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3화. 검진 완성
대전의 뒷부분이 공간 폭풍에 무너지면서 그 안의 금제들도 효과가 사라졌다. 당연히 대전 안에 있던 그 난양보옥(暖陽寶玉)들이 땅으로 덜어졌다.
심협은 소요경으로 그 옥석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난양보옥이 정신을 가다듬는 데 효과가 있긴 하지만 출규기 이하의 수사에게나 도움 되는데 그 쓰레기들은 왜 모으는 거야?”
“나한테는 필요 없지만 춘추관으로 보내면 그들에게는 유용할 거야.”
“쯧쯧, 하찮은 문파를 챙기느라 고생한다. 이게 바로 보은이라는 건가? 인간족은 정말 이상하다니까.”
화령자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투덜거렸으나, 심협은 담담하게 웃고는 난양보옥 수집을 마친 뒤, 을목선둔을 이용해 쉽게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는 멈추지 않고 산맥 밖으로 날아가 금방 운무산을 떠났다.
끝이 보이지 않은 하얀 안개로 덮인 산맥을 보며 탄식하던 그는 바로 천기성으로 향했다.
* * *
반나절 뒤, 심협은 조용히 천기성의 거처로 돌아왔다. 다행히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았다.
그는 밀실에서 반나절 동안 정양하여 소모한 법력을 완전히 회복하고는 두 개의 물건을 꺼냈다. 바로 미완성의 오화칠금선과 푸른색 접는 부채였다.
부채를 쫙 펼쳐보니 거울처럼 매끄러웠고, 내부는 깊고 깊어 마치 끝없는 밤하늘 같았다.
“재밌는 부채로군!”
그는 중얼거리며 법력을 주입했다.
작은 울림이 들리더니 찬란한 별빛이 부채에서 뿜어져 나와 순식간에 밀실 전체를 뒤덮었다. 바닥과 벽은 실제 같은 별빛에 긁혀서 자국이 남았다.
심협은 놀라우면서도 기뻤다. 이렇게 순수한 성진 법보는 처음이었다.
그가 가볍게 흔들자 밀실 안의 별빛이 마치 흐르는 물처럼 솟아올랐다. 그리고 그의 생각대로 형태가 바뀌면서 언제든 강력한 공격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좋은 법보다. 금제가 적어도 60도는 되겠어.”
심협은 선천보결을 운공하여 부채 안을 살폈는데, 예상대로 금제는 순양검과 똑같이 64층에 도달한 원만 경지였다.
이 부채의 이름은 성한(星瀚)이었다.
“성한선(星瀚扇)! 딱 들어맞는 이름이로군.”
심협은 부채를 접고는 꿀꺽 삼켜 계속해서 선천연보결로 제련했다.
그의 수련은 성진 공법이 아니지만, 이 부채는 그가 사용하기에 적합했다. 특히 삼성멸마 신통과 잘 어울렸다. 이 성한선이 더해지면 삼성멸마 신통의 위력은 반 정도 더 강해질 것이다.
심협은 이어서 오화칠금선을 들고 생각에 잠겼다.
“어이, 지금 무슨 생각하는 거야? 설마 상고 진화 다섯 개를 모아서 오화칠금선을 완성하려는 건 아니지? 충고하는데, 그 생각은 접는 게 좋을 거야. 그 부채는 위력이 강력하지만 다섯 종류의 상고 진화 중에서 세 개는 벌써 자취를 감췄다고. 절대 못 찾아.”
“진선의 애송이인 내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겠어? 다만, 그 상고 진화가 아니어도 다섯 종류의 천화는 모을 수 있잖아. 네가 천화를 이 부채에 넣어주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적어도 이렇게 곧 죽어가는 모습에서는 벗어날 것 같은데…….”
심협이 오화칠금선을 흔들며 말했다.
현재 오화칠금선 안에는 어떤 화염의 힘도 없었다. 그저 일곱 개 영우의 영력만 있을 뿐, 공격력은 전혀 없는 셈이었다.
“다섯 종류의 천화를 거기에 넣는다고? 그거 괜찮은 생각인데? 내가 왜 그걸 생각 못 했지?”
화령자가 잠시 생각하더니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고, 이 반응에 심협은 자기 생각이 옳았음을 알 수 있었다.
“잠깐! 그래도 안 돼!”
화령자가 갑자기 말했다.
“왜?”
“오화칠금선은 상고 시기의 화염 지보인 데다 이 부채를 만든 자의 수단은 매우 고명하여 진짜와 똑같이 일곱 종류의 상고 영금의 깃털을 이 부채의 매우 깊고 심오한 근본으로 삼았지. 그러니 만약 이 부채를 완성하려면 주입하는 천화의 양이 적어서는 안 돼. 그런데 네 순양검 안에 있는 천화의 양으로는 부족해. 게다가 그 순양검은 네 본명법보가 아니더냐. 그 부채 때문에 본명법보의 힘을 떨어뜨릴 수는 없지.”
