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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864화 (864/1,214)
  • 864화. 배후

    구렁이의 나머지 머리 두 개는 비명을 지르더니 그중 하나가 입에서 칼날 같은 회색 빛을 쐈다. 이 빛은 형흉신광에 휘감긴 머리를 베었다.

    푹!

    소리와 함께 머리는 깔끔하게 잘려나가더니 이내 터져버렸다.

    머리가 터지는 동시에 뿜어져 나온 수많은 검은 빛에 형흉신광이 찢어졌고, 조비극도 충격으로 날아갔다.

    구렁이의 잘린 목에서는 검은 빛이 반짝이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새로운 머리가 다시 자랐지만, 기운은 많이 약해져 있었다.

    삼두 구렁이는 정말 화가 났는지 눈에서 흉광을 뿜어냈고, 세 개의 머리에서 동시에 구음예염을 뿜어냈다. 이번에 뿜어낸 구음예염은 넓게 펴지지 않고 세 마리 불꽃 뱀으로 변하여 조비극에게 달려들었다.

    조비극은 황급히 몸을 가누고는 검은색 귀도에서 칠흑 같은 도광을 뿜어냈고, 도광의 파도가 세 마리의 불꽃 뱀을 막았다.

    한편, 심협은 금빛 허상으로 변하여 다시 무명 야귀를 쫓아갔다. 하지만 얼마 가기도 전에 머리 위의 허공에서 은빛이 반짝이더니 은색 대종이 나타나 강하게 떨려왔다.

    댕-.

    종소리가 크게 울려 퍼지면서 은색 음파가 하늘에서부터 내려왔다.

    심협은 온몸이 떨려왔다. 특히 머릿속 신혼이 강렬하게 흔들렸고, 부주진신법으로도 그 음파를 막아내지 못하면서 그대로 굳어버렸다.

    도망치던 무명 야귀는 심협이 음파에 통제당한 것을 보고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멈춰 서서 입에서 검은색 불꽃을 뿜었다. 구음예염이 아닌 강력한 마기 파동이 담겨 있는 마염이었다. 이 마염은 곧장 심협을 향해 날아갔다.

    그때, 심협이 기합을 내질렀다.

    “하앗!”

    입에서 뿜어져 나온 기합이 무명 야귀의 머릿속으로 들어갔다.

    무명 야귀의 신혼이 흔들렸고, 검은색 마염도 함께 멈췄다.

    그사이 회복된 심협은 고개를 휙 들고는 양손을 휘둘렀다.

    무명 야귀의 머리 위에서 암홍색 빛이 번쩍이더니 집채만 한 사람이 나타나 연꽃 허상으로 떨어졌다.

    연꽃 허상은 굉음과 함께 부서졌고, 무명 야귀의 몸도 폭발하였다. 그러자 주위의 검은색 깃발 열두 개도 전부 부서져 검은색 가루로 변했다.

    심협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지만 이내 눈살을 찌푸렸다. 번천인의 위력이 너무 강력해 일격에 무명 야귀를 산산조각 냈고, 신혼마저 완벽하게 소멸하여 그의 진짜 정체를 알아낼 수 없게 된 것이었다. 더욱이 그가 가지고 있던 법보도 전부 부서졌으니 조금의 수확도 얻을 수 없게 됐다.

    “앞으로 번천인은 조심해서 사용해야겠군.”

    심협이 아쉬워하고 있는데 무명 야귀가 변한 가루에서 검은색 무언가가 떨어졌다.

    재빨리 소매를 휘둘러 챙겨와 보니 검은색 피리였다. 1촌 길이에 검은 빛이 감돌았다. 외형은 매우 오래된 느낌이 들었고, 피리 끝에는 귀물의 머리가 조각되어 있었다. 반대쪽은 부러져 있었는데, 흔적으로 봐서는 부러진 지 오래된 듯했다. 번천인의 일격으로 생긴 것은 분명 아니었다.

    음산한 기운이 느껴졌고, 귀물의 울음 같은 소리가 피리 주위에서 들려왔다.

    “이건 뭐지? 번천인의 공격에도 버티다니!”

    심협이 흥미롭게 검은색 피리를 이리저리 살폈다.

    “엇, 이 기운은…… 설마 공귀적(控鬼笛)? 심 도우, 그 피리 좀 보여주시오!”

    화령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심협은 거절하지 않고 검은색 피리를 명화연노 안으로 넣고는 아직 싸우고 있는 조비극과 삼두 구렁이를 돌아봤다.

    삼두 구렁이의 실력은 이미 진선 단계에 도달하여 조비극보다 강했지만, 조비극은 모든 음기를 차단하는 형흉신광을 각성한 데다 수시로 섭혼마음으로 상대에게 영향을 주었기에 양쪽은 쉽게 승부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무명 야귀가 죽은 걸 본 삼두 구렁이는 겁에 질렸고, 곧장 돌아서 도망가려 했다. 그러나 조비극이 놔주지 않았다.

