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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875화 (875/1,214)
  • 875화. 관부를 떠나다

    심협은 잠시 생각하더니 세 개의 보물을 임랑환에 넣고는 뒤돌아 산하사직도에서 나왔다.

    나와보니 원천강이 용맥 안의 살기를 연화하고 다시 땅속으로 돌려보내면서 환구 제단의 진룡무극진은 사라진 상태였다. 그리고 원구 제단에는 수십 명이 몰려와 있었는데, 바로 조정의 관리와 대당 관부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원천강을 선두로 법진을 이루어 정교금 옆을 에워싼 채 그의 체내에 남아 있는 마기를 제거하고 있었다.

    제단 옆의 땅에는 제압당한 수많은 요마와 호족 사람들이 있었는데, 화 공공도 그곳에 있었지만, 이미 죽은 상태였다.

    심협은 술법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날아서 제단 밖으로 물러났다.

    제단 밖에는 이미 적지 않은 사람들이 서 있었는데, 대부분이 외부의 수사였다. 그들의 얼굴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분위기가 험악한 것이 곧 폭풍우가 몰아칠 것 같은 압박감이 느껴졌다.

    심협은 무슨 일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으나, 주위를 둘러보니 한쪽에 호불귀가 보였다. 그는 술법으로 호족의 특징을 감춘 상태였다.

    “호형, 또 무슨 일이 일어난 겁니까?”

    심협이 전음으로 물었다.

    “아, 심형이구려. 일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소. 이번 장안성 습격에서 적지 않은 청구 호족이 요마들과 협력했는데, 대부분은 잡혔습니다. 대당 관부와 다른 종파는 이미 장안성 습격을 청구 호족의 소행이라 여겨 며칠 뒤 청구국으로 쳐들어가 토벌할 것을 상의하고 있습니다.”

    호불귀가 한탄했다.

    “청구 호족! 저들이 모두 청구 호족이었군요. 그렇다면 전에 내가 잡았던 그 호족 청년도 청구 호족이었소? 혹시 호형이 아는 자였소?”

    “내 비록 청구 호족은 아니지만 그곳은 호족의 발원지라 몇 번 가본 적이 있소. 그리고 그곳의 도산명(塗山明)이라는 이와 몇 번 만난 인연도 있지요.”

    호불귀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호형은 어떻게 생각하오? 장안 습격이 정말 청구 호족의 소행일까요?”

    “이전 습격 때 그 여우 허상이 모두가 보는 앞에서 삼계의 모든 종파를 도발했고, 오늘 장안의 두 번째 습격에서는 청구 호족 사람들이 공공연하게 요마들을 도왔소. 허니 이 두 번의 습격이 청구 호족이 주도한 것은 아니더라도 크게 관련이 있는 건 확실할 것으로 보이오. 삼계의 종파 중 요마의 손에 죽은 인명이 없는 종파가 없으니 아무래도 청구 호족에 큰 화가 닥칠 것 같군요.”

    심협의 머릿속에서 경하 용왕의 모습이 떠올렸다.

    “심 도우는 다르게 생각하시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고인(高人)이지만, 저들을 조사하는 건 쉽지 않을 겁니다.”

    심협은 대답하지 않고 화제를 돌렸다.

    “안 그래도 그게 이상했소. 대당 관부의 두 장로가 청구 호족을 상대로 섭혼술을 시전하니 호족과 요마들이 갑자기 모두 죽고 신혼마저 소멸하지 뭐요. 누군가 저들에게 금제를 심어놓았다가 중요한 순간에 살인멸구한 것 같소.”

    그 말을 들은 심협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역시 저 요마들과 호족들의 몸에도 마접심인이 심겨 있었군!’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그는 무언가가 떠올라 안색이 돌변했다.

    ‘미소는 아직도 대당 관부에 있다!’

    그녀는 청구 호족과 관련이 있고, 이를 많은 이가 알고 있다. 대당 관부는 두 번의 습격으로 수많은 제자를 잃은 데다 정교금까지 흉계에 당해 생사를 알 수 없게 됐으니 청구 호족을 향한 원망으로 그녀를 벌할 가능성이 컸다.

    “심형, 무슨 일이오?”

    “갑자기 중요한 일이 생각나서 급히 가봐야 할 것 같소. 그럼 이만.”

    심협은 그렇게 답하고는 곧장 날아갔고, 잠시 후 자신의 거처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이미 몇 명의 대당 관부 제자가 들이닥친 상태였다. 이들은 분노가 가득한 얼굴로 미소를 포위하고 있었다.

    미소는 온몸이 하얗고 두 개의 꼬리가 달린 호족 본체로 변해 있었다.

    “백호(白狐)에 여러 개 꼬리. 청구 일족의 여우가 맞군. 저걸 잡아서 장로님들께 넘긴다!”

    모난 얼굴에 귀가 큰 청년이 분노한 말투로 외치고는 검은 그물을 던졌다.

