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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895화 (895/1,214)

895화. 세 번의 대결

그들은 전음으로 대화를 나눈 뒤, 무명 장로가 묵옥천기령을 돌려줬다.

“정말로 동문이었구려. 그럼 먼저 성주부로 가서 대화를 나누는 게 어떻겠소?”

무명 장로가 말했다.

“그럴 필요 없다. 우리는 손님으로 온 것이 아니다. 애초에 자기 집에 손님으로 온다는 게 말이 안 되지.”

거청천이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말도 맞긴 하군요. 그럼 그대들은 여기에 무슨 목적으로 온 것이오?”

무명 장로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대가 천기성의 성주인가?”

“아니오. 우리는 천기성의 장로들이오.”

“성주더러 나오라고 해라. 장로들은 우리 주인님과 대화할 자격이 없다.”

노파가 다시 말했다.

“허! 체면은 좀 세워주지?”

복 장로가 순간 대노했고, 만벽 장로도 수염을 휘날리며 이 악랄한 손님들을 대적할 준비를 마쳤다.

하지만 여전히 무명 장로가 그들을 제지했다.

“성주님은 다른 이유가 아니라 현재 중요한 일로 폐관 중이시오.”

“이런 상황에 폐관이라니, 당장 나오라고…….”

“여마마(妤嬤嬤).”

거청천이 조용히 부르자 백발노파는 바로 입을 다물었다.

“성주가 폐관 중이니 너희와 이야기해야겠군. 이번에 천기성으로 돌아온 것은 다름 아니라 내 선조께서 잃어버린 것을 되찾기 위함이다.”

거청천이 말했다. 그의 선조가 잃은 것이라면 당연히 천기성 성주의 자리였다.

성주 자리를 빼앗으러 왔다는 말에 만벽 장로가 더는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어중이떠중이 몇 놈이 감히 성주 자리를 노려? 제 분수도 모르는 놈들!”

이 말을 들은 백발노파가 분노했다. 하지만 그녀가 뭔가를 하기도 전에 반대편의 교활하게 생긴 남자가 익숙한 듯 바지를 내리더니 소변을 보기 시작했다.

아래 성에 있던 제자들은 미처 피하지 못하고 온몸에 소변이 묻었다. 역겨운 냄새가 하늘을 찔렀다.

이런 도발은 복 장로 등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것으로, 심지어 여마마라는 노파도 당황한 듯했다. 그리고 그녀 옆에 있던 둥근 얼굴의 소녀가 소리쳤다.

“후산(候山), 이게 무슨 짓이야? 더럽게!”

“청호(靑壺), 나한테 뭐라고 하지 말라고. 별것도 아닌 것들이 헛소리를 하니까 본때를 보여준 것뿐이야. 저런 놈들도 천기성의 주인이라고 앉아 있는데 우리 주인님이라고 못할까!”

후산이라고 불린 키 작은 남자가 비열하게 웃으며 조롱했다.

“후산, 이곳은 천기성이다. 선조께서 세우신 천기성에 한 번만 더 그런 짓을 하면 내가 용서하지 않겠다.”

“네!”

거청천의 말에 후산은 바로 웃음을 거두고는 울상을 지었고, 옆에 있는 거구의 못생긴 남자는 말없이 웃었는데 그 모습이 조금 모자라 보였다.

“적만아(赤蠻兒)! 웃긴 왜 웃어!”

후산이 참지 못하고 짜증을 내자 못생긴 남자는 바로 웃음을 그쳤지만, 커다란 입은 여전히 씰룩거렸다.

그러나 이 광경을 지켜본 무명 장로 등은 웃지 못했고, 다른 사람들도 표정이 일그러졌다.

“거청천이라고 하였소? 그대는 성주의 자리에 도전하려는 게요?”

표정이 어두워진 무명 장로가 거청천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 일은 그대들이 나설 일이 아니니 성주가 나오면 다시 얘기하지.”

“우리 성주님께 도전하려면 먼저 천기삼관(天機三關)을 통과해라.”

복 장로가 화를 내며 말했다.

“천기삼관?”

거청천은 눈살을 찌푸렸지만, 흥미를 보였다.

“우리 천기성에 세 개의 관문을 설치하고 관문마다 장로가 한 명씩 지키고 있을 터. 너희 쪽에서도 세 명이 나서서 관문을 돌파하는 것이다. 두 개의 관문만 통과해도 너희가 통과한 것으로 해주마.”

“좋다. 다만, 아무런 대가 없이 도전하라는 건 아닐테고 세 개의 관문을 넘으면 어떤 상벌(賞罰)이 있는 거지?”

복 장로의 말에 거청천이 좌우를 둘러본 뒤 다시 말했다.

“만약 그대들이 이긴다면…… 천기성 장로회에 들어와 천기성 결정에 참여할 수 있게 해주겠소.”

