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881화 (881/1,214)
  • 881화. 방금각(方金閣)

    두 사람은 낙화별원(落花別院)에 도착했다.

    “심 도우, 여기서 조금만 쉬고 계십시오. 그럼 전 이만…….”

    심협을 거처까지 안내해준 주명은 떠나려 했다.

    “주 도우 잠시 묻고 싶은 것이 있소. 이전의 언형은 말투는 차가워도 나름 긍정적인 사람이었는데 이번에는 좀……. 최근에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것이오? 진선기에 도달했는데도 어째 기뻐 보이지가 않소.”

    심협은 일어나려는 주명을 붙잡고 물었다. 언무사는 진선기에 도달했음에도 심경이 무겁고 의기소침해 보였는데, 그랬다가는 이후의 수련에 불리해진다. 벗인 언무사의 일인 만큼 매우 신경이 쓰였다.

    “언 사형이요? 저도 잘 모르겠군요. 다만 흑연미굴에서 돌아온 이후로 쭉 그랬습니다. 아무래도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주명이 잠시 생각해보더니 말했다.

    “흑연미굴?”

    그는 흑연 미굴에서 언무사와 거의 내내 동행했는데, 딱히 그의 감정에 크게 영향을 미칠 만한 일은 기억나지 않았다. 있었다면 음굴에서 있었으리라.

    심협은 흑연미굴에서의 일을 생각하다가 불쑥 궁금한 일이 떠올랐다.

    “주 도우, 혹시 천기성에 북궁영이라는 여인이 있소?”

    “북궁영? 있었습니다. 북궁 사저는 막망 장로의 제자였고, 언 사형과 관계가 좋아서 두 사람이 혼인을 앞뒀었다고 들었습니다. 다만, 북궁 사저는 몇 년 전에 갑자기 실종되었지요. 그건 왜 물으십니까?”

    그제야 심협은 언무사가 변한 이유를 깨닫고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북궁영은 귀언에 의해 지살시왕으로 만들어져 사는 게 죽느니만 못했다. 언무사는 이 사실을 알게 돼 상심한 것이다.

    한데 소부자라면 언무사의 문제를 모를 리가 없을 텐데 어째서 그대로 방치한 것인가?

    “아, 아니오. 어디서 들은 게 있어서 그렇소.”

    심협이 고개를 저으며 말하자 주명은 알겠다고 한 뒤 바로 일어났다.

    심협은 방에 조용히 앉아 정양하며 오는 길에 쌓였던 피로를 풀었다.

    언무사는 반나절 후 찾아와 심협을 데리고 천기성 상성으로 안내했다.

    “성주님을 뵙습니다.”

    소부자를 만난 심협이 예를 올렸다.

    “기다리게 했군. 언갑을 만드느라 시간이 꽤 지체됐어. 이거 미안하네.”

    “아닙니다. 후배인 제가 마땅히 기다려야죠. 옥침 복구에 필요한 준비는 다 끝난 겁니까?”

    “모두 준비됐네. 심 도우만 괜찮으면 바로 시작하지.”

    소부자가 웃으며 답했다.

    “그럼 부탁드립니다.”

    심협은 환하게 웃으며 옥침과 산하사직도, 심혈구이주를 건넸다.

    “수리하려면 조금 시간이 걸릴 걸세.”

    “알겠습니다.”

    “아, 본문이 새로운 언갑과 법보를 개발해 성안이 시끌벅적하고 각종 영재가 거래되고 있으니 자네도 이참에 필요한 물건이 있는지 돌아보는 게 어떻겠나?”

    “성주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무조건 가봐야지요.”

    마침 찾는 물건들이 있었기에 심협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화령자라는 연기 종사가 있으니 법보를 더 강화할 생각이었다. 특히 화령자가 말한, 기혼으로 바꾸는 신통에 많은 관심이 갔다.

    “어이, 심 소우. 저 부서진 법보는 뭔데 나를 두고 저런 애송이한테 맡기는 거야? 설마 저자의 연기술이 나보다 위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명화연노 안에서 화령자가 인정할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저건 내가 어렸을 때 얻은 법보인데 시간 신통과 관련되어 있어. 삼계의 연기사를 찾아다녔지만 소부자 성주님만이 고칠 수 있다더군. 이 일은 오래전부터 약속되어 있었던 것뿐이야. 나를 늦게 만난 네 불운이지.”

    심협이 전음으로 대답했다.

