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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892화 (892/1,214)
  • 892화. 붕괴

    심협은 검홍의 공격을 피하는 동시에 팔을 휘둘렀다. 그러자 수십 개의 금색 뇌전이 뿜어져 나가 허공을 찢고 만수진인에게 떨어져 그를 몰아붙였다.

    “아직이야?”

    그는 전음으로 화령자에게 물었다.

    “조금만 더. 이 공간의 힘은 예상했던 것보다 더 이상해서 시간이 더 필요해.”

    화령자의 말에 심협은 눈살을 찌푸렸고, 계속해서 뇌전 신통으로 두 사람을 몰아붙이는 동시에 건곤대 안의 조비극을 불렀다. 그리고 잠시 후, 피리 소리가 염열과 만수진인을 향해 울려 퍼졌다.

    하지만 두 사람의 몸에서 하얀 빛이 떠오르더니 가볍게 피리 소리의 침투를 막아냈다.

    “주인님, 저들의 몸에 금제의 힘이 깃들었는지 장룡적이 통하지 않습니다.”

    귀장의 놀란 목소리가 심협의 머릿속에 들려오자 심협은 그제야 만수진인이 아까 환무 속에 있으면서도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바로 저 금제 때문이리라.

    “또 섭혼마음으로 기습하려는 건가? 안타깝지만 이 구곡미환대진(九曲迷幻大陣) 안에서는 어떤 신혼 공격도 효과를 발휘할 수 없다. 이제 죽어라!”

    염열은 방금 심협의 손에 당할 뻔한 기억으로 잔뜩 화가 나 있었기에 차갑게 미소를 짓더니 손에서 커다란 깃발을 꺼내 흔들었다.

    주위의 하얀 환무가 용솟음치더니 안에서 몇 개의 하얀 빛이 뿜어져 나와 금색 뇌전과 푸른 소용돌이를 막아냈고, 곧바로 이어서 사방으로 뿜어져 나갔다.

    심협은 서둘러 옆으로 피하고는 양손에서 금색 뇌전을 연달아 날려 하얀색 안개를 끊임없이 찢고 공격하면서 다가오지 못하게 했다.

    “쓸데없는 발악이다!”

    염열이 비웃고는 정혈을 뿜어내 들고 있는 하얀색 안개에 뿌렸다.

    깃발에서 영광이 갑자기 솟구치자 회색 공간 곳곳에서 수많은 하얀색 실이 떠올랐다. 특히 공간 균열 부근에서는 빽빽한 실이 공간 균열을 단단히 감싸서 심협이 안으로 들어가는 걸 막았다.

    심협 주위의 허공에도 대량의 하얀색 실이 나타나 빠르게 그의 몸을 휘감았다.

    심협은 미간을 찌푸리고 바로 벗어나려 했으나, 이 실들은 대단히 질겨서 쉬이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환력이 하얀색 실에서 스며 나오더니 체내로 밀려들어왔고, 그는 일순 어지러워졌다.

    심협은 서둘러 부주진신법을 운공하여 심신을 다잡고 동시에 양팔에서 뇌전을 방출했다. 금색 뇌전이 온몸에서 뿜어져 나와 하얀색 실을 찢었고, 그는 서둘러 그 틈으로 빠져나가려 했다.

    하지만 주위의 허공에서 하얀색 실이 끊임없이 날아와 계속에서 감쌌기에 찢고 찢어도 끝이 없었다.

    심협은 온몸에서 뇌전을 뿜어내느라 지쳐갔고, 안개는 조금씩 가까워졌다.

    “됐다! 어서 마당 입구로 가! 그곳이 바깥의 공간 통로와 연결된 곳이야!”

    화령자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심협은 기뻐하며 주위의 하얀색 실과 안개를 둘러보더니 온몸에서 초록 빛을 뿜어내며 그곳에서 사라졌다.

    “둔술? 어리석은 것!”

    이 광경을 본 염열은 오히려 기뻐했다.

    심협이 을목 공간으로 들어가자마자 빼곡한 하얀색 실이 정면에서 달려들었다. 좀 전보다 열 배는 많고 질긴 하얀색 실이 순식간에 꽁꽁 감싸는 바람에 그는 거의 하얀색 번데기처럼 되었다.

    온몸에 금색 뇌전의 힘을 둘렀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구곡미환대진은 영력 공간을 기반으로 하여 현실 공간에도 영향을 준다. 영력 공간으로 들어갔으니 스스로 죽으러 간 것과 다름없다! 하하하!”

    염열이 껄껄 웃으며 법력을 수중의 큰 깃발로 주입했다.

    심협의 몸을 감싼 하얀색 고치에서 빛이 번득이더니 강력한 환력이 성난 파도처럼 체내로 들어가 그의 신혼을 삼키려 했다.

    눈앞이 캄캄해지고 머리가 어지러운 게 곧 잠이 들 것 같았다.

    그러나 심협의 신혼은 매우 강력하여 이미 진선 초기를 훨씬 뛰어넘었고, 이 중요한 순간에 힘을 발휘했다.

