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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874화 (874/1,214)

874화. 영보당겁(靈寶當劫)

“이, 이게 무슨……?”

경하 용왕은 간신히 몸을 가누고는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본래 쓰러져 있어야 할 원천강이 어느새 몸을 일으켰는데, 몸의 모든 상처가 이미 사라진 상태였다. 게다가 온몸이 은은하게 빛나는 것이 신통마저 크게 정진한 모습이었다.

“이럴 리가…… 넌 내 정두칠전서(釘頭七箭書)에 법력과 신혼이 꿰뚫려 혼비백산했어야 하는데…… 어떻게 다시 살아날 수가 있단 말이냐!”

경하 용왕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소리쳤다.

“그대의 정두칠전서는 확실히 대단했네. 내 육체, 신혼은 이미 깨졌지. 지금의 나는 원신(元神)의 화신일 뿐이야. 어쨌든 내 겁(劫)을 깨트려줬으니 경하 용왕께 감사드리오.”

원천강이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경하 용왕은 안색이 연달아 바뀌었다. 비록 원천강의 말뜻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상대의 신통이 크게 정진한 것은 사실이니 여기에 더 있어봐야 득이 될 것은 없었기에 바로 달아나려 했다.

하지만 그때, 눈앞의 마운이 단숨에 갈라지더니 그 안에서 심협이 빠져나오며 암홍색 대인으로 머리를 내리쳤다.

경하 용왕은 태을경의 고수답게 반사적으로 피하려 했다.

그러나 그 순간 날카로운 피리 소리가 울리면서 마치 수천수만의 신룡이 울부짖는 듯한 비참하고 처량한 느낌이 충만해졌다.

“크아악!”

심협 역시 괴로운 표정으로 서둘러 양손으로 귀를 막았고, 아래의 원천강도 눈살을 찌푸렸다. 원천강이 불진을 휘두르자 하얀 빛이 피리 소리를 막아냈다.

경하 용왕은 몸이 굳어버렸고 눈빛도 흐려진 것이 마치 주문에 걸린 듯했다.

그때, 궁전만큼 커진 번천인이 경하 용왕을 세게 두들겼다.

퍼펑!

굉음과 함께 경하 용왕의 몸이 터지고 머리만 남겨졌다.

경하 용왕의 흐려졌던 눈빛은 금세 빛을 되찾았으나, 몸이 다시 부서진 것을 보고는 분노로 이를 갈았다. 하지만 감히 보복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앞으로 굴러 도망가려 했다.

그때, 허공에서 파동이 일어나더니 천살시왕이 나타나 한 손으로 경하 용왕의 머리를 잡았다. 이어서 그들 옆에서 은빛이 반짝였고, 하늘을 가릴 정도로 거대한 그림이 날아오더니 대량의 은빛으로 순식간에 그들을 휘감았다.

심협은 재빨리 산하사직도 옆으로 다가가며 양손을 결인했다.

그림에서 노란색 영광이 반짝이더니 찰나의 순간 손 모양의 거대한 산이 만들어졌고, 쿵 하며 경하 용왕의 머리를 완벽하게 제압했다.

그는 그제야 안도하고는 소매를 휘둘렀다. 그러자 거대한 그림이 빠르게 줄어들었고, 몇 호흡 만에 원래 모습으로 변하여 그의 손에 떨어졌다.

번천인도 빠르게 줄어들어 그의 소매로 들어갔다.

경하 용왕이 제압되자 하늘의 마운은 빠르게 줄어들기 시작해 몇 호흡 만에 완전히 사라졌고, 썩은 듯한 악취도 함께 사라졌다.

한 사람이 돌덩이처럼 하늘에서 떨어졌다. 정교금으로, 그는 의식을 잃은 상태였고, 몸의 마기도 빠르게 사라져갔다.

“정 국공!”

