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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872화 (872/1,214)
  • 872화. 성동격서(城東擊西)

    회백색 불꽃은 빠르게 번져서 눈 깜짝할 사이에 몸의 절반을 뒤덮었다.

    검은 기운이 불타자 그 안에서 한 청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준수한 외모에 귀는 여우 귀였다.

    “호족……?”

    심협은 멍한 표정으로 바라봤고, 옆에 있던 호불귀도 청년을 발견하고는 표정이 변했다.

    심협은 예민한 감각으로 호불귀의 표정 변화를 알아챘다. 이어서 그가 왼손을 휘두르자 손에서 푸른 빛이 날아갔다.

    콰직!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호족 청년 주위에 커다란 빙산이 나타났고, 청년은 얼어붙은 채 미동도 없었다.

    심협은 다시 오른손을 휘둘렀고, 푸른 빛은 거대한 빛기둥으로 변해 땅의 균열로 들어갔다.

    강력한 한기가 폭발하자 또 하나의 빙산이 나타나 균열을 완전히 봉쇄했다.

    “심형이 한빙 신통에 이렇게 능할 줄은 몰랐습니다. 실로 감탄했습니다.”

    호불귀가 감탄하며 다가왔다.

    “작은 재주일 뿐입니다. 그나저나 호형이 아직 장안성에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심협이 담담하게 답하고는 팔을 휘두르자 붉은 빛이 호족 청년 주위의 빙산을 뒤덮더니 소매로 들어갔다.

    그의 옆에 있던 노란 빛의 존재인 천살시왕도 회백색 시화를 거두고는 바로 사라졌다.

    이 광경을 본 호불귀는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심 선배님,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살아남은 대당 관부 제자들이 다가와 심협에게 포권했다.

    심협이 손사래를 치고 무슨 말인가를 하려는데, 땅이 갑자기 흔들리더니 엄청난 노란 빛이 땅속에서 뿜어져 나왔다.

    불과 몇 장 높이까지 떠오른 노란 빛에 심협은 마치 늪에 빠진 것처럼 몸이 무거워졌고, 이에 서둘러 법력을 동원하여 하늘로 날아올랐다.

    허나 그는 곧 표정이 돌변했다. 땅의 노란 빛은 순식간에 장안성 전체를 노란빛으로 물들였다.

    “이게 무엇입니까? 진법입니까?”

    역시 허공으로 날아오른 호불귀도 깜짝 놀란 듯 옆에 있는 심협에게 물었다.

    땅의 노란 빛에서는 수많은 부문이 솟아오르더니 일제히 성의 크고 작은 건물들로 쏟아져 들어갔다. 그러자 노란 빛도 부문이 녹아들어 간 건물로 일제히 이끌려 왔고, 눈 깜짝할 사이에 주위로는 얼음 같은 노란색 보호막이 생겨났다.

    순식간에 장안성의 모든 건물 위로 노란 보호막이 생겨났다.

    이 광경을 본 심협은 눈이 살짝 커졌다.

    “이것은 장안성의 호성대진으로 인해 생긴 변화입니다. 무토(戊土) 영광이 성의 건물에 들어섰으니 건물 안에 있는 백성들은 이제 안전할 겁니다.”

    몇 명의 대당 관부 제자들이 다가와 설명했다.

    심협은 대략 짐작하고 있었기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노란 빛의 보호막에 둘러싸인 성안의 건물들은 요마가 퍼붓는 공격에 떨리기는 했지만, 그 안의 백성들은 무사했다. 이 보호막은 평범해 보였지만, 실제로는 난공불락의 존재였다.

    장안성 곳곳에서 백성들을 보호하던 관리와 대당 관부 제자들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마침내 손을 떼고는 각종 법보와 비술로 요마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흉악하고 포학하게 백성들을 공격하던 요마들이 죽어갔다. 한순간에 각양각색의 빛이 격렬하게 솟구치고 굉음이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한데 그때, 다시 이변이 일어났다. 용의 포효와 범의 울음소리가 들려오더니 동서남북 사방에서 영광이 솟구쳤다. 이 빛들은 각각 청룡, 백호, 주작, 현무 사상(四象)의 허상으로 변했다.

    하늘에 빼곡한 성진의 부문이 떠오르더니 뒤집힌 솥 같은 사상천시대진이 천천히 내려왔다.

    이번에는 도요요의 방해가 없었기에 사상천시대진은 금방 내려왔다.

    서쪽의 백호가 가장 살벌하고 엄청난 활약을 보였다. 성안에 요마들이 창궐한 것을 보자마자 바로 수많은 백금색 검기를 비처럼 쏟아부었고, 순식간에 대량의 요마들이 참살됐다.

    청룡, 주작, 현무 법상도 공격을 시작해 수많은 청목(靑木), 화염, 수뇌(水雷) 등의 신통이 떨어졌다. 성안의 요마들이 순식간에 모두 도륙을 당했다.