    사실 화령자에게 옥침 수리를 부탁해볼까 하는 생각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결국 포기했다. 화령자는 신분이 기이하여 아직도 완전히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화령자도 심협의 생각을 알고 있었기에 투덜거리면서도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심 도우, 최근에 들어보니 내가 떠난 뒤로 요마들이 장안성을 또 습격했다더군. 청구 호족 사람들이 관여되어 있다던데, 자네는 쭉 장안성에 있었으니 뭐 아는 거라도 있나?”

    소부자가 옥침 등을 챙기고는 화제를 돌리며 물었다.

    “그게 사실은…….”

    심협은 장안성의 일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근본적으로 장안성 습격은 경하 용왕의 계획이었습니다. 요마들과 청구 호족의 몸에 금제가 심어져 있었는데, 마족의 마접심인이었지요. 그래서 저는 청구 호족은 누군가의 꼬임에 넘어갔거나 조종당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는 소부자의 표정을 살피면서 말을 맺었다.

    청구 호족은 지금 모두의 표적이 되었다. 비록 큰 관계는 없지만, 그래도 그곳에는 미소가 있으니 설명으로라도 돕고 싶었다.

    “그럴 수도 있겠군. 다만 청구 호족도 완전히 무고한 것은 아닐 수도 있으니 계속 조사해볼 필요가 있어 보이는군.”

    소부자는 이 일에 큰 관심이 없었는지 더는 말하지 않았다.

    심협은 속으로 안도한 뒤, 화제를 바꿔 잡담을 나눈 뒤 인사하고 나왔다.

    “심형, 필요한 영재가 있으면 내가 제자들에게 알아보라고 하겠소.”

    언무사가 직접 심협을 거처까지 데려다주면서 말했다.

    “그럼 부탁 좀 하겠소.”

    심협은 내심 기뻤다. 필요한 재료는 적지 않아서 직접 하나하나 찾으러 다니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만약 천기성이 돕는다면 훨씬 수월할 것이다.

    심협은 옥간을 꺼내 안에 필요한 재료들을 적었다.

    언무사는 신식으로 옥간 안을 살펴보더니 깜짝 놀랐다. 각종 영재뿐만 아니라 요수의 정백(精魄)도 필요하다니, 당황하는 것도 당연했다.

    “음, 이건 찾기 힘든 것들이니 아랫사람들에게 성심껏 찾아보라고 하겠소.”

    “고맙소. 나름 재산을 모았으니 가격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되오.”

    심협의 감사에 언무사도 고개를 끄덕이고는 인사를 남긴 후 돌아갔다.

    심협은 방에 한참을 앉아 있다가 주명과 함께 성안으로 향했다. 언무사가 도와주기로 했지만, 가만히 기다리기보다는 가능한 재료는 직접 모아야 안심이 될 것 같았다.

    먼저 허공을 날아 돌아다녀본 후에야 심협은 천기성이 매우 시끌벅적함을 실감했다. 거리에는 많은 수사가 오가고 있었다.

    “천기성의 언갑과 무기가 이렇게 인기 있을 줄은 몰랐소.”

    “천기성 언갑의 핵심 재료는 능소지동인데, 그 수가 많지 않아 매년 언갑과 무기를 만들어내는 데 제한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번에 흑연미굴에서 대량의 능소지동을 얻은 덕에 이번에는 대량의 새로운 언갑을 만들어낼 수 있었죠.”

    “그랬군요.”

    심협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곧장 대형 재료 상점으로 향했다.

    상점 이름은 방금각(方金閣)으로 천기성이 아니라 외부 세력이 연 상점이었다. 듣기로는 해외의 어떤 대종과 관련이 있다고 하는데, 천기성도 딱히 막지 않아서 방금각은 갈수록 성대해졌다.

    현재 심협의 경지와 신분이면 당연히 밖에서 기다릴 필요가 없었기에 곧장 방금각 귀빈실로 안내를 받았다.

    주명은 함께 들어가지 않고 심협을 도와 다른 재료를 알아보러 갔다.

    “심 도우는 낯선 것을 보니 방금각에 처음 오신 모양입니다. 소녀는 방금각의 집사 도향(桃香)이라 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심협이 앉자마자 분홍색 긴 치마를 입은 묘령의 부인이 들어왔다. 얼굴은 복숭아꽃 같았고 걸을 때마다 향이 코끝을 간질였다.

    심협이 보니 그녀는 인간족이 아니라 복숭아나무가 모습을 바꾼 존재로, 경지는 진선 초기였다.

    “도 도우께서는 너무 예의를 차리실 필요 없습니다. 듣기로 방금각의 영재가 매우 뛰어나고 삼계의 영재 중 없는 것이 없다는 소문을 듣고 왔습니다.”