심협이 화들짝 놀라 술법으로 받아내려 하는데 하얀 빛이 한 발 앞서 정교금을 휘감고는 제단으로 데려갔다. 원천강이 먼저 구한 것이다.

심협도 곧장 제단으로 향했다.

“심 소우, 그대의 도움 덕분에 장안성이 큰 화를 면할 수 있었네. 고맙네.”

원천강이 심협에게 공수하며 예를 올렸다.

“아닙니다. 한데…… 방금은 어떻게 된 겁니까? 분명히 경하 용왕의 정두칠전서에…….”

심협이 그렇게 물으면서 손을 들었다. 그러자 아래 제단 부근에서 검은 기운이 반짝이더니 검은색의 세로 눈이 나타났다가 그의 몸으로 쏙 들어갔다. 천마안이었다.

그는 요마들과 대전을 치를 때 몰래 허공에 이 동술을 설치하여 주위 동정을 살펴보려 했는데, 뜻밖에도 마운대진에 갇히면서 큰 역할을 해줬다.

원천강은 마안을 보고는 깜짝 놀란 기색이 역력했지만, 이내 평온을 되찾았다.

“경하 용왕의 정두칠전서는 매우 강력한 상고의 요술이라 나는 확실히 그 비술에 당해 신혼과 육체가 전부 부서졌다네. 허나 다행히 미리 대비한 덕에 간장막사, 무자경, 복마천서 세 개의 영보로 이 겁을 막아낼 수 있었지.”

“영보로 겁을 막았다고요?”

심협은 이런 비술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태고부터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는 신통이라네. 극단적인 상황에 부닥쳐야만 비로소 결사적으로 살길을 찾는 것과 비슷하지. 나도 불행 중 다행히 마음에 가득하던 한계를 부쉈으니 이제 천존 경지로 올라갈 발판이 마련된 셈이네.”

원천강이 웃으며 말했다.

심협은 눈앞의 국사를 바라보며 그동안 일어났던 일들을 돌아보자 뭔가를 알 것 같았다.

이 모든 것은 원천강의 안배였다. 그는 일부러 경하 용왕을 이곳으로 유인했고, 자신을 사지로 몰아넣어 영보당겁(靈寶當劫) 비술을 이용하여 경지의 한계를 돌파한 것이다.

이 일에 경하 용왕은 물론이고 자신과 대당 관부, 궁 안의 수많은 관리, 심지어 장안성의 백성들까지 그의 손에 놀아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 비술은 천지의 인과와 연관이 있다네. 심 도우는 비록 강하지만 경지는 아직 낮은 편이니 이해하기 어려울 걸세. 앞으로 경지가 높아지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게야.”

원천강은 심협의 멍한 표정이 아직 이해하지 못해서인 줄로 알고 덧붙였다.

“그렇군요. 국사 대인의 신묘한 계책에 감복했습니다. 장안성은 국사께서 지키고 계시니 대당은 이제 아무 걱정 없겠습니다.”

심협이 진심으로 탄복했다.

“소소한 계책에 불과하네. 모두 심 소우가 애써준 덕분일세. 앞으로 필요한 것이 있으면 내 전력을 다해 도와주겠네.”

원천강이 다시 예를 올리며 정중하게 말했다.

경하 용왕을 저지했지만, 아직 할 일이 많았던 두 사람은 바삐 움직였다.

원천강은 계속해서 진룡무극진을 운공하여 용맥 진령 안의 살기를 연화했다.

정교금도 법진 안에서 체내의 마기를 제거했다.

원천강의 말에 따르면 정교금은 경하 용왕의 마족 괴뢰(傀儡) 술법에 신혼이 조종당했고, 몸에도 대량의 마기가 침투한 것이다. 그래도 마기를 모두 제거하면 깨어날 것이라고 했다.

그 말에 심협은 안심할 수 있었고, 산하사직도를 꺼내 안으로 들어갔다.

경하 용왕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마공을 익혀 태을 경지에 도달했다. 이는 예삿일이 아니었다. 배후에는 마족과 관련된 중요한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게 분명했다.

