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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879화 (879/1,214)

879화. 내 일초(一招)를 받아봐라

심협은 힘겹게 몸을 일으켰지만, 오장육부가 흔들리고 온몸의 뼈가 거의 부러질 것 같았다. 입과 코에서는 피가 흘렀다. 다행히 대개박술이 스스로 운공되며 부상이 조금씩 회복됐다.

세 자루의 붉은 비검이 품(品)자 대형으로 화염 거인의 등 뒤에서 쏜살같이 날아오르더니 심협의 소매 속으로 들어왔다.

“죽어라!”

또 한 번의 포효가 울려 퍼졌다.

화염 거인은 자세를 바꿔 두 손으로 도를 잡았고, 몸의 불꽃은 더욱 강렬하게 치솟았다.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영압은 점점 강해졌다.

이와 동시에 화염 거인의 몸에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몸이 점점 날씬해지더니 뒤에서 마치 아홉 개의 거대한 꼬리 같은 불꽃이 치솟았다.

“구미천호(九尾天狐)!”

화염 거인이 거대한 여우의 허상으로 변하는 것을 본 심협이 중얼거렸다.

여우의 허상에서 강렬한 영압이 폭발하며 뿜어져 나와 마치 실체가 있는 것처럼 끊임없이 사방을 압박해오자 주위의 불꽃 장벽이 심하게 흔들렸다. 누가 봐도 이 일격은 지금까지보다 월등히 강력한 필살의 일격이었다.

“심형, 아무래도 당해내지 못할 것 같소!”

호불귀가 강력한 영압을 뚫고 심협 옆으로 다가왔다.

두 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한 채 미소를 보호했고, 눈을 마주치고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일격은 두 사람이 힘을 합쳐도 막을 수 없음을 두 사람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미소의 목숨은 지킬 수 있을 터였다.

심협은 귀장도 불러서 함께 막을까 고민했다. 그도 이미 진선 초기의 경지에 도달했으니 세 사람이 힘을 합치면 살아남을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었다.

한데 그때, 믿을 수 없는 광경이 일어났다!

양손으로 도를 들었던 거대 여우의 허상이 갑자기 아무런 낌새도 없이 하늘을 향해 길게 울부짖더니, 아홉 개의 거대한 여우 꼬리가 일제히 흩어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몸도 점점 줄어들어 그대로 불꽃 장벽으로 들어가 버린 것이다.

심협 등이 어떻게 된 일인지 영문도 모른 채 주위를 둘러보고 있을 때, 갑자기 전방의 불꽃 장벽이 갈라지더니 빠르게 양쪽으로 물러가기 시작했다.

물러간 불꽃 장벽 뒤로 몇 사람이 나타났는데, 청구 호족의 장로들이었다.

선두에 선 두 사람은 청구 국주와 대장로 유소모주였다. 바로 두 사람이 연합하여 대진 화령의 마지막 일격을 막은 것이다.

“할머니!”

미소는 할머니를 보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한심한 것! 어서 이쪽으로 오지 못해!”

유소모주는 손녀를 위로할 뜻이 전혀 없는지 차갑게 말했다.

심협과 호불귀도 얌전히 제단에서 내려갔다.

미소는 할머니와 마주칠 자신이 없었는지 두 사람의 뒤를 따라갔다.

“국주님, 대장로님. 저희는…….”

“잡아라!”

심협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유소모주가 명령을 내렸다.

청구 호족 장로들이 바로 술법을 시전하자 덩굴로 만들어진 특수한 밧줄 두 개가 심협 등에게 올라타 양손을 등 뒤로 묶었다.

심협과 호불귀는 자신들이 잘못을 저질렀음을 알고 있었기에 저항하지 않고 얌전히 붙잡혔다.

“할머니, 저희는…….”

미소가 바로 사정하려 했지만, 유소모주의 호통에 바로 입을 닫았다.

“뭘 멍하니 보고 있는가! 저 아이도 함께 포박하라!”

유소모주의 호통에 옆에 있던 장로들은 밧줄로 황급히 미소를 결박했다.

“국주님, 대장로님. 후배의 해명을 들어보시면 안 되겠습니까?”

“흥! 청구 호족의 성지를 침범한 자는 이유를 막론하고 사형이다!”

유소모주가 차갑게 말했다.

“대장로, 서두르지 말고 먼저 들어보도록 하죠.”

청구 국주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감사합니다. 국주님. 이게 어떻게 된 것이냐면…….”

심협은 바로 상황을 설명했다.

허나 예상과 달리 그의 말이 끝나자 모든 청구 호족 장로들이 노발대발했다.

