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9화. 부서진 금제
심협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밀실에 몇 겹의 금제를 설치한 뒤 명화연노를 꺼냈다. 그리고 일곱 개의 만년 화린목과 여러 보조 재료를 넣고, 마지막으로는 현명신철을 소환했다.
“이것은…… 온량, 그자가 몇 년 동안 녹였던 그 신철 같은데…… 확실해! 바로 그 현명신철이야. 과거 이 물건을 녹이느라 나도 꽤나 고생했다오. 아마 안에 내 본원 기운이 남아 있을 것이오. 도대체 이걸 어디서 찾았소?”
현명신철을 본 화령자가 경악한 목소리로 물었다.
심협은 현명신철을 얻은 과정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역시 축융분지에 떨어졌군. 온량이 그 마족 고수와 싸울 때 현명신철이 광성선부에서 사라졌다오. 축융분지로 떨어졌을 거라 생각해 복공과 함께 몇 번을 가봤지만 결국 찾지 못했는데…….”
한편, 이 신철이 온량의 것이라는 말을 듣고서야 심협은 알 것 같았다.
축융분지에 이토록 큰 현명신철이 있었다는 점을 줄곧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그 수수께끼가 풀린 것이다.
“심 도우, 이 보물을 제련하느라 과거에 나도 꽤나 공을 들였다오. 제발 신철을 조금만 나눠줄 수 없겠소? 많이도 필요 없고 사람 머리통 크기 정도면 되는데……. 내 이 은혜는 반드시 갚겠소.”
“안 될 것 없지. 대신 검진(劍陣)을 만들 때 도와주어야 한다.”
심협은 별것 아니라는 듯 대답하고는 손을 크게 휘둘렀다.
“물론이오!”
화령자는 곧장 대답하고는 명화연노를 발동했다. 잠시 후, 활활 타오르는 불이 용솟음치기 시작했다.
심협은 가부좌를 튼 채 두 눈을 감고 순양검배 제련법을 떠올리며 한 조각의 만년 화린목을 명화연노에 던져 넣었다.
금세 반나절이 지나 하늘이 어두워졌다.
밀실 안. 명화연노의 영화는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 앞에 가부좌를 튼 심협은 창백한 얼굴로 가늘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법보를 제련하느라 소모가 컸지만, 그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그의 앞에는 열여섯 자루의 붉은 비검이 떠 있었다. 그중 하나는 기존의 순양검이었다. 보기에는 이전과 큰 차이가 없었지만, 검의 금제가 64도로 늘어가 상품 법보의 극치에 도달한 상태였다.
제련 과정에서 심협은 초 적염수의 화단도 집어넣어 순양검의 힘을 더욱 높였다.
나머지 열다섯 자루의 붉은 빛이 반짝이는 비검은 일곱 개의 만년 화린목으로 방금 만들어낸 것이었다.
본래 이렇게 많은 비검을 만드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금 그의 경지로도 최소 닷새는 걸려야 완성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러나 이번에는 연기 대종인 화령자의 도움 덕분에 반나절 만에 완성할 수 있었다.
열다섯 자루의 비검 중 여섯 자루는 강력한 영화가 타오르고 있었다. 두 자루는 주작진화, 두 자루는 금오진화, 마지막 두 자루의 비검에는 축융분지에서 얻은 태양진화였다. 진화가 부족해 나머지 아홉 자루는 여전히 순양검배였다.
여섯 자루의 순양검은 금제가 첫 번째 것보다 한참 못 미치는 40여 도의 중품 법보였다.
“이 녀석, 비검이 장난 아닌데? 품질은 말할 것도 없고 담겨 있는 영화도 모두 천화급이라니! 네 녀석은 광성자보다 더 미쳤다. 하하하!”
화령자는 매우 흥분했는지 심협을 부르는 호칭마저 바꿔 부르며 껄껄 웃었다.
심협도 내심 매우 흥분한 상태였다. 아홉 자루의 순양검배는 몰라도 일곱 자루의 순양검이 있으니 제4, 제5의 순양검식을 시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태을 이하의 수사를 상대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는 입에서 금빛을 뱉어내 열여섯 자루의 비검을 단전에 넣고는 법력으로 계속해서 온양했다.
열여섯 자루의 비검이 몸에 들어가자 기이할 정도로 강력한 순양의 힘이 안에서 폭발하여 순식간에 온몸을 휩쓸었다. 그러자 단전과 경맥에 있던 마기가 완전히 제압당하여 쉽게 움직일 수 없게 됐다.
‘훌륭해. 이 열여섯 자루의 순양검이 있으면 이제 마기의 폭주를 걱정할 필요는 없겠어!’
