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887화 (887/1,214)
  • 887화. 금제 파훼

    “암부가 여기에 있다니!”

    만수진인은 깜짝 놀라더니 표정이 신중해졌다.

    “왜 그러십니까? 이 산맥에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심협이 손을 휘둘러서 어린 물고기를 잡아놓으며 물었다.

    “심 도우는 남해와 무은사해 일대를 잘 모르시는군요. 이 산의 이름은 운무산(雲霧山)으로, 실로 광활한 곳이라 산맥 깊은 곳에는 다른 공간과 이어지는 통로가 있지요. 이 일대에서 가장 신비한 구역 중 한 곳입니다. 저 하얀 안개들은 평범한 해무(海霧)가 아니라 어떤 이유 때문이지 특이한 환력(幻力)을 품고 있어서 사람을 환상에 빠지게 합니다. 해무에 들어가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환상에 더욱 깊게 빠지게 되는데, 천 년 전에는 남해의 태을 대요가 이 산맥에 들어갔다가 결국 안에서 실종되어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오, 도우의 말을 들으니 신비로운 곳이긴 하군요. 다만, 벽해요어가 저곳을 가리키니 들어가는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암부가 산 바깥쪽에 있기 바랄 뿐입니다. 너무 깊이 들어가면 저희도 위험해질 겁니다.”

    여기까지 왔으니 만수진인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심협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어린 물고기를 풀어주자 이 물고기는 바로 하얀 안개 속으로 들어갔다.

    심협의 어검도 뒤를 바짝 쫓아서 같이 끝없는 안개로 들어갔다.

    심협 등이 사라진 지 얼마 되지 않아 몇 개의 둔광이 날아오더니 모습을 드러냈다. 한데 놀랍게도 방금각 무리와 염열 무리가 나란히 서 있었다. 심협의 속도가 너무 빨라서 두 무리는 어쩔 수 없이 연합하기로 한 것이다. 다만 당연하게도 두 무리는 서로에 대한 믿음이 거의 없었다.

    “여기까지 오다니, 만수진인은 운무산의 산맥을 이용해서 우리를 떨쳐내려는 건가? 아니면 암부가 여기 있단 말인가?”

    도향은 운무산에 대해 잘 알고 있는지 깜짝 놀란 표정이었다.

    “벽해요어의 비밀을 만수진인이 알아냈을 리가 없으니 운무산을 이용하여 우리를 떨쳐내려는 속셈일 거요. 비겁한 놈. 허나 자기 명만 재촉하는 일이지. 마침 얼마 전 천칩주(天蟄珠)를 얻었소. 이 구슬은 환력을 막아내는 효과가 있으니 운무산에서 하루 정도 머무는 건 문제없을 거요. 갑시다!”

    염열이 차갑게 비웃더니 하얀 구슬을 꺼냈다. 구슬에서 환상 같은 은은한 하얀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세 사람을 뒤덮었다.

    염열은 이어서 새 모양의 법보를 꺼내더니 세 사람을 태우고 끝없는 하얀 안개로 들어갔다.

    방금각의 검은 얼굴 노인 유홍은 염열 등이 자신들을 두고 가는 모습을 보더니 차갑게 비웃었다. 옆에 선 이표의 안색도 일그러졌다. 그러나 도향은 화내지 않고 푸른 천을 꺼냈는데, 거기에는 하얀 구름이 그려져 있었다.

    푸른색 천이 열 배로 커지더니 세 사람을 휘감았다. 푸른 광막이 생겨났고, 발아래에는 수많은 구름이 나타나 세 사람을 태웠다.

    “만리권운(萬里卷雲)! 상고 대우왕(大禹王)이 왕후를 위해 만든 보물! 모든 사악한 힘이 침투하지 못하게 막아주고 모든 마를 물리친다고 하였지. 각주님께서 이 보물을 그대에게 주셨구려.”

    유홍이 깜짝 놀라 눈을 반짝이며 감탄했다.

    “만리권운이 있으면 이곳의 환무를 막아내는 건 문제도 아니지. 가자!”

    도향은 유홍의 말에 따로 답하지 않고 만리권운을 발동했고, 방금각의 세 사람은 하얀 안개로 들어갔다.

    * * *

    운무산 깊은 곳. 심협은 비검을 조종하여 빠르게 질주했다.

    주위의 하얀 안개는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각양각색의 형태로 변하여 오감을 괴롭혔고, 형언할 수 없는 강력한 환력이 끊임없이 체내로 스며들었다.

    다행히 심협은 본래 신혼의 힘이 강했고, 부주진신법도 높은 경지에 도달한 터라 이런 외부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았다.

    “염열과 방금각 사람들도 쫓아왔군요. 저들에게 환력을 막을 수 있는 보물이 있나 봅니다.”

    심협이 눈에서 검은 빛을 번득이며 말했다.

    “끈질긴 놈들이군요. 운무산까지 쫓아오다니…….”