    이 광경을 본 후에야 심협도 긴장을 풀었다. 호성대진과 사상천시대진, 두 개의 강력한 금제에 요마들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이번 습격은 요란스럽긴 했지만 미비하다. 이번에 장안성 공격을 조종한 자의 의도가 무엇이기에 이리 쉽게 제압당한단 말인가? 설마…… 이번 습격의 목적은 장안 백성이 아닌 건가?”

    심협은 갑자기 든 불길한 생각에 호불귀에게 인사도 남기지 않고 휙 날아가 장안성 한복판에 나타났다.

    심협은 신식을 넓게 펼치는 동시에 전력으로 유명귀안을 발동하여 주위를 둘러봤다.

    “음?”

    푸른 빛에 약간의 검은 빛이 섞인 그의 눈빛이 한순간 흔들리더니 표정이 급변했다. 그러더니 곧장 연연나금의를 발동하여 모습을 숨긴 뒤 장안 서북쪽으로 날아갔다.

    * * *

    환구. 원천강은 제단 끝에 가부좌를 튼 채 진룡무극진을 운공하고 있었다.

    용맥 진령의 혈광은 이미 매우 옅어져서 머지않아 완전히 사라질 것 같았다. 진령은 빠르게 헤엄치며 포효하고 있었다.

    하지만 원천강은 혼자서 대진을 펼치고 있었기에 법력 소모가 상당하여 안색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려 있었다. 법력이 곧 모두 소진될 것 같았다.

    그가 막 자금색 단약으로 법력을 회복하려던 순간, 뒤편의 허공에서 갑자기 파동이 일어나더니 거대한 검은색 도끼가 조용히 그의 목을 향해 날아왔다.

    하지만 이 도끼가 원천강의 목 근처까지 다가왔을 때였다.

    땅!

    커다란 소리가 울려 퍼졌고, 그의 뒤에서 간장(干將)이라고 적혀 있는 암금색 보검이 나타났다. 보기에는 평범했지만, 거대한 도끼의 일격을 막아내고도 검망은 떨리지도 않았다.

    원천강이 소매를 휘두르자 또 하나의 암금색 검광이 베며 뒤로 날아갔다. 이 보검에는 막사(莫邪)라고 적혀 있었고, 칼날은 무뎌 보였으나 대번에 허공을 베었다.

    쿵!

    누군가 바닥에 떨어졌다. 체구가 크고 얼굴은 수염이 가득한 그는 바로 실종되었던 정교금이었다.

    한데 정교금의 피부는 어째서인지 검은색으로 변해 있었고, 몸에 두른 금갑(金甲)과 온몸에 마기가 도사리고 있었다. 마치 마기에 완전히 물든 것 같았다.

    “정 국공!”

    이 모습을 본 원천강은 안색이 변하여 날아가던 간장 보검을 멈추었다.

    그 순간, 정교금의 미간에서 검은 빛이 뿜어져 나와 두 검의 방어를 지나 순식간에 원천강의 가슴을 뚫었다.

    원천강의 앞섶이 찢겨 나가며 피가 튀었다. 간장, 막사 두 보검은 일제히 튕겨나가 검은 빛에 휩쓸렸다.

    “원 국사, 저번에는 본 왕이 그대에게 당해 머리를 베였으니 오늘 그대로 돌려줄까 하노라!”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칼 같은 검은 빛에서 검은 불꽃이 뿜어져 나왔고, 검은 원천강의 목을 노리고 번개처럼 날아갔다.

    보검을 소환하기에는 너무 늦었기에 원천강은 숨을 들이켜고는 오른손을 내밀었다.

    흑백의 빛이 허공에서 반짝이더니 흑백태극도가 나타나 검은색 기검(奇劍)을 막아냈다.

    하지만 검은색 기검은 무슨 보물인지, 검광을 번쩍이며 흑백태극도를 베어버리고는 더 빠른 속도로 원천강의 목을 노렸다.

    원천강은 진룡무극진을 유지하느라 원기의 소모가 극심했는데, 중상까지 입은 상태라 도저히 피할 수도, 반격할 수도 없었다.

    그때, 주작 신조의 허상이 어렴풋이 드러난 붉은색 검홍이 멀리서 날아왔다. 그 속도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빨라서 수백 장을 한순간에 뛰어넘더니 검은색 기검을 튕겨내고는 몇 장 밖으로 날아갔다.

    붉은 검홍에서 붉은 빛이 번득이더니 심협이 분리되어 나왔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본 그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지만, 이내 허공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산만 한 금색 주먹의 허상이 날아가 정교금을 멀리 날려버렸다.

    “원 국사님, 괜찮으십니까?”

    심협은 얼른 원천강 옆으로 다가왔다.

