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862화 (862/1,214)
  • 862화. 번천일격(番天一擊)

    “심 도우 이 유적을 연구하는 건 나중에도 가능하니 우선 장안 백성들부터 구하러 갑시다.”

    구혼마면은 심협이 한참을 멍하니 문로만 바라보고 있자 그렇게 말했다.

    “아…… 갑시다.”

    심협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계속해서 둔지부를 발동하여 아래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금방 무명귀성 3층에 도착했다.

    이곳에 들어서자 주위의 허공에서 음한의 기운이 느껴졌다. 이 기운은 갑자기 몸으로 침투했다. 온몸이 으스스 떨려왔고, 사지가 얼어붙는 듯한 느낌이었다.

    “음독(陰毒)?”

    그는 눈을 치켜뜨고는 서둘러 순양검 안의 주작진화를 발동해 온몸으로 흘려보내서 파고든 음독을 제거했다.

    구혼마면은 온몸에 검은 빛이 감돌자 검게 물들어가던 얼굴이 금세 원래대로 회복됐다.

    두 사람이 다른 뭔가를 하기도 전에 몇 개의 검은 그림자가 어둠 속에서 뛰쳐나왔다. 피비린내가 불어왔다.

    아직 안색이 창백한 구혼마면은 서둘러 10여 장을 뒤로 물러났다.

    그때, 앞에서 갑자기 눈부신 붉은 빛이 번쩍이더니 거대한 연꽃으로 변했다. 동시에 몇 개의 검은 그림자는 큰 상처를 입은 듯 끔찍한 비명과 함께 뒤로 물러났다.

    붉은 연꽃의 중심에서 심협이 소매를 휘두르자 붉은 불꽃이 감도는 검의 허상이 번개처럼 날아가 그림자들의 몸을 꿰뚫었다.

    비명이 잦아들자 모든 기운이 사라지고 본체가 나타났는데, 인간 형태의 귀물이었다.

    이 귀물들은 푸른색 귀포(鬼袍)를 입고 있었고, 머리에는 옅은 보라색 관을 썼으며,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귀물과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이미 죽었음에도 시체가 음기로 변하여 사라지지 않았고 여전히 강력한 음기 파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야귀(野鬼)! 이것들은 음조 지부 중에서도 고급 귀물이라 대승기 존재와 맞먹소. 게다가 몸을 허화할 수 있어 평범한 공격은 소용이 없을 정도로 상대하기 까다롭소.”

    구혼마면이 몇 마리의 귀물을 보더니 깜짝 놀라 설명했다.

    “그렇소?”

    그러나 정작 심협은 아무런 걱정이 없는지 담담하게 답하고는 화련을 거두었다. 어떤 귀물이든 홍련업화 앞에서는 버틸 수 없을 터였다.

    그는 허리춤의 귀물대를 열어 야귀들의 시체를 그 안으로 밀어 넣었다. 나중에 조비극이 돌아오면 그에게 연화시킬 생각이었다.

    “야귀는 더없이 희귀한 귀물인 데다 주로 황천 대하 부근의 현음 갈대밭에서만 산다고 했는데, 왜 여기에 있는 거지?”

    구혼마면이 의아한 듯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누군가 장안 백성들을 못 만나게 하려고 야귀들을 이곳에 데리고 온 것 같소. 이번 일은 정말로 누군가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는 모양이오.”

    “지금 정황으로 봐서는 아무래도 그런 것 같소.”

    구혼마면은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 눈앞에 놓여 있었다.

    그때, 낮은 울부짖음이 멀리서 들려오더니 해골 모양의 귀물 몇 마리가 달려왔다.

    “해골괴(骸骨怪)!”

    구혼마면의 안색이 변했다.

    “저들과 싸울 필요 없소. 어서 갑시다.”

    심협이 둔지부를 발동하여 계속해서 내려가자 구혼마면도 서둘러 따라갔다.

    한데 이 땅의 기이한 힘이 나타나 흙을 촘촘하게 만들어버린 탓에 둔지부로 전진하는 데 큰 방해가 되었다.

    뒤의 해골 귀물들도 땅속을 파고들어 바싹 뒤쫓아왔다.

    이 해골괴들의 실력은 방금 몇 마리의 야귀들보다 더 강하여 대승 중기였다. 또한 놈들은 이 기이한 힘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 듯 빠르게 거리를 좁혀왔다.

    심협은 눈살을 찌푸리고는 연연나금의를 발동했다. 푸른 빛이 그와 구혼마면을 감쌌고, 두 사람의 몸은 바로 허화되면서 주위의 기이한 힘이 끼치는 영향도 크게 줄었다. 반면 내려가는 속도는 갑자기 배로 빨라져 뒤에서 쫓아오는 귀물들과의 거리를 벌렸다.

