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863화 (863/1,214)
  • 863화. 헌제(獻祭)

    구혼마면은 바로 곡상봉을 꺼내 응전했다. 커다란 봉의 허상이 대군을 공격하자 수많은 음수와 귀물들이 폭발하여 검은 연기가 되어 사방으로 흩어졌다.

    놈들은 검은 연기에 닿자 바로 광분하더니 서로 물어뜯고 잡아먹기 시작했다.

    이 광경을 본 심협은 흠칫 놀라며 순양검을 꺼냈다.

    눈부신 붉은 빛과 함께 홍련업화가 타오르는 백 장 크기의 대검이 되어 산을 베고 바다를 가를 기세로 귀물과 음수 떼를 향해 휘둘러졌다.

    치익!

    달궈진 쇳덩이에 물을 끼얹는 듯한 소리가 들리더니 수백 마리의 귀물이 대검에 썩은 나무처럼 베어져 그대로 회색 연기로 변하면서 넓은 공터가 나타났다.

    홍련의 대검은 바로 왼쪽을 휩쓸었고, 또 수백 마리의 귀물이 죽었다.

    그러나 전방의 귀물은 끝이 없었다. 아무리 홍련업화가 있다 해도 이대로는 심협이 먼저 지칠 터였다.

    심협은 표정이 어두워져 이 귀물들을 떨쳐내려 했다. 혼자서 앞의 귀물 대군을 돌파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구혼마면까지 데리고 가는 것은 무리였다.

    “심 도우, 난 상관하지 말고 먼저 가시오!”

    구혼마면이 상황을 알아채고는 소리쳤다.

    “그럼 몸조심하시오.”

    심협이 본 구혼마면의 실력이라면 이 귀물들을 전부 죽이지는 못하더라도 자기 몸 하나 지키는 데는 문제가 없음을 확신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순양검을 불러들였고, 검과 하나가 되어 검홍으로 변하여 붉은 번개처럼 앞으로 쏜살같이 날아갔다.

    귀물들은 검홍과 충돌하자 바로 회색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누구도 검홍을 막아내지 못했다.

    붉은 검홍은 순식간에 음수와 귀물의 대군을 뚫고 지나갔다.

    심협은 검홍에서 빠져나오자마자 양손을 빠르게 결인했다. 그러자 온몸에서 눈부신 초록 빛이 번득였고, 수많은 초록색 부문과 함께 순식간에 사라졌다.

    다음 순간, 그는 광장 상공에 나타났다. 저 아래 멀지 않은 곳에는 거대한 제단이 있었는데, 높이가 족히 30장은 되어서 기품이 넘쳐 보였다. 제단 끝에는 작은 태양 같은 검은 빛이 떠 있었는데, 안에 무엇이 있는지는 보이지 않았다.

    실제와 같은 검은 빛이 거기서 흘러나와 제단 주위에 검은 광막을 만들었고, 그 위로 수많은 무문이 감돌고 있어 평범한 금제처럼 보이지 않았다.

    검은 광막 안에 10여 개의 혼백이 서 있는 것이 어렴풋이 보였다. 혼백들은 대당 백성의 옷을 입고 있었고, 겁에 질린 표정이었다. 그들은 제단 구석에 모여 석벽을 등지고 있었다.

    광막 밖에는 회색 외투를 입고 머리에 뾰족한 모자를 쓴, 키가 작은 청흑색 귀물이 허공에 떠 있었다. 아까 법진을 사용하여 심협을 가두려 했던 그 귀물이었다.

    “저건……?”

    귀물의 얼굴을 본 심협은 깜짝 놀랐다. 그 귀물은 바로 오래전 처음 귀시에 갔을 때 그의 황천죽을 사들였던 그 점주, 무명이라 불리는 야귀였다.

    그 귀물의 주위에는 무문으로 가득한 열두 개의 검은색 깃발이 떠 있었고, 깃발에서 뿜어져 나온 열두 개의 검은 빛줄기가 제단 주위의 검은 광막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뱀처럼 도사리는 검은색 불꽃이 끊임없이 광막 안 10여 개의 혼백을 향해 휘몰아치고 있었다.

    무명 야귀는 그 검은색 불꽃을 완벽하게 제어할 수 없는지 이 불꽃은 몇 장밖에 날아가지 못해 혼백들 근처에서 더는 나아가지 못했다.

    한쪽에서는 조비극이 검은색 귀도로 미친 듯이 공격을 퍼붓고 있었지만, 무명 야귀는 은색 대종(大鐘) 법보로 가볍게 막아내고 있었다.

    심협은 놀란 마음을 거두고 금홍(金虹)으로 변하여 돌진했다.

    순양검이 한 발 앞서서 붉은 번개로 변하여 무명 야귀를 향해 날아갔다.

    무명 야귀는 심협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깜짝 놀라서는 서둘러 머리 위의 대종에서 은빛을 발사해 순양검을 막아냈다.

    우웅!

    종소리가 울리자 순양검은 막혀 튕겨나갔고, 검의 붉은 빛도 절반쯤 사라졌다.

