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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898화 (898/1,214)
  • 898화. 천재의 방법

    “이번 대결은 언갑을 정련하는 기술과 공력을 대결하겠소. 공평한 대결을 위해 그대들은 모두 똑같은 재료를 사용하게 될 것이오. 주재료는 능소지동과 육해침사(陸海沉沙)이고, 부재료는 광망석(光芒石), 녹보석(綠寶石), 중품오금(中品鎢金) 그리고 백지(白脂) 등이니, 필요에 따라 가져다 써도 좋소.”

    무명 장로의 설명을 들은 심협은 속으로 감탄했다.

    ‘저 영재들의 속성은 기본적으로 중립적이니 공격용 언갑과 방어용 언갑을 정련하는 데 무방하겠구나. 재료상으로는 확실히 공평하겠어.’

    “정련 시간은 세 시진이고, 시간이 다 되도록 한쪽이 완성을 못 했다면 패배로 판정하겠소. 만약 양쪽 모두 완성하지 못했다면 완성도가 높은 쪽이 승자요. 양쪽 모두 시한 안에 완성한다면 비무장에서 바로 공방(攻防)을 겨루어 먼저 파손되는 쪽이 지는 것으로 하겠소.”

    무명 장로의 설명이 이어졌다.

    “언갑을 정련하는 건 법보, 법기보다 더 까다로운데 세 시진 안에 영재까지 녹이고 완성품까지 만들어야 한다니, 쉽지 않겠소.”

    심협이 언무사에게 말했다.

    “문제없을 것이오. 만벽 장로님은 줄곧 언술에 심취해 계셔서 언갑 정련에서만큼은 누구도 따라갈 수 없소. 이전에는 두 시진 안에 언갑 하나를 만드셨는데, 성능이 아주 조금 부족한 정도에 불과했소.”

    언무사가 전음으로 답하자 심협은 속으로 감탄을 금치 못했다.

    “또 무슨 규칙이 있나? 없으면 빨리 시작하지?”

    후산은 귀를 후비면서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좋소.”

    무명 장로의 말에 후산과 만벽 장로는 각자 공방 안에 있는 두 개의 정련대(精鍊臺) 앞에 섰다.

    “뭐야, 나보고 지금 이걸 쓰라는 거야?”

    후산이 대 위에 놓여 있는 연로(煉爐)를 보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양쪽 모두 똑같은 연로를 쓸 건데 뭐가 문제라는 게요?”

    “똑같기는 무슨. 여기 있는 연로는 너희가 늘 사용하던 거고 난 처음 써보는 거잖아! 나한테는 불공평하다고!”

    후산이 억지를 부렸다.

    “그래서 뭘 어쩌겠다는 것이냐?”

    만벽 장로는 평정심을 잃지 않기 위해 줄곧 성질을 억눌러왔는데, 곧 폭발할 것 같았다.

    “이렇게 하지. 나는 내 연로를 쓸 테니까 당신도 당신 연로를 쓰는 거다. 이러면 공평하지?”

    “좋을 대로.”

    만벽 장로는 그와 말다툼하기도 싫어 그리 답했다.

    한바탕 소란 끝에 두 사람은 마침내 각자의 정련대 앞에 섰다.

    이를 본 무명 장로가 앞으로 가더니 두 사람 정련대 중앙에 있는 향에 불을 붙이고는 시작을 외쳤다.

    후산은 그 소리가 신호라도 되는 것처럼 내내 실실 웃던 표정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온몸의 기질마저 뒤바뀐 그가 손을 들자 본래 놓여 있던 연로가 보이지 않은 힘에 밀려났고, 다시 손을 휘두르자 대 위에 다른 연로가 나타났다.

    이 연로는 높이가 3척에 불과했고, 전체가 황금으로 되어 있었으며, 발 세 개에 손잡이 두 개가 달려 있었다. 연로 위에는 특이한 짐승 머리가 새겨져 있었다.

