은 오직 하나였다. 끊임없이 대진을 공격하여 극한에 도달하게 함으로써 마지막에 대진이 막대한 힘을 버티지 못하고 스스로 부서지게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재 고언도철문만 있는 게 아니라 대진을 이루는 여덟 개의 뾰족한 금속 비석 재질도 범상치 않아서 설령 무명 장로와 복 장로가 힘을 합친다 해도 대진을 뚫기는 어려웠다. 게다가 이건 단순한 곤진이 아닌 곤살(困殺)의 진이었다.

    무명 장로와 복 장로는 곧장 대진을 공격하여 무너트리려 했으나, 그러면 대진이 그들의 공격을 흡수하여 검은 뇌전의 공격을 강화한다. 그러니 단번에 대진을 공격하여 무너트리지 않으면 대진의 공격은 더욱 맹렬해질 것이고, 그들의 법력은 더욱 빠르게 소모되면서 적을 강하게 해주고 스스로는 약해지게 된다.

    그러니 현재로서는 적극적인 공격이 아니라 수동적으로 방어하면서 구조를 기다리는 것이 최선이었다.

    “어쩌면 좋겠나?”

    복 장로가 망설이는 목소리로 물었다.

    “어쩌긴, 전력을 다해 공격하는 수밖에……. 지금 바깥이 어떻게 됐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밤새 구조를 기다릴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럼 목숨 걸고 해보자고!”

    복 장로도 이 방법밖에 없음을 알고 있었기에 소매를 걷어붙이고 전력을 다하려 했다.

    한데 그때, 두 사람의 귀에 갑자기 땅속에서 천둥 같은 소리가 들려왔고, 곧이어 땅이 강렬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이건……?”

    복 장로가 깜짝 놀라 반사적으로 외쳤다.

    “아무래도 지원인력이 와서 대진을 공격하고 있는 모양이군. 우선 힘들이지 말고 잠시 지켜보세.”

    무명 장로도 얼굴에 화색이 돌아 그렇게 말했고, 두 사람은 즉시 공세를 멈추고 방어에 치중했다.

    * * *

    밀실 아래는 언제 팠는지 알 수 없는 커다란 구멍이 있었고, 여덟 개의 거대한 금속 비석이 위로 관통해 있었다.

    대진 전체에 새겨진 언문은 더욱 복잡했고, 똑같이 빛이 번쩍였지만 번개는 흘러나오지 않았다.

    현재 땅속 공간에는 일고여덟 구의 시체가 어지럽게 쓰러져 있었고, 두 사람만이 서로 대치하고 있었다.

    한 청년이 손에 검을 들고 있었는데, 옷에는 부식된 흔적이 역력하였다. 또한 머리가 잔뜩 헝클어진 것이 엉망이었는데, 그는 심협이었다.

    그와 대치하고 있는 사람은 조금 굽은 허리에 커다란 검은색 도포를 입은 채 손에는 지팡이를 들고 있었는 백발노파, 바로 거청천의 수하인 여마마였다.

    “이렇게 커다란 땅굴은 절대 짧은 시간에 팔 수 있는 게 아니지. 대결하는 이틀 동안 몰래 사람을 보내 구멍을 파고 대진을 설치한 건가?”

    “하! 알면 뭘 어쩔 거냐? 본래 무명 혼자만 밀실에 있을 줄 알았는데 설마 복 장로 그 늙은 것까지 있을 줄이야. 이게 바로 일거양득이겠지.”

    여마마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다만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고 심협을 바라봤는데, 꺼림칙한 빛이 역력했다.

    거청천의 수하 중 그녀는 경지가 높은 편은 아니었고, 겨우 진선 후기였다. 하지만 치밀하고 언문 법진에 능했기에 거청천은 그녀에게 이 일을 은밀히 맡긴 것이었다.

    법진 설치 준비는 완벽해 그녀가 법진만 발동하면 무명 장로를 제압하거나 혹은 죽일 수도 있었다. 한데 설마 여기서 심협을 마주칠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처음에 그녀는 심협이 겨우 진선 초기에 불과한 데다 혼자였으니 가볍게 제압할 수 있을 거라 여겨 그를 거의 신경도 쓰지 않았다.

    한데 본격적으로 싸움이 시작되면서 그녀는 심협이 과감하고 거침없으며 실전 경험이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대진 발동에 필요해 그녀가 데려온 자들은 겨우 몇 합 만에 전부 심협에게 몰살당했다. 본래 이들이 있으면 설령 무명 장로와 복 장로가 대진을 향해 반격하지 않아도 고진의 위능을 끊임없이 높여서 두 사람을 바로 소멸할 수 있었다.

    한데 이제 그렇게 할 수 없게 되었다.

    “천기성에 온 목적이 뭐냐?”

    심협이 여마마를 노려보며 다시 물었다.

    “당연히 성주 자리를 되찾기 위함이지 뭐가 더 있겠느냐?”

    “천기삼관에서 이길 자신은 없고, 거청천도 소부자 선배님을 이길 자신이 없으니까 이런 비열한 수단을 쓴 거였군.”

