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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896화 (896/1,214)

896화. 저는 아직 지지 않았습니다

“언니, 오늘 언니의 상대는 저예요.”

청호가 연꽃을 올리며 막망 장로를 향해 예를 올렸다.

막망 장로는 의외의 호칭에 어리둥절했지만 바로 답례했다.

“언니, 전 수련한 일수가 짧아서 많이 부족하니 부디 살살해주세요.”

“종문과 관련된 일이라……. 미안합니다.”

막망 장로는 조금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그녀는 이 소녀에게 호감이 갔지만, 종문과 관련된 일이니 절대로 사정을 봐줄 수는 없었다.

“언니, 우리는 어떻게 대결하나요?”

청호는 고개를 끄덕인 뒤에 물었다.

한데 이를 지켜보던 심협은 어딘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어 전음을 보냈다.

“막망 장로님, 저 여자의 신혼 기운은 불안정한데도 대표로 출전한 걸 보니 뭔가 숨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부주진신법을 수련했기에 심협의 신혼의 힘은 막망 장로보다 약하지 않았고, 어떤 면에서는 그녀보다 더욱 예리했다.

“알려줘서 고마워요.”

막망 장로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었다.

“혼투의 대결 방법은 매우 간단하오. 통신법진(通神法陣)에 두 사람의 신혼을 연결한 뒤 신혼의 힘으로 싸워서 승부를 겨루면 되오.”

무명 장로가 말했다.

“신혼으로 직접 공격하는 건가요? 재밌겠네요.”

청호가 웃으며 말했다.

“신혼의 싸움이 때로는 직접 싸우는 것보다 더 잔인할 수도 있소. 상대가 패배를 인정하면 공격을 멈춰야 하오.”

무명 장로가 당부했다.

“주인님, 언니를 못 이길 거 같으면 패배를 인정해도 되나요?”

청호가 거청천을 돌아보며 물었다.

“마음대로 해라.”

“알겠어요.”

그때, 거청천이 불쑥 말했다.

“너희가 지면 증거로 장로 영패를 내놓아라.”

무명 장로는 그의 말에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소. 대신 그대들이 두 경기를 지면 묵옥천기령을 우리에게 넘기시오.”

“좋다.”

거청천도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가 끝났으면 두 사람은 바로 법진 안으로 들어가시오.”

무명 장로가 그렇게 말하고는 손을 휘둘렀다.

연무대에서 금빛이 반짝이더니 이상한 형태의 법진이 나타났다.

심협이 자세히 살펴보니 법진은 세 개의 둥근 꼴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양쪽의 비교적 작은 원과 중앙의 비교적 큰 원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세 개의 원 사이마다 두 개의 통로 같은 문로가 이어져 있었고, 연결된 통로에는 매우 복잡한 무늬가 그려져 있었다. 그 무늬에서는 금빛이 물결처럼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막망 장로가 먼저 오른쪽 원에 들어가 가부좌를 했다.

땅에서 빛이 솟구치더니 반투명한 금빛의 고치 같은 것이 그녀를 뒤덮었다.

곧이어 그녀가 앉아 있는 원에서 금망(金芒)이 번쩍이더니 금빛이 통로에 새겨진 부문을 타고 중앙에 있는 커다란 원으로 흘러갔다.

커다란 원 안의 부문도 이와 함께 번득이더니 푸른 물결 같은 빛이 천천히 떠올라 거대한 광막의 수구(水球)로 변했다.

수구 오른쪽으로 빛이 점점 퍼져 나가더니 점점 광야 같은 모습으로 변했다. 펼쳐진 사막에는 모래 언덕과 기이하게 생긴 바위들이 나타났는데, 어떤 것은 가운데가 뚫린 동굴 같았고, 어떤 것은 풍식에 깎여 나간 버섯 같은 모습이 있었다. 다양한 형태의 바위였다.

가장 커다란 버섯 모양의 바위에는 누군가 가부좌를 하고 있었고, 바로 막망 장로의 신혼이었다.

이를 본 심협은 의문이 들었다.

‘막망 장로는 아름다운 여인인데 식해의 모습은 어찌 이렇게 황량한가!’

한편, 청호도 연꽃을 들고 왼쪽 원에 가부좌를 틀었다.

그녀가 두 눈을 감자 몸에 빛이 감돌더니 신식의 힘이 통로의 부문을 타고 가운데에 있는 거대한 원으로 흘러갔다.

잠시 후, 거대한 원 위에 수구 광막이 떠올랐고, 왼쪽에 광경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푸른 연못 한가운데에는 비록 활짝 핀 연꽃은 보이지 않았지만, 여러 개의 거대한 꽃봉오리는 막망 장로와 비교하면 생기발랄해 보였다.