    검의가 이렇게 쉽게 막힐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던 심협은 깜짝 놀랐다.

    ‘저 은색 대종은 상당한 보물인 것 같군.’

    하지만 그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양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거대한 금색 뇌전이 번개의 숲처럼 뿜어져 나와 무명 야귀를 뒤덮었다.

    파멸의 기운이 충만한 금색 뇌전에 조비극도 깜짝 놀라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무명 야귀는 피하지 않고 크게 기합을 내질렀다. 그러자 열두 개의 검은색 깃발에서 뿜어져 나온 검은 빛이 두꺼운 보호막을 이루어 온몸을 뒤덮었다.

    다음 순간, 무수한 금색 뇌전이 떨어지면서 무명 야귀를 휩쓸었다.

    심협은 멈추지 않고 현황일기곤을 휘둘러 수많은 곤봉의 허상으로 뇌전에 휩쓸린 무명 야귀를 공격했다.

    콰쾅!

    굉음과 함께 무명 야귀는 검은색 보호막과 함께 날아가 제단에서 멀어졌다. 그러자 제단 주위의 광막에서 피어오르던 검은색 불꽃이 사라졌다.

    “무족의 연신대진(煉神大陣)? 저게 지금까지 남아 있다니! 심 도우, 제단 주위에 있는 저 대진을 반드시 보존해야 하오! 이 대진이 있으면 내 전혼계령비법(轉魂啓靈秘法)을 완성할 수 있소. 물론 그대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이오!”

    화령자가 흥분하며 말했다.

    “연신대진!”

    심협의 눈가가 꿈틀거렸다. 그는 꿈속 세계에서 진원자에게 저 법진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다만 그는 지금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안에 있는 사람들을 구해내야 해!”

    그는 조비극에게 말했다.

    “이미 시도해봤지만 저 광막에 금제가 걸려 있는지 뚫고 갈 수 없습니다.”

    “연신대진은 무족의 비전인 강력한 대진이라 위력이 무궁한데 너 같은 애송이가 마음대로 뚫을 수 있을 것 같으냐?”

    “뭐라!”

    화령자가 비웃자 조비극이 버럭 화를 냈다. 이 둘은 이전에 서로 만난 적이 있는데, 그때 사소한 충돌이 있었다. 화령자가 조비극의 형흉신광에 호기심을 보인 것이 시작이었다. 이어서 특이한 귀물인 조비극을 연구하고 싶어 했다. 당연히 조비극은 대노해 거절했고, 그렇게 싸움이 날 뻔했다. 결국 심협이 나서서 두 사람을 떼어놔야 했다.

    심협은 이들이 또 싸울 기미가 보이자 꾸짖으려 했는데, 날아가던 검은색 광막이 멈추더니 주위의 금색 뇌전도 전부 사라지면서 무명 야귀의 모습이 드러났다. 회색 안개 뒤에 드러난 그의 혈홍색 눈동자는 심협과 조비극을 노려보고 있었다.

    “귀하는 대체 누군데 요마들을 도와 장안 백성의 혼백을 죽이려는 것이오?”

    무명 야귀는 심협을 무시하고 소매를 휘둘렀다. 그러자 몸에서 날아간 회색 빛이 머리 세 개의 기이한 구렁이로 변했다. 길이가 10여 장에 두꺼운 구렁이의 몸은 보는 것만으로도 섬뜩했다.

    머리 세 개의 기이한 구렁이는 온몸이 회색을 띠었고, 칠흑 같은 뱀의 혀는 무서운 음기 파동을 뿜어내고 있었다. 이전에 만났던 음수들보다 열 배는 더 강력했다.

    조비극은 구렁이를 보자 바로 눈이 탐욕으로 번득였다.

    반면 구렁이는 조비극을 발견하고는 천적을 만난 것처럼 등의 비늘을 전부 곤두세우고 겁에 질린 표정으로 주춤했다.

    이 광경을 본 무명 야귀는 당황하더니 바로 입에서 검은색 구슬을 꺼내 머리 구렁이의 입으로 던져 넣었다.

    구슬을 삼킨 구렁이의 온몸에서 검은 기운이 피어오르더니 온몸에서 음기가 대성했고, 겁에 질린 눈빛은 전부 사라졌다. 머리 세 개가 동시에 입을 크게 벌리더니 심협을 향해 검은색 불꽃을 뿜어냈다.

    음산한 기운이 느껴지는 검은색 불꽃이 지나가는 곳마다 악취가 밀려왔고, 부근의 허공은 썩은 것처럼 옅은 검은색으로 변했다.

    “심 도우, 조심하시오! 저것은 구음예염(九陰穢焰)으로, 수천만 원혼(冤魂)의 힘으로 명계의 가장 악랄한 서른여섯 가지 오물을 단련하여 만든 불꽃이오. 저것은 악랄하기 짝이 없어 어떤 보물이든 더럽히니 절대 접근해서는 안 되오!”

    화령자는 서둘러 심협에게 일렀다.

    심협도 진즉 저 검은 불꽃의 악랄함을 간파하였기에 바로 뒤로 물러나 두 손을 다시 허공에 내밀었다.

