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886화 (886/1,214)

886화. 알에 숨겨진 비밀

“동화산선의 암부라…….”

심협은 주저했다. 그 동부에 관심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다만 옥침의 수리가 시작되었기에 그는 천기성을 오랫동안 떠나 있을 수 없었다.

“만수 도우께서는 벽해요어의 알에 담긴 암부의 위치를 알아내셨습니까?”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심협이 물었다.

“아직은 아닙니다. 허나 암부의 위치가 벽해요어 알 안에 적혀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상 찾아내기란 어렵지 않을 겁니다.”

만수진인이 벽해요어의 알을 꺼내며 말했다.

“도우의 말도 일리가 있군요. 다만 저는 천기성에 아직 볼일이 남아 있어서 오랫동안 떠나 있을 수는 없습니다. 이렇게 하시죠. 먼저 같이 벽해요어의 알을 연구하는 겁니다. 만약 암부의 위치를 금방 알아내고 그 거리가 멀지 않다면 함께 가지요. 괜찮습니까?”

“좋습니다.”

만수진인은 망설임 없이 답했다.

상대가 이토록 흔쾌히 나오자 심협은 오히려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이미 뱉은 말을 번복할 수는 없었다.

“그럼 먼저 여기를 벗어나죠. 저들이 곧 도착할 겁니다.”

심협이 연연나금의를 발동하자 푸른 빛이 만수진인까지 감싸고는 하늘로 날아올랐다.

조비극도 검은 기운으로 변하여 건곤대 안으로 돌아갔다.

두 사람이 저 멀리 사라지고 난 뒤, 세 개의 둔광이 하늘에서 내려왔다. 도향등의 사람들이었다.

백의의 청년 어깨 위에 있는, 작은 개처럼 생긴 회색 짐승이 커다란 코로 허공을 몇 번 냄새 맡더니 뭔가를 속삭였다.

“그자들이 여기 한동안 머물다가 얼마 전에 떠났다고 합니다. 방향은 저쪽입니다.”

백의의 청년이 심협 등이 날아간 쪽을 가리켰다.

“얼마 남지 않은 냄새도 놓치지 않다니. 이표(李彪) 형제의 회돈수(灰豚獸)는 역시 대단하오.”

검은 얼굴의 노인이 크게 감탄했다.

“유홍(劉洪) 형, 과찬입니다. 실력이 미천하고 신통은 두 분에 훨씬 못 미치며 그저 탐색에 조금 능통할 뿐입니다.”

백의의 청년이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쓸데없는 말은 그만하고 다시 쫓는다.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된다!”

도향이 차갑게 말하고는 하늘로 날아갔다.

“네!”

이표와 유홍은 도향이 두려운지 호통에 움찔하더니 추격을 재개했다.

방금각 사람들이 사라진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세 사람이 모래 언덕 상공에 나타났다. 물론 염열 등이었다.

“방금각 놈들은 만수진인을 쫓을 수 있는 수단이 있는 게 분명하군요. 우리는 저들을 따라가는 것도 괜찮아 보입니다.”

염열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염 도우, 전 도우. 만수를 데려간 그자가 누군지 두 사람은 알고 있소?”

귀등상인이 물었다.

“만수진인을 돕는 조력자 같은데 순식간에 나타났다가 사라진 걸 보면 신통이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귀족의 강력한 신통인 섭혼마음까지…… 저로서는 어떤 자인지 도무지 모르겠군요. 귀등 도우께서는 알아내셨습니까?”

전삼칠이 꺼림칙한 표정으로 말했고, 염열도 귀등을 돌아봤다. 그러나 표정을 봐서는 그도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내 신통은 미천하고 두 분 도우보다 못하니 어찌 알겠소? 그저 궁금하여 물어본 것뿐이오. 그자의 신통은 범상치 않으니 얕봐서는 안 될 것 같소. 앞으로 조금 더 조심해야겠소.”

귀등상인이 허허 웃으며 말했다.

“그렇소?”

대답하는 전삼칠의 눈빛을 보니 귀등상인의 말을 그대로 믿지는 않는 듯했다.

“도우들, 기왕 힘을 합치기로 했으니 앞으로도 성심성의껏 협력하고 절대로 다른 마음을 먹지는 맙시다. 안 그러면 보물은 고사하고 오히려 목숨을 잃게 될 겁니다. 이 점을 두 분께서는 명심해 주십시오.”

“물론이오. 염 도우는 걱정하지 마시게. 낄낄.”

염열의 말에 귀등상인이 웃으며 대답했지만, 전삼칠은 침묵했다.

“그럼 어서 다시 쫓아갑시다.”

염열도 그 이야기는 접고 소매에서 새 모양의 푸른 법보를 꺼냈다. 그러자 커다란 푸른 빛이 세 사람을 감싸고는 하늘로 날아올랐다. 한순간에 저 멀리 사라질 정도로 엄청난 속도였다.