    모두가 그 연로를 보자 표정이 변했다.

    이 연로에 새겨진 짐승의 머리는 마치 살아 있는 것 같았고, 손잡이에는 화염 현문(玄紋)이 가득했으며, 세 개의 발은 하나하나가 마치 짐승 다리 같았는데, 비늘이 가득했다. 한눈에 봐도 평범한 연로가 아니었다.

    “저런 고품질의 연로를 쓰는 건 반칙이잖아?”

    복 장로가 화를 내며 소리쳤다.

    “내 소금연로(銷金煉爐)를 보니까 탐나나? 화가 나? 그럼 너희도 연로를 바꾸면 되잖아. 내가 안 된다고 한 것도 아닌데 왜 난리야?”

    후산이 눈을 희번덕거리며 말했다.

    “으…….”

    복 장로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고품질의 연로가 얻고 싶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이던가?

    후산이 사용하는 연로는 천기성 전체에서도 오직 성주가 가지고 다니는 두 개의 연로만이 대적할 수 있을 정도로, 만벽 장로가 평소 사용하는 연로와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만벽 장로도 이를 봤지만 어째서인지 침착했다.

    “연로의 품질이야 분명 언갑 정련에 중요하지만, 언갑의 품질에 영향을 주는 것은 결국 재료요. 이런 재료는 평범한 연로로도 충분히 다룰 수 있소. 저자의 연로는 기껏해야 정련 속도를 높여주겠지. 품질 향상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으르 테니 모두 안심하시오. 저자는 절대 못 이깁니다.”

    만벽 장로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에 그는 실제보다 더욱 커보였다.

    그의 말대로 평범한 영재로 언갑을 정련하는 데는 결국 한계가 있었기에 평범한 연로든 고급 연로든 정련해내는 언갑의 수준은 큰 차이가 없다. 만벽 장로가 평범한 연로로 만들어낸 언갑으로 무승부만 나도 이는 만벽 장로가 더 뛰어나다는 의미가 되리라.

    본인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자 다른 사람들도 말없이 조용히 그들의 대결을 지켜보았다.

    만벽 장로가 한 손으로 결인하고는 입에서 단화(丹火)를 뿜어내자 허공에서 기다란 불길이 나타나더니 바로 연로로 들어갔다.

    연로의 화염 문로가 빛나기 시작하더니 안에서 불꽃이 활활 타올랐다.

    대략 반 각 정도 지나자 연로가 새빨갛게 달아올랐고, 단로 양쪽 손잡이에서 두 줄기의 뜨거운 열기가 솟아올라 작은 구름이 생겨났다.

    “단화만 사용했는데 반 각 만에 능소지동을 녹일 정도의 온도로 끌어올리다니, 확실히 제법이구나.”

    후산이 옆에서 서두르지 않고 이 광경을 보며 감탄했다.

    “후산, 쓸데없는 소리는 그 정도만 해라! 패하면 주인님이 널 용서하지 않으실 거다.”

    “망할 할멈 같으니……. 당신은 말이 너무 많아!”

    후산이 여마마에게 투덜대더니 결인하여 불을 붙였다.

    불꽃이 연로로 들어가자 소금연로의 화염 현문이 빛나기 시작했고, 연로 위 짐승의 두 눈도 동시에 번득이자 예리한 기운이 조금씩 연로에서 전해져 왔다.

    “편(偏) 금속성의 연로잖아! 저자가 방어용 언갑을 만드는 데 자신이 있다고 한 말은 역시 허풍이었군.”

    복 장로가 들으라는 듯 투덜거렸으나 후산은 전혀 개의치 않고 씩 웃더니 전력을 다해 정련하기 시작했다.

    불과 10여 식 만에 연로 위에 운무가 피어올랐다. 온도가 이미 표준에 도달했다는 의미였다.

    “저렇게 빨리 온도가 올라가다니!”