“그렇군. 뭐, 어쩔 수 없지. 후에 인연이 닿아 충분한 천화를 얻으면 다시 해보자고.”
심협은 아쉬운 표정이었다.
“그렇다고 실망하기에는 이르지. 비검 안의 천화를 떼서 오화칠금선에 주입하지 못한다고 방법이 없는 건 아니야. 오화칠금선에 다섯 개의 봉인을 설치해서 당분간 다섯 자루의 순양검 안에 봉인해두는 거다. 그리 하면 오화칠금은 비검 안에 담긴 천화의 힘을 빌릴 수 있고, 비검 본체에는 손상이 가지 않지. 게다가 화염에 담긴 검기의 예리함까지 더해져 공격력도 더 강해질 거다.”
“그런 방법이 있단 말인가? 놀랍군!”
심협은 실로 매우 놀랐다.
“뭐 대수라고……. 두 개의 법보를 서로 어울려 사용하는 건 상고 시기에는 매우 흔한 일이었다. 지금의 수선계는 너무 뒤떨어져서 그 방법을 아는 자가 매우 적을 뿐이지.”
“그럼 부탁할게.”
심협이 기뻐하며 오화칠금선을 명화연노 안에 넣으려고 했다.
“어어, 안 돼! 네 법보를 만들 시간이 없어. 연신 대진도 아직 완벽하게 연구하지 못했는데 그 회백색 비단 천까지 연구해야 한다고!”
“당장 해달라는 건 아니니까 천천히 연구해.”
심협의 말에 화령자는 안심하고는 오화칠금선을 넣었다
심협은 잠시 고민하다가 이화주를 꺼냈다.
이번 여정에서 두 개의 부채 모양 법보를 얻은 것도 좋았지만 가장 큰 수확은 바로 이 이화주였다. 이 구슬에 담긴 대량의 남명이화라면 아홉 자루 순양검배 전부를 순양검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순양검은 본명법보이니 그에게는 가장 큰 관심사였다.
‘영화로 녹이려면 법진이 필요하겠지.’
그는 법진을 설치했고, 하룻밤 뒤 밀실에서 나왔다. 낯빛은 창백했지만, 표정만은 뿌듯해 보였다.
단전 안에는 열여섯 자루의 작은 검이 둥둥 떠 있었다. 하나하나가 순양검으로, 모두 붉게 빛났다. 더 강력해진 순양의 힘이 체내에서 솟구쳤다.
그의 경지가 높지 않고 육체가 단단하지 않았다면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열여섯 자루의 순양검이 있으니 체내의 마기는 더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심협의 실력은 더 정진하여 마침내 순양검식의 첫 번째 검진인 순양금광검진(純陽金光劍陣)을 시전할 수 있게 됐다.
순양검식의 기록에 따르면 순양금광검진의 위력은 순양검식을 훨씬 뛰어넘어 발동하면 반경 백여 장을 덮을 수 있었다. 검기의 날카로움 앞에 태을 아래의 수사는 살아남을 수 없고, 태을 존재라 해도 검진을 부수려면 꽤나 애를 먹어야 한다.
뒷부분의 두 개 검진은 순양칠살진(純陽七殺陣)과 순양주선진(純陽誅仙陣)으로, 순양금광검진보다도 위력이 강하고 필요한 비검의 수도 더 많았다. 특히 순양주선진은 여든한 자루의 순양검이 있어야만 최대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이제 겨우 열여섯 자루……. 앞으로 더 많은 만년 화린목과 천화를 모아야겠군. 갈 길이 멀다.”
순양칠살진과 순양주선진을 떠올리자 방금 전까지 가슴 속에서 끓어오르던 흥분이 다소 가라앉았다.
잠시 휴식을 취한 그는 밖으로 나가서 주명에게 재료가 어느 정도 모였는지 물어보려 했다.
“심 선배님, 드디어 나오셨군요. 이틀 동안 연락이 닿지 않아 걱정했습니다. 폐관하셨던 겁니까?”
주명이 초조한 기색으로 빠르게 다가오며 물었다.
“아, 이틀 동안 법보를 좀 만들었소. 재료 소식을 전하기 위해 온 것이오?”
“재료는 계속 찾긴 하오나 아직 두세 종류밖에 모으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괜찮소. 서두르지 않아도 되오. 혹시 또 다른 소식은 없소?”
“아, 어제 보타산의 두 진선기 선배님들께서 천기성으로 오셨는데 심 선배님이 여기에 계신다는 말을 듣고는 바로 뵙고 싶어 하셨습니다. 한데 선배님께서 폐관중이시라 낙화(落花)별원에서 이틀째 기다리고 계십니다.”
“보타산? 그들이 누구요?”
“한 분은 보타산의 수산(守山) 대신이시고 다른 한 분은 보타산의 소종주 섭채주님이십니다.”
“채주! 어떻게 여기까지 왔지?”