    “환력이 강하긴 하구나!”

    그는 차갑게 말하고는 부주진신법으로 심신을 안정시키는 동시에 단전에서 온양하던 순양검을 발동했다.

    구곡미환대진의 위력은 예상보다 강했기에, 화령자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강력한 신통으로 대진을 찢어야만 했다.

    “오검제비(五劍齊飛)! 가라!”

    심협의 낮은 외침에 하늘을 가르는 소리가 울리더니 그의 몸에서 다섯 개의 붉은 검의 허상이 갑자기 뿜어져 나왔다.

    이 허상들은 엄청난 기운을 뿜어내며 그의 주위를 날아다녔다.

    순양검식 제5식인 오검제비는 다섯 자루 검의 연합 공격으로, 그 위력은 쌍검합벽을 월등히 뛰어넘는다.

    오검이 아직 완전히 펼쳐지지도 않았는데 그의 몸을 감싸고 있던 고치는 썩은 나무처럼 무참히 잘려나갔다.

    “이럴 수가!”

    염열은 심협의 모습을 두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구곡미환대진의 위력은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저 법진에서 빠져나왔다고? 말도 안 돼! 저건 진선 후기의 존재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현실로 돌아온 심협이 오검제비의 엄청난 검기를 발산하자 주위의 회색 공간이 영향을 받아 곧 무너질 것처럼 강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심협은 깜짝 놀라 서둘러 네 자루의 비검을 거두고 한 자루만으로 신검합일술(身劍合一術)을 시전하여 붉은 빛을 뿜어내며 아래로 내려가려 했다.

    “어딜 가려고!”

    염열이 바로 쫓아가려 했지만, 그때 천둥소리가 울리더니 수십 개의 금색 뇌전이 머리 위에서 떨어졌다. 이에 그는 서둘러 술법으로 막아야만 했다.

    뇌광이 사라졌을 때, 심협은 이미 마당 입구에 도착한 상태였다. 그는 바로 온몸에서 눈부신 은광을 뿜어내 반경 수십 장을 뒤덮었다.

    현묘한 영문이 은빛 안에서 나타나더니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빠르게 움직여 눈 깜짝할 사이 은색 법진으로 변했다.

    법진이 빠르게 움직이자 주위의 허공이 떨려오면서 빠르게 일그러졌고, 그곳에 생겨난 검은 허상이 공간의 통로를 열려고 했다.

    “공간 신통! 저놈이 도망가려고 한다! 어서 막아야 해!”

    염열이 깜짝 놀라 눈빛을 반짝이더니 이를 악물고 하얀색 깃발을 단번에 부러트렸다. 그러자 10여 개의 커다란 은빛이 부러진 깃발에서 튀어나오더니 단번에 주위의 하얀색 진문 안으로 휙 들어갔다. 구곡미환대진의 진문은 마치 보약이라도 먹은 것처럼 빠르게 커졌고, 눈 깜짝할 사이 회색 공간 전체로 퍼져 나갔다.

    이 공간의 모든 파동이 순식간에 멈추더니 기이한 속도로 안정되었다.

    심협 주위의 공간도 마찬가지였다. 은색 법진이 돌아가는 속도가 절반으로 줄어들었고, 공간을 일그러트리던 검은 허상도 전부 사라졌다.

    “공간 법보를 자폭시켜 그 안에 있던 영력으로 공간을 안정시켰다!”

    “그럼 어쩌지? 정 안 된다면 번천인으로 저 대진과 금제들을 부수는 수밖에 없어!”

    심협은 염열 등과 더 이상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그때, 만수진인이 다른 쪽에서 날아왔다. 그보다 더 빠른 두 마리의 거대한 금룡 검홍이 번개처럼 베며 날아와 거대한 검기로 은색 법진을 흔들었다.

    심협이 양손을 내밀자 금색 뇌전이 열 배나 더 짙어졌고, 손앞에 생겨난 두 개의 거대한 금색 뇌구(雷球)가 강력한 뇌전의 힘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이 뇌구들을 집어 던지자 허공으로 들어가면서 바로 천지가 흔들릴 정도의 굉음이 울려 퍼졌다.

    꽈르릉!

    허공에 수많은 뇌전 부문이 나타나더니 거대한 금색 번개가 상공에서 내려와 금룡 금홍에 떨어졌다.

    천뇌가 강림한 것 같은 천벌(天罰)의 기운이 떨어지자 금룡 검홍이 충격에 날아갔고, 금빛 영광도 모두 사라져 다시 금룡쌍전 본체로 돌아갔다.

    만수진인이 다시 금룡쌍전을 발동했지만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놀란 그는 그 자리에 멈추고는 푸른 빛으로 금룡쌍전을 휘감고 자세히 들여다봤다.

    심협은 진선기에 들어서면서 장심뇌 신통도 진전한 효능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뇌법의 가장 위력적인 면은 법보의 영력을 봉인하는 것이다. 법보를 일시적으로 무력화하는 것이다.