    미소는 몸을 움츠려 덜덜 떨었고, 눈에는 눈물이 가득했다. 겁에 질린 그녀는 저항 한번 하지 못하고 잡힐 위기였다.

    “멈춰!”

    심협이 차갑게 외치고는 소매에서 금빛을 쏘아 보내 그물을 잡았다.

    “누구냐!”

    몇 명의 대당 관부 제자가 벌컥 화를 내며 돌아봤다.

    “심 선배님이셨군요. 함부로 거처에 들어온 점을 용서해 주십시오. 잠시 후, 저희가 직접 계율당(戒律堂)으로 가서 벌을 받겠습니다. 하지만 청구 호족이 요마를 사주하여 장안성을 습격하고 수많은 사상자를 냈으니 저희 대당 관부의 원수입니다. 그러니 선배님께서는 이 요마를 감싸지 마십시오.”

    모난 얼굴의 청년이 심협에게 공수하며 말했지만, 말투는 여전히 완강했다.

    “장안의 습격이 청구 호조의 소행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니 함부로 단정할 수 없소. 또한 미소는 아직 어리고 약하여 관여했을 리가 만무하오. 그러니 도우들께서는 부디 관대히 봐주시오. 미소의 일은 내가 장로들과 의논해 보겠소.”

    말을 마친 그는 청년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붉은 빛으로 미소를 감싸고는 소요경 안으로 넣었다.

    “심 선배님께서는 호족 요마를 두둔하시는 겁니까! 당신은 경지가 높으니 우리가 어쩔 도리가 없지요. 허나 여기의 누구도 호족과 관련된 자를 환영하지 않으니 바로 대당 관부를 떠나십시오!”

    모난 얼굴의 청년이 눈을 붉히며 차갑게 말했다.

    “방회(方回) 사형, 심 선배님은 대당 관부의 귀빈이고 두 번의 습격에서 저희를 위해 애써주셨습니다. 한데 어찌 축객령을 내리는 겁니까!”

    옆에 있는 여제자가 안색이 변하더니 황급히 만류했다.

    “이 일은 나의 판단이니 만약 장로님들께서 벌을 내리신다면 내가 책임지겠다. 그러나 누구도 나서지 마라!”

    방회라는 청년이 날카롭게 외치자 여제자는 겁에 질린 듯 더는 막지 못했다.

    심협은 말없이 멀리 날아갔다.

    대당 관부 밖에서는 호불귀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당 관부 제자들이 많은 동문을 잃은 아픔에 말이 함부로 나온 것이니 심형은 너무 마음에 두지 마시오.”

    “알고 있습니다. 다만 저들의 모습을 보니 청구 호족이 큰 화를 피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 걱정입니다.”

    심협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문제는 나중에 생각합시다. 지금은 성안이 혼란스러우니 돌아다니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듯하오. 우선 내 객잔으로 갑시다.”

    호불귀가 주위를 둘러보고는 말했다.

    심협도 고개를 끄덕이고는 호불귀를 따라갔다.

    객잔에 도착한 심협은 바깥 상황을 미소에게 간략하게 설명해주고는 안심시킨 후, 소요경 안에 머물도록 했다. 이어서 두 눈을 감고 운공하여 오늘 대전으로 소모한 법력을 회복했다.

    그는 며칠 동안 연속으로 큰 싸움을 치르면서 황정경 깨달음에 한 걸음 더 다가갔고, 경지도 정진할 기미를 조금씩 보였다. 다만 도움을 줄 단약이 부족하여 정석대로 연기(煉氣)해야 했기에 효율은 매우 떨어졌다.

    “흑곰 도우가 화련단을 완성했어야 할 텐데…….”

    심협은 작게 중얼거린 뒤 심신을 가다듬고 운공에 전념했다.

    * * *

    하루가 지나고 날이 밝았다.

    심협은 원기가 모두 회복되자 두 눈을 떴다. 눈에서 두 줄기 밝은 빛이 쏟아져 나왔다.

    자리에서 일어나 객청으로 나간 그는 눈을 치켜떴다.

    호불귀는 어느새 일어나 차를 마시고 있었는데, 그 외에도 두 명이 더 있었다. 육화명과 황목상인이었다.

    “육형, 황목 장로님. 여기는 어쩐 일이십니까?”

    심협은 의아한 듯 물었다.

    “어제 일로 사과하러 왔네. 어젯밤 방형이라는 제자가 자네에게 불손하게 굴었다더군. 그에게 중징계를 내렸네. 동문을 잃은 그의 마음을 헤아려 부디 용서해주게.”

    육화명이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숙이며 포권했다. 그는 많이 회복되긴 했지만, 부상이 워낙 심했던 탓에 안색은 여전히 창백했다.

