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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883화 (883/1,214)

883화. 아까울 것 없지

심협은 두 개의 물건을 살펴본 뒤 시선을 돌려 검은 옷 남자 옆에 앉은 수사를 바라봤다. 그자가 바로 만수진인, 심협의 목표였다.

“두 분 도우와 비교하자니 제 주머니가 한없이 부끄럽군요. 제가 이번에 가져온 물건은 벽해요어(碧海鰩魚)의 알입니다.”

만수진인이 히죽 웃으며 주먹만 한 짐승의 알을 꺼냈는데, 이 푸른 알 안에서는 파도 같은 빛이 일렁여 한눈에 봐도 심상치 않았다.

“오오, 벽해요어의 알이라니!”

적지 않은 이들이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그 알을 바라봤다.

벽해요어는 남해의 이수로, 깊은 바닷속에 산다. 듣기로는 상고 시대 이수 곤붕의 혈통이라 바다에 살 수도, 하늘을 빠르게 날 수도 있다. 게다가 성정이 온화하여 탈것으로는 최고의 영수 중 하나였다.

하지만 심협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만수진인이 예상과 달리 구천금정을 꺼내놓지 않은 것이다.

허나 생각해보면 당연했다. 이런 낯선 사람들과의 교역회에서 구천금정 같은 보물을 꺼낸다면 번거로운 일이 생길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교역회는 계속됐다. 다음의 수사들도 차례대로 갖고 온 물건을 꺼냈는데, 하나같이 진귀한 물건들이라 분위기는 점점 고조되었다.

심협은 자신의 차례가 되자 영재 몇 개를 아무거나 꺼냈는데, 그중에는 경하 용왕의 저물 법기에서 얻는 두 개의 마족 영재도 있어서 적지 않은 관심을 받았다. 관심을 보인 사람 중에는 귀등상인도 있었다.

모두가 각자의 물건을 꺼낸 후, 교환하는 시간이 왔다.

“저는 황운정 세 개와 5백 년 된 백로위상(白露爲霜)을 원합니다. 탄화수 요단은 공격용 화속성 중품 법보와, 두 개의 천안주는 마운등(魔雲藤)과 교환하고 싶군요.”

귀등상인이 목을 가다듬더니 자신이 원하는 물건을 말했다. 특히 마운등을 언급할 때는 심협 쪽을 바라보기도 했다. 심협이 꺼낸 두 개의 마족 영재 중 하나가 바로 마운등이었던 것이다.

심협은 잠시 생각하더니 마운등을 귀등상인에게 건넸다.

“천안주 두 개와 교환하겠습니다.”

이 말에 귀등상인이 기뻐하며 소매에서 노란 빛을 쏴서 마운등을 받쳐 들고는 신식으로 자세히 살폈다. 마운등에 아무런 문제가 없자 황급히 챙겨 넣은 그는 두 개의 천안주를 건넸다.

심협도 두 개의 천안주를 살펴보고는 넣었다.

“심협, 천안주는 뭐 하려고? 안력을 높여주는 법보를 만들 때 필요하긴 한데, 이것들은 영력도 그저 그렇고 삼안천주(三眼天珠)나 구안천주(九眼天珠) 같은 영보도 아니라서 별로 쓸모도 없는데…….”

화령자가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천안주는 쓸모없지만, 귀등상인은 나한테 쓸모가 있어서.”

심협이 담담하게 전음으로 대답했다.

“오호, 마운등에 벌써 뭔가 해놨군? 헤헤, 네 녀석은 보면 볼수록 수선자 같지가 않단 말이야.”

화령자가 경박하게 웃으며 심협을 놀려댔다. 최근 심협과 부쩍 친해진 그는 이제 도우라고도 부르지 않았으나, 심협은 애초에 그런 사소한 것은 신경 쓰지 않았기에 그저 피식 웃었다.

화령자의 말대로 그는 마운등에 신식 각인을 새겨놨다. 이 각인이면 귀등상인이 무은사해를 벗어나지 않는 이상 자신이 그 위치를 감지할 수 있을 터였다.

귀등상인은 다른 재료 중 두 개를 성공적으로 팔았고, 나머지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자 도로 거두었다.

다음으로는 검은 옷의 남자였다. 그는 천년한수와 지지정을 경지를 정진시켜 주는 단약과 교환하고 싶어 했는데, 마친 운하부인과 원하는 바가 맞아 네 병의 단약과 두 개의 물건을 교환했다.

다음으로 만수진인 차례가 되자 수많은 이가 벽해요어의 알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허허, 사실대로 말씀드리자면, 이 벽해요어의 알은 제가 비경에서 구사일생으로 얻은 것입니다. 이 물건을 얻겠다고 법보가 몇 개나 부서지고 저도 중상을 입어서 부상을 치료하느라 선옥도 모두 써버렸지요. 딱히 원하는 것은 없습니다. 법보도 좋고 선옥도 좋고 혹은 다른 진귀한 재료도 좋습니다.”