    “좋다. 아까 같은 상황이라면 방법이 없을지도 모르겠다만, 지금은 아니다. 네가 그 법보를 쓰겠다면 나도 그 물건을 써주지. 다만, 무슨 일이 생겨도 난 모른다.”

    화령자의 담담한 웃음이 사라지자마자 바로 명화연로가 심협 머리 위에 나타나 빠르게 돌기 시작했다.

    커다란 하얀 빛이 명화연로에서 뿜어져 나와 주위에 있는 구곡미환대진 진문에 비쳤다. 회색빛 광망은 눈부시지는 않았지만, 지나가는 곳마다 모든 진문이 갑자기 사라졌다.

    심협 주위의 공간도 원래대로 돌아왔고, 은색 법진의 발동도 처음으로 돌아왔다.

    “열려라!”

    화령자의 외침과 함께 명화연로에서 뿜어져 나온 은빛이 은색 법진으로 흘러 들어갔다.

    법진의 발동 속도가 더 빨라지더니 법진 안의 공간에서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양쪽으로 갈라지면서 공간 통로가 생겨났다.

    이를 본 심협은 염열을 막아내고 있던 마도를 다시 불러들이고는 바로 공간 통로로 들어갔다. 그의 모습이 사라졌고, 명화연로도 바로 뒤를 따라갔다. 거의 동시에 공간 통로가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다시 합쳐지자 은색 법진도 사라졌다.

    “젠장, 놓쳤군!”

    염열이 번개처럼 날아왔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진선 초기 수사에 불과하니 가게 내버려 두고 어서 창궁비경으로 들어가죠. 스승님께서 남기신 보물을 찾는 게 더 중요합니다.”

    만수진인이 다가오며 말했다.

    염열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하려는 순간, 회색 공간이 갑자기 강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지?”

    “저기!”

    만수진인이 눈을 크게 뜨며 한쪽을 가리켰다.

    심협과 명화연로는 사라졌지만, 아까 화령자가 시전한 회색빛 광망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해 주위로 빠르게 퍼지고 있었다. 구곡미환대진의 진문은 벌써 절반이나 사라진 상태였다.

    남은 진문도 더는 버티지 못하고 몇 번 번쩍이더니 이내 무너지고 해체되어 회색 공간 안에 있던 하얀색 실들도 사라졌다.

    그곳의 수호 법진이던 구곡미환대진이 매우 불안정하던 회색 공간을 간신히 버티고 있었던 것인데 이제 구곡미환대진이 무너졌으니 회색 공간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공간에 균열이 생겨나더니 빠르게 주위로 퍼져갔다.

    “안 돼! 곧 무너진다. 어서 창궁비경으로 가자!”

    당황한 염열이 바로 은색 공간의 균열로 향하자 만수진인도 추운축전화를 발동해 한 걸음 먼저 공간 균열로 들어갔다.

    구곡미환대진이 무너지고 하얀 안개도 전부 사라지면서 도향 등이 나타났다.

    환무가 사라졌으니 이들도 바로 깨어났지만, 주위를 둘러보는 순간 표정이 변했다.

    “저기가 출구다. 어서 도망쳐!”

    도향이 날아서 은색 공간 균열로 달려들었고, 다른 사람들이 황급히 뒤를 따랐다.

    * * *

    심협은 눈앞이 밝아왔다 어두워진 후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까 그 대전 안이었다.

    “드디어 나왔군.”

    그는 안도하며 숨을 내쉬었다.

    염열 등과의 싸움은 크게 위험하지 않았지만, 회색 공간은 거슬렸다. 하지만 이 대전에 다시 돌아오고 나니 거리낄 것이 없었다.

    한데 그때, 이변이 일어났다!

    회색 공간으로 통하던 그 벽이 갑자기 굉음과 함께 폭발하더니 공간의 폭풍이 안에서 뿜어져 나와 주위의 모든 것을 가루로 만들었다.

    깜짝 놀란 심협은 서둘러 대전 밖으로 날아가 공간의 폭풍을 피했다.

    콰콰쾅!

    대전 깊은 곳이 무너졌고, 돌들이 하늘로 흩날렸다. 대전 절반이 무너지면서 뿌연 연기가 피어올랐다.

    “무슨 일이지?”

    심협이 소매를 휘두르자 푸른 빛이 대전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막았다.

    “안의 공간이 무너진 거다.”

    화령자는 담담했다.

    “공간이 무너졌다고? 왜? 네가 아까 쏜 회백색 광망이 그런 거야?”

    “비밀.”

    화령자가 장난스레 웃으며 답했다.

    심협은 궁금했지만, 더는 묻지 않고 신식으로 폐허 깊은 곳을 살폈다.

    평범한 돌들이 쌓여 있을 뿐, 그곳과 통하던 벽은 완전히 무너져 내린 상태였다. 화령자의 말대로 그 회색 공간이 완전히 무너진 게 확실했다.

    그는 크게 실망했다. 회색 공간이 사라졌으니 창궁비경과 연결된 공간 균열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그 비경과는 인연이 없나 보군.’

    그래도 다행히 어느 정도 수확은 있었으니 완전히 헛수고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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