    삼두 구렁이는 심협의 시선을 느끼고는 더욱 두려웠는지 입에서 대량의 구음예염을 파도처럼 뿜어냈고, 동시에 거대한 꼬리를 조비극을 향해 휘둘렀다. 그러자 위아래로 잔상이 나타났다.

    삼두 구렁이는 이 틈에 도망치려 했다.

    “어딜!”

    조비극이 바로 뒤쫓으며 버럭 외쳤다. 그러자 뿜어져 나온 검은색 음파가 빠르게 모여들어 눈 깜짝할 사이에 길이가 백 장에 이르는 음파의 검으로 변했다.

    형흉신광이 음파 대검을 감돌자 검은색 대검이 갑자기 흑홍색으로 변했고, 감돌고 있던 기운도 음산해져서 흑홍색 번개가 뿜어져 나올 것 같았다.

    삼두 구렁이는 빠르지 않았기에 순식간에 흑홍색 대검에 따라잡혔다.

    대검이 머리 위에서 떨어지자 위기를 느낀 구렁이는 서둘러 몸을 돌려 대항하려 했다.

    파지직!

    이때 위에서 갑자기 굉음이 들려왔고, 거대한 금색 뇌전이 떨어졌다.

    깜짝 놀란 삼두 구렁이는 구음예염이 담긴 검은 빛을 입에서 뿜어냈다. 이 검은 빛은 화르륵 하고 타오르더니 검은색 광막으로 변해 금색 뇌전과 충돌했다.

    하지만 삼두 구렁이는 걱정하지 않았다. 구음예염이 부식시키지 못할 것이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금색 뇌전이 검은색 광막을 때리자 강력한 뇌겁에서는 살벌한 기운이 폭발했다. 이는 심협이 이전에 쏘아 보낸 금색 뇌전보다도 몇 배는 더 강렬해 검은 광막은 쉽게 찢겼다.

    삼두 구렁이는 깜짝 놀랐다.

    곧이어 눈부신 금색 뇌전 한 줄기가 계속해서 떨어졌고, 구렁이가 미처 반응을 하기도 전에 몸통에 강하게 떨어졌다.

    삼두 구렁이는 몸 절반이 폭발하여 잿빛 음기로 변해버렸다.

    구렁이의 몸에 퍼진 금색 뇌전에는 뇌정 파멸의 기운이 가득하여 구렁이 몸 안에 있는 음기를 제거하여 구렁이가 몸을 제어하지 못하게 했다.

    그때, 흑홍색 빛이 번득이더니 대검이 바람처럼 날아와 삼두 구렁이의 남은 몸을 벴다.

    절반으로 잘린 몸이 땅에 떨어지자 조비극이 환호하며 날아와 흑홍색 대검을 조종하여 다시는 뭉쳐지지 않도록 구렁이의 남은 몸을 쉬지 않고 베었다. 이어서 입으로는 더 강한 형흉신광을 뿜어내 구렁이의 몸 절반을 감싸고는 빠르게 흡수하여 연화했다.

    이를 본 심협은 들었던 팔을 내려놓았다. 방금은 그가 조비극을 위해 곤토인뇌부로 뇌겁을 소환하여 구렁이 음수를 붙잡아준 것이다.

    조비극이 저 음수를 흡수하면 진선기의 대문을 열 수 있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다만 조비극이 진선의 뇌겁을 견뎌낼 수 있을지는 확실치 않았다. 한데 조비극이 한 번도 걱정을 표하지 않는 것을 보면 퍽 자신이 있어 보였다.

    심협은 시선을 거두고 푸른 빛으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은색 대종을 휘감아 자기 앞으로 끌어온 뒤 양손을 결인하여 연화하려 했다.

    그때, 종에서 검은 빛이 번개처럼 튀어나와 심협을 향해 돌진했다.

    하지만 심협은 이미 예상했다는 듯 재빨리 몸을 옆으로 피하고는 오른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커다란 화염 손이 허공에 나타나 그 검은 빛을 잡았다.

    화염의 커다란 손은 바로 홍련업화로 만들어진 것으로, 거기에는 미약한 금색 뇌전이 흐르고 있었다. 바로 헌원신뇌였다.

    검은 빛과 화염의 손이 닿자 바로 파지직 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처절한 비명과 함께 안에서 무명 야귀의 얼굴이 나타났다.

    “은광종(銀光鐘)에는 신혼과 기운을 숨기는 신통이 있는데 어떻게 알아챘지?”

    무명 야귀가 비명을 멈추고는 소리쳐 물었다.

    “두 번째 만남인데 또 어물쩍 넘어가려는 건가?”

    “그게 무슨 소리냐? 우리가 이전에 만나 적이 있다고? 에잇, 내 실력이 약하여 이렇게 붙잡혔으니 더는 모욕하지 말고 죽이려면 어서 죽여라!”

    무명 야귀가 당황하더니 이내 소리쳤다.

