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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891화 (891/1,214)
  • 891화. 본론

    “심협,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내 이미 다 알아봤는데, 여기는 비경과 같은 공간이고, 아까 들어왔던 대전 공관과 연결된 흔적이 있다. 명화연로에 담긴 공간의 힘과 방금 만든 소나이부가 있으니 공간의 흐름을 조금만 더 연구하면 이곳을 빠져나가는 건 어렵지 않아.”

    화령자의 말을 듣고서야 심협은 안도했다.

    “다만 이곳은 공간이 불안정하니 위력이 너무 강한 신통은 쓰면 안 돼. 특히 번천인은 절대 안 된다. 공간이 무너지면 우린 다 죽는다고!”

    “알겠어.”

    화령자의 당부에 심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들의 일에 난 끼어들 생각 없으니 그저 지켜보겠소.”

    그는 공수한 뒤 도향의 말을 무시한 채 마당 대문으로 향했다.

    염열은 심협을 지그시 바라보더니 말없이 하얀색 단추(短錐)를 결인했다.

    두 개의 단추가 두 개의 무지개가 되어 날아가더니 허공의 진문에서 갑자기 하얀 빛이 날아왔다. 이 빛이 스며들자 두 개의 무지개는 갑자기 열 배 이상으로 커졌고, 마치 두 마리의 하얀 노룡(怒龍)처럼 도향 등 다섯 명에게 날아갔다.

    “삼화삼재대진(三花三才大陣)을 펼친다!”

    도향이 굳은 얼굴로 외쳤다.

    유홍과 이표가 바로 그녀의 등 뒤로 날아가더니 좌우로 나누어 서서 진형을 이루었다. 세 사람의 몸에서 동시에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합쳐지기 시작했다.

    전삼칠과 귀등상인은 어찌할 바를 몰라 법진을 방해하지 않도록 옆으로 비켜서서 각자의 법보로 몸을 보호했다.

    도향이 결인하고 주문을 읊자 허리춤의 만리권운이 날아오르더니 휘리릭 하고 몇 배로 커져서 거대한 하얀색 비단 장막이 됐다.

    치익!

    두 개의 하얀색 무지개는 종이를 찢듯 거대한 장막을 찢었고, 기세를 몰아 곧장 도향 등에게 날아갔다.

    하지만 도향은 당황하지 않고 법결을 바꾸었고, 그러자 몸 앞의 허공에서 하얀 빛이 번쩍이더니 순식간에 방금 전과 똑같이 생긴 장막이 수십 겹이나 나타났다.

    하얀 무지개는 겹겹의 장막을 베었지만, 한 겹을 벨 때마다 속도는 빠르게 줄어들면서 그 위력도 약해져갔다. 그리고 장막들의 절반쯤을 뚫은 뒤에는 완전히 멈췄고, 다시 두 개의 단추로 돌아왔다.

    도향이 이를 보고 눈을 번득이더니 양손을 빠르게 결인했다. 그러자 나머지 하얀색 장막들이 빠르게 두 개의 단추를 겹겹으로 휘감았다.

    한데 그때였다. 하얀 단추들에서 갑자기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겹겹의 장막을 뚫고 선명하게 새어 나왔다.

    깜짝 놀란 도향이 술법을 멈추려 했지만, 늦고 말았다.

    퍼펑!

    두 개의 단추가 갑자기 폭발하면서 눈부신 하얀 빛이 장막을 뚫고 도향 등에게 비쳤다.

    귀등상인과 유홍, 이표는 아무렇지 않았지만, 도향과 전삼칠은 하얀 빛에 노출되면서 몸이 굳어졌다. 강력한 환력(幻力)이 눈부신 하얀 빛에서 흘러나와 두 사람의 몸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은 신지가 혼미해지더니 눈빛이 무거워지면서 곧 깊은 잠에 빠져들 것 같았다. 그러나 이들은 신혼의 힘이 매우 강력해 강렬하게 몰려오는 잠을 간신히 버텨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왜 다른 사람은 아무렇지 않은 거지?”

    도향은 전력으로 만리권운을 발동하여 환력의 침입을 막으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이는 전삼칠도 마찬가지라 두 눈이 거의 감긴 상태였다.

    “이럴 리가 없어! 아까는 만리권운이 환력을 막았는데 지금은 왜……?”

    문득 도향은 무언가가 퍼뜩 떠올라 바로 자신의 몸을 살폈다. 역시나 이상한 점이 있었다.

    그녀의 몸에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하얀 부문이 나타나 있었다. 환력과 공명하는 표식이리라.

    “언제 이런 게……? 방금 그 단추로구나!”

    도향은 서둘러 그 부문의 표식을 제거하려 했다. 하지만 환력이 이미 너무 많이 스며들어 잠기운이 올라왔고, 그녀는 끝내 정신을 잃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전삼칠은 이미 잠든 후였다.

