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889화 (889/1,214)
  • 889화. 천년 마당

    “고작 그런 법보로 내 흑염화역(黑炎火域)을 막아낼 수 있을 것 같으냐! 천 년은 더 수련하고 와라!”

    염열이 굳은 얼굴로 외치며 빠르게 주문을 외우자 양손에서 시커먼 불꽃이 타올랐다. 동시에 본래 흑홍색이었던 불바다가 순식간에 완전한 검은색으로 변했고, 위력도 더 강해져서 성난 천둥 같은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온도도 빠르게 치솟았다. 대기가 그 열기로 일그러지면서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게 됐다.

    만수기가 소환한 푸른 파도는 빠르게 증발했고, 이에 불바다가 다시 심협 등을 덮쳐왔다.

    이와 동시에 전삼칠과 귀등상인 그리고 방금각의 세 사람도 일제히 법보로 공격을 퍼부으면서 푸른 파도가 빠르게 무너져갔다.

    만수진인은 다급히 법력을 만수기에 주입하여 더 많은 파도를 소환했지만, 안타깝게도 역부족이었다.

    “심 도우, 어, 어서 귀총을 불러서 돕게 하시오!”

    만수기가 소환한 파도가 곧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만수진인은 땀을 뻘뻘 흘리며 서둘러 심협에게 도움을 청했다.

    허나 심협은 조비극을 부르는 대신 성큼 한 걸음 나아가더니 푸른 파도 위에 손을 얹었다.

    만수진인은 심협의 의도를 알 수 없어 당황했고, 수중의 만수기가 떨려왔다.

    “다른 데 정신을 팔다니, 죽여주마!”

    염열의 차가운 비웃음과 동시에 검은색 불바다에서 푹 하는 소리가 울렸고, 두 개의 커다란 불꽃 칼날이 튀어나오더니 파도 대진을 완전히 갈라버린 후 심협과 만수진인의 머리를 노리며 비스듬하게 날아왔다.

    이 불꽃 칼날은 매우 빨라서 순식간에 두 사람 반 장 앞까지 다가왔다.

    만수진인은 죽을상이었지만 만수기를 유지하느라 몸을 뺄 수도 없었고, 지금으로서는 다른 수단을 쓸 수도 없었다.

    한데 그때, 심협의 손에서 푸른 빛이 번득이더니 순식간에 극한의 기운이 폭발하여 주위를 휩쓸었다.

    두 개의 거대한 불꽃 칼날은 심협 등의 3촌 정도 앞에서 멈추더니 아무런 징조도 없이 와르르 무너졌다.

    주위의 푸른 파도도 순식간에 얼음 결정체가 되었고, 검은색 불바다는 극한의 힘에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염열, 도향 등의 몸과 법보도 꽁꽁 얼어버렸다.

    삽시간에 대전 전체가 얼음으로 뒤덮여 얼음 궁전이 되었다. 오직 심협과 만수진인만이 얼어붙지 않았다.

    “이, 이건……?”

    만수진인은 멍하니 주위에 가득한 얼음을 바라보았다. 너무 놀라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얼음에 갇힌 염열 등도 놀란 표정이었지만, 바로 전력을 다하여 힘을 주자 주위의 얼음이 흔들렸다.

    펑! 펑! 펑!

    그들은 모두 얼음을 부수고 바로 빠져나왔다.

    이를 본 심협은 혀를 찼다. 그의 진창해 신통은 이미 절정에 근접했지만, 자신의 법력과 경지가 약한 데다 동시에 여섯 명의 진선 수사를 상대했으니 그 효과가 당연히 떨어진 것이다.

    허나 잠깐 가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심협이 다시 허리춤을 툭 치자 조비극이 건곤대에서 나오더니 장룡적을 불기 시작했다.

    “끼이이이!”