마족에 관한 일이라면 심협은 언제나 신중했고,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절대로 놓치지 않았다. 경하 용왕의 목숨을 빼앗지 않고 번천인으로 제압하기만 한 것도 그런 이유였다.

산하사직도 안. 심협을 기다리듯 검은 존재가 허공에 떠 있었다. 바로 귀장 조비극이었다.

“주인님.”

심협이 들어오자 조비극이 황급히 머리를 조아렸다.

“돌파에 성공했느냐?”

심협은 조비극을 살폈다. 몸에 음기가 팽창한 것이 이미 진선기에 도달해 있었고, 손에는 보라색의 기다란 피리를 들고 있었다. 공귀적과 비슷했지만, 피리 끝이 귀신 머리 조각에서 금룡의 머리로 바뀐 것으로 봐서 화령자가 제련한 장룡적이 분명했다.

“주인님의 배려 덕분입니다. 안 그랬으면 이 단계까지 오는 데 얼마나 걸렸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습니다.”

조비극이 감개무량해하며 말했다.

“네 노력 덕이지. 한데 진선으로 들어설 때 어째서 뇌겁이 강림하지 않았지?”

심협은 손을 휘휘 젓고는 물었다.

“저희 귀도는 진선기에 들어설 때 필요한 겁이 음뇌지겁(陰雷之劫)인데, 외부가 아닌 마음에서 일어납니다.”

“그렇군.”

심협은 처음 들어보는 말에 신기해했다.

“이제 막 진선기에 들어섰으니 경지가 불안정하겠군. 건곤대에서 잘 안정시키고 있거라. 안에 음수의 시체가 있으니 도움이 될 게다.”

조비극도 그럴 생각이었기에 곧장 검은 빛으로 변하여 건곤대로 들어갔다.

또 하나의 영총이 진선기에 도달했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심협은 오지산(五指山)으로 향했다.

“이런, 심 도우. 추 파파의 신혼에서 갑자기 마기가 솟구치더니 안에서부터 신혼을 완전히 갉아먹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네. 다른 호족 청년도 마찬가지고. 아무래도 누군가가 두 사람 몸에 금제를 설치해두었다가 살인멸구(殺人滅口)한 모양이야.”

화령자의 목소리가 갑자기 울려 퍼졌다.

“뭐라?”

그 말에 심협은 불길한 예감이 들어 서둘러 오지산으로 날아갔다.

오지산 아래. 경하 용왕은 눈을 둥그렇게 뜬 채 이미 숨이 끊어져 있었다.

“어떻게 된 거지?”

그는 옆에 있는 천살시왕을 바라봤다.

“방금 미간에서 갑자기 마광이 떠올랐고, 안에서 검은색 도안(圖案)이 어렴풋이 보이더니 회신주로 회수할 틈도 없이 신혼이 완전히 소멸했습니다.”

천살시왕이 딱딱한 말투로 말했다.

“어떤 모양이었지?”

심협의 물음에 천살시왕의 손에서 노란 빛이 떠올랐다. 안에는 복잡한 마문이 그려져 있었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한 마리 나비 같았다.

심협으로서는 처음 보는 마문이었다.

화령자에게 듣기로 추 파파와 호족 청년이 죽을 때도 똑같은 일이 있었다.

“아무래도 장안성의 두 번의 습격은 경하 용왕 혼자만의 소행이 아니라 배후에 다른 고인이 숨겨져 있는 모양이군.”

“방금 그 마문 도안을 자세히 살펴봤는데 아무래도 마접심인(魔蝶心印) 같네.”

“마접심인?”

“마족의 신통인데, 다른 사람의 신혼에 마접의 씨앗을 심어놨다가 술법자가 의식만으로 씨앗을 발아하게 할 수 있지. 그리 되면 수많은 마접이 생겨나 숙주의 신혼을 흔적도 없이 갉아먹는다네. 비밀을 지키기에는 최고의 비법이지.”