    도향이 빠지니 삼화삼재대진도 순식간에 무너졌고, 유홍과 이표, 귀등상인 등은 서둘러 도망치려 했다.

    “이미 늦었다!”

    염열이 차갑게 웃고는 양손을 결인했다.

    마당 주위의 하얀 환무에서 영광이 번득이더니 짙은 안개가 잔뜩 몰려와 순식간에 세 사람을 덮쳤다.

    안개 속에서 영광이 몇 번 번쩍이며 격렬하게 발버둥 쳤지만, 금방 사라졌다.

    하얀 안개가 빠르게 흩어지자 깊은 잠에 빠진 유홍과 이표, 귀등상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를 본 심협은 깜짝 놀랐다. 염열과 만수진인이 기선을 제압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다섯 명에 대진의 힘까지 더해진 도향 쪽을 이렇게 빨리 제압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한 것이다.

    염열이 소매를 휘두르자 하얀 안개가 다섯 사람의 몸을 휘감고는 주위의 짙은 안개 속으로 끌고 갔다.

    일을 마친 염열은 천천히 돌아서서 심협을 바라봤다.

    “고명한 수단으로 순식간에 해결하셨군요. 심히 감탄했소.”

    심협이 내심 경계하며 말했다.

    “과찬이오. 작은 수단에 불과하오. 자, 이제 방해꾼은 모두 치웠으니 본론으로 넘어가시죠.”

    염열이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본론이요?”

    “만수 사제에게 심 도우가 벽해요어를 부화시킨 뒤에 영수로 삼았다고 들었습니다. 심신 각인의 연결되어 있으니 덕분에 벽해요어가 도망칠 걱정이 사라졌습니다. 함께 벽해요어를 따라가서 동화 스승님이 창궁비경(蒼穹祕境)에 숨겨놓은 보물을 가져오시죠.”

    “창궁비경? 여기를 말하는 겁니까?”

    심협의 눈이 반짝거렸다.

    “여기는 아니고, 저 앞의 공간 균열을 통과해야만 진정한 창궁비경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염열이 결인하고 주위의 끝없는 하얀 안개를 가리키자 안개들이 갑자기 위로 솟구치더니 몇 호흡 만에 하늘을 뒤덮는 거대한 흰 구름으로 변했다.

    그제야 심협의 눈에 주위의 상황이 들어왔다. 이 마당은 회색 공간 안에 떠 있었는데, 안개가 가득하여 동서남북을 알 수 없었다.

    하얀색 진문 도안들이 마당 주위의 허공을 맴돌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매우 고명한 진법 금제 같았다.

    마당에서 멀지 않은 곳에 10여 장 크기의 은빛 공간 균열이 보였다.

    공간 균열 틈으로는 끝없는 밝은 공간이 있었고, 그 아래로는 푸른 바다에 파도가 넘실거렸으며, 몇 개의 푸른 섬들이 있었다. 그 끝은 보이지 않았다.

    하늘에는 눈부신 태양과 하얀 구름이 있어 바깥 세계와 별 차이가 없었다.

    ‘저 공간이 창궁비경인가? 창궁이 이름답게 끝도 없이 넓군.’

    심협이 내심 감탄했다.

    벽해요어는 저 끝없는 망망대해를 헤엄치며 정기 태반을 찾고 있을 것이다.

    “심 도우, 스승님께서는 동부에도 보물을 남기셨지만, 진짜 보물은 모두 비경 깊은 곳에 숨겨두셨습니다. 창궁비경의 근원은 알 수 없지만, 전설의 상고 선인이 개척한 곳으로, 그 안에는 수많은 선인의 무덤이 숨겨져 있어 엄청난 보물이 가득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일개 수사였던 스승님이 그런 명성을 떨치게 된 것도 이 비경에서 얻은 수많은 기연 덕분이었죠.”

    만수진인이 설명하는 동안 염열은 덤덤하게 서 있을 뿐, 사제가 비밀을 말하는 것도 막지 않았다.

    “그렇군요. 천지영기가 바깥보다 몇 배는 짙은 게 확실히 특별해 보입니다.”

    심협은 내심 놀랐지만, 표정만은 평온했다.

    “심 도우, 모두가 어렵게 이곳에 들어왔으니 우선 벽해요어를 찾아서 스승님이 남기신 물건을 찾은 후에 저 비경을 돌아다닙시다. 그리 하면 엄청난 수확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만수진인의 말에 심협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다만 심 도우의 실력이 막강하여 우리 사형제는 적수가 되지 않죠. 그러니 심 도우의 신혼 절반을 이 원신패(元神牌) 안에 넣으면 우리도 안심하고 함께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염열은 그렇게 말하며 칠흑 같은 옥패를 꺼냈는데, 검은 기운이 감돌았고 악취를 풍겼다.