    만룡의 비명 같은 귀신 울음소리가 궁전에 울리면서 여섯 명을 향해 세차게 몰려갔다. 그러자 공간은 완전히 봉쇄되었고, 피리 소리 음파는 이리저리 요동치며 앞의 음(音)과 뒤의 음이 겹치면서 위력이 점점 강해졌다.

    심협은 멈추지 않고 핏빛을 띠는 검은색 도를 꺼냈다. 축융분지에서 얻은 피로 물든 이 마도는 흑홍색 빛이 되어 번개처럼 날아갔다.

    염열 등은 오래지 않아 얼음을 부수고 나왔지만, 몸의 경맥에 한기가 침투하여 법력 운공이 순조롭지 못했다. 그 상황에서 섭혼마음이 덮쳐오자 온몸이 굳어버렸고, 몸이 제멋대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자기 몸을 제어할 수 없게 되자 분노가 솟구쳤다.

    한데 염열이 뭔가 대응을 하기도 전에 눈앞에서 검은색 빛이 반짝였고, 흑홍색 비도가 허공에 나타나 그의 몸과 머리를 분리하려 했다.

    그때, 붉은 빛이 날아왔다. 그 안에서 복숭아나무 작은 검이 나타나 검은 마도에 밀리지 않는 위력을 뿜어내며 충돌했다.

    땅!

    뒤이어 도향의 허리춤에 있던 만리권운에서 푸른 빛이 흘러나오더니 섭혼마음을 막아내기 시작했다.

    심협은 흠칫 놀라 다시 진창해 신통을 운공하려 했다. 그러자 극한의 푸른 빛이 다시 번득였다.

    “도우, 잠시만요! 우리는 아무런 원한이 없지 않습니까? 여기 온 것도 그저 보물을 찾기 위함일 뿐이지요. 아직 보물도 찾지 못한 상황에서 굳이 싸울 필요가 있을까요? 여기서 서로 멈추는 게 어떻겠습니까?”

    도향이 갑자기 손을 들며 소리쳤다.

    “먼저 싸움을 걸어놓고 누구 맘대로!”

    심협은 눈을 치켜뜨며 외쳤다. 하지만 손에 맺힌 푸른 빛을 방출하지는 않았다.

    피로 물든 검은 마도가 다시 날아와 그의 머리 위를 맴돌았다.

    만수진인도 우선 공격을 멈추더니 만수기의 푸른 빛을 더 강하게 일렁이며 자신과 심협을 감싸고는 언제든 공격할 준비를 했다.

    “염열 도우의 충동적인 행동은 소첩이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도향이 예를 갖추는 사이 허리에 있던 만리권운에서 갑자기 푸른 빛이 크게 뿜어져 나오더니 다른 사람들을 뒤덮었다. 그러자 이들의 몸도 정상으로 돌아왔고, 누구도 도향의 건의에 반대하지 않았다.

    염열은 매서운 눈빛으로 심협과 만수진인을 노려봤지만, 역시 입을 다물었다.

    심협의 한빙 신통과 귀총의 섭혼마음은 그 위력이 강력하니 계속 싸운다 한들 사람 수가 많다는 것만으로 결과를 확신할 수는 없었다.

    심협은 도향의 허리춤에 달린 만리권운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하더니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조비극이 장룡적에서 입을 뗐고, 섭혼마음의 음파도 바로 사라졌다.

    “역시 도우는 사리가 밝군요. 지금 우리 아홉 명은 동화 암부에 이르렀지만, 동화산선 선배는 삼계에 명성이 자자한 대선배이니 암부의 규모는 지금 앞에 있는 대전보다 훨씬 거대할 거고 분명 많은 위험이 있을 겁니다. 이렇게 서로 싸우기보다는 차라리 힘을 합쳐 보물을 차지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방금 우리를 죽이려던 자들이 하는 말이라고 보기에는 퍽 우습군.”

    심협은 냉소했다.

    “뭐가 우습다는 겁니까? 수선계가 본래 그런 것을요.”