    심협과 달리 그의 안색은 그리 좋지 않았고 눈빛이 흐렸다. 주위의 안개가 큰 영향을 주고 있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는 어떻게든 견뎌냈고, 속으로는 심협의 끝을 알 수 없는 저력에 감탄하며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고 확신하게 됐다. 만약 탐욕에 눈이 멀어 심협을 동료로 끌어들이지 않았거나 심지어 적대시했다면 이번에는 정말 화를 면치 못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만수 도우, 환력을 견디기 힘들면 우선 제 공간 법보 안으로 피하십시오.”

    “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 정도의 환무도 막아내지 못하면 어찌 동화산선 선배의 동부를 찾아내겠습니까?”

    만수진인은 억지로 웃고는 작게 외쳤다. 이어서 그의 소매에서 푸른 빛이 반짝였고, 푸른 부적이 눈앞에 떠올랐다. 피를 부적에 집어넣자 부적에서 푸른 빛을 강하게 발하더니 머리 위에 붙었다.

    손바닥만 한 푸른 부적에서 10여 개의 구불구불한 영문이 새겨졌는데, 복잡해 보이지 않는 푸른 빛이 물방울처럼 떠올랐다. 또 가장자리에는 또 은백(銀白) 두 가지 색의 부문이 빛났고, 부적의 중심에서는 옅은 금색 빛이 나타났다. 더없이 신비로워 보였다.

    부적이 만수진인의 몸에 붙자 푸른 빛이 출렁이더니 반경 10여 장의 하얀 안개가 바로 물러나더니 만수진인에게 다가오지 못했다.

    “청심주부(淸心呪符)? 심신을 안정시키는 신통이 있는 곤륜 옥허궁(玉虛宮)의 비전 부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니!”

    “옥허궁의 부적!”

    화령자의 감탄을 듣자 심협도 호기심 어린 눈으로 푸른 부적을 바라보다가 이내 시선을 거두었다.

    만수진인은 청심주부의 효과를 확인하고는 속으로 안도했다.

    이 부적은 동화산선의 명부에서 얻은 것으로, 평범한 부적이라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동화산선이 이 하얀 환무 때문에 특별히 남겨둔 것인 듯했다.

    심협은 만수진인이 무사한 것을 확인하고는 안심하고 속도를 높였다.

    반 시진 뒤, 두 사람은 거대한 산벽 앞에 멈췄다. 벽해요어는 산 앞을 맴돌며 신난 듯이 울부짖었고, 빨리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듯 머리로 벽을 들이받으려 했다. 하지만 산벽에 접근할 때마다 보이지 않은 힘에 가로막혔다.

    “여기인가보군.”

    심협이 산벽을 바라보며 말했다.

    운무산을 얼마나 들어왔을까? 주위의 환무는 아까보다 몇 배나 짙었고, 환력 또한 비교하기 힘들 만큼 강력해져서 심협도 막아내기가 조금 버거웠다.

    만수진인의 머리 위에서는 청심주부가 여전히 눈부신 푸른 빛을 발했지만, 환무를 고작 3장 정도 밀어낼 뿐이었다.

    만수진인은 군말 없이 바로 산벽 앞으로 다가가 영롱한 하얀색 옥부(玉符)를 발동했다. 하얀 빛이 옥부에서 뿜어져 나오더니 산벽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 광경을 본 심협의 눈빛이 변했다. 이곳의 금제를 파훼할 방법을 생각하던 중인데 만수진인은 이미 그 방법을 터득해둔 듯했다. 아마 아직도 많은 것을 숨기고 있으리라.

    “만수 도우, 조금만 서두르십시오. 저들이 머지않아 도착할 겁니다.”

    심협도 산벽 앞으로 다가오더니 뒤를 돌아보며 재촉했다.

    만수진인은 급히 더 많은 법력을 옥부에 주입했다. 그러자 옥부의 하얀 빛이 더 밝아지더니 빠르게 떨려왔고, 손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가라!”

    만수진인이 다른 손을 결인하자 옥부가 손에서 벗어나 연기처럼 산벽에 있는 어떤 돌로 들어가더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는 뒤이어 또 하얀색 작은 깃발을 꺼내더니 똑같이 결인했다. 이 깃발 역시 산벽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산벽은 시간이 지나도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한참을 기다려도 마찬가지였다.

    “만수 도우, 지금 금제가…….”

    기다리다 못한 심협이 막 물어보려 하는데, 갑자기 앞에서 굉음이 들려오더니 산벽이 지진처럼 아래의 땅과 함께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심지어 허공마저 떨려와 똑바로 서 있기도 힘들었다.

    물론 진선기의 경지로 바닥을 구르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심협은 몸에서 빛을 내뿜으며 바로 몸을 가누었고, 만수진인은 온몸이 하얀 빛으로 뒤덮이더니 아무 일 없다는 듯 중심을 잡고 서서 빠르게 결인했다.

    “열려라!”

