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861화 (861/1,214)
  • 861화. 음조 지부

    구혼마면은 표정이 격렬하게 변했고, 가슴이 철렁했다.

    과거 경하용왕이 당황의 혼백을 가둔 일은 그도 마지막에 직접 끼어들었기에 그 과정을 상세하게 알고 있었다. 경하용왕의 여식이 후에 마족에 가담하면서 경하용왕과 마족 사이에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경하용왕에 협력한 정체불명의 인물은 마족 쪽일 가능성이 컸다.

    심협이 방금 마겁 때와 관련하여 음조 지부에서 마족의 첩자에 대해 물은 것도 다 그런 이유였다.

    “심 도우, 알려줘서 고맙소. 이 일은 매우 심각하니 바로 종규 대인께 알려야겠소.”

    구혼마면이 빠르게 생각을 정리하고는 심협에게 인사한 뒤 검은색 옥패를 꺼내서 결인하려고 했다.

    “잠깐!”

    심협이 급히 구혼마면을 막았다.

    “왜 그러시오?”

    “마면 도우, 나도 종규 대인을 존경하지만, 첩자의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지금은 모두를 의심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내가 마면 도우와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가 아니고 함께 마족 요풍의 음모를 막아내지 않았다면 도우에게도 알리지 않았을 게요.”

    “심 도우는 지금…… 종규 대인을 의심하는 것이오? 그, 그럴 리가 없소!”

    구혼마면의 두 눈이 커졌다.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소.”

    “……음, 알겠소. 그럼 내 몰래 조사해 보겠소.”

    구혼마면은 어두운 표정으로 옥패를 거두었다.

    “이 일은 마면 도우께 부탁하겠소. 내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시오.”

    구혼마면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 일은 나중에 다시 얘기하고, 우선 장안 백성들부터 찾읍시다.”

    심협은 구혼마면을 데리고 숲으로 날아올랐다.

    두 사람이 숲에 들어서자마자 어둠이 즉시 용솟음쳤고, 그 안에서 몇 개의 그림자가 쏜살같이 튀어나와 덮쳤다. 뱀의 형상을 한 음수들이었다.

    “이리도 순수한 음력이라니! 이 어르신에게 오너라! 하하하!”

    조비극이 건곤대에서 튀어나오며 입에서 검붉은 빛을 뿜어내 그것들을 휘감았다. 이 형흉신광에 감싸이자 음수들의 몸은 빠르게 녹아내렸고, 겁에 질려 도망치고 싶어도 감히 벗어날 수 없었다.

    불과 몇 호흡 만에 음수들은 검은 기운으로 변하여 조비극의 입으로 빨려 들어갔다.

    조비극은 배를 두드리며 만족해했다.

    한편, 구혼마면은 조비극을 보고는 온몸의 털이 곤두서며 자기도 모르게 뒤로 두어 걸음 물러났다.

    그는 이 눈앞의 괴물이 천적임을 직감했다. 만약 맞붙게 된다면 자신의 결말은 저 음수들과 다르지 않을 터였다.

    “저건 내 영총 귀장이니 마면 도우는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아, 심 도우의 영총이었구려.”

    구혼 마면은 안도했지만, 조비극을 바라보는 눈빛은 여전히 꺼림칙했다.

    이후로도 나아가는 동안 수많은 음수 무리가 세 사람을 공격해왔는데, 그중에는 대승기 고수에 버금가는 고수도 존재했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음수가 몰려와도 예외 없이 조비극의 밥이 되었다.

    구혼마면은 조비극을 보면 볼수록 놀라웠고, 심협에게 경외심마저 생겼다. 과거 자신과 경지가 얼마 차이 나지 않던 인간족이 어떻게 그 짧은 시간에 경지가 저 정도로 정진하고 이런 수하까지 거두었는지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세 사람은 막힘없이 나아가 얼마 지나지 않아서는 숲 깊은 곳에 있는 거대한 성 근처에 도착했다. 이 성은 폐허가 되어 있었고, 워낙 넓어서 신식이나 눈으로는 도저히 끝이 보이지 않았다.