    도향은 뻔뻔하고 담담하게 말했고, 심협은 그녀를 말없이 바라보다가 손의 푸른 빛을 거두었다.

    “어쨌든 원한을 품은 무리가 서로 힘을 합치는 건 말도 안 된다. 각자 갈 길을 가자.”

    만수진인이 차갑게 비웃고는 만수기의 푸른 빛을 없앤 뒤 뒤로 물러났다.

    심협도 같은 생각이었기에 바로 결인하고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푸른 빛이 두 사람과 귀장을 뒤덮었고, 대전 안의 얼음을 가볍게 뚫고 지나갔다.

    도향은 심협과 만수진인이 망설임 없이 떠나는 걸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서로의 골이 깊은 만큼 힘을 합치는 것이 불가능함은 그녀도 알고 있었다. 그래도 잠깐이나마 공격을 멈추게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하며 그녀는 다른 사람들과 전음으로 상의하기 시작했다.

    “심 도우, 방금 대전의 다른 길을 찾은 겁니까?”

    만수진인이 대전 깊은 곳을 달리면서 전음으로 심협에게 물었다.

    “멀지 않은 곳의 벽에서 공간 통로의 입구 같은 곳을 발견했소. 벽해요어가 그 벽에 닿자마자 바로 사라졌지요. 어디로 전송된 게 분명합니다.”

    심협은 아까 본 상황을 솔직하게 말했다.

    “동부 다른 구역으로 가는 통로가 확실합니다. 우리가 먼저 가서 선점하죠.”

    만수진인이 기뻐하며 말했다.

    “들어가는 건 쉽지만 그래도 조심해야 합니다. 방금각 도향의 말에도 일리가 있습니다. 앞에 어떤 위험이 있을지 모르니 방심해서는 안 되오.”

    “알겠습니다. 앞으로 주의하지요.”

    만수진인은 좀 전에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충동적이었는지를 떠올리고는 신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덧 두 사람은 그 벽 앞에 도착했고, 경계심을 잔뜩 끌어올린 채 몸을 가볍게 부딪쳤다. 그러자 두 사람은 순식간에 대전에서 사라졌다.

    도향 등은 줄곧 몰래 심협과 만수진인 등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눈앞에서 일어난 광경에 깜짝 놀라서 서둘러 그곳으로 다가가려고 했다.

    하지만 대전은 심협의 얼음으로 가득했고 그들은 또 심협처럼 얼음을 통과하는 신통이 없었기에 얼음을 깨며 전진하느라 한참 뒤에야 그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조심하시오. 저들의 음모일 수도 있소.”

    염열이 신중하게 이 말했다.

    “그건 아닐 겁니다. 저들도 이곳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함정을 설치할 여유는 없었을 테니까요. 여기는 저들이 찾아낸 출구일 테니 어서 쫓아갑시다!”

    도향은 그렇게 말하고는 방금각 사람들과 함께 벽을 건드렸고, 바로 사라졌다.

    “우리도 갑시다!”

    염열이 단호하게 말하고는 한 걸음 내딛었고, 전삼칠과 귀등상인은 눈빛을 교환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세 사람도 벽에 부딪혔고, 바로 사라졌다.

    * * *

    가려졌던 시야가 다시 돌아왔을 때, 심협은 자신이 어떤 마당에 들어와 있음을 알게 됐다.

    이 마당은 매우 넓었고, 여러 개의 다락 건물이 주위에 우뚝 솟아 있었다. 마당에는 몇 개의 화원과 약원(藥園)이 있었는데, 곳곳에 수많은 영초와 영화가 자랐다. 하나하나가 모두 무척 오래되어 보였고, 심지어 천 년 이상 된 영초도 곳곳에 널려 있었다.