무명 장로가 잠시 후 말을 이었다.

“장로회? 허! 장로회를 어디다 쓰라는 거지? 내가 원하는 것은 천기성 성주 자리다!”

“장로회에 들어와 주사(主事) 장로가 되면 성주의 자리에 도전할 자격이 생기오. 못 하겠다면 언제든 떠나도 좋소.”

“좋다. 하겠다.”

거청천이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어떤 대결인지도 모르고 응하는 게요?”

무명 장로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언술 대결이면 너희는 나를 이기지 못한다.”

거청천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는데, 너무도 자연스러워 거만한 기색은 없었다.

“흥! 어디서 굴러먹다 온 놈들이 건방지게…….”

만벽 장로가 차갑게 비웃었다.

“뭐? 굴러먹다 온?”

“우리가 정통이고 너희가 반역자란 말이다!”

만벽 장로의 말에 상대방이 노발대발했다.

“세 번의 대결은 혼투(魂鬪), 계투(械鬪) 그리고 언투(偃鬪)로 나누어 진행되오. 양쪽에서 세 사람이 나와서 대결하는 것이오.”

무명 장로가 끼어들어 화제를 전환함으로써 싸움을 말렸다.

“혼투, 계투, 언투라……. 내용은?”

거청천도 손을 들어 부하들을 만류한 뒤 물었다.

“혼투는 이름 그대로 참가자들이 신혼의 힘으로 싸워서 승부를 내는 것이오.”

“언사에게 있어서 신혼의 강약 여부는 우열을 가리기에 좋은 지표지. 좋다.”

거청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계투는 언사의 본직인 언갑을 만드는 기술로 대결하는 것이요, 언투는 언사가 직접 각자의 언갑을 조종하여 싸우는 것이오.”

“좋다, 너희들 요구대로 하겠다.”

“그렇다면 앞으로 사흘 뒤, 매일 한 차례씩 대결을 진행하여 승부를 겨루겠다. 그전에…… 기관성을 성 밖으로 빼라.”

복 장로가 불쾌한 표정으로 말했다.

“뭐라? 우리는 우리 종문으로 돌아온 것인데 어찌 성 밖으로 빼라는 거냐?”

백발노파가 다시 대노했다.

“지금은 누가 옳고 그른가를 거론하기에 적합하지 않으니 이 기관성이 성 위에 머무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하오. 아니면 잠시 북원(北苑)에 내려놓는 게 어떻겠소?”

무명 장로가 복 장로를 제지하며 끼어들자 거청천도 잠시 생각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날 따라오시오.”

무명 장로가 앞장서서 길을 안내했다.

복 장로와 만벽 장로가 차갑게 비웃고 돌아가는 것을 본 무명 장로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오직 막망 장로만이 그의 뒤를 따라서 거청천 등을 북원으로 안내했다.

북원은 천기성 북쪽에 있는 넓은 정원이었다. 거청천은 정원 호수 옆에 있는 넓은 공터에 기관성을 내려놓았다.

“거 도우, 괜히 불필요한 번거로움을 일으키지 말고 내일 대결 전까지 모두 여기서 편하게들 쉬시오.”

“걱정 마라. 천기성은 조만간 내 것이 될 터인데 내가 어찌하여 괜한 소란을 피우겠는가.”

거청천은 담담하게 말했다.

“그렇다면 나도 안심이오.”

무명 장로는 그들에게 인사한 뒤 막망 장로와 빠져나왔다.

한데, 그들이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뒤에서 누군가 쫓아왔다. 바로 청호라 불리는 푸른색 연꽃을 든 둥근 얼굴의 소녀였다.

“청호 도우, 무슨 일이라도……?”

“다른 게 아니라…… 그저 사과하고 싶어서 왔습니다.”

청호가 웃음을 띠며 사과했다.

“그게 무슨……?”

그녀의 사과에 오히려 무명 장로 등이 어리둥절했다.

소녀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정말 송구합니다. 후산 저자는 항상 제멋대로였고, 여마마도 성격이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랍니다. 부디 여러분이 아량을 베풀어 이해해주세요.”

말을 마친 소녀는 그들에게 손을 흔들고는 돌아갔다.

무명 장로 등은 그녀의 사과에 불만이 다소 줄긴 했다.

북원을 떠난 무명 장로는 바로 천기성 제자들을 불러 이곳을 삼엄하게 감시했다.

“제가 여기서 지켜보고 있을까요?”

“그럴 필요까지는 없고, 제자들에게 지켜보게 하면 될 게요. 저들이 우리가 활동을 제한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어떤 행동을 보일 터. 그럼 우리가 손을 쓸 명분이 생기오. 방심하지 말고 전투태세를 항시 갖추고 있게 하시오.”