    폐허 안의 건물은 대부분이 청회색을 띠었고, 미약한 기운의 파동이 뿜어져 나오기도 했는데, 이는 음기가 아니었다.

    ‘이 폐허들은 이전에 명계의 물건이 아니었던 건가?’

    심협의 눈에 놀라움이 스쳐 지나갔다.

    “여기가 무명귀성이오?”

    “그렇소. 이 성을 얕보아서는 안 되오. 매우 넓은 데다 지상뿐만 아니라 지하에도 몇 층이 있어 우리 경지로도 전부 조사하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오.”

    심협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크게 개의치 않고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누구냐?”

    몇 명이 귀성에서 나와 앞을 막아섰다. 그들은 남녀가 뒤섞여 있었고, 모두 검은색 도포를 입었으며, 경지도 약하지 않았다.

    “어허, 무례를 범하지 마라. 이분은 대당 춘추관의 심협 도우시다. 나를 도와 장안 백성의 혼백을 찾으러 오셨다.”

    구혼마면이 아래로 내려오며 호통을 쳤다.

    “마면 장로님!”

    그들은 구혼마면을 보고는 깜짝 놀라 서둘러 허리를 숙였다.

    “이들이 음조 지부의 제자들이오?”

    심협이 그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음조 지부는 백 년 전만 해도 없었던 곳이라 그로서는 최근에야 이 종문에 대해 알게 되었다. 듣기로는 마겁이 터졌을 때 마족에 대항하기 위해 세운 문파라고 하였다.

    음조 지부는 비록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 도법은 정교하여 방촌산이나 화생사 같은 대문파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

    “지금 상황은 어떤가? 장안 백성들을 찾았느냐?”

    “무명귀성 두 층을 수색했지만 아직 아무것도 찾지 못했습니다. 장로 몇 분이 음조 지부 제자와 음신들을 이끌고 3층으로 진입하셨습니다. 한데 3층에 갑자기 강력한 음수와 귀물들이 많이 튀어나와 수색에 진행이 늦어졌습니다.”

    어느 중년의 민머리 요족 남자가 공손하게 답했다. 음조 지부도 인간족과 요족, 마족을 모두 제자로 받았다. 다만 방촌산처럼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었다.

    “음수와 귀물들이? 알겠다. 나도 곧 그리로 갈 것이니 너희는 계속해서 위층을 수색해라.”

    “예!”

    그들은 대답한 뒤 심협을 흘끗 보고는 돌아갔다.

    “지부 종문에서 마면 도우의 지휘가 상당히 높은가 보오?”

    “종규 대인께서 내게 종문의 외사장로(外事長老)를 맡아 음조 지부 제자들에게 삼계 각지의 견문을 가르쳐달라 하셨소.”

    심협이 웃으며 말하자 구혼마면은 멋쩍은 듯 대답했다.

    둘은 계속 나아갔고, 금방 폐허 깊은 곳에 도착했다.

    이곳에는 지하로 통하는 어두운 통로가 있었다. 높이는 10여 장이었고, 좌우로는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주인님, 제가 길을 열겠습니다.”

    조비극은 통로 안에서 더 짙은 음기가 느껴지자 신이 나서 심협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날아갔다.

    심협은 못 말린다는 고개를 저을 뿐, 조비극을 막지 않았다.

    “무명귀성은 지하로도 네 개의 층이 있고, 아래로 갈수록 더 넓어진다오. 또한 지하에서는 신식의 제한이 더 커지니 장안 백성을 찾기가 상당히 까다로울 게요.”

    구혼마면이 무거운 목소리로 설명을 덧붙였다.

    “상관없소. 사람 찾는 건 내게 맡기시오.”

    심협은 그렇게 말하고는 수십 장을 걷더니 무언가를 꺼냈다. 바로 산하사직도였다.

    그가 양손을 결인하자 산하사직도에서 하얀 빛이 떠오르더니 촥 펼쳐지면서 통로의 바닥으로 내려왔다.

    이 그림에서 노란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아래의 바닥으로 스며들자 산하사직도에서 뿜어져 나오는 노란 빛도 빠르게 변하기 시작했다.