그들의 모습이 사라진 뒤 모래 언덕의 한쪽에서는 검은 기운이 솟아올랐다. 그 기운에서는 검은색 마안이 나타나 두 무리가 날아간 방향을 보더니 몇 번 깜빡인 뒤 서서히 사라졌다.

* * *

수만 리 밖, 붉은 검광 위. 심협은 차갑게 웃더니 검홍을 돌려 다른 방향으로 날아갔다.

만수진인은 검홍 위에 가부좌를 한 채 양손을 결인하여 벽해요어의 알을 연구하고 있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반나절이 지났다. 심협은 뒤쫓는 무리를 끌고 무은사해를 빙빙 돌았다. 순양검 합벽의 속도와 천마안의 탐색 능력 때문에 추격자들은 심협의 그림자도 볼 수 없었다.

방금각 사람들과 염열 등은 미칠 지경이었지만 다른 방도가 없었다.

“어떻습니까?”

심협이 또 한 차례 방향을 바꾸고는 여전히 술법을 시전하고 있는 만수진인을 돌아봤다.

“안 되겠습니다. 술법으로 아무리 살펴봐도 벽해요어의 알에서 별다른 점은 찾아낼 수가 없군요. 아무래도 제가 동화산선을 쉽게 생각한 모양입니다.”

만수진인이 술법을 멈추고는 쓰게 웃었다.

“제가 좀 봐도 되겠습니까?”

만수진인은 별말 없이 벽해요어의 알을 건넸다.

심협은 운사여전결을 발동하여 최대한 조심스럽게 살펴봤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알 안에는 두터운 원기만 있을 뿐, 별다른 것은 없었다. 바로 유명귀안을 시전해봐도 마찬가지였다.

‘진짜 아무것도 없군. 염열이 거짓말을 한 건가?’

꿈속 세계에서 쌓은 안목과 지식에 지금 그의 경지까지 더해지면 다른 것은 몰라도 물건 안에 다른 물건이 있는지 없는지는 꿰뚫어볼 자신이 있었다.

“내가 알을 좀 살펴봐주마.”

불쑥 들려온 화령자의 말에 심협의 눈이 반짝거렸다. 화령자는 태고 시기의 영기이니 식견은 자신과 비할 바가 아니었다.

“제가 알을 살펴볼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어서 그런데 잠시 알을 가지고 있어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얼마든지요.”

만수진인의 동의에 심협은 벽해요어의 알을 명화연노 안에 넣었다.

겨우 몇 호흡 뒤, 화령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 거였군. 염열이란 놈이 거짓말을 한 건 아니었다. 벽해요어 알 안에는 확실히 암부의 위치를 알아낼 방법이 있는데, 그게 딱딱한 지도나 표시 같은 게 아니야. 벽해요어 알 자체가 살아 있는 지도인 게지.”

“살아 있는 지도라니? 그게 무슨 뜻이지?”

“네가 알아채지 못한 건 벽해요어를 잘 몰라서 그런 거다. 이 이수는 매우 특이한데, 암컷 물고기는 평생 두세 개의 알을 낳고 바로 기력이 다해 죽는다. 이 온화한 성품과 평생 새끼만 생각하는 습성은 너희 인간족과 매우 닮았다고 할 수 있지.”

그 말에 심협은 잠시 다른 궁금증이 들었다.

‘너희 인간족? 그렇다면 화령자는 기령이 되기 전에 다른 종족이었던 건가?’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얼른 생각을 접고 화령자에게 물었다.

“벽해요어가 산란 때문에 죽는다고? 그럴 리가! 이 알에 원기가 제법 두텁다고는 해도 벽해요어 같은 거대한 이수에게는 별것 아닐 텐데? 두세 개가 아니라 천 개를 낳아도 원기가 손상되지 않을 터. 알을 부화하는 행위 자체가 원기를 많이 소모하는 것인가?”

“벽해요어는 다른 이수와는 달리 수컷이 부화를 책임진다. 사실 그건 원기를 그리 소모하지 않지. 암컷 벽해요어가 죽는 것은 알을 낳아서가 아니다. 알을 낳은 후, 암컷 요어는 수년 동안 몸에 원기를 농축했다가 다시 정기 태반(胎盤) 덩어리를 낳는데, 이게 암컷의 몸을 크게 손상시키지. 벽해요어의 어린 물고기가 부화해서 처음 하는 일이 자신이 속한 정기 태반을 찾아서 먹는 게야. 그리 되면 빠르게 성장하고 모체의 모든 능력을 이어받게 되지.”

“그렇군. 분명 벽해요어는 우리 인간족 모친과 비슷해. 한데 그게 살아 있는 지도와 무슨 관련이 있다는 거지?”

심협의 질문에 화령자는 어이가 없다는 듯 대꾸했다.