    “과찬이십니다. 본 각은 삼계의 작은 상점에 불과하지만, 거래되는 물건이 많은 편이지요. 심 도우께서 원하시는 물건을 편하게 말씀하십시오. 최선을 다해 도와드리겠습니다.”

    도향은 심협의 말을 통해 많은 거래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을 알아채고는 내심 기뻐했고, 태도가 더욱 적극적으로 변했다.

    심협이 옥간을 꺼내 건네자 받아서 신식으로 살핀 도향은 깜짝 놀랐다.

    그녀의 예상대로 옥간에는 수많은 재료가 나열되어 있었는데, 하나같이 진귀한 것들이었다. 그중에는 구천금정, 헌원신목, 혈백원옥(血魄元玉)처럼 이미 세상에서 사라진 영재도 있었고 동명초(洞冥草)나 응혼석(凝魂石), 만년 화린목 같은 매우 진귀한 것들도 있었다. 천기성에서도 선두를 다투는 영재 상점인 방금각이라 해도 네다섯 개나 모을까 말까 한 것들이기도 했다.

    “심 도우께서 필요로 하시는 재료들은 너무 진귀해서 본 각의 창고에도 동명초와 응혼석, 풍서등(風絮藤), 백륜화(百輪花)밖에 없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도향의 말에 심협은 실망하기는커녕 오히려 기뻤다. 자신이 원하는 영재들은 모두 구천의 진귀한 물건으로, 공간의 힘이 담긴 영초인 동명초도 매우 귀했다. 이 풀은 소나이부의 주재료고, 풍서등과 백륜화는 보조 영물이었다.

    소나이부는 법진과 금제를 뚫고 지나갈 수 있어서 도주용으로 매우 유용했다. 다만 화령자도 더 가지고 있지 않았기에 직접 재료를 모아야만 했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단번에 구할 수 있게 되었으니 기뻐할 만도 했다.

    응혼석은 화령자가 말한 기혼전환비술(器魂轉煥祕術)에 필요한 재료였고, 지부의 특산물인 만큼 이렇게 쉽게 구하게 될 줄은 몰랐다. 방금각은 역시 명불허전이었다.

    응혼석을 구했으니 이제 강력한 요수의 정백만 모으면 자신의 법보에 기령을 넣을 수 있을 것이다.

    혈백원옥은 혈도(血道)의 절정급 영재로, 구천금정 못지않게 귀했다. 심협은 경지가 끊임없이 정진하면서 기혈번이 점점 그의 실력을 따라가지 못해 방어는 천두금준에 밀리고 공격은 현황일기곤이 순양검 등보다 못하게 됐다. 화령자가 기혈번을 살펴보더니 혈보의 지보인 혈백원번(血魄元幡)으로 제련할 수 있지만, 그러려면 필요한 것들이 있다고 했다. 그중 주재료가 혈백원옥이었다.

    “그럼 말씀하신 네 종류를 사겠습니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심협이 웃으며 말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도향은 바로 일어나서 나갔다.

    “이렇게 빨리 소나이부의 재료들을 모으다니, 제법이군. 소나이부는 선부(仙符)라 네 실력으로는 실패할 확률이 높으니 물건은 바로 나한테 넘기라고.”

    화령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심협은 어차피 꼭 직접 부적을 만들어야 한다고는 생각지 않았기에 화령자의 말에 기꺼이 고개를 끄덕였다.

    도향은 금방 재료를 가지고 왔다. 두 그루의 동명초와 세 개의 응혼석이었다. 풍서등과 백륜화는 상대적으로 덜 귀한 편이라 수량이 꽤 됐다.

    심협은 이 영재들을 살폈다. 동명초는 은회색에 길이 반 척 정도 되는 작은 풀이라 눈에 확 띄지 않았고, 초록색 정석인 응혼석은 언뜻 보기에는 목속성 정석 같았지만 음산한 기운이 느껴졌다.

    “동명초 두 그루면 세 장의 소나이부를 만들 수 있겠어. 다만 응혼석들이 크지 않아서 아쉽군. 기혼전환비술을 두 번 정도 시도해볼 수 있겠어.”

    우선은 그 정도면 충분했기에 심협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는 선옥으로 값을 지불하고 바로 다른 상점으로 갔다.

    이후로 이틀 동안 심협은 주명의 추천에 따라 성안의 영재 상점들을 하나하나 둘러봤다. 하지만 첫날 외에는 이렇다 할 수확은 없었다.

    심협이 내심 실망하고 있는데, 주명이 그를 흥분시킬 소식을 들고 왔다. 성안에 구천금정의 단서가 나타났다는 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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