심협은 흡족해하며 회복 단약을 먹고 원기를 회복하기 시작했다.
화령자가 이어서 장룡적을 제련하느라 명화연노의 불꽃은 여전히 타올랐다.
* * *
달이 중천에 떠서 적막이 흐르는 장안성. 관부의 중요한 몇 군데만 등불을 환히 밝히고 있을 뿐, 그 외의 모든 곳은 깊은 어둠에 잠겼다.
요마가 나타났던 균열도 조용했다. 대당 관부는 이 균열 내부를 조사하고 있었기에 봉인하지 않은 상태였다. 다만, 만일을 대비해 균열에는 대당 관부의 독문 금제를 몇 겹으로 설치하여 태을 존재라 해도 쉽게 부술 수 없을 정도였다.
야심한 밤에는 균열 안을 조사하기에 적절하지 않았기에 균열마다 대당 관부 제자들이 지키고 있었다.
심협이 이전에 조사했던 균열도 10여 명의 대당 관부 제자가 지키고 있었다. 이들을 이끄는 것은 육화명이었다.
그는 균열 옆에 가부좌를 튼 채 푸른 대검을 양쪽 무릎에 가로로 올려놓고 있었다. 푸른색에 차가운 검의가 뿜어져 나오는 대검은 이보(異寶)인 듯했다.
나머지 대당 관부 제자도 균열 주위에 앉아 있었다.
시간이 조용히 흐르던 중, 푸른 대검에서 갑자기 검명이 일자 육화명이 눈을 번쩍 떴다.
균열 안 몇 겹의 금제 아래에서 갑자기 검은 기운이 솟구치더니 문짝만 한 검은색 도끼가 어두운 기운에서 날아와 가장 아래의 금제를 강하게 베었다. 도끼날에는 부문이 흐르고 있었는데 어떤 신통인지 알 수 없었다.
쫘악!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가장 아래에 있던 금제가 부서지면서 균열 부근의 땅이 흔들렸다.
“무슨 일이지?”
대당 관부 제자들이 깜짝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누군가 금제를 부쉈어! 이럴 수가, 무쌍 금제(無雙禁制)가 부서지다니!”
육화명이 하얀 영패를 꺼냈다. 영패에는 본래 다섯 개의 정광이 빛났지만, 지금은 가장 아래의 정광이 사라진 상태였다.
그때, 땅이 다시 강렬하게 흔들렸고, 영패의 정광이 또 하나 사라졌다.
“십방금제(十方禁制)도 부서졌다! 어서 대당 관부와 국사께 알려라!”
육화명이 눈을 부릅뜨며 외쳤다.
옆에 있던 대당 관부 제자가 전신 법기를 꺼내 결인하려던 순간이었다.
쾅! 쾅! 쾅!
세 번의 굉음이 땅속에서 연달아 울려 퍼졌고, 육화명이 들고 있던 영패가 펑 하며 폭발했다. 동시에 대량의 검은 기운이 균열 아래에서 올라왔다.
“금제가 모두 부서졌다! 어서 벗어나라!”
그는 표정이 급변하여 뒤로 물러나며 크게 외쳤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반응하기도 전에 크고 두꺼운 보라색 빛기둥이 땅속에서 뿜어져 나왔다. 적지 않은 이들의 미처 피하지 못하고 크고 작은 보라색 빛에 몸이 물들었는데, 이들은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쳤다.
이 보라색 빛은 빠르게 그들의 몸속을 침투하여 빛이 지나가는 곳마다 몸이 마비되었다.
“저건 지저살독(地底煞毒)이다!”
안색이 변한 육화명은 급히 푸른 대검을 연달아 휘둘렀다.
수십 장 길이에 영롱한 푸른 검기 두 줄기가 허공을 가르며 보라색 빛기둥을 베었다.
피식!
바람 새는 듯한 소리와 함께 보라색 빛기둥이 잘렸다.
푸른 검기에는 엄청난 한기가 담겨 있었기에 베어진 빛기둥은 몇 개의 얼음덩어리로 변하여 땅에 떨어지더니 산산조각이 났다.
살독이 침투한 대당 관부 제자들의 몸에도 한 겹의 푸른 얼음이 떠올랐지만, 오직 살독만을 얼려서 더 퍼져 나가는 걸 막았다.
“감사합니다, 육 사숙!”
대당 관부 제자들의 인사에 육화명은 손을 내젓고는 급히 균열 안의 상황을 살피려 했다. 한데 그 순간, 대당 관부 제자들이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땅이 다시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쿠르릉!
