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882화 (882/1,214)
  • 882화. 연향(憐香) 교역회

    천기성 서북쪽 어느 은밀한 건물. 심협은 중년 남자로 모습을 바꾼 채 어두운 통로 안을 걸었다. 이 통로는 그리 길지 않아서 얼마 후 저 끄트머리에 하얀 빛이 보였다.

    그곳까지 가보니 굳게 닫힌 돌문이 나타났다.

    돌문 옆에는 회색 옷을 입은 남자가 서 있었는데, 심협이 다가오자 짧게 목례를 한 뒤 영패를 꺼내 하얀 빛이 나는 문에 댔다. 그러자 문에서 하얀 빛이 번득이면서 부문이 희미하게 떠올랐고, 문이 천천히 열렸다. 이윽고 그 너머로 커다란 석실이 드러났다.

    석실 중간에는 큰 원탁이 놓여 있었고, 주위에는 10여 개의 의자가 드문드문 놓여 있었다. 그중 여덟 개에는 수사들이 앉아 있었다. 두 명의 여성 수사가 있었고, 남자 수사들 옆에는 묘령의 소녀가 하나둘씩 기대고 있었다.

    그 여자들은 경지가 높지 않아 응혼기에서 벽곡기였지만, 외모는 모두 절색이었고, 얇은 옷차림은 몸에 딱 달라붙어 몸매가 훤히 드러났다.

    심협은 사람들을 한 바퀴 둘러봤는데, 대부분이 진선의 존재였다. 다만 무은사해의 은둔 고인인지 아니면 다른 지방에서 온 고수인지는 알 수 없었다.

    상석에는 어두운 표정의 진선 중기 남자가 앉아 있었는데, 보아하니 이곳의 주최자 같았다.

    “심 도우시군요. 어서 앉으시죠.”

    상석의 남자가 일어나며 웃었지만, 표정은 여전히 어두워서 어딘가 기이했다.

    심협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빈 의자에 앉았다. 그러자 묘령의 소녀 둘이 다가오더니 환하게 웃으며 심협의 몸에 올라탔다.

    “본인은 다른 이의 시중에 익숙하지 않소.”

    심협이 무표정한 얼굴로 손을 저었다.

    두 명의 소녀는 난감함에 그대로 굳어버렸고,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심 도우께서 괜찮다 하시니 물러가거라.”

    상석의 남자가 의외라는 표정으로 말했다.

    두 여인은 그제야 심협에게 허리 숙여 인사하고 물러갔다.

    어디를 가도 공개적으로 장사를 하기 불편한 곳이 있는데, 천기성도 마찬가지였다. 이 모임은 천기성에서도 은밀한 세력인 연향회(憐香會)가 주최한 지하 교역회였다.

    연향회는 무은사해의 작은 종문으로, 전투력이 아닌 미술(媚術)과 방중술로 유명했다. 덕분에 무은사해의 많은 남제자의 환영을 받았고, 천기성의 권력자들은 연향회 여자들을 아내로 삼기도 했다.

    이러한 방식으로 연향회는 천기성에 자리를 잡았고, 이런 지하 교역회를 열 수 있었다.

    주최자의 이름은 고창풍(古蒼風)으로, 교역회 회주(會主)의 남편이었다. 그는 주로 천기성에서 연향회의 업무를 맡고 있었다.

    “흐흐, 심 도우의 복장을 보니 동토 대당에서 왔나 보오. 역시 성인군자답소.”

    탁자 맞은편에서 음흉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곳에는 검은 도포에 얼굴에는 수염이 잔뜩 난 남자가 앉아 있었는데 양손에는 연향회의 여제자들을 하나씩 끼고 있었다. 칭찬 같지만 조롱이라는 것은 누가 들어도 알 수 있었다.

    “귀하는 어느 고인이시오? 진선기 수사 중에 귀하 같은 색귀는 흔치 않은데 말이오.”

    외모를 바꿔서 정체가 탄로 날 걱정이 없었기에 심협은 바로 되받아쳤다.

    “뭐라고?”

    수염 난 남자가 노발대발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두 도우께서는 다투지 마십시오. 심 도우, 이분은 서우하주 흑염문(黑炎門)의 염열(炎烈) 도우입니다. 염열 도우가 여색을 탐하는 게 아니라 흑염문의 공법은 지강순양(至剛純陽)하여 여인의 기운이 있어야만 체내에서 날뛰는 양강의 힘을 잠재울 수 있지요.”

    고창풍이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중재했다.

    그럼에도 분이 풀리지 않은 염열이 심협을 노려보며 분노를 쏟아내려 하자 고창풍이 다시 화제를 돌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을 소개했다.