    만수진인인 눈을 번쩍 뜨며 크게 외쳤다.

    그 순간, 앞의 산벽에서 갑자기 하얀 빛이 떠오르더니 가운데가 천천히 갈라지면서 문 같은 통로가 생겨났다. 통로 끝에서는 휘황찬란한 세계가 보였다.

    “통로는 금방 닫힐 테니 어서 들어갑시다!”

    만수진인이 기뻐하며 외치고는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아까 산벽으로 들어갔던 하얀 옥부와 세 개의 작은 깃발이 빠져나와 그의 손으로 돌아왔다. 뒤이어 그는 몸이 하얗게 변하더니 빠르게 통로 안으로 들어갔다.

    심협은 소매를 허공으로 휘둘렀다. 그러자 하얀 안개 안에서 푸른 빛이 번득이더니 바로 사라졌다.

    심협은 씩 웃고는 바로 금빛으로 변하여 안으로 들어갔다.

    통로는 천천히 닫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의 다 닫혀갈 때, 새 모양의 푸른 빛이 멀리서 빠르게 날아왔다. 염열 무리였다.

    “동화암부다! 이럴 수가, 만수진인이 어떻게 알의 비밀을 알아냈지?”

    염열은 통로 너머 하얀 빛의 세계를 보고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외쳤다.

    그는 놀란 마음을 추스르고 재빨리 전력을 다해 새 모양의 법보를 발동했다. 법보에서 푸른 빛이 번득이더니 날개가 생겨나 마치 푸른 번개처럼 엄청난 속도로 문을 향해 날아갔다.

    하지만 막 그 안으로 들어가려던 순간, 주위의 하얀 안개가 흔들리더니 푸른 정광이 날아와 이들의 몸에 꽂혔다.

    세 사람은 일순 속도가 늦춰졌고, 그 틈에 주위의 허공에서는 거울 같은 푸른 광막이 다시 나타났다.

    염열 등은 깜짝 놀랐다. 하지만 그들이 무언가를 해보기도 전에 눈앞이 밝아졌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짙은 안개 속이었다. 눈앞의 산벽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런, 누군가 우리를 다른 곳으로 전송해버렸구나! 어서 돌아가야 해!”

    신식으로 주위를 살펴본 결과, 지금 그들이 있는 곳은 산벽으로부터 거의 30여 리 떨어진 곳이었다. 이에 염열 등은 전력을 다해 다시 산벽을 향해 날았다.

    30여 리는 그들 정도 경지의 사람들에게는 순식에 이동할 수 있을 정도로 짧은 거리였이지만, 산벽의 통로는 이미 거의 닫힌 상태였었기 때문에 이들이 돌아왔을 때에는 이미 완전히 닫혀 버린 후였다.

    “젠장, 방금 그 푸른 빛은 무슨 금제야? 어디서 튀어나온 거지?”

    염열이 분노하며 푸른빛이 튀어나온 곳을 노려봤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이 미약한 요기만 남아 있었다.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면 아마 거울 요괴의 경면전송(鏡面傳送) 신통일 게요. 만수진인이 남겨 놓은 수단이겠지. 한데 만수진인에게 거울 요괴 영총이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 설마 정체불명의 그자가……?”

    “거울 요괴! 전 도우는 그걸 꿰뚫어볼 수 있는 경지까지 오른 것이오?”

    염열이 분노를 금방 가라앉히며 물었다.

    그 말을 들은 전삼칠이 허리춤을 툭 치자 연보라색 구슬이 날아올랐다. 구슬에서 몽환적인 연보라색 빛이 날아가 수중의 요기를 뒤덮었다.

    “이 요기의 주인은 진선기로군요. 게다가 위력이 강한 법보를 가진 모양입니다. 그래서 방금 우리 셋을 강제로 보낼 수 있었던 게지요.”

    전삼칠이 빠르게 말했다.

    “진선기의 거울 요괴라니! 만수진인은 내가 잘 아는데, 진선기 영총을 거둘 능력이 없는 자요. 그렇다면 그 정체불명의 조력자가 확실하군요.”

    염열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전 도우, 그 영주(靈珠)는 설마 창혼주(蒼魂珠)요? 그건 서우하주 흑린산(黑麟山) 창혼(蒼魂) 선조 가문의 중보이지 않소? 듣기로는 탐색과 분석이 능하고 옅은 기운만으로도 수사의 경지며 수련 공법 심지어 약점까지 파악할 수 있다고 하던데, 지금 보니 소문이 과장되지 않은 듯하오.”

    옆에서 귀등상인이 크게 감탄했다.

    “귀등 도우의 눈썰미가 대단하십니다. 맞습니다. 바로 그 창혼주입니다.”

    전삼칠은 창혼주를 챙겨 넣으며 그렇게 말하자 귀등상인은 깜짝 놀랐다. 태을기의 고수인 창혼 선조가 가문의 법보를 빌려주다니!

    ‘둘이 무슨 특별한 관계라도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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