    그의 말에 심협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염 사형, 그게 무슨 말입니까? 심 도우는 제 벗이고 그의 도움으로 순조롭게 도향 등을 이곳으로 끌어들여 제압할 수 있었습니다. 한데 어찌 심 도우를 그리 대하는 겁니까?”

    만수진인도 깜짝 놀라 황급히 사형을 만류했다.

    “그래서 그에게는 금제를 발동하지 않은 게다. 허나 암부와 창궁비경은 너무도 중요하니 어떤 차질이 생기는 것도 용납할 수 없다. 그러니 심 도우, 너무 기분 나쁘게 받아들이지 마십시오. 창궁비경의 보물을 모두 꺼내오면 당연히 놓아드릴 겁니다.”

    염열은 여전히 담담하게 웃었다.

    “염 사형, 이럴 수는…….”

    “만수 사제, 스승님께서 과거 동화령(東華令)을 내게 주셨으니 내가 동화 일맥의 장문인이다. 이 일은 내가 주관하니 더는 아무 말도 말게!”

    염열이 차갑게 만수진인의 말을 끊었다.

    만수진인은 달갑지 않았지만, 더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염 도우, 한 가지 잊은 게 있소. 나는 도마 위의 물고기가 아니오. 그러니 내 신혼의 힘을 원한다면, 직접 가져가 보시오.”

    “이런, 이렇게 나올 줄이야. 그렇다면 내 지리적 이점을 이용하는 걸 비겁하다 원망치 마시오.”

    염열이 차갑게 말하고는 위에 떠 있는 하얀색 구름을 향해 결인했다. 그러자 거대한 구름이 다시 흩어지더니 곧장 심협을 향해 덮쳐왔다.

    허공으로 떠오른 심협이 곧장 아래로 내려오며 양손을 내밀자 금색 뇌전이 손에서 뿜어져 나갔다.

    하얀색 안개에는 환력이 충만했지만, 심협의 양팔에서 뿜어져 나온 뇌전에는 뇌겁의 파괴력이 담겨 있었기에 환력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었다. 그리고 역시 금색 뇌전이 꽂힌 하얀 안개는 곧장 절반이나 찢어져 사라져버렸다.

    심협이 다시 양팔에서 풍뢰영문을 발동하자 푸른 광풍이 하늘로 치솟더니 순식간에 수십 장 크기의 소용돌이가 되어 휘몰아쳤다.

    소용돌이의 바람기둥이 어찌나 맹렬한지 천지의 색의 변하였고, 절반이 사라진 안개는 사방으로 흩어졌다.

    이를 본 염열은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오른손으로 결인하여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흩어지던 하얀 안개에서 갑자기 커다란 손이 나타나 심협의 머리를 잡으려 했다.

    꽈릉!

    금색 번개가 꽂히자 커다란 손을 감싼 안개가 약간 흔들렸지만, 무너지지는 않았고, 이 손은 계속해서 떨어졌다.

    그때 두 발에서 달빛이 반짝이더니 심협은 단숨에 수십 장을 물러나 거대한 손을 피했다. 이어서 염열을 향해 돌진하는 동시에 10여 장 길이의 흑홍빛 도망이 몸에서 발사되어 염열의 목을 베려 했다.

    피로 물든 비도가 날아오자 깜짝 놀란 염열은 황급히 뒤로 물러나면서 입에서 붉은 도를 뿜어내 막아냈다. 두 도가 충돌할 때마다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다.

    심협이 양손을 빠르게 결인하자 흑홍빛 도망이 갑자기 몇 배로 커지면서 피에 굶주린 듯 사나운 기운을 폭발하며 붉은색 도의 허리를 베었다.

    퍽!

    붉은 도는 두 동강이 나서 평범한 고철이 되어 떨어져 내렸다. 그 안에 담겨 있던 영력과 기령은 순식간에 도망에 흡수되었다.

    도망의 위력이 다시 강해지더니 흑홍빛 번개로 변하여 아까보다 두 배나 더 빠른 속도로 염열을 내리쳤다.

    한편, 심협은 지금의 상황에 내심 놀랐다. 저 피로 물든 마도에 법보의 영력을 흡수하는 신통이 있을 줄은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염열은 미처 피하지 못하고 위기에 처했지만, 표정은 냉철했고 이마에는 핏대가 솟았다. 숨겨둔 수가 있는 것이리라.

    그때, 가위 같은 금광이 옆에서 날아오더니 땅 소리와 함께 피로 물든 마도에 꽂혔다. 만수진인의 금룡쌍전이었다.

    “심 도우, 미안합니다!”

    만수진인이 다가오더니 양손을 결인했다.

    금룡쌍전이 두 마리 금룡 같은 검홍(劍虹)으로 변하여 심협을 향해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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