    “다시 한번 다른 도우들을 소개하겠습니다. 이분은 무은사해의 은둔 수사 운하(雲霞) 부인입니다. 명성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토계(土系) 신통으로는 진선기 수사 중 상대할 수 있는 자가 거의 없을 정도입니다. 이분은 만수진인(萬水眞人)으 남해의 산수이고…….”

    심협은 소개를 받을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며 우호를 표했다.

    만수진인은 비쩍 마르고 피부가 검붉어 마치 원숭이 같았고, 간사한 느낌이었다. 주명이 알려준 정보대로라면 구천금정의 단서를 가진 자였다.

    다른 사람들도 심협을 유심히 살폈다. 심협의 경지는 높지 않아도 고심(高深)한 기운이 쉽게 볼 수도, 함부로 건드려서도 안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기에, 이들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인사했다.

    심협이 그곳에 있는 사람들과 사이좋게 인사하는 걸 보자 염열은 더욱 분노가 치솟았지만, 감히 화를 내지는 못하고 그저 차갑게 비웃더니 자리에 앉아 옆에 있는 연향회 여제자들의 몸을 거칠게 주물렀다.

    “고 도우, 시간이 된 듯하니 슬슬 시작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검은 피부에 머리에 하얀 천을 두르고 손에 검은색 담뱃대를 든 농부 같은 노인이 말했다.

    고창풍의 소개에 따르면 이름은 전삼칠(田三七), 서우하주의 문파인 백검문(栢劍門)의 장로였다. 경지는 진선 중기로, 외모는 평범했으나 그 기운은 고창풍과 비슷했다.

    “전 도우,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아직 한 분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분이 오면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대문이 다시 열리더니 두 사람이 들어왔다. 앞에 있는 자는 낙타처럼 허리가 굽은 마른 노인이었다. 성격이 독해 보였고, 손에는 고등나무 지팡이를 들었는데, 지팡이 끝에는 검은색 해골이 박혀 있었다.

    노인의 뒤에는 키 작은 중년 남자가 서 있었는데, 고개를 숙인 모양새가 노인의 시종 같았다.

    심협은 당황한 표정이었다. 그 마른 노인은 몰라도 키 작은 중년 사내는 아는 얼굴이기 때문이었다. 옛날 장안에서 사우흔을 통해 알게 된 대장장이, 주철이었다.

    ‘주철이 여기는 어떻게……? 수사도 아닌 그가 어떻게 백 년이 넘게 지나도록 살아 있단 말인가?’

    심협은 깜짝 놀라 주철을 찬찬히 살폈다. 몸에서 법력 파동이 느껴지지 않는 것을 봐서는 분명 보통 사람이었다. 다만 그의 몸에서는 보통 사람과 다른 이질감이 들긴 했는데,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을 정도였다.

    “고 도우께서 기다리신 게 귀등 도우였군요. 귀등 도우께서 동부에서 연시(煉尸)하지 않고 천기성에 오시다니, 보기 드문 일입니다.”

    운하부인은 마른 노인과 아는 사이인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연시!’

    심협이 움찔하더니 날카로운 눈빛으로 마른 노인을 바라봤다.

    그의 오랜 벗인 사우흔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지살시왕이 되어 있었다. 자신이 그녀의 혼을 지부로 보내주었지만, 그녀가 왜 그런 모습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더욱이 귀언마저 죽었으니 진상을 밝힐 수 없을 거라 생각해 원통했는데, 예상치 못하게 단서를 찾게 된 것이다.

    사우흔은 무은사해에서 귀언에게 지살시왕으로 만들어졌고, 지금 주철은 또 저 마른 노인 옆에 있다. 마른 노인은 무은사해의 수사이고 또 연시술에 능통하다. 정황상 사우흔이 그렇게 된 것은 저 노인과 관련이 있을 터였다.

    심협은 두 눈을 감고 심호흡하여 마음을 가다듬었다.

    우선은 구천금정을 얻는 것이 중요했다. 마른 노인은 이미 이곳에 들어왔으니 도망칠 수 없다. 사우흔 일은 교역회가 끝나고 알아내도 늦지 않다.

    “제가 소개하죠. 이분은 귀등상인(鬼藤上人)으로, 무은사해의 은둔 수사 중 한 분입니다. 좀처럼 밖에 나오시지 않는데, 오늘 귀한 걸음을 하셨습니다.”

    고창풍이 마른 노인을 소개했다.