“그게 무슨 뜻이냐? 그럼 누군가 일부러 너희를 제단으로 유인했다는 것이냐?”

매부리코 장로가 눈을 크게 뜨며 소리쳤다.

“전 그저 사실을 말했을 뿐입니다. 그때 장안성에 나타났던 여우 허상의 기운이 느껴져서 온 것뿐, 저희가 무엇 하러 성지에 침범했겠습니까?”

“성지의 제단은 아무나 함부로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여기서 그 여우의 기운이 느껴졌다는 말은 설마 그 흉수가 이곳에 숨어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냐?”

유소모주가 눈을 치켜뜨며 차갑게 말했다.

“함부로 들어올 수 없는 곳이라면서 어째서 저희가 들어올 때는 아무런 제지도 없었다가 들어오자마자 저희를 공격하신 겁니까?”

심협은 그녀의 불쾌한 말투에 싸늘하게 반문했고, 유소모주는 말문이 막혔다.

“우리 일족의 성지는 선조들의 망혼이 깃들어 있는 곳이라 호족의 후배가 숨을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그리고 만약 외부 일족이 침투했다면 그대들처럼 호법대진이 발동됐을 겁니다. 그대들은 무지(無知)하여 모르고 온 것이고 초범이니 이번에는 더는 죄를 묻지 않겠습니다.”

청구 국주가 한참을 생각하더니 천천히 말했다.

“제 생각에 저들은 인간족과 선족이 보낸 첩자가 분명합니다. 우리 일족의 호법대진을 부숴 대군이 쳐들어올 때 피해를 줄이기 위함이 틀림없습니다!”

“소효(蘇梟) 장로의 말이 옳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왜 하필 이 시기에 우리 청구에 왔는지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다른 장로가 말했다.

“우리 일족의 성지에 침범하여 선조의 안식을 방해하는 자는 어떻게 처리하는 게 맞는가?”

유소모주가 물었다.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고 청구 국주를 바라봤다. 그 말은 마치 다른 장로에게 묻는 것 같았지만 사실은 그녀에게 묻는 것이었다.

허나 청구 국주는 그녀를 바라보지도, 답하지도 않았다. 두 눈에는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했다.

“법에 따라 즉각 처형해야 합니다.”

“죽어 마땅합니다!”

“죽어 마땅합니다!”

소효의 말에 장로 대부분이 일제히 소리쳤다.

이를 본 심협은 눈살을 찌푸렸고, 뒤로 묶인 두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장로님들, 제가 청구국의 주인이긴 합니까?”

청구 국주의 이 말에 주위는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물론이지요.”

유소모주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답했다.

“그렇다면 더는 추궁하지 않겠다는 제 말에 다른 의견이 있습니까?”

청구 국주가 눈살을 찌푸리며 다시 물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다만, 성지에 침범하고 선조들의 혼을 더럽혔으니 이대로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그럼 어떻게 처리하란 말입니까?”

“국주님, 성지에 침범한 일은 절대 쉽게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일족의 규율대로 처리하기 까다롭다면, 심 소우에게 저의 일초(一招)를 받아내 보도록 해주십시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전력을 다하지 않고 그저 우리 청구 호족을 더 이상 우습게보지 못할 정도로만 하겠습니다.”

소효라는 매부리코 장로가 불쑥 말했다.

“소효 장로, 태을기 수사가 어찌 진선기 수사에게 그리 대하는 겁니까? 이건…….”

청구 국주가 말을 다 하기도 전에 심협이 나섰다.

“하겠습니다.”

심협의 목소리는 한없이 담담했고, 소효를 똑바로 바라보는 눈빛 역시 매우 침착했다.

“좋소.”

소효는 심협이 번복할까 봐 바로 대답했다.

청구 국주는 왜 그랬냐는 눈빛을 보냈지만, 심협은 괜찮다는 듯 웃었다.

물론 심협이 자만심에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니었다. 방금 청구 국주가 보인 모습으로 보아 소효 장로도 감히 진심으로 전력을 다하지는 못할 터였다. 더욱이 그는 심협의 진짜 실력을 모르니 더욱 공격력에 제한이 생길 것이 분명했다. 만약 이초, 삼초가 이어져 자신의 실력이 간파될 기회가 주워질 상황이라면 심협은 승낙하지 않았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소효 장로가 한 수 가르쳐주는 것으로 하죠. 대신 일초입니다.”

청구 국주가 동의하자 소효 장로가 바로 앞으로 나오더니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심형, 조심하시오. 누군가 저자에게 전음을 보내고 있소.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소.”