청호의 신혼도 그곳에 나타났다. 얇은 천으로 가린 몸에 새하얀 맨발로 연잎을 밟고 있었는데, 가녀린 본체와 달리 매혹적인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바깥에 있는 사람들은 막망 장로와 청호의 신혼이 교류하는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그저 청호가 막망 장로에게 천천히 인사를 하더니 곧이어 새하얀 발로 꽃잎을 연달아 밟으며 먼저 돌진하는 모습만이 보였다.

그녀의 움직임과 함께 연못도 점점 커지더니 중앙의 수구 광막이 강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본래 경계가 명확하던 균형이 무너지면서 대량의 연꽃이 사막 쪽으로 빠르게 퍼져 나갔다.

이것은 오로지 신혼의 힘으로 겨루는 것이었기에 신혼의 힘이 먼저 무너지는 쪽의 세계가 상대에게 완전히 먹히게 된다.

연꽃이 사막을 강하게 휩쓸고 다니자 거대한 바위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고, 메마른 땅이 사라지면서 점점 연꽃으로 변해갔다.

하지만 가장 먼저 사막에 침범했던 연꽃은 몇 번 반짝이더니 곧 수분을 잃고 색깔도 점점 옅어져서 마침내 노랗게 변하여 시들어 사라졌다.

그럼에도 청호의 맹렬한 공세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하늘을 뒤덮은 신혼의 힘이 강하게 솟구치더니 점점 많은 영역을 침범하면서 사막은 조금씩 푸른 잎이 무성한 연못으로 변해갔다.

이때, 거대한 버섯 바위에 앉아 있던 막망이 천천히 두 눈을 뜨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청호를 향해 돌진했다.

그녀의 움직임과 함께 사막에 광풍이 몰아치고, 황사가 뒤에서 세차게 일어나자 마치 거대한 황룡(黃龍)이 승천하는 것 같았다.

10여 마리의 황룡이 서로 몸이 연결되고 황사와 뒤섞이면서 금세 거대한 모래 폭풍이 되어 청호를 향해 날아갔다.

온 하늘을 뒤덮은 모래 폭풍이 지나갈 때마다 모래와 돌이 휘날렸고, 수구 광막도 강하게 흔들렸다.

“엄청난 신혼의 힘이다.”

이 광경을 본 심협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양쪽 신혼의 기세를 보면 막망 장로가 우세했기에 무명 장로 등은 안심했다.

하지만 심협이 보니 거청천 등의 표정도 마찬가지로 걱정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특히 후산은 재밌는 구경을 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저들은 청호가 이길 거라고 굳게 믿고 있는 건가?’

전투는 더욱 치열해졌다.

광포한 황사가 연꽃이 점령한 구역과 연못에 침범하자 대량의 연꽃이 광풍에 휘말려 갈기갈기 찢어졌다.

연꽃이 번식하며 구역을 침범하던 공격에 비하면 황사의 공격은 더욱 직접적이고 광포했다. 막망 장로는 청호를 조금도 얕잡아보지 않는 것 같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황사는 연못의 절반을 휩쓸고 지나갔고, 청호의 신혼도 점점 패색이 짙어져 더는 못 버틸 것 같았다.

“어떻습니까? 패배를 인정하나요?”

여기까지 몰아세운 막막 장로가 갑자기 멈췄다. 만약 계속 공격하면 이 소녀의 신혼이 중상을 입게 될 것이다.

“언니, 정말 대단하네요.”

소녀는 막망 장로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찬사를 보냈다.

그러나 뒤이어 그녀는 바로 응수했다.

그녀가 뛰어올라 양손을 흔들자 아래에 있던 연꽃도 그녀를 따라 춤을 추기 시작했다. 꽃잎들과 연방(蓮房)이 빠르게 자라나더니 순식간에 백 배나 커졌다.

본래 가녀렸던 연꽃이 지금은 하늘을 찌르는 커다란 나무로 변했다.

거대한 연꽃들이 흔들리며 춤을 추자 그 안에 담겨 있던 신혼의 힘이 갑자기 바람의 벽처럼 변하여 날아오는 황사와 충돌했다.

퍼석!

요란한 소리 없이 황사 폭풍은 터져 나가면서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황사가 물러가자 마른 나뭇가지와 시든 잎의 처량한 모습이 나타났다.

심협은 망가진 연못을 보더니 갑자기 표정이 변했다.

“저 연못에는 독이 있습니다! 그녀의 신혼의 힘에 독소가 섞여 있어요!”

심협이 소리쳤다.

모두가 그제야 눈치채고 연못을 바라봤다. 칠흑같이 변한 연못에는 썩은 진흙 같은 것이 잔뜩 쌓여 있었고, 커다란 물방울이 솟아오르더니 펑 하고 터졌다.

“거 도우, 이건 부당하지 않소?”

무명 장로가 물었다.