    심협이 손가락을 빠르게 결인하자 체내의 법력이 밀물처럼 산하사직도에 흡수되었는데, 그 양이 보통의 법보를 발동할 때보다 열 배는 많았다. 대신 그의 안색은 점점 하얗게 질려갔지만, 여전한 속도로 술법을 시전했다.

    산하사직도의 노란 빛은 이내 노란색 허상으로 변하였다.

    이 허상을 본 구혼마면은 깜짝 놀랐다. 노란색 허상은 지형(地形) 지도였는데, 바로 무명귀성 이곳의 것이었다. 그 지도에서는 지상과 지하 4층까지 선명하게 보였다.

    여기에는 여러 빛깔이 반짝였는데, 검은색과 회색이 주를 이루었다. 수는 적지만 다른 색깔도 있었고, 빛의 밝기도 각각 달랐다.

    “이 빛들이 무명귀성 안의 생령들인가? 빛이 밝을수록 경지가 강한 거고?”

    구혼마면은 지하로 향하는 통로를 놀란 눈으로 바라봤다. 거기에는 금빛과 검은 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특히 금빛은 유달리 밝았다.

    “내 말이 맞는 것 같군.”

    구혼마면은 확신한 뒤 산하사직도를 뜨거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세상에 이런 역천의 지보가 있었다니! 이래서 심 도우가 장안 백성 혼백을 찾는 데 자신이 있었던 게로구나.’

    구혼마면은 서둘러 축소된 무명귀성 곳곳에서 백성들의 혼백을 찾았지만, 한동안 그들의 빛이 어디 있는지 분별할 수 없었다.

    그때, 구혼마면은 심협의 시선이 무명귀성 3층 어느 구석에 멈춘 것을 알게 됐다. 그곳에는 수십 개의 미약한 빛이 있었는데, 그리 눈에 띄지 않아서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찾을 수 없을 정도였다.

    “설마…… 이건가?”

    그 순간, 축소된 무명귀성이 갑자기 사라졌고, 산하사직도의 영광도 전부 사라지면서 평범한 그림처럼 땅에 떨어졌다.

    법력을 모두 소모하여 안색이 창백해진 심협은 바닥에 주저앉아 간신히 단약을 꺼내서 먹고는 두 눈을 감고 연화하기 시작했다.

    ‘이 그림을 시전하려면 법력 소모가 큰 모양이구나.’

    구혼마면은 그렇게 생각하며 심협 옆에서 호법을 섰다.

    심협은 한참이 지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나 산하사직도를 챙겨 넣었다.

    방금 그 신통은 산하사직도의 능력 중 하나로, 이 그림과 주위의 지맥을 연결하고 서로 통하게 하여 주위 지형의 상황을 살피는 것이다.

    이 수색 신통은 산하사직도의 심층 금제 능력으로, 최근에 이 그림의 제련이 매우 깊은 단계까지 도달한 데다 꿈속 세계에서 사용해본 경험이 더해진 덕에 심협은 이 신통을 연구해낼 수 있었다. 다만 이 신통을 사용하는 데는 법력 소모가 너무 컸고, 아직은 경지가 낮아서 겨우 몇 호흡밖에 유지할 수 있었다.

    “심 도우, 괜찮소?”

    구혼마면이 걱정스레 물었다.

    “그럭저럭 괜찮소. 더 지체할 수 없으니 어서 장안 백성들을 구하러 갑시다.”

    심협이 두 장의 둔지부를 꺼내 자신과 구혼마면의 몸에 붙였다.

    노란 빛이 번쩍이더니 두 사람의 몸은 땅속으로 사라졌고, 그대로 무명귀성 4층 구석진 곳으로 향했다.

    조비극은 심협의 허가를 받은 후 지하 공간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음수들을 사냥하고 보양했다.

    심협과 구혼마면은 땅속을 빠르게 뚫고 지나가 금방 무명귀성 지하 1층에 도착했다. 이곳은 땅 위의 폐허와 비슷했는데, 비교적 보존이 