    심협은 크게 감탄했다.

    온도 상승만 보면 그는 확실히 만벽 장로보다 몇 배나 빨랐다. 이는 소금연로의 화력이 평범한 연로보다 몇 배나 강하고, 정련 속도에서만 우세한 게 아니라 재료의 정제 효율도 한 수 위라는 의미였다.

    속도 대결이 아닌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안 그랬다면 만벽 장로의 패배는 불 보듯 뻔했을 테니까.

    심협은 만벽 장로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만벽 장로는 자신의 연로를 뚫어지게 보고 있었고, 몸과 마음 역시 완전히 빠져 후산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았다. 현재 그는 능소지동과 광망석을 연로 안에 넣고는 불꽃을 제어하여 세 개의 원으로 만든 뒤 두 개의 재료를 중앙에 둘러싸고 정련을 시도하는 중이었다.

    세 개의 화염 고리는 온도가 각기 달랐고, 서로 순환하며 두 개의 영재 주위를 끊임없이 맴돌았다. 수시로 교차하는 불꽃을 통해 두 개의 재료는 차원이 다른 융합을 이루고 있었다.

    심협은 이런 용합법(溶合法)을 천기 보전에서 본 적이 있다. 이 교합정련(咬合精煉)은 난도가 매우 높은 정련법으로, 단순한 정련보다 훨씬 복잡하고 까다롭다. 이렇게 얻은 언갑은 두 개의 영재의 각각의 장점을 모두 보존하여 만들어짐으로써 더 많은 우수한 특성을 갖게 된다.

    예를 들어, 능소지동은 연전성(延展性)이 매우 뛰어나지만, 강인성이 부족하다. 만약 단순한 용합을 한다면 영재의 연전성이 보장된 상태에서 강인성을 보강하기에 합성 효과는 고급 영재인 광해지금(曠海之金)과 비슷해진다.

    한데 만약 교합정련으로 만든다면 두 종류의 영재는 서로 맞물려 겹겹이 합쳐지는 상태가 되어 연전성과 강인성이 모두 광해지금보다 우수해진다.

    후산은 만벽 장로가 교합정련법을 사용하는 것을 보자 눈에서 질투의 빛이 떠올랐고, 눈썹 끝도 조금 내려앉았다. 정련 실력만 놓고 보면 그는 이미 만벽 장로의 상대가 아니었다.

    그제야 그는 우습게보던 마음을 거두고 언갑 정련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조금씩 흐르면서 소금연로의 주재료 금속은 모두 연화가 끝나 액체가 되었고, 법력의 제어를 받아 연로 안에 떠올랐다.

    또 잠시 후, 녹은 액체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이는 내부에 있던 불순물이 분리되어 나온다는 징조였고, 영재의 순도(純度)가 끊임없이 높아져 가고 있음을 의미했다.

    심협이 이를 구경하고 있는데 식해에서 갑자기 화령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대로 가면 만벽 장로가 지겠어.”

    그는 소매 속에 감춰진 손에 소요경을 들고 있었고, 거울에 비친 명화연로에서는 화령자가 머리를 내밀고 지켜보고 있었다.

    “이제 겨우 정련 단계인데 벌써 결과를 알 수 있나?”

    심협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신식으로 교류했다.

    “만벽 장로의 교합정련법은 훌륭하지만 사용하는 연로가 너무 평범해서 연로의 온도가 충분히 빨리 올라가지 않으니 영재를 정련할 때 틈이 생긴다. 반대로 후산은 그와 달리 정련한 영재에 기본적으로 틈이 없을 정도로 정교해서 만벽보다 더 뛰어나지.”

    “겨우 영재의 순도(純度) 차이로 승부가 난다고? 게다가 교합정련법은 훨씬 뛰어나다고.”

    심협이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했다.