“혼투의 규칙에 독을 사용하면 안 된다는 규칙이 있었던가? 게다가 청호가 수련한 신혼 비술은 그 자체가 독술(毒術)이니 자신의 식해를 방어한 것일 뿐. 신혼에 독소가 저절로 묻어나는 걸 나무랄 수는 없지 않은가?”

거청천이 태연하게 말했다.

그 말에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

심협도 알 수 있었다. 청호의 신혼 독술은 부주진신법과 마찬가지로 식해에 타인이 침범하지 못하도록 대항하는 술법이었다.

그때, 수구 광막 안의 거대한 나무와 같은 푸른색 연꽃에서 피식 소리가 나더니 연방의 구멍에서 씨앗이 아닌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왔고, 독소는 더욱 짙어졌다.

모두가 막망 장로를 돌아봤다. 그녀의 얼굴에 검은 선이 뚜렷하게 떠오르더니 지렁이처럼 양 볼을 기어다녀 아름다운 얼굴은 추악하게 변해 있었다.

이와 동시에 그녀 아래에 있던 사막은 현재 먹물을 뿌린 것처럼 많은 부분이 검게 물들었다. 조금씩 중독되고 있음이 분명했다.

“우리가…… 졌소.”

이 광경을 본 무명 장로가 굳은 표정으로 천천히 말했다. 더 지연했다가 막망 장로의 신혼은 중상을 입게 될 것이다.

하지만 거청천은 아무런 반응도 없었고, 청호에게 멈추라는 말도 없었다.

무명 장로는 그가 못 들었을 리 없음을 알고 있었다. 자기 쪽이 우세하니 청호를 서둘러 말리지 않는 것이리라.

“우리가 졌다…….”

무명 장로가 크게 외치며 결인하여 대결을 끝내려던 그때였다.

“안 됩니다! 저는 아직 지지 않았습니다!”

막망 장로의 목소리가 모두의 식해에 울려 퍼졌다.

뒤이어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미 밀려나 조금씩 사라지던 황사가 노랗게 번득이는 막망 장로의 움직임과 함께 그녀 주위에 뭉치기 시작했다.

용솟음치는 노란 빛과 함께 그녀의 몸을 뒤덮은 황사가 점점 압축되더니, 조금씩 빈틈없는 황사의 갑옷으로 변해갔다.

“언술을 이렇게 사용할 수 있다니!”

거청천이 감탄한 듯 외쳤다.

막망 장로는 언술을 이용하여 신혼의 힘으로 황사를 갑옷으로 만든 것이었다. 이 갑옷의 보호가 있다면 청호의 신혼의 독을 잠시나마 막아낼 수 있으리라.

곧이어 막망 장로가 손을 들어 움켜쥐자 또다시 노란 빛이 모래를 모으더니 그녀 키의 두 배에 이르는 긴 창이 만들어졌다.

그녀는 뛰어올라 장창을 잡고는 청호를 향해 내질렀다.

장창에 황사가 감돌더니 작은 소용돌이가 되었는데, 더없이 날카로워 보였다. 장창이 지나갈 때마다 수구 광막이 일그러졌다.

청호는 막망 장로의 장창이 전혀 기세가 줄지 않는 것을 보고는 재빨리 뒤로 물러나면서 양손을 앞으로 모았다.

하늘 높이 솟은 나무 같은 연꽃의 연방이 바로 막망 장로를 향해 겹겹으로 쏟아졌다. 겹겹으로 피어난 연방은 접근할 수 있는 곳은 어디든 접근했고, 그러지 못하면 푸른 덩굴의 담장으로 변했다.

하지만 황사의 장창 앞에 모든 것은 헛수고였다.

가까이 다가온 꽃잎은 접근하기도 전에 창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산산조각이 났고, 앞을 막은 덩굴 담장도 종잇장처럼 연달아 뚫렸다.

이와 동시에 끊임없이 부서지는 연잎에서는 대량의 독소가 방출되어 막망 장로의 갑옷에 침투했다. 갑옷은 이미 검게 물들었고, 조금씩 모래가 되어 떨어지기 시작했다.

사실 막망이 모든 힘을 방어에 집중했다면 그녀는 더 단단한 방어 갑옷을 만들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녀는 이미 중독된 터라 서둘러 승부를 내지 않으면 점점 불리해질 것이 분명했다. 이에 어쩔 수 없이 장창에 더 많은 힘을 쏟아야만 했다. 단숨에 청호의 신혼을 쓰러트리면 이길 수 있으리라.

그녀는 힘을 잃어갔지만, 청호 쪽 사정도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대량의 연꽃잎이 끊임없이 사라지면서 청호의 신혼의 힘도 빠르게 사라져갔다. 그녀의 신혼은 본래부터 막망 장로만큼 강하지 않았기에 독소가 아니었다면 진즉 승부가 났을 터였다.

중독이 심한 막망 장로였지만 완강한 신혼의 의지로 저항했기에 두 사람 중 누가 먼저 신혼의 힘이 소모될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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