만수진인은 욕심 없는 사람처럼 웃으며 말했지만, 이를 본 심협은 실소가 터졌다. 오히려 저자는 값이 오르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고단수였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심협은 일단 저 알을 사서 이번 기회에 만수진인과 친분을 맺고 후에 구천금정에 대해 알아볼 생각이었다.

다른 수사들도 만수진인의 말에 조금 당황했지만, 한 수사가 먼저 가격을 제시하자 모두가 호가(呼價)를 해댔고, 눈 깜짝할 사이에 가격이 치솟았다.

“선옥 9천 개!”

백검문의 전삼칠이 외쳤다.

“그럼 저는 선옥 1만 개를 내놓겠습니다.”

심협과 처음에 충돌이 있었던 흑염문의 염열이 차갑게 웃고는 선옥 1천 개를 올렸다.

“두 도우께서 이렇게 호탕하실 줄은 몰랐군요. 그럼 저도 맞춰드려야죠. 선옥 1만2천 개!”

귀등상인이 허허 웃으며 말했다.

“1만5천 개!”

전삼칠이 두 사람을 째려보더니 다시 가격을 높였다.

세 사람의 경쟁으로 교역회는 점점 뜨거워졌고, 가격은 금세 선옥 2만 개까지 올라갔다.

심협도 본래 끼어들고 싶었지만 이 광경을 보고 나서는 나서지 않았다.

벽해요어의 알이 아무리 귀하다 해도 기껏해야 선옥 1만 개 정도 가치인데, 2만 개까지 올랐음에도 저들은 여전히 포기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 알에 무슨 비밀이라도 있는 건가?’

다른 수사들은 서로 수군대기 시작했고, 만수진인 또한 당황했다. 그도 이 정도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던 듯했다.

만수진인은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뭔가 생각하기 시작했다.

“선옥 3만 개!”

수염이 잔뜩 난 남자가 주위 수사들의 눈빛이 이상해지는 걸 감지했는지 다급한 마음에 탁자를 탁 치며 대번에 1만 개나 높였다.

“염 도우, 누굴 겁주는 것이오? 선옥 3만5천 개!”

귀등상인은 낄낄 웃으며 물러서지 않았다.

“4만 개!”

전삼칠도 바로 따라붙었다.

“선옥 5만 개! 그리고 이것까지 주겠소!”

염열이 눈을 번득이더니 무언가를 꺼내 탁자에 올려놨다. 그것은 금색의 기다란 근육이었는데, 환하게 빛나고 있어 멀리서도 엄청난 용의 기운이 느껴졌다.

“용의 근육!”

어느 수사가 바로 알아보고 외쳤다.

“그것도 평범한 용의 근육이 아니라 태을기 진령의 용의 근육이야! 심협, 어떻게 해서든 저걸 차지해! 그럼 내가 상고 법보 박신능(縛神綾)을 만들어줄게!”

화령자가 흥분한 듯 외치자 심협의 눈빛이 조금 변했다. 태을기 용의 근육은 적어도 선옥 10만 개의 가치가 있는데 저자는 그걸 아끼지 않았다. 이를 통해 저 벽해요어의 알에 정말로 무슨 비밀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곳에 있는 수사들도 용의 근육의 가치를 알고 있었기에 누군가는 감탄했고, 누군가는 눈을 번득였으며, 누군가는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두 분, 염 모는 만약 이보다 높은 가격을 제시한다면 벽해요어의 알은 깔끔히 포기하겠습니다.”

염열이 전삼칠과 귀등상인을 돌아보며 말하자 두 사람은 안색이 어두워졌고, 더는 값을 부르지도 못했다.

“그럼 두 분이 양보하신 것으로 알고 기쁘게 받겠습니다.”

염열은 좋아하면서 저물 반지와 용의 근육을 같이 만수진인에게 건넸다.

한데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만수진인이 소매를 휘두르자 물결 같은 푸른 빛이 저물 반지와 용의 근육을 돌려보내더니 벽해요어의 알을 다시 챙긴 것이다.

“만수 도우, 이게 무슨 뜻이오?”

염열의 표정이 돌변했다.

“세 분 도우, 정말 송구합니다. 갑자기 이 벽해요어의 알이 필요한 곳이 생각났습니다. 오늘 교환하기는 어렵겠습니다. 정말 송구합니다.”

만수진인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급작스러운 상황에 그곳에 있는 모두가 당황했다.

“아니, 기껏 가격을 불렀더니 이제 와서 이게 무슨 도리요?”

염열도 당황하더니 바로 소리쳤다.

“벽해요어의 알은 본래 제 것이니 팔든 다시 가져가든 제 마음이지요. 염 도우는 지금 강매를 요구하는 겁니까?”

만수진인도 표정이 차가워지더니 따지듯 반박했다.

