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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867화 (867/1,214)
  • 867화. 국운을 깨트리려는 계획

    심협과 구혼마면이 위층으로 올라와보니 적지 않은 음조 지부 제자들이 모여 있었다. 그중에는 심협이 아는 얼굴도 있었다.

    “고 도우.”

    심협이 깜짝 놀라며 검은 옷의 소녀를 바라봤다.

    날씬한 몸매에 매혹적인 보라색 머리카락, 등에 자라난 보라색 뼈 날개. 바로 고화령이었다.

    기운이 산과 대해처럼 중후한 것으로 봐서는 진선기에 도달한 듯했다.

    “심협! 당신이 여기 어떻게……?”

    고화령도 심협을 알아보고는 깜짝 놀랐다.

    주위에는 적지 않은 음조 지부의 남자 제자들이 고화령 옆에서 거리를 유지한 채 서 있다가 심협이 그녀와 친숙하게 대화하는 모습을 보고는 불쾌한 눈빛으로 심협을 노려보았다.

    “마면 도우와 뭘 좀 조사하러 왔소. 한데 고 도우는 왜 여기에 있는 게요? 그리고 그 복장은……? 언제 음조 지부로 들어간 것이오?”

    “요족인 제가 요마를 죽이는 게 일인 대당 관부에 머무는 건 처음부터 맞지 않았어요. 오래전에 음조 지부에 들어갔지만, 그동안은 대당 관부와 관계를 돈독하게 하려고 그곳에 머물렀을 뿐이에요.”

    고화령이 담담하게 말하자 심협은 고개를 끄덕였다. 고화령의 출신과 성격을 생각하면 대당 관부에 남아 있는 게 확실히 어울리지 않았다.

    “두 분은 지하에서 나오신 것 같은데, 아래 상황은 어때요?”

    고화령의 질문에 심협은 대답 대신 구혼마면을 돌아봤다.

    “일은 이미 해결되었다. 나와 심 도우가 장안성 백성의 혼백을 찾았으니 너희는 더 수색하지 않아도 된다.”

    구혼 마면이 검은 주머니를 꺼냈는데, 그 안에는 10여 명의 혼백이 들어 있었다.

    “왜 이렇게 적은가요? 장안성 소란으로 희생된 백성은 적어도 수천은 될 텐데…….”

    “나머지 신혼들은 이미 소멸했소. 구체적인 상황은 지금 밝히기 그러니 나중에 마면 도우에게 따로 물어보시오.”

    그 말에 고화령은 구혼 마면을 바라봤다. 구혼 마면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입을 다물었고, 고화령도 더는 묻지 않았다.

    “일이 끝났으면 어서 떠나는 게 좋겠소. 이곳은 기운이 불순하니 고 사매가 오래 머물기에는 좋지 않소.”

    음조 지부의 청년 제자가 고화령에게 부드럽게 말하고는 은근히 심협을 노려봤다.

    이 상황에 심협은 자기도 모르게 쓴웃음이 나왔다. 최근에 남녀 관계에 자주 개입되는 이런 엉뚱한 일이 이어지니 어이가 없었다.

    “심 도우, 마면 장로님, 그럼 나중에 뵙겠습니다.”

    고화령은 그자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심협 등에게 인사를 남기고 휙 돌아서 날아갔다.

    “어엇, 고 사매! 어디 가는 건가?”

    “사매, 같이 가!”

    한 무리의 음조 지부 제자들이 서둘러 쫓아가자 사람들의 수는 순식간에 절반으로 줄었다.

    “하하! 음조 지부에서 고 도우의 인기가 상당한 모양이오.”

    심협이 유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당연한 일이오. 음조 지부는 본래 여제자가 적은 데다 고 도우는 자질이 뛰어나 이미 지장왕 대인의 문하에 들어갔으니 앞날이 창창하다오. 게다가 외모도 빼어나니 많은 남제자가 쫓아다닐 수밖에……. 한데 고 도우는 한결같이 냉정해 지금까지 그녀가 누구와 친근하게 지내는 걸 본 적이 없는데, 지금 보니 심 도우를 대하는 모습은 사뭇 다른 것 같소?”

    구혼마면이 의미심장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마면 도우, 농이 지나치시오. 나와 고 도우는 그저 몇 번 만나 적이 있는 벗일 뿐이오. 난 음조 지부 남제자들의 공공의 적이 될 생각은 추호도 없소.”

    심협이 손사래를 쳤고, 구혼마면은 장난스레 웃어넘겼다.

    구혼마면은 이곳 책임자에게 아래의 상황을 맡기고는 심협과 함께 떠났다.

    아무도 없는 곳에 도착하자 구혼마면이 말했다.

    “심 도우, 이곳은 그대가 오래 머물기 좋은 곳이 아니니 이제 양지로 보내주겠소.”