    심협이 기세를 몰아 내려가 무명귀성 4층에 들어서자 주위의 기이한 힘이 갑자기 몇 배나 강해지더니 흙에 검은색 문로가 나타나 두 사람을 휘감았다. 연연나금의의 허화 능력으로도 피할 수 없었다.

    “진법!”

    심협은 함정에 빠졌음을 알게 되자 가슴이 철렁해 전력으로 진문 일부를 부수려 했다.

    한데 갑자기 눈앞에 눈부신 검은 빛이 떠올라 시야를 가렸다.

    실제 같은 검은 빛에 유명귀안을 가진 심협도 두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눈을 감은 순간, 심협은 흠칫 놀랐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주위의 경치는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흙도, 구혼마면도 보이지 않았고, 주위는 회색빛의 끝이 보이지 않는 공간이었다.

    “환상 법진인가? 등급이 낮지 않아 보이는데…….”

    심협은 내심 놀랐지만, 당황하지 않고 천두금준과 기혈번을 꺼내 금빛과 검은 빛의 보호막으로 온몸을 감쌌다.

    이를 마치자 조금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기에 신식으로 주위를 탐색하며 침착하게 환상 공간의 허점을 찾았다.

    그때, 주위의 공간에서 갑자기 파동이 일어나더니 은빛 초승달이 연달아 떠올라 몇 호흡 만에 공간 전체에 퍼졌다.

    이를 본 심협은 급히 검결을 결인했다.

    날카로운 바람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수많은 붉은 검기가 온몸에서 뿜어져 나가 은빛 달을 베었다. 허나 마치 물에 비친 달처럼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심협이 계속해서 다른 신통을 시전하려는데, 달에서 갑자기 눈부신 은빛이 뿜어져 나왔다.

    천두금준과 기혈번의 방어는 은빛 앞에서 너무도 쉽게 뚫렸다. 마치 아무런 효과도 없는 것처럼…….

    은빛에 담긴 음흉한 기운이 몸에 스며들더니 곧장 머릿속의 신혼으로 향했다.

    “크윽!”

    참기 힘든 통증이 신혼을 덮쳤다.

    그는 바로 부주진신법을 발동했고, 거대한 산이 생겨나자 고통이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역시 평범한 환진(幻陣)이 아니었군. 신혼 공격이 담겨 있을 줄이야.”

    그는 날카로운 눈으로 주위를 살피며 결인했다.

    주홍색 비검이 날아오르더니 순식간에 수십 배로 커져 붉은 대검이 되더니 빙글빙글 돌았고, 이어 거대한 붉은색 화륜(火輪)으로 변했다.

    화륜에서 빛이 강하게 번뜩이더니 주홍색 화염 검기가 뿜어져 나와 회색 공간 곳곳을 공격했다. 하지만 역시 바다에 빠진 진흙처럼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심협은 당황하지 않고 양손을 차륜처럼 결인했다. 화륜에서 뿜어져 나온 네 개의 커다란 붉은 노을빛이 수십 장 크기의 화염의 주작으로 변했다.

    네 마리 화염의 주작은 나타나자마자 입을 쩍 벌렸고, 수많은 불꽃이 뿜어져 날아가 순식간에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이어 엄청난 크기의 주홍색 불바다가 용솟음쳤다.

    회색 공간은 순식간에 타올라 흔들리기 시작했지만, 그 외에는 다른 변화는 없었다.

    이어서 전력을 다해 유명귀안을 발동하자 눈에서 검은 빛이 섞인 푸른 빛이 뿜어져 나와 주위의 변화를 주도면밀하게 살폈다.

    잠시 후, 그의 눈이 어딘가에 고정되더니 이윽고 암홍색 대인을 꺼냈다. 번천인이었다.

    눈부신 암홍색 영광이 감돌자 번천인이 순식간에 수십 배로 커져 궁전만 한 대인으로 변해 심협의 눈빛이 향한 공간을 강하게 내리쳤다.

    콰직!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공간이 마치 거울처럼 갈라졌고, 주위 허공에 다시 엄청난 양의 검은 빛이 나타나 주위 공간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시야가 돌아왔을 때, 심협은 다시 흙 속으로 돌아와 있었다.

    눈앞의 흙에는 수백 장 크기의 거대한 사각형 공간이 나타났는데, 바로 번천인이 공격한 곳이었다. 흙에 있던 검은색 부문은 이미 완전히 부서져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 * *

    온통 어둠뿐인 공간. 키가 작은 그림자가 허공에 서 있었고, 그 앞에는 크지 않은 회색 법단(法壇)이 돌고 있었다.

    이때, 회색 법단에서 갑자기 빛이 나더니 펑 소리와 함께 폭발했다.

    키가 작은 존재는 피를 뿜었다.