    금색의 뇌전이 뿜어져 나와 구음예염과 충돌했다. 하지만 금색 뇌전은 불꽃과 충돌하자 바로 썩어서 녹아내려 순식간에 사라졌다.

    금색 뇌전을 흡수한 뒤에도 구음예염은 계속해서 심협을 덮쳐왔고, 무명 야귀는 반대편으로 돌아서 검은 제단으로 달렸다.

    열두 개의 검은 깃발에서 엄청난 검은 빛이 솟구치자 용솟음치는 기운이 빠르게 폭증하더니 본원이 타버리는 것도 아랑곳 않고 열두 갈래의 화살로 변하여 제단 주위의 광막으로 날아갔다.

    마침 부근에 있던 조비극이 흉광으로 빛나는 검은색 귀도를 번개처럼 연달아 아홉 번 휘둘렀다.

    아홉 개의 거대한 검은색 도망(刀芒)이 열두 개의 검은색 화살을 베었다.

    치익!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아홉 개의 검은색 도망이 종잇장처럼 찢겨 나갔다.

    “이건 헌제비법(獻祭秘法)이오! 저자가 열두 개의 무족 깃발로 제(祭)를 올려 연신대진을 발동하고 저 안에 있는 신혼들을 죽일 생각이오! 심 도우, 저자가 제단으로 못 가게 막아야 하오!”

    화령자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심협은 당황하지 않고 전력으로 진창해 신통을 시전하여 허공에 결인했다.

    두 줄기 가느다란 푸른 빛이 손끝에서 날아가 순식간에 제단 주위의 검은색 광막에 닿았다.

    제단 주위에 푸른 빛이 번쩍이자 극한의 기운이 순식간에 광장 전체에 퍼졌다. 곧이어 허공에서 굉음이 들리더니 백 장 높이의 빙산이 허공에 나타나 검은 제단을 얼려 버렸고, 검은색 광막과 제단 끝에 있던 태양 같은 검은 빛도 얼어붙었다. 더는 빛도 뿜어져 나오지 못했다.

    쾅! 콰쾅! 쾅!

    열두 개의 검은색 화살이 푸른 빙산에 충돌하면서 굉음이 울려 퍼졌다. 하지만 화살은 모두 튕겨 나갔고 빙산에는 그저 흠집만 남았다.

    “저건 무슨 얼음이기에 열두 개의 무왕기(巫王旗)가 꿈쩍도 못하는 거지?”

    무명 야귀의 본체도 깜짝 놀라며 뒤로 밀려났다.

    그때, 허공에서 풍뢰가 몰아치더니 심협이 나타났다. 그는 현황일기곤을 빙빙 돌리며 휘둘렀다. 그러자 순식간에 무수한 금색 곤봉 허상이 나타나 폭포처럼 쏟아지면서 허공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뒤로 밀려나던 무명 야귀는 몸을 멈추고는 양손을 휘둘러 열두 개의 검은색 깃발을 소환하여 양손을 차륜같이 결인했다.

    열두 개의 검은색 깃발에서 영광이 뿜어져 나와 서로 연결되자 순식간에 집채만 한 연꽃 허상이 나타나 검은색 곤봉의 허상과 충돌했다.

    이어 풍뢰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소용돌이가 하늘 높이 치솟았고, 희미하게 흔들리는 허공에는 가느다란 하얀색 금이 빼곡하게 나타났다. 검은 빛과 금빛의 충격으로 생겨난 폭풍이 일파만파 휘몰아쳤다.

    금색 곤봉 허상은 절반이나 부서졌고, 무명 야귀 주위의 연꽃 허상도 강하게 흔들리며 절반이나 부서졌다. 무명 야귀는 충격에 다시 한번 날아갔다.

    잔뜩 겁먹은 야귀는 튕겨나가는 힘을 이용해 몸을 돌려 멀리 도망치려 했다.

    삼두(三頭) 구렁이가 서둘러 뒤를 쫓아갔다. 한데 갑자기 귀신 울음소리가 맴돌면서 구렁이는 갑자기 몸이 굳어졌고, 걷잡을 수 없이 뒤틀렸다.

    앞에서 검은 빛이 반짝이더니 조비극이 나타나 귀도를 휘두르자 거대한 도광이 떨어졌다.

    삼두 구렁이는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몸에서 회색 빛을 뿜어냈다. 그러자 몸 안에서 음기가 미친 듯이 솟구치면서 천둥 같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단숨에 귀신의 울음소리 제어에서 벗어나 몸의 통제권을 되찾은 구렁이는 바로 입을 쩍 벌렸다.

    구음예염과 충돌하자 검은색 도광은 절반이나 부식됐다.

    하지만 구렁이가 기뻐하기도 전에 흑홍색 빛이 구음예염을 뚫고 날아와 머리 하나를 휘감았다. 허공마저 부식시키는 예염도 형흉신광에는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그 머리는 양초처럼 빠르게 녹아내렸고, 대량의 음기가 형흉신광에 빠르게 흡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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