    마면이 곡상봉을 꺼내 허공에 휙 긋자 금방 공간 통로가 생겼다.

    “새로운 소식이 있으면 바로 알려주시오.”

    심협은 구혼마면에게 당부하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주위의 공간에서 끊임없이 찢어발기는 기운이 맴돌았지만, 심협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했다.

    잠시 후, 눈이 다시 밝아졌을 때, 심협은 자신이 어느 잿빛 산맥 부근에 있음을 알게 됐다. 주위는 안개가 자욱하여 시야를 가렸고, 음기가 매우 짙었다.

    심협의 눈이 치켜 올라갔다. 이곳은 다름아닌 장안성 부근의 음령산맥(陰嶺山脈)이었다.

    이 산맥 깊은 곳에는 고분이 있는데, 이미 꿈속 세계에서 모두 조사해봤기에 더 이상 알아볼 것은 없었다. 다만 현재 그에게는 육진편이 없었기에 고분 깊은 곳에 있는 그 강력한 음혼들을 제대로 활용할 수 없을 터였다.

    “육진편 안에 있던 서혼대진진도를 5할 정도 기억하고 있으니 화령자가 연혼대진 연구를 마치면 완벽하게 복원할 수 있는지 물어봐야겠군.”

    심협은 혼잣말을 중얼거리고는 붉은 빛으로 변하여 장안성으로 향했다.

    그는 기척을 숨긴 채 한 번도 멈추지 않고 날았다.

    지금 그의 경지에 장안성의 금령은 당연히 아무 소용이 없었다.

    * * *

    대당 관부 주청. 육화명은 붓을 든 채 문서들을 고쳐 쓰고 있었다. 한데 어딘가 매우 부자연스러웠다. 마치 들고 있는 붓이 천근만근 무거운 쇳덩이라도 되는 듯 이마에는 땀까지 흐르고 있었다.

    주청에는 육화명 외에도 회색과 백색 도포를 입은 두 명의 대당 관부 장로가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

    “임(林) 장로님, 다른 일은 없습니까? 붓질은 저와 정말 안 맞습니다.”

    육화명이 참지 못하고 붓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그에게는 한곳에 앉아서 문서를 고치는 일이 동급 고수와 싸우는 것보다 힘들었다.

    “육 현질, 이제 얼마 안 남았네. 반 시진만 더 하면 끝나니까 조금만 버티게. 성안의 온갖 일을 모두 처리하느라 대당 관부의 장로들이 모두 나갔으니 남은 우리 셋이 해야지. 조금만 참게.”

    회색 옷 장로의 말에 육화명은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붓을 들었다.

    이런 육화명을 본 심협은 겨우 웃음을 참으며 은신을 풀고 모습을 드러냈다.

    “심형, 여기는 어쩐 일인가? 설마 또 뭔가 새로운 걸 알아냈나?”

    육화명은 움찔하더니 벌떡 일어나며 물었다.

    심협은 고개를 끄덕인 뒤 지부에서 알아낸 사실을 모두 털어놓았다. 당연히 자신의 비밀과 무명 야귀의 존재는 숨겼다.

    그는 본래 무명 야귀에 대해서도 대당 관부 고위층에게 알리고 지부의 숨은 적을 하루빨리 찾아낼 생각이었지만, 구혼마면이 외부인에게 알리지 말 것을 간절히 부탁했기에 참았다. 이는 음조 지부의 일이니 자체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면 음조 지부는 다른 종문에게 망신을 당할 터였다.

    심협은 장안의 변고 때 정교금이 같은 이유로 다른 종문 고수들의 도움을 거절했던 일이 생각났다. 다만 이는 현재 삼계 각 문파 간의 관계가 깊지 않다는 방증이었기에 그는 조금 걱정됐다.

    “지부까지 가서 그리 중요한 정보를 갖고 오다니! 우리 관부는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는데…… 정말 부끄럽군.”

    “대당 관부는 일을 처리하려면 절차를 밟고 상부의 지시를 기다려야 하지만 저는 혼자이니 자유롭게 일을 처리할 수 있지 않소? 그러니 빠른 것도 당연하오. 이럴 게 아니라 어서 궁으로 들어가 이 사실을 원 국사께 알립시다.”

    “아, 그렇지. 어서 가세. 임 장로님, 왕(王) 장로님. 여기는 두 분께 부탁드리겠습니다!”

    육화명은 곁의 두 장로에게 말하고는 혹여나 붙잡을까 후다닥 뛰쳐나갔다.

    두 장로는 어이없다는 표정이었지만, 일의 경중을 알기에 육화명을 붙잡을 수 없었다.

    “보아하니 육형은 문서 다루는 일이 체질에 맞지 않는가 봅니다?”

    육화명을 따라 주청을 나온 심협이 웃으며 말했다.

    “아주 죽겠네. 차라리 요마 대전 때 삼백 합을 싸웠을 때가 편했어.”