    “아니. 후산의 정련법은 평범하지만, 만들어내야 하는 언갑이 공격용이니 연전성에 대한 요구가 높지 않다. 오히려 강인성의 요구가 더 높지. 그래서 연전에 집중할 필요가 없다. 그러니 그는 아마 비수나 단추(短錐) 같은, 연전성이 낮은 언갑을 만들어낼 거다.”

    심협은 말없이 후산이 연로에 추가 재료를 넣는 것을 지켜봤다.

    몇 가지 부재료가 차례대로 연로로 들어가 주재료와 합쳐지면서 연로의 온도가 점점 낮아지기 시작했다.

    이때, 후산이 양손을 허공에 휘두르자 연로 안의 영재 용액도 온도가 내려가면서 굳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씩 언갑의 모습이 드러났는데, 화령자의 말대로 단추였다.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저런 품급의 언갑을 만들다니, 제법이군. 언갑 뒷면에 언문을 새길 때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면 그의 승리가 확실하다.”

    화령자의 전음을 들은 심협은 눈살을 찌푸렸다.

    만약 후산이 정말로 이긴다면 거청천 등은 2연승이니 승리가 확실해진다.

    그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만벽 장로를 바라봤다.

    후산과 비교하면 그의 속도는 확실히 느렸고, 아직도 모든 영재를 녹이지 못해 계속해서 영재를 연로에 넣고 있었다.

    그곳에 있는 대부분 사람이 그의 화력이 부족하여 점점 늦어진다고 생각했다.

    한데 그때, 그가 갑자기 모두의 예상을 깨고 수많은 영재 중 눈에 띄지 않는 화수석(火燧石)을 법력으로 제어하여 연로 안으로 넣었다.

    “지금 와서 화수석을 넣어도 아무 소용이 없을 텐데? 만벽은 대체 뭘 하려는 속셈이지?”

    복 장로가 초조하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화수석은 주로 촉진제로 쓰이는 것이라 어느 정도까지 연로의 온도를 높여주긴 하지만, 이럴 때 넣는 것은 계륵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화수석이 그의 법력에 둘러싸인 채 연로 안으로 들어갔지만 바로 타오르지 않고 제어되는 가운데 갑자기 속도를 높이더니 이미 녹은 영재 액체 속으로 들어갔다.

    화수석은 영재 액체에 들어가자마자 바로 완전히 빠져버렸다.

    모두가 이 광경에 어리둥절했지만, 오직 화령자만이 무언가 생각났는지 눈을 반짝였다.

    그리고 그 순간…….

    쾅!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뒤이어 영재 용액이 마치 풍선처럼 부풀어오르더니 갑자기 대량의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잠시 후, 연기가 완전히 사라지면서 팽창한 영재 용액이 곧바로 천천히 갈라졌고, 그 안에서 검은색 화수석 잿더미가 천천히 분리되어 나갔다.

    “천재로다! 천재야! 저건 천재의 방법이야!”

    화령자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

    “무슨 소리야?”

    이해하지 못한 심협이 전음으로 물었다.

    “내가 만벽 장로를 우습게봤군. 설마 화수석을 내부에서 폭발시켜 순식간에 영재 용액의 온도를 높여서 용액 속의 불순물을 증발시킬 줄이야. 천재로다.”

    화령자가 여전히 감동한 말투로 말했다.

    심협은 그제야 이해했고,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었다. 화수석을 제어하여 터트리는 온도가 매우 높아야만 했고, 폭발의 위력이 용액을 둘러싼 틀을 뚫지 못할 정도여야만 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법력으로 화수석이 폭발한 후의 잿더미를 제어하여 용액 안에 들어가 오염시키는 것도 막아야 했다.

    이런 세밀한 조작은 하루 이틀 사이에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심협은 알고 있었다.

    영재 용액의 정련이 완성되자 만벽 장로의 연로 온도가 천천히 내려가기 시작했고, 둥근 방패가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다.

    한데 그때, 이변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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