    마당 주위에 깔린 무궁무진한 하얀 안개는 운무 산맥에서 본 환무였지만, 훨씬 짙었다. 게다가 이 환무들은 금제에 막힌 것인지는 몰라도 마당 밖에만 있을 뿐 안으로는 조금도 들어가지 않았다.

    이 마당에 만수진인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어디 다른 곳으로 전송된 것 같았다. 벽해요어도 보이지 않았다.

    주위를 둘러보던 심협은 간간이 수천 년 된 영초도 있음을 알고는 가슴이 떨려왔다.

    동화산선은 천 년 전의 인물이다. 그의 유적 동부 안에 이렇게 오래된 영초가 있다는 것은 이 동부는 동화산선이 지은 것이 아니라 더 오래된 선배가 남긴 유적일 수도 있다는 의미였다.

    심협은 재빨리 생각을 정리했고, 영초들을 내버려둔 채 가장 근처에 있는 다락으로 날아갔다. 한데 입구에 도착하니 푸른 광막이 나타나 앞을 막아섰다.

    심협은 현황일기곤을 꺼내 발천난봉을 시전했다. 그러자 허공마저 부술 것 같은 힘이 담긴 수많은 금색 곤봉 허상이 나타나 강하게 푸른색 광막을 두들겼다.

    꽈르릉!

    푸른 광막은 굉음과 함께 부서지면서 수많은 푸른 빛이 되어 휘날렸고, 곧바로 대문이 열렸다.

    신식으로 살펴보니 아무런 함정이나 금제가 없었기에 심협은 다락 안으로 들어갔다.

    문 너머에는 서재 같은 곳이 있었는데, 몇 개의 책꽂이에는 두꺼운 서책이 가득했다.

    책꽂이 옆에는 넓은 탁자가 있었는데, 왼쪽에는 암청색 벼루와 평범한 붓보다 몇 배는 더 굵은 붓이 있었다. 청옥 붓대에는 꽃과 새, 곤충, 물고기 등이 그려져 있었고, 하얀 붓끝은 윤기가 흐르는 짐승의 털이었다.

    푸른 벼루든 청옥의 붓이든 모두 강렬한 영기 파동을 뿜어내고 있는 것이 진귀한 법보가 확실했다.

    탁자 반대편에는 별빛이 반짝이는 푸른색 접이식 부채가 있었는데, 멀리서 보는 것만으로도 끝을 알 수 없는 별의 힘이 느껴졌다.

    탁자 너머 벽에는 오래된 그림이 걸려 있었다. 접는 부채를 들고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청년 그림이었다. 등을 돌리고 있어서 외모는 보이지 않았지만, 들고 있는 부채는 탁자에 있는 것과 같았다.

    “동화산선인가?”

    심협이 중얼거렸다.

    어째서인지 상대에게서 알 수 없는 친숙함이 느껴졌고, 무척 낯이 익은 느낌이 들었다.

    한데 그가 깊게 생각하기도 전에 다락 옆 허공에서 하얀 빛이 반짝이더니 도향이 나타났다.

    그녀는 나타나자마자 탁자를 발견하고는 기뻐하더니 오른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도홍색 손이 날아가 탁자 위의 보물을 잡으려 했다.

    허나 심협이 팔을 휘두르자 금색 곤봉이 도홍색 손을 가볍게 부쉈다.

    도홍은 표정이 차갑게 변하더니 입을 벌려 몇 개의 붉은 빛을 심협을 향해 뿜어냈다. 차갑게 번득이는 붉은색 침이었다.

    동시에 그녀는 다시 탁자를 향해 왼손을 휘둘러 붉은 안개로 탁자 위의 몇 가지 보물을 휘감았다.

    “어딜!”

    심협의 눈이 차갑게 번득이더니 몸 앞에서 눈부신 금빛과 함께 천두금준이 나타나 붉은색 침을 모두 막아냈다.

    동시에 현황일기곤으로 10여 개의 곤봉 허상을 만들어내 순식간에 반경 10여 장을 휩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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