    귀등상인은 진선 초기였고, 기운이 불안정한 게 최근에 돌파한 듯해 그곳에 있는 모두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귀등상인이 경박하게 웃으며 의자에 앉자 두 명의 연향회 여제자가 억지로 웃으며 다가와 그의 옆에 찰싹 달라붙었다.

    “낄낄낄, 내가 있는 고등동(枯藤洞)은 춥기만 한데 연향회 여제자들은 역시 뜨겁군. 고 아우, 이런 제자 열 명만 내게 보내줄 수 있겠나?”

    귀등상인이 두 여제자의 몸을 더듬으며 음흉한 목소리로 말했다.

    “진선기이자 속세를 뛰어넘은 존재인 귀등 도우께서 본문의 제자들을 마음에 들어 하시다니, 이는 그녀들의 영광일 겁니다. 나중에 제가 뛰어난 아이들로 보내드리죠.”

    고창풍이 당황하거나 화를 내지 않고 웃으며 답했다.

    “그럼 사양하지 않겠네. 낄낄.”

    귀등상인은 여전히 낄낄댔다.

    심협은 두 사람의 대화가 혐오스러웠지만, 굳이 상대하지는 않았다.

    “자, 이제 모두 모였으니 교역회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규율은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만, 각자 보물을 꺼내고 소개를 마친 뒤에 거래하고자 하는 가격이나 교환하고 싶은 물건을 말씀하신 후 뜻이 맞는 분과 거래를 하시면 됩니다.”

    모두가 교역회 규칙을 알고 있는지 별다른 이견이 없었다.

    “모두가 고인이신 만큼 규율을 지키지 않는 분은 없을 거라 믿습니다. 다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말씀드리는데, 만약 가짜 물건을 내놓거나 강매하시는 분이 있다면 결코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겁니다.”

    고창풍의 표정이 싸늘해지더니 진선 중기의 강력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동시에 뒤에서는 칠흑의 음풍이 일더니 붉은 옷의 여귀(女鬼)가 모습을 드러냈다.

    여귀는 키가 1척에 몸은 매우 가늘어 마치 대나무 같았고, 검은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음살의 기운은 고창풍 본인보다도 강력했다. 붉은 두 눈이 머리카락 사이로 노려보자 석실 안의 모든 사람은 가슴이 철렁했다.

    “타녀귀왕(姹女鬼王)!”

    석실에 있는 모두가 그 존재를 알아보고는 깜짝 놀랐다.

    “자, 그럼 교역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어느 도우께서 먼저 선보이겠습니까?”

    이 정도면 경고는 충분하다 생각한 고창풍은 기운을 거두었고, 뒤에 있던 붉은 옷의 여귀도 사라졌다.

    “노부가 가장 늦게 왔으니 시작이라도 먼저 하겠네. 노부가 이번에 가져온 것은 황운정(黃雲晶) 세 개와 천안주(天眼珠) 두 개, 탄화수(呑火獸)의 요단 한 개…….”

    귀등상인이 낄낄 웃으면서 몇 가지 물건을 꺼내 탁자에 내려놓았다.

    하나같이 진선기 수사들에게는 매우 진귀한 물건이었다. 특히 탄화수 요단은 화염 영력을 흡수할 수 있었다. 비록 진선급 요단은 아니었지만 화속성 공법을 익힌 수사에게는 이보였던 만큼 상당한 관심을 받았다.

    귀등상인 옆에 있던 두 연향회 여제자는 못생긴 노인을 모시느라 본래 기분이 별로였는데, 이 영재들을 보자 눈이 반짝거리더니 태도가 적극적으로 변했다. 그녀들이 노인을 감싸고 온몸을 비벼대자 귀등상인은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러나 심협은 바로 시선을 거두었다. 저 물건들은 평범한 진선 수사에게는 확실히 얻기 어려운 물건들이지만, 그는 별 관심이 없었다. 과거 음양굴에서 대량의 진귀한 영재를 얻었는데, 그중 저 탄화수 요단보다 값이 떨어지는 것은 없을 정도였다.

    귀등상인 옆의 검은 옷 남자는 행동이 굼떴는데, 자기 차례가 됐는데도 한참 후에야 천천히 두 개의 물건을 꺼냈다. 하나는 하얀 옥병이었고 또 하는 옥합이었다. 옥합 안에는 영지 같은 노란색 영초가 들어 있었다.

    “제가 갖고 온 물건은 많지가 않습니다. 천년한수(千年寒髓) 한 병과 한 그루의 지지정(地芝精)입니다.”

    검은 옷의 남자가 담담하게 말했다.

    천년한수와 지지정도 모두 쉽게 얻을 수 있는 영재가 아니었기에 적지 않은 이들의 눈빛이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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