굉음과 함께 더 크고 두꺼운 검은 기운이 땅속에서 뿜어져 나오더니 발톱과 이빨이 허공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검은 기운에서 짐승의 포효가 연달아 들리더니 요마들이 모습을 드러냈고, 순식간에 사방으로 튀어나갔다. 그 수는 지난번 참사 때보다 훨씬 많았다.
“부상자는 물러나고 나머지는 관부와 궁에 알려라! 각자 어떻게든 살아남도록!”
안색이 새파래진 육화명이 푸른 빛이 뿜어져 나오는 대검을 휘두르며 외쳤다.
“횡소천군(橫掃千軍)!”
수십 장 길이의 거대한 푸른 검기가 번개처럼 날아가 10여 마리의 요수를 스쳐 지나갔다. 가볍게 잘려나간 요마들의 몸은 얼음 조각이 되어버렸다.
검기는 멈추지 않고 날아가며 검은 기운마저 얼려버리려 했다. 하지만 검은 기운은 잠깐 흔들리기만 했을 뿐, 금세 원래대로 돌아왔다.
푸른 검기는 검은 기운을 뚫고 지나가 맞은편의 요마 10여 마리를 벤 뒤 저 멀리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이럴수가!”
아무런 타격이 없는 듯한 검은 기운을 보며 육화명은 가슴이 철렁했다.
그 무렵, 다른 대당 관부 제자들도 황급히 물러나며 전신 법기를 꺼냈다.
그때, 그들의 뒤편 어둠에서 무수히 많은 털 같은 가늘고 작은 하얀 빛이 소리 없이 날아와 대당 관부 제자들의 몸을 찔렀다.
10여 명의 대당 관부 제자는 온몸에 수많은 구멍이 뚫리며 비명 한번 지르지 못한 채 숨을 거두었다.
“공(龔) 사질! 진(陳) 사질! 감히 누가!”
이 광경을 본 육화명은 눈이 뒤집혀 포효하며 광망이 솟구친 대검에서 더 거대해진 검기를 휘둘렀다. 검기가 비친 모든 곳이 밝아졌다.
좀 전까지 어둠에 잠겨 있던 곳에 검은 그림자가 서 있었다. 온몸이 검은 기운으로 덮여 있어서 자세히는 보이지 않았지만, 구부정한 머리에 학 머리 장식을 하고 지팡이를 짚은 노인 같았다.
거대한 검기가 번개처럼 날아가 검은 그림자를 베려 했다.
“상냉구주(霜冷九州)! 과거 삼계를 휩쓸었던 절세의 검선(劍仙), 검협객(劍俠客)이 남긴 신검 아닌가! 허나 그 위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해 아쉽구나!”
검은 기운 뒤에서 나이 든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그림자는 학 머리 장식 지팡이로 허공을 찍었다.
은빛 지팡이 허상이 날아가 거대한 검기와 충돌했다.
꽈르릉!
하늘을 뒤흔들 정도의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푸른 검기가 부서졌다.
강력한 반동에 육화명은 크게 휘청대며 뒷걸음질 쳤지만, 검은 그림자는 미동도 없었다.
이 무렵, 장안성의 나머지 균열의 상황도 비슷해 금제가 부서지고 검은 기운이 하늘 높이 솟구쳤으며 수많은 요마가 다시 나타났다.
* * *
장안성 서북쪽의 거대한 궁전.
이곳은 황성으로부터 꽤 떨어져 있어 수시로 병사들이 지키고 호위가 삼엄했다. 백성들은 접근할 수 없고 조정의 높은 관리나 황실 사람들도 허락 없이는 접근할 수 없는 곳이었다.
그 이름은 환구로, 대당 역대 황제를 모시는 장소였다.
다만 이는 대외적인 사실이었을 뿐, 사실 환구는 대당 용맥의 중추였다. 역대 황제를 이곳에 모시고 제천(祭天) 법단을 세운 것은 용맥의 힘을 빌려 하늘에 대당의 번영과 안녕을 기원하는 동시에 이 법단으로 국운의 용맥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환구 중심에는 거대한 제단이 세워져 있었다. 청옥금강으로 만들어진 검푸른 제단은 높이가 수십 장이었고, 원형모양으로 3층으로 되어 있었다. 아홉 개의 계단이 제단 끝에서 땅으로 이어져 있었는데, 그 기세가 사뭇 웅장했다.
제단 주위에는 황금색 큰 깃발이 가득 꽂혀 있었다. 금룡이 수놓아진 깃발은 금빛으로 반짝였고, 용의 기운이 솟아올랐다.
이 황금색 깃발들은 어떤 특수한 대진의 진기로, 뿜어져 나오는 금빛은 서로 연결되어 거대한 법진을 이루었다. 환구 주위는 금제로 덮여 있어서 한 줄기의 영광도 밖으로 새어나가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