“저들을 성에 들인 것도 제어하기 쉽게 하기 위함이시죠?”

막망 장로가 웃으며 말했다.

“복 장로와 만벽 장로가 그대의 반만 닮았어도 내 걱정이 없을 텐데……. 며칠간 만일을 대비해 상성을 봉쇄하고 우리는 하성에 머물면서 지켜봅시다.”

무명 장로가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한데 두 사람은 갑자기 표정이 변하더니 동시에 한 곳을 바라봤다.

그곳에서 엄청난 금빛이 하늘 높이 솟구쳐서 찬란하게 반짝였고, 동시에 짙은 천지영기 파동이 느껴졌다.

그 기운은 이내 빠르게 사라졌고, 더는 느껴지지 않았다.

“누가 경지를 돌파하는 모양인데?”

“저쪽은…… 아무래도 심협 같군요.”

“오, 진선 중기로 돌파하려는 겐가? 다만 성공하지 못한 것 같군.”

무명 장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말을 마친 두 사람은 복 장로 등과 내일 천기삼관에 관해 상의하기 위해 서둘러 함께 돌아갔다.

* * *

심협은 온몸이 땀으로 젖은 채로 바닥에 가부좌하고 앉아 두 눈을 감고 방금 수련의 여운을 느끼고 있었다.

한참 뒤에야 그는 천천히 눈을 떴다.

“아무래도 시간이 너무 짧아서 화련단의 도움에도 불구하고 돌파할 수가 없겠군. 그래도 한계는 많이 느슨해졌으니 며칠 후에는 성공할 수 있다.”

심협은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환하게 웃었다.

곧이어 상쾌한 바람이 몸을 감돌면서 안개가 피어올랐고, 옷은 순식간에 깨끗해지고 보송보송해졌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 한 바퀴 둘러본 뒤, 소부자가 여전히 폐관 중이라는 소식에 다음 날도 계속 폐관수련을 했다. 옥침이 복구되기 전에 진선 중기로 돌파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거청천 일행이 천기성에 도전했다는 소식에 이어 내일 천기삼관 대결이 진행된다는 소식에 호기심이 생겨 구경하기로 했다.

다음 날 새벽, 태양이 떠오르자 천기성의 거대한 무투장은 찬란하게 빛났다.

원형의 무투장은 천기성 서쪽에 세워져 있었다. 중앙에는 현무흑암(玄武黑巖)으로 만든 거대한 연무대가 놓여 있었다. 이 흑암은 고정된 것이 아니어서 법진을 이용하여 10여 개의 크고 작은, 모양이 다른 작은 연무대로 바꿀 수 있었다.

대규모 전투인 언투가 진행될 때에만 작은 연무대 전체를 움직여 폭이 3백 장이 넘는 대형 연무대로 만든다.

천기성과 거청천 등이 약속한 첫 번째 대결인 혼투는 신혼의 힘으로만 싸우기에 중앙에 있는 작은 연무대로 충분했다.

천기성의 모든 사람이 모여 연무대 양쪽에서 마주 보고 있었다.

왼쪽에는 거청천과 여마마, 후산 등이, 오른쪽에는 무명 장로 등과 언무사 그리고 심협이 있었다.

주위를 둘러본 후산은 연무장 주위의 객석에 아무도 없자 크게 실망했다.

“지금 뭐 하자는 거야? 관중 없는 대결이 무슨 대결이라는 거야? 꼴사납게 질까 봐 무서워서 아무도 못 오게 한 거냐?”

후산이 거침없이 비꼬았다.

“천기성의 규칙, 예부터 쌍방이 모두 동의해야만 제자들이 관전할 수 있다. 안 그러면 절대 누구도 관전할 수 없다.”

무명 장로가 차갑게 말했다.

교전하는 쌍방이 싸우면서 자신의 전력과 숨겨 놓은 패를 모두 공개해야 할 수도 있기에 보통 비공개로 진행하는 것이다.

“이런 규칙은 꼭 바꿔야겠군. 안 그러면 무슨 재미로 하겠어.”

후산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 건 너희가 이긴 후에야 말할 자격이 있는 거다.”

만벽 장로가 화를 내며 말했다.

“그거야 손바닥 뒤집기보다 쉽지.”

후산이 실제로 손을 뒤집으면서 말했다.

“건방지군요. 오늘 대결에 나오는 건 당신입니까?”

막망 장로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오늘 천기성의 대표는 바로 그녀였기 때문이다. 그녀가 천기성에서 소부자 다음으로 신혼의 힘이 강했다.

“흥!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쓰겠냐? 너희는 청호 한 명으로 충분하지.”

후산이 키득거리며 말했다.

그러자 둥근 얼굴의 소녀가 앞으로 나와서 그의 등을 강하게 걷어찼고, 후산은 고통에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으르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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