    “심마대법으로 신혼을 위장한 건 훌륭했어. 허나 심마대법으로 날 미혹할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혹심천마의 계승자 씨.”

    심협의 말에 무명 야귀는 표정이 돌변했지만, 곧 서서히 평온함을 되찾고는 눈을 가늘게 뜨고 심협을 바라봤다.

    “날 어떻게 알아챘지?”

    “두 번째 만남인데 이 정도도 못 알아채면 섭하지.”

    사실 그는 방금 무명 야귀가 뿜어낸 검은 마염에서 실마리를 찾아냈다. 그 검은 마염은 축융 분지에서 만났던 정체불명의 검은 그림자가 사용했던 분마열염이었다.

    분마열염을 보는 순간, 심협은 극도로 긴장했고, 신식을 전력으로 펼쳤다. 신혼으로는 화령자와 소통하여 주위를 살펴보게 했다. 그렇게 해서 은색 대종에서 이 검은 그림자를 알아차린 것이다.

    “분마열염을 사용하는 게 아니었는데, 내가 경솔했군.”

    무명 야귀는 바로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넌 도대체 누구지? 장안에서 소란을 일으킨 요마들과는 무슨 관계냐? 솔직히 말한다면 목숨만은 살려주지.”

    “하! 내가 그걸 말할 것 같으냐? 어차피 나는 분혼에 불과하니 부서져도 상관없다.”

    무명 야귀는 비릿하게 조롱하듯 말했다.

    “장안의 소동을 일으킨 요마들을 이렇게 돕고 자신이 다치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다니. 설마 이번 장안 소란에 마족이 관여된 건가?”

    “애송아, 네가 어떻게 생각하건 내게서 답을 들을 생각은 하지 마라.”

    무명 야귀는 낄낄거리며 마음껏 비웃었다.

    심협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그가 바로 무명 야귀를 죽이지 않은 것은 정보를 캐내기 위함이었는데 보아하니 뜻대로 되기는 힘들 것 같았다.

    “화령자, 이 검은 그림자에게서 정보를 알아낼 수 있겠어? 전에 명화연노에 있는 도화환화(桃花幻火)에 강력한 미혹의 신통이 있다고 한 거 같은데…….”

    “이 검은 그림자는 심마대법의 분혼으로, 신혼과 비슷하지만 또 상당히 다르오. 섭혼할 수 있을지 시도해보지 않으면 나도 모르겠소.”

    “그럼 시도라도 해볼까?”

    심협은 그렇게 말하고는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그의 손에서 투명한 빛이 떠올랐다.

    화염의 손에서도 마찬가지로 투명한 빛이 떠올라 움켜쥐고 있던 검은 그림자를 뒤덮자 공허한 소리가 주위를 맴돌았다. 천기성의 진혼비술(震魂祕術)이었다.

    무명 야귀의 눈빛이 흐려지더니 몸이 굳어버렸다.

    보라색 허상이 심협의 몸에서 나오더니 검은 그림자 위로 날아갔다. 영광으로 빛나는 명화연노였다.

    분홍색 빛이 연노에서 뿜어져 나와서 무명 야귀를 뒤덮고는 빠르게 휘감았다.

    이 빛에서 수많은 복숭아꽃의 잎처럼 생긴 빛이 어렴풋이 보였는데, 매우 밝고 눈부셔서 환상적인 느낌이 들었다.

    무명 야귀의 눈빛은 더욱 흐려졌고, 수많은 분홍색 빛이 빠르게 몸속으로 들어가면서 칠흑 같은 몸이 빠르게 분홍색으로 바뀌어갔다. 잠시 후 분홍색 빛이 밝아지면서 그의 몸을 완벽하게 점하려 했다.

    한데 그때, 무명 야귀의 몸이 강하게 떨리더니 눈빛이 선명해졌다.

    “크아아아!”

    포효와 함께 무명 야귀의 몸이 빠르게 팽창하기 시작했다.

    심협은 깜짝 놀라 술법을 멈추려 했지만, 한발 늦고 말았다.

    펑!

    폭발음과 함께 무명 야귀가 완전히 폭발했고, 화염의 손도 폭발하면서 위에 있던 명화연노가 튕겨나갔다.

    심협은 아쉬움에 혀를 차고는 흩어진 홍련업화를 거두었다. 명화연노도 도화환화를 거두고 심협 옆으로 날아왔다.

    “심마대법을 수련한 자는 신혼이 매우 단단하여 설령 분혼이라 해도 마음대로 할 수 없을 게요. 아무래도 장안에서 일어난 소란의 원인을 알아내려면 다른 단서를 찾아야 할 것 같소.”

    화령자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고생했어.”

    심협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한 순간, 날카로운 바람 소리가 옆에서 들려왔다. 이에 옆을 돌아본 심협은 안색이 변했다.

    삼두 구렁이는 이미 보이지 않았고, 조비극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짙은 검은 빛이 반경 10여 장을 뒤덮고 있었다.

    수많은 귀물의 허상이 검은 빛에서 반짝이며 귀신 울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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