    “이, 이럴 수가! 명무연신대진(冥巫煉神大陣)은 무족의 비진(秘陣)인데…… 게다가 이 무신제단(巫神祭壇)에 남아 있는 힘이면 대진의 위력을 절반 이상으로 강화할 수 있는데…… 어떻게 부서진 것인가!”

    이 존재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외치더니 이를 갈고는 이내 검은색 공간 안으로 사라졌다.

    * * *

    회색 법진에서 벗어난 심협은 흐뭇한 표정으로 번천인을 거두었다. 그동안의 제련으로 마침내 번천인의 금제를 몇 도 연화하여 간신히 사용할 수 있게 됐다. 다만 이 대인은 법력 소모가 커 방금 일격으로 법력이 3할 이상 소모됐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지.”

    검은 그림자가 앞에서 날아왔다. 구혼마면이었다.

    그를 본 심협은 서둘러 번천인을 집어넣었다. 이 대인은 상고 시기의 중보라 지금까지도 명성이 자자했기에 다른 사람에게 알려져서 좋을 게 없기 때문이었다.

    곧 구혼마면이 도착했는데, 안색은 창백했고 숨을 헐떡였다. 회색 공간에서 신혼 공격에 적잖은 부상을 당한 듯했다.

    “방금 심 도우가 그 금제를 부순 것이었구려! 엄청난 금제였소. 계속 그곳에 있었다면 불사의 존재인 나도 신혼에 중상을 입었을 거요.”

    구혼마면은 여전히 가슴이 진정되지 않는 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방금 그 회색 공간 금제는 둔지술로 침입하는 자들을 막기 위해 누군가 일부러 설치한 것이었소.”

    “역시 누군가 배후에 있는 게 틀림없소! 쳐 죽일 놈! 지금 내 상태와 실력으로는 더는 나아갈 수 없으니 잠시만 기다려 주시오. 금방이면 되오.”

    구혼마면은 날카로운 눈으로 욕설을 내뱉더니 바로 검은색 단약을 먹고 연화하기 시작했다.

    심협은 서두르고 싶었지만, 구혼마면이 이미 연화를 시작했기에 더는 방해하지 않고 옆에 서서 기다렸다.

    그러던 중 그는 갑자기 뭔가 감지하고는 뒤를 돌아봤다.

    조비극이 양손에 하얀 귀물을 움켜쥔 채 달려오고 있었다. 아까 쫓아오던 해골괴로, 지금은 거의 1할 정도로 작아져 있었다.

    조비극의 기운은 이전보다 몇 배나 강해져 진선의 단계를 코앞에 두고 있었다. 그 잠깐 사이에 상당수의 음수를 사냥하여 몸을 보양한 게 분명했다.

    “주인님, 여기에는 음수가 많고 음기도 충만한 데다 순수합니다. 여기서 잠시만 머무르면 안 되겠습니까? 고급 음수 몇 마리만 더 잡으면 금방 진선기로 돌파할 것 같습니다. 하하하!”

    조비극이 두 마리의 해골괴를 하나씩 먹고는 신이 나서 말했다.

    “좋다. 곧 4층으로 내려갈 테니 먼저 가서 살펴보도록. 허나 아래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들이 숨어 있을지도 모르니까 조심하거라.”

    심협이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감사합니다, 주인님.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조비극은 바로 검은 빛으로 변하여 아래로 내려갔다.

    심협은 조비극이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다가 무언가를 읊조린 뒤 소매를 휘둘렀다. 소매에서 은빛이 날아가더니 허공 속으로 사라졌다.

    구혼마면의 몸에서 검은 빛이 반짝이더니 단약이 금방 녹아들면서 청량한 기운이 온몸으로 퍼졌다. 특히 머리 쪽으로 몰리면서 신혼의 손상이 절반 정도 회복되었고, 안색도 한결 좋아졌다.

    “오래 기다렸소. 어서 출발합시다.”

    구혼마면은 어느 정도 회복되자 바로 일어나 말했다.

    심협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연연나금의를 발동하여 구혼마면과 함께 아래로 내려갔다.

    이어지는 길에서는 아무런 방해도 없었기에 두 사람은 금방 흙을 뚫고 4층에 도착했다.

    4층은 3층보다 더 넓었고, 건물도 대부분 완벽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었다. 건물은 하나하나가 매우 거대한 것이 마치 거인의 성 같았다.

    “무족 사람들은 몸이 거대했나?”

    그렇게 추측하던 심협은 갑자기 안색이 변해 바로 왼쪽 앞으로 날아갔다.

    구혼마면은 무슨 일인지 알지 못했지만, 바로 심협을 따라갔다.

    잠시 후, 심협은 멈춰야만 했다. 강력한 귀물과 음수가 앞에서 밀물처럼 몰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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