이때, 호불귀가 갑자기 주의하라고 경고했다.

“걱정 마시오. 예상한 바요.”

심협 역시 전음으로 답하며 현황일기곤을 꺼내 손에 쥐었다.

그러나 소효 장로는 법보나 무기를 꺼내지 않고 한참을 바라보다가 소매 속에 숨겨진 양손을 영롱하게 번득였다. 그러더니 손이 백옥처럼 투명해졌다.

순식간에 길어진 날카로운 손톱에서 영롱한 초록빛이 감돌았다.

“심 소우, 조심하게.”

소효는 씩 웃었고, 말이 끝나자마자 그 자리에서 사라지더니 심협을 향해 돌진해왔다.

하지만 그가 움직이기 시작한 순간, 심협의 발에서도 동시에 달빛이 흩어져 이미 옆으로 피한 뒤였다.

“오!”

소효는 조금 놀란 듯 갑자기 몸을 움츠렸다.

그의 머리 위에서 질풍과 같은 강력한 영력 파동이 휩쓸고 지나가자 폭음이 울려 퍼졌다.

심협의 손이 갑자기 떨리자 곤봉에서 금색 물결이 일렁였고, 곤봉 허상이 튀어나와 아래쪽의 소효를 향해 떨어졌다.

이를 본 소효는 피하지 않고 손톱으로 곧장 위를 찔렀다.

손이 초록 빛으로 번득이더니 어느새 생겨난 초록빛 도가 가볍게 곤봉의 허상을 뚫고 곧장 현황일기곤과 충돌했다.

챙!

이어 금속이 충돌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현황일기곤이 크게 흔들렸고, 강력하기 그지없는 힘이 곤봉을 타고 전달되어 심협은 두 손이 마비되면서 하마터면 곤봉을 놓칠 뻔했다.

소효는 심협의 몸이 떨리는 틈을 타 다시 사라지더니 순식간에 등 뒤에 나타났다.

그는 손을 활짝 벌려서 매의 발톱 같은 손톱으로 심협의 심장을 잡으려 했다. 다만 마지막 순간에 살의가 담긴 일격을 거두고 표적을 척추로 바꿨다. 이 일격으로 척추를 부러트리면 심협에게 중상을 입히라는 임무를 완수하는 동시에 죽이지 말라는 국주의 명령도 지키는 것이 될 터였다.

더욱이 척추를 부러트린다면 그 자체로 상대에게는 최대의 굴욕이 된다. 척추가 부러졌을 때 심협의 굴욕적인 눈빛이 벌써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하지만 막 등에 손톱이 닿으려는 순간, 갑자기 몸 아래에서 붉은 빛이 쏜살같이 날아오는 것이 어렴풋이 보였다. 불꽃이 활활 타오르는 비검이 그를 급습한 것이다. 어찌나 빠른지, 공격을 피하지 않으면 동귀어진을 피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비검의 위력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비검이 날아오는 위치가 문제였다. 만약 저 검에 찔린다면 굴욕의 정도가 심협보다 크면 컸지 작지는 않을 터였다.

소효는 재빨리 손의 각도를 바꿔 허공을 때리는 동시에 허공에서 몸을 뒤집어 거꾸로 치솟으며 발로 심협을 강하게 내려쳤다.

그러나 이 두 번의 변초로 심협도 시간을 벌어 곤봉을 휘두를 수 있었다.

펑! 펑!

둔탁한 소리가 두 번 울려 퍼졌다.

순양검은 소효의 손에 튕겨나가 땅에 꽂혔고, 그사이 심협은 곤봉으로 상대의 허리를 명중시켜 멀리 날려버렸다.

“소효 장로님, 양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심협이 한 손으로 곤봉을 쥐고 포권했다.

소효는 방금 일초를 공격했지만 심협에게 명중하지 않았으니 징계가 끝난 셈이었다.

하지만 그때, 심협의 태양혈이 갑자기 강렬하게 요동쳤고, 식해의 부주산도 함께 흔들렸다.

‘위험하다!’

심협은 위험을 직감하고는 부주진신법을 극한으로 운공했다. 눈앞이 흐려지는 순간, 소효가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의 손에 생겨난 초록빛의 날카로운 칼날이 심장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방금 것은…… 환술이었나!’

깜짝 놀란 심협이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은 뒤라 도저히 피할 겨를이 없었다.

“심 소우, 그대가 졌소!”

소효가 웃으며 말했다.

“멈추세요!”

청구 국주가 외쳤지만, 소효 장로는 들은 척도 않고 이미 손을 거둘 수 없는 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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