심협은 기뻐하면서도 의문이 들었다. 흑곰 요괴가 찾아온 것이야 화련단이 완성됐다는 소식일 가능성이 높다지만, 섭채주는 무슨 일인 걸까?
“안내해주시오.”
“네, 이쪽으로 오시죠.”
주명이 심협을 낙화별원으로 안내했다.
“주 도우, 성주님은 아직도 폐관 중이시오?”
심협은 소부자가 아직도 옥침을 고치는 중일 거라 예상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다.
“네, 중요한 일이 있다고 하신 걸 보면 이번 폐관은 기간이 좀 길어질 것 같습니다.”
심협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금방 낙화별원 깊은 곳에 있는 또 다른 동부에 도착했다. 그 앞에서는 백의의 소녀가 동부 밖의 꽃밭을 거닐며 꽃을 즐기고 있었다.
심협은 그 소녀의 아름다운 뒷모습을 보고는 걸음을 멈췄다.
옆에 선 주명은 심협의 표정을 보고는 허리 숙여 인사한 뒤 조용히 물러갔다.
“누이.”
심협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부르자 백의 소녀가 움찔하더니 돌아섰다.
“오라버니!”
심협을 발견한 섭채주는 더없이 기쁜 표정으로 달려왔다.
이런 섭채주의 모습이 다소 의외였지만, 그래도 심협은 웃음을 머금고 두 팔을 벌렸다. 세상 무엇보다도 그리웠던 향기가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심협은 섭채주를 안고 두 바퀴를 돈 뒤에 그녀를 내려놓았다.
섭채주는 그제야 자신이 흥분해서 무엇을 했는지 자각하고는 순간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괜찮다. 주위에 아무도 없지 않느냐.”
심협은 섭채주의 손을 잡고 꽃밭에 있는 돌의자에 앉았다.
섭채주는 부끄러운 기색이 그제야 조금 가셨지만, 작은 얼굴은 여전히 발그레했고, 고개를 들지 못했다.
“남녀의 사랑은 자연의 이치인데 뭘 그리 부끄러워 하시나! 하하!”
흑곰 요괴가 호탕하게 웃으며 동부에서 걸어 나왔다.
섭채주는 부끄러워서 도망치려 했지만, 심협이 손을 놔주지 않아서 그럴 수도 없었다.
“흑형, 오셨소?”
“심 도우, 얼굴 보기가 왜 이리 힘든 게요? 장안성 일이 보타산에도 알려져서 며칠 전에 그리로 갔다가 육화명 도우에게서 듣고는 청구까지 갔었소. 거기서도 또 안 보여서 찾고 찾다가 마침내 여기까지 왔지 뭐요.”
“송구하오. 그동안 많은 일에 엮여 이리저리 돌아다녔소. 내 흑형에게 수고를 끼쳤구려. 한데 두 사람이 천기성에 어쩐 일로 온 것이오?”
“보타산도 천기성과 거래를 많이 하는데, 최근에 필요한 법보 주문이 있어서 오게 되었어요. 그런데 오라버니가 여기에 있다고 해서 바로 찾아왔죠.”
화제를 바꾸자 섭채주는 얼굴이 활짝 폈다.
“미안, 최근에 동부에서 법보를 만드느라 오늘에서야 소식을 들었어.”
“괜찮아요. 오라버니의 수련도 중요하죠. 법보는 모두 만드신 건가요?”
심협이 미안해하자 섭채주가 다급하게 말했다.
“응. 다 끝났어.”
심협이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심형을 찾아온 이유야 대충 알지 않소? 화련단이 모두 완성되었소. 이건 심형 몫이오.”
흑곰 요괴가 붉은 조롱박을 건네며 말했다.
심협은 바로 조롱박을 열어 그 안에 든 엄지손가락만 한 단약을 살펴봤다. 연꽃처럼 생긴 연단은 불꽃같은 붉은빛이 감돌았고, 강력한 화염 영력 파동이 느껴졌다. 이는 그가 이전에 복용했던 어떤 연단보다도 더 강력했다.
“화련단이 오기만을 기다렸는데……. 정말 고맙소, 흑형.”
“마땅한 거래였는데 감사는 무슨……. 하하!”
심협의 감사 인사에 흑곰 요괴는 손을 내저으며 쑥스러워했다. 한데 손바닥이 약간 하늘을 향한 것을 보고서야 심협은 아차 싶어 태을기로 들어설 때 얻었던 경험과 깨달음이 적힌 옥간을 건넸다.
“나야말로 고맙소. 오랜만에 만나서 할 말이 잔뜩 쌓였을 테니 내 방해하지 않고 이만 물러가겠소. 하하하!”
흑곰 요괴는 신식으로 옥간을 살펴보고는 한시라도 빨리 그 안의 내용을 살펴보고 싶은지 바삐 인사하고 돌아갔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말에 섭채주는 또다시 얼굴이 붉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