    육화명이 피곤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아, 이번에 지부에서 고 도우를 만났소.”

    심협이 피식 웃더니 덧붙였다.

    “화령? 잘 지내고 있던가?”

    육화명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괜찮아 보였소. 남자들에게 둘러싸여서 꽤 골치 아파하는 거 같던데…….”

    “뭐?”

    심협이 장난스레 웃으며 말하자 육화명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왜 그러시오? 지금 찾아가려는 게요? 걱정 마시오. 내 알아보니 고 도우는 그자들에게 관심조차 두지 않고 수련에만 집중하고 있더이다.”

    “휴우, 그런가? 하하!”

    육화명은 한숨을 내쉰 후 웃었지만, 표정은 밝지 않았다.

    “여기 일이 일단락되면 내 다시 가서 고 도우 일을 좀 알아보겠소. 우선은 국사님을 만나러 갑시다.”

    육화명은 정신이 번쩍 들어 심협과 함께 황궁으로 향했다.

    “쇠못과 땅에서 피가 흘렀다?”

    원천강은 심협의 말을 듣더니 신중한 표정으로 아홉 개의 푸른색 산(算)대를 꺼내 결인했다.

    아홉 개의 산대가 손끝에서 활발하게 움직이더니 몇 호흡 뒤 옆 탁자 위로 떨어졌다.

    “그런 거였군. 파룡정(破龍釘)이었어!”

    “파룡정? 그 검은색 쇠못 말씀입니까? 그건 무슨 법보입니까?”

    육화명이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보채듯 물었다.

    “파룡정은 법보가 아니라 오염된 기운을 모아 만든 것으로, 용맥을 깨트리는 데 주로 사용된다네. 장안성은 대당의 용맥이 모여 있는 곳. 그들은 대당 국운의 근본을 깨트리려는 속셈이었어!”

    원천강의 눈에서 차가운 빛이 스쳐 지나갔다.

    “용맥을……?”

    심협은 가슴이 철렁했다.

    용맥과 영맥은 한 글자 차이이지만 의미가 매우 다르다. 소위 용맥에 연결된 기운이라는 의미로서 영맥보다 용맥이 더 엄중했다.

    “하면 대당의 용맥이 깨진 겁니까?”

    육화명도 일의 심각성을 알고는 급히 물었다.

    “대당의 국운은 번창하였고 용맥은 거대하여 파룡정 몇 개로는 용맥에 조금의 상처만 입힐 수 있을 뿐이네. 허나 만일에 대비해 환구(圜丘)를 살펴봐야겠군.”

    원천강이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심 소우, 지부까지 가서 이런 중요한 정보를 조사해줘 고맙네. 일이 어느 정도 정리되면 조정에서 큰 상을 내릴 걸세.”

    “감사합니다.”

    심협은 인사를 남기고는 육화명에게 작별을 고했다.

    “심형, 계속 장안에 머물 생각인가?”

    황궁에서 나오자마자 육화명이 물었다.

    장안성에 연달아 큰일이 일어나고 정교금까지 행방불명이 돼서 그런지 육화명은 알 수 없는 초조함을 느꼈다.

    “그럴 생각입니다.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씀하십시오.”

    심협은 육화명이 불안해는 듯하자 고개를 끄덕이며 안심시켰다.

    “고맙네, 심 형!”

    육화명이 기쁜 듯 활짝 웃으며 답했다. 심협이 도와준다 하니 든든했다.

    육화명은 사무 일을 싫어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상황인 만큼 하기 싫다고 일을 미뤄둘 수 없었기에 심협과 헤어지자마자 대당 관부로 돌아갔다.

    육화명과 헤어진 심협은 곧장 거처로 돌아가지 않고 서시(西市)에 들러 장룡적 제련에 필요한 보조 영재를 구입했다. 이 영재들은 그리 귀한 것들이 아니었기에 상점 몇 군데를 돈 것만으로도 모두 구할 수 있었다.

    “됐소. 이 영재들이 있으면 금방 장룡적을 제련할 수 있을 게요!”

    “화령자, 장룡적은 급하지 않으니 우선 명화연노로 두 자루의 순양검을 만들고 싶은데…….”

    심협은 다소 미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원천강과 육화명의 긴장된 표정을 보고 나서인지 그도 조금 불안해졌고, 서둘러 실력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흑곰 요괴가 아직 화련단을 보내오지 않았으니 지금으로서는 가장 빨리 실력을 키울 방법은 만년 화린목으로 순양검을 만드는 것이었다.

    “좋소. 특이하게도 영화(靈火)와 합칠 수 있는 도우의 순양검은 나도 마침 한번 살펴보고 싶었던 참이오.”

    심협은 씩 웃었다. 화령자는 연기 종사이니 어쩌면 순양검의 위력을 한 단계 높일 좋은 의견을 제시해줄지도 모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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