    “물론이지요. 어제는 경솔하게 일을 처리한 내 잘못도 있소. 다만, 미소는 내가 대당 관부로 데리고 온 아이인 만큼 내가 책임을 져야 했습니다. 그러니 두 분께서 부디 양해해 주십시오.”

    심협이 서둘러 일으키더니 포권으로 예를 올렸다.

    “물론이네. 미소는 아직 어린아이이니 당연히 이번 습격과 무관할 걸세. 하지만 지금 성에 있는 여러 종파 사람들의 청구 호족을 향해 이를 갈고 있으니, 심형은 그 아이를 최대한 객잔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해주게.”

    청구 호족을 언급할 때, 황목상인의 목소리는 다소 차가워졌다.

    “황목 장로님, 안심하십시오. 미소를 바로 청구국으로 데려다주겠습니다. 한데 정 국공께서는 좀 어떠십니까? 어제 급히 나오느라 국공의 상태를 미처 살피지 못했습니다.”

    심협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었다.

    “국사님의 도움으로 스승님의 몸에 있는 마기는 모두 제거했네. 다만 경맥과 신혼은 마기의 침투가 너무 깊어서 오랫동안 정양해야 한다더군. 어찌 됐든 경지에 심한 손상이 올 것 같다고 하셨네.”

    육화명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심협은 마음이 무거워졌다. 정교금의 부상이 그 정도로 심각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대당 관부와 원 국사님의 수단은 하늘마저 놀랄 정도이니 미천한 제가 감히 끼어들 수는 없겠습니다만, 어제 환구 대전에서 몇몇 요마에게서 이 세 개의 보물을 얻었습니다. 모두 마기를 제압하는 데 효과가 있으니 두 분께서 이것을 정 국공께 좀 전해주십시오. 그동안 정 국공께 받은 은혜에 조금이나마 보답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심협은 한참을 생각하더니 간장막사와 무자경, 복마천서를 꺼냈다.

    육화명은 세 개의 보물을 몰랐지만, 황목상인은 세 개의 보물은 원천강이 항상 갖고 다니는 중보임을 알고 있었다.

    ‘이게 왜 심협의 손에……?’

    그는 궁금증이 솟구쳐 묻고 싶었지만, 결국은 입 밖에 내지 못했다.

    황목상인은 여러 번 고심한 끝에 세 개의 보물을 받았다. 바로 궁으로 가서 원천강에게 물어볼 생각이었다.

    한동안 담소를 나눈 뒤, 육화명과 황목상인은 작별을 고하고 돌아갔다.

    “심형, 청구국(靑丘國)으로 갈 생각이오?”

    호불귀가 물었다.

    “장안성의 일은 아직도 의혹이 많아서 청구 호족이 흉수를 도왔는지는 아직 알 수 없소. 이 일을 자세히 알아봐야 할 것 같군요.”

    심협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어젯밤 심형이 수많은 요마를 죽이면서 눈 하나 깜빡이지 않는 것을 보니 마치 강림한 살신 같았는데, 이렇게 자비로운 줄은 몰랐습니다.”

    호불귀가 허허 웃으며 말했다.

    “상황이 급박하니 바로 출발해야 할 것 같소. 호형은 계획이 어떻게 됩니까?”

    심협은 호불귀를 돌아보며 물었다.

    “인간족인 심형이 이렇게 우리 호족을 위해 동분서주하는데 호족의 일원인 제가 어찌 가만히 있겠습니까? 동행하겠습니다.”

    심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청구국에 가본 적이 없었는데, 그곳을 잘 알고 있는 호불귀가 함께 가준다면 일이 훨씬 수월할 터였다.

    두 사람은 지체하지 않고 바로 출발했다.

    * * *

    대당 국경, 홍주성(洪州城)에서 백여 리 떨어진 곳에 향양진(向陽鎭)이라는 변방. 이곳에는 주둔군이 머무는 마을이 있었다.

    이 마을은 크지 않았지만, 평소 매우 시끌벅적했다. 남쪽에 인접한 조양(朝陽)의 골짜기 안에 있는 청구국과 이웃으로 지내며 평소에도 활발하게 무역을 했기 때문이다.

    호족의 나라인 청구국 사람들은 어느 정도 수련하면 겉모습을 바꿀 수 있어 위화감이 들지 않았고, 무역하는 물건은 인간 세계에서 모두 최상품 대우를 받았다. 게다가 본래 인간족과 사이가 좋아 각지 사람들이 이곳을 자주 찾았다.

    한데 근래 들어 이 마을에 변화가 생겼다.

    어째서인지 대당 관부가 갑자기 향양진의 무역 활동을 금지하더니 곧바로 홍주성 안의 군대를 대거 출동시켜 향양진에 주둔하게 한 것이다.

    본래 있으나 마나 했던 마을의 주둔군이 홍주성의 군대로 편성되면서 매우 삼엄해졌고, 모두가 상시 무기를 든 채 전투에 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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