“허! 이렇게 자세히 설명해줬는데도 모르겠냐? 벽해요어의 어린 물고기와 정기 태반 사이에는 특수한 연계가 있어서 거리가 아무리 멀어도 그것을 감지할 수 있다는 말이다. 내 예상대로라면, 그 동화산선은 이 알에 있는 물고기의 정기 태반을 암부에 숨겨놨을 거다. 그러니 이 알을 부화시키면 어린 물고기가 알아서 안내해주겠지.”

“그렇군. 한데 수컷 벽해요어가 없으니 어떻게 알을 부화시킨단 말인가?”

심협은 그제야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이내 눈살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그건 걱정할 것 없어. 나한테 여러 곤충과 요수의 알을 부화시킬 수 있는 비술이 있으니 벽해요어의 알도 금방 부화시킬 수 있지. 아마 반나절 정도 걸릴 게다.”

“그럼 부탁하지.”

심협은 기뻐하며 화령자의 말을 전했고, 만수진인도 그제야 비밀을 이해했다. 비록 심협이 어떻게 그런 사실을 알아냈는지 궁금했지만, 더는 묻지 않았다. 그저 심협의 박학(博學)함에 감탄했을 뿐이다.

심협은 계속해서 전진하고 숨기를 반복하면서 화령자가 벽해용어의 알을 부화시킬 시간을 벌었다.

지금 그의 신통이면 염열 같은 진선은 말할 것도 없고 태을기 고수도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였지만, 그들을 완전히 따돌리지는 않았다.

반나절은 빠르게 지나갔다.

명화연노 안. 벽해요어의 알은 붉은 빛에 감싸인 채 쉴 새 없이 떨렸다. 곧 부화할 것만 같았다.

“심협, 어서 네 통령각인을 알 안에 집어넣어! 벽해요어는 천성적으로 수, 풍 두 종류의 신통에 능통해서 훌륭한 탈것일 뿐만 아니라 기를 가치가 있는 전투 영수라고!”

화령자의 외침에 심협은 서둘러 법력을 명화연노 안으로 주입하여 통령역술을 시전했다.

벽해요어는 아직 부화하지 않아서 영지가 흐렸기에 쉽게 굴복했다.

“좋아, 통령지술을 통해서 원기를 알 안에 집어넣어. 그럼 부화할 거야!”

화령자가 결인하자 벽해요어 알 주위의 붉은 빛이 강해지더니 알 안으로 들어갔다.

심협도 웅장한 법력을 발동하여 알 안으로 집어넣었다.

알 안에서 푸른 빛이 강해졌다가 갑자기 빠르게 줄어들자 밝은 광구로 변하더니 명화연노에서 휙 나와 소요경 안을 헤집고 날아다녔다.

“멈추면 안 돼! 계속 주입해!”

화령자의 외침에 심협은 푸른색 광구를 붙들고 계속해서 법력을 주입했다.

몇 호흡 뒤, 푸른 광구가 펑 하면서 폭발하더니 몸에 영광을 휘감은, 2척 길이의 남청색 물고기가 나타났다. 물고기는 태어나자마자 허공으로 날아오르더니 애타는 듯한 울음소리를 냈다. 뭔가 찾고 있는 듯했다.

심협은 눈을 치켜뜨더니 어린 물고기를 소요경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남청색 물고기는 친근한 듯 그의 주위를 두 바퀴 돌더니 바로 남쪽으로 날기 시작했다. 그 속도는 상당히 빨라서 어지간한 출규기 수사 못지않았다. 다만 추격자들의 속도를 생각하면 너무 느리다고 할 수 있었다.

심협은 망설이지 않고 따라붙었다. 암부가 얼마나 먼지는 모르겠지만, 이 지경까지 왔으니 그도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그는 소매에서 푸른 빛을 쏴서 어린 물고기를 비검으로 데려왔다.

목표가 정해졌으니 이제 더는 추격자들을 신경 쓰지 않고 일곱 자루의 순양검을 모두 꺼내서 합쳤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검광이 질풍처럼 날아가자 주위의 모든 것이 빠르게 뒤로 사라져갔다.

만수진인은 이 엄청난 어검 신통을 보고는 더더욱 심협에게 감탄했다.

두 사람은 구름을 뚫고 달을 지나 순식간에 무은사해를 건너 남해 구역에 도착했다.

어린 남청색 물고기의 푸른 빛은 갑자기 방향을 바꿔 남해와 무은사해의 영역이 겹치는 곳으로 날아갔다.

심협과 만수진인도 눈빛을 교환한 뒤 그곳으로 향했다.

한 시진 뒤, 하얀 안개로 뒤덮인 거대한 산맥이 눈앞에 나타났고, 남해와 무은사해 사이의 산맥과 연결된 수역(水域)에는 하늘과 땅을 잇는, 끝없는 하얀 안개가 가득해 가히 환상적이었다.

어린 물고기는 기쁜 듯이 쾌활하게 울부짖고는 하얀 안개가 가득한 산맥 안으로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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