    “덕분에 목숨은 건졌네.”

    원천강은 몇 번 헛기침을 하더니 다시 자금색 단약을 먹었고, 얼굴에 안개 같은 보라색 빛이 감돌았다.

    “잠시 쉬고 계십시오. 적은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심협은 진룡무극대진을 살펴보더니 원천강 앞을 막아섰다.

    “우리를 처리하겠다고? 하하하! 진선 초기 애송이 주제에 기고만장하구나!”

    차가운 목소리가 허공에서 들려오더니 사람 몸에 호랑이 머리를 단 요마가 모습을 드러냈다. 강력한 마기는 진선 후기의 경지였다.

    “경하 도우, 저놈의 입버릇이 고약하니 그대는 나서지 마시오. 우리가 저놈을 사로잡아 주겠소!”

    호랑이 요마 옆에서 검은 빛이 반짝이더니 다른 대요마가 모습을 드러냈다. 코끼리 머리의 요마였다. 커다란 코는 가슴까지 늘어져 있었고, 손에는 차가운 빛이 감도는 상아보도(象牙寶刀)를 들고 있었다. 경지는 진선 후기였다.

    두 요마 옆에서 연달아 빛이 반짝이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10여 마리의 요마가 속속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 진선기의 요마였다.

    “그렇게 된 거였군. 두 번의 장안선 습격은 모두 그대의 계획이었군. 목표는 대당의 용맥이었나? 경하 용왕!”

    심협은 어두워진 안색으로 정교금을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

    “본왕의 존재를 눈치채다니, 그동안 제법 실력을 키운 모양이구나.”

    정교금의 몸에서 환영 같은 사람의 모습이 나오더니 천천히 실체로 변했는데, 바로 경하 용왕이었다.

    검은색 기검이 다시 그의 수중으로 들어와 검망을 강하게 뿜어내자 허공이 웅웅 떨려왔다.

    “참룡검! 그 검도 수중에 넣은 건가. 경하 도우도 그동안 놀지 않고 이런저런 일깨나 도모한 모양이오?”

    검은색 기검을 본 심협이 조용히 말했다. 그 검의 기운은 비록 달랐지만 틀림없는 그때의 참룡검이었다.

    “참룡검은 본래 우리 용족의 선골로 만든 것이니 내게 돌아오는 게 당연하다. 본왕과 인연도 있고 수수의 벗이기도 하니, 그 정을 봐서라도 본왕의 밑으로 들어오면 지금까지의 일은 모두 잊어주마.”

    경하 용왕이 손으로 참룡검을 튕기고는 말했다.

    “요마들에게 투항하라고? 경하 용왕, 그동안 마공을 수련하느라 머리가 어떻게 된 게요?”

    심협은 피식 웃었다.

    “권주를 마다하고 벌주를 택하다니. 그리 나온다면 목숨을 거두는 수밖에 없지. 죽여라!”

    경하 용왕이 참룡검으로 심협을 가리키며 차갑게 외쳤다.

    옆에 있던 요마들은 진즉부터 기다리고 있었기에 곧장 심협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절반 정도 다가간 순간, 갑자기 목이 뜨거워지고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몸에는 자흑색의 반점이 떠올랐고, 결국 우뚝 멈춰 서야 했다.

    “독을 쓴 것이냐?”

    경지가 가장 높은 호랑이 머리 요물이 가장 먼저 반응했다.

    심협은 냉소하더니 곧장 검은색 마갑을 소매에서 꺼냈다. 발온갑이었다.

    방금 그가 경하 용왕과 이런저런 말을 나눈 것은 괜한 말싸움이 아니라 발온갑이 퍼지는 시간을 번 것이었다.

    “교활한 인간족 애송이가!”

    경하 용왕이 이를 갈며 참룡검을 강하게 휘둘렀다. 백 장 길이의 커다란 검은색 검광이 심협의 머리 위로 떨어졌는데, 그 모습은 마치 흑룡 같았다. 허공이 찢겨 나갈 듯한 위력은 확실히 예전보다 강력했다.

    심협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순양검을 향해 결인했다. 그러자 참룡검과 비슷한 크기의 거대한 화염 검기가 뿜어져 나왔다.

    꽈르릉!

    천둥소리가 크게 울려 퍼지더니 두 개의 검기가 동시에 사라졌다.

    순양검이 바로 번개처럼 날아와 백 장 크기의 대검으로 변하더니 홍련업화를 뿜어내며 경하 용왕의 머리를 향해 날아갔다.

    경하 용왕은 홍련업화에 수백 년간 고통을 당했으니 어찌 그 위력을 모르겠는가? 이에 서둘러 참룡검을 들어 막으려 했는데, 갑자기 순양대검에서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 마리의 화염 신조, 주작 진령이 날아오르더니 날카로운 검기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참룡검과 맞서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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