    심협은 신랄하게 비꼬았다.

    “헛소리하지 마라! 우리 주인님이야말로 언술의 정통이시거늘 어찌 그런 정통도 없는 자에게 진단 말이냐!”

    여마마가 노발대발하며 소리치는 걸 보자 심협은 도발이 먹혔음을 알고는 좋아하며 다시 말했다.

    “소부자 선배님은 천기성을 통솔하고 언술의 발전에 힘쓰셨지. 허나 너희 그 망할 주인님은 신발 끈을 묶을 자격조차 없다. 하긴, 힘이 있으면 왜 정정당당하게 대결하지 않고 소부자 선배님이 나오기 전에 이런 비열한 수단을 쓰겠어?”

    “이…… 이놈이 죽으려고 작정했구나! 시간만 촉박하지 않았다면…….”

    입술을 부들부들 떨며 말하다가 순간 심협의 도발에 넘어갔음을 알아챘다.

    “역시 다른 속셈이 있었구나!”

    “흥! 네가 알았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없다. 너희는 오늘 여기서 다 죽는다!”

    여마마가 차갑게 비웃고는 지팡이로 땅을 강하게 두드렸다. 그러자 먼지가 쏟아져 나오더니 본래 텅 비어 있던 구멍에 갑자기 대량의 보라색 안개가 잔뜩 끼었다.

    이를 본 심협은 노파의 말이 사실 시간 끄는 것에 불과함을 눈치챘다.

    “죽어라!”

    여마마가 버럭 소리치더니 손을 휘둘렀다.

    삽시간에 보라색 안개가 격렬하게 요동치면서 심협을 향해 달려들었다.

    심협의 눈빛이 일순 굳었다. 보라색 안개가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험악한 얼굴이 가장 먼저 나타났고, 곧이어 시선은 사지를 드러낸 채 가사(甲士)로 변했다.

    뒤이어 여마마가 손을 뱃속으로 넣었다가 맹렬하게 뽑아내자 그 안에서 보라색 무늬가 있는 장도가 뽑혀 나왔고, 다른 손은 보라색 안개가 감싸자 기이하게 생긴 외뿔의 용머리로 변했다.

    “이것도 언갑인가?”

    심협은 적잖이 놀랐다.

    보라색 갑사는 나타나자마자 갑자기 몇 배로 빨라져 눈 깜짝할 사이에 심협 앞에 나타나 그를 향해 도를 휘둘렀다.

    도광이 닿는 곳마다 육안으로도 볼 수 있는 보랏빛이 일렁였다.

    심협은 발아래서 사월보의 달빛이 번득인 순간 뒤로 물러났고, 비스듬히 날아온 칼끝이 그의 몸 앞으로 지나갔다. 이어 땅에는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찌익!

    천 찢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조금도 베이지 않았는데도 앞섶이 찢어진 것이다.

    ‘도광의 여파인가?’

    심협이 의혹을 품은 채 동작을 조금도 늦추지 않고 순양비검을 가로로 휘둘러 보라색 갑사의 허리를 베었다. 한데 의외로 순양비검의 칼날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는 것처럼 가볍게 갑사의 오른쪽 옆구리를 베고 지나갔다. 만약 제때 검세를 거두지 않았다면 몸 전체를 벴을 것이다.

    ‘이상해!’

    그때, 순양비검에서 불길이 타올랐다. 이어서 맹렬한 불꽃이 하늘로 치솟더니 순식간에 보라색 갑사의 몸을 뒤덮었다. 심지어 뚫려 있는 눈에서도 불꽃이 나왔다. 그러나 갑사의 몸은 사라지지 않았다.

    보라색 갑사는 장도를 거두었다가 다시 심협을 향해 휘둘렀다.

    심협은 곧장 장검을 뽑아 막았으나, 강력한 힘에 충격을 받았다.

    챙!

    날카로운 소리가 울린 순간, 심협은 눈빛이 변하더니 바로 몸을 숙였다.

    보이지 않는 예리한 무언가가 그의 머리끝을 스치며 베고 지나가더니 뒤편의 검은색 뾰족한 비석에 박혔다. 그 단단하던 비석에 선명한 자국이 생겼다.

    “자류(紫流)의 참격은 막지 못한다!”

    언갑을 조종하던 여마마가 득의양양하게 말했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보라색 갑사의 다른 손이 갑자기 심협을 향해 뻗어왔다. 그리고 손에 있는 외뿔의 용머리가 눈에서 두 줄기의 노란색 정광을 번득이며 입을 쩍 벌렸다.

    철컹!

    다음 순간, 보라색 사슬이 튀어나와 심협의 심장을 향해 곧장 뻗어갔다.

    “하앗!”

    심협이 짧게 기합을 내지르자 현양화마 비술이 발동되어 몸에서 치우의 마기와 순양의 힘이 동시에 솟구쳤다. 육신이 크게 변하면서 용린과 마갑이 온몸을 뒤덮었다. 동시에 경지가 순식간에 폭증하여 진선 중기 절정에 도달했다.

    자류 언갑의 공격을 막아낼 수 없으니 정면으로 부딪치기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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