“이놈이!”

공격하려는 듯 염열의 양손에서 붉은 빛이 번득였다.

“염 도우, 저희 연향회는 비록 천기성의 작은 종파이지만, 나름의 규칙이 있습니다. 교역회에서는 어떤 싸움도 금지하니 부디 자중하시지요.”

고창풍이 염열을 바라보며 검은 기운을 뿜어냈고, 타녀귀왕도 다시 나타나더니 음산한 살기로 염열을 위협했다.

염열은 눈이 흉흉하게 번득였지만, 이내 차갑게 웃고는 손의 붉은 빛을 거두었다. 하지만 표정을 봐서는 이대로 넘어갈 것 같지 않았다.

귀등상인과 전삼칠의 눈빛도 흉흉해졌다. 속으로 다른 꿍꿍이를 품고 있는 게 분명했다. 심지어 나머지 수사들도 수상한 눈빛으로 만수진인을 힐끔거렸다.

만수진인은 한순간에 모두의 표적이 된 상황에 내심 씁쓸해하며 욕심을 부린 것을 후회했으나, 어쨌든 우선 벽해요어의 알을 챙겨 넣었다. 일은 이미 벌어졌고, 후회해봐야 늦었으니 애써 태연하게 자리에 앉았다.

교역회는 계속됐지만, 모두의 머릿속에는 벽해요어의 알이 떠나지 않았기에 이후는 분위기가 시들했다.

심협의 차례가 되었고 그는 탁자 위의 재료로 구천금정, 혈백원옥, 만년 화린목, 천화급 영화의 단서를 원했지만, 안타깝게도 찾지 못했다.

심협은 자신이 원하는 바를 말하며 몰래 만수진인을 살폈는데, 그는 구천금정에 대해 들었을 때 입은 꾹 다물었으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이로써 심협은 주명의 정보가 정확했음을 확신했다. 만수진인은 정말로 구천금정의 단서를 알고 있는 것이다.

교역회는 이내 끝났다. 고창풍이 종료를 선포하자 석실 안의 사람들은 서둘러 빠져나간 반면, 만수진인은 서두르지 않았다. 그는 사람들이 대부분 나간 뒤에야 천천히 일어섰다.

심협은 연향회 건물을 떠나 근처의 주루로 가서 음식 몇 가지와 술 한 병을 시켜 혼자서 먹고 마셨다.

금세 밤이 찾아왔지만, 그는 별원으로 돌아가지 않고 연연나금의로 행적을 감추고는 조용히 성을 나섰다.

남쪽으로 만 리 정도 날아간 그는 무은사해의 어느 황폐한 유적지 앞에 서더니 깊은 곳을 살폈다.

그곳에는 몇 사람의 그림자가 있었다. 바로 만수진인과 흑염문의 염열, 백검문의 전삼칠 그리고 귀등상인이었다.

만수진인을 가운데 두고 염열과 전삼칠, 귀등상인이 둘러싸고 있었다.

심협의 옆 허공에서 파동이 일어나더니 작은 은색 쥐가 튀어나와 그의 품으로 들어갔다. 신서(神鼠)였다.

교역회가 끝나고 그는 몰래 신서를 꺼내 만수진인을 따라다니게 했고, 지금 이곳에 이른 것이다.

쫓아온 사람은 심협만이 아니었다. 멀지 않은 곳에 세 명으로 이루어진 한 무리와 조금 떨어진 곳에 한 명의 수사가 숨어 있었다. 다만 이들의 은신 신통은 연연나금의처럼 현묘하지 않았기에 행적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었다.

“만수진인, 순순히 벽해요어의 알을 내놓으면 아까 내건 조건대로 선옥 5만 개와 용의 근육을 주겠다.”

“세 도우께서 이렇게 벽해요어의 알을 탐내시다니, 이 물건에 정말 특별한 거라도 있나 봅니다. 그래서 세 분이 그토록 비싼 값을 주고 사려는 겁니까?”

만수진인은 가운에 포위되어 있었음에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히죽 웃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말로는 안 되겠군. 전 도우, 귀등 도우, 약속대로 먼저 저자를 잡은 후에 벽해요어를 어떻게 할지 논해봅시다.”

“좋소.”

전삼칠과 귀등상인 모두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에서 빛을 뿜어냈다.

“잠깐, 세 분이 이렇게 원하신다니 주면 되지, 굳이 서로 싸우고 죽이려 들 것 있소?”

만수진인이 갑자기 손을 들어 그렇게 만류하더니 벽해요어의 알을 꺼내 염열에게 던졌다.

염열은 당황하여 붉은 빛으로 벽해요어의 알을 휘감았다. 만수진인이 이렇게 흔쾌히 알을 내놓는다는 것은 당연히 의심스러웠지만, 붉은 빛 안에 있는 것은 정말로 벽해요어의 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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