“마족에게 그런 비술이 있을 줄이야!”

심협이 신중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치우 마결을 얻은 이후로 마족 신통에 대해 상당히 알게 됐다고 생각했지만, 아직도 자신이 모르는 기이한 비술이 있었던 것이다. 마족의 저력은 어디까지란 말인가.

“마족은 상고 시기부터 삼계의 다른 종족과 대항해왔으니 이런 저력이 있는 게 당연하지. 심 애송이, 내가 힘을 못 쓴 게 아니라 두 사람은 마접의 손에 죽었으니 나도 어쩔 수 없었네.”

“이미 죽었으니 어쩔 수 없지.”

심협은 화령자가 애송이라 부른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짧게 탄식하며 소매를 휘둘렀다. 그러자 태양진화의 금빛 불꽃이 경하 용왕의 머리를 감싸더니 활활 타올랐다.

경하 용왕의 머리는 금방 잿더미가 되었다. 한데 검은색 용각(龍角)은 타지 않고 남아 있었다.

놀란 심협은 얼른 집어 들어 신식으로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내 기쁜 듯 웃었다. 이 용각은 저물 법기였던 것이다.

그는 방금 번천인으로 경하 용왕의 몸을 터뜨렸을 때 이 용의 수많은 법보까지 파괴됐음에 안타까워했는데, 이런 행운이 따를 줄은 몰랐다.

신식으로 안을 살펴보니 안에는 수많은 보물이 있었다. 대부분은 마기의 진보였기에 그에게 별다른 쓸모가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보물만은 그의 주의를 끌었다. 바로 방금 경하 용왕이 원천강을 음해할 때 사용했던, 풀로 엮은 소인과 그 위에 걸려 있는 작은 활과 화살이었다.

소인을 꺼내자 기이한 의념이 소인의 몸에서 그의 머릿속으로 흘러들었다. 정두칠전서의 사용방법이었다.

풀로 엮은 소인은 상고 시기 영혼의 풀로 만든 것으로, 이름은 무혼괴뢰(無魂傀儡)였다. 여기에 작은 금색 활 사혼궁(射魂弓)과 화살 멸혼전(滅魂箭)까지 합친 것이 바로 상고 시기에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정두칠전서였다.

이를 활용해 누군가를 죽이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였는데, 하나같이 사악했다.

하나는 아까 경하 용왕처럼 상대의 피를 무혼괴뢰에 떨어뜨린 뒤 사혼궁과 혈혼전으로 상대의 삼혼칠백을 소멸하는 것이다.

두 번째 방법은 더 은밀했다. 상대의 이름을 종이에 적은 뒤 무혼괴뢰의 머리에 붙인 뒤, 괴뢰의 머리 위에 등불 하나를 밝히고는 하루에 세 번 절한다. 그리고 21일째 오시(午時)가 되면 적의 삼혼칠백은 완전히 소멸한다. 이때 화살로 괴뢰를 쏘면 상대는 흔적도 없이 죽게 된다.

“이렇게 음흉한 비술이라니!”

심협은 섬뜩함에 몸서리쳤다.

이 비술은 너무도 음흉하여 한 번 사용할 때마다 하나의 행복과 은택을 앗아가니, 실로 불길한 물건이라 할 수 있다.

이 보물을 가볍게 사용하지는 않을 생각이지만, 만약 정말로 상대하기 까다로운 대적을 만난다면 사용해도 좋을 것 같았기에 무거운 마음으로 챙겼다.

간장막사와 무자경, 복마천서도 모두 용각에 담겨 있었다. 세 보물은 영광을 발하며 주위의 마보와는 철저히 분리되어 있었다.

심협은 이 세 개의 보물을 원천강에게 돌려줄 생각이었다. 다만, 원천강이 방금 말했던 인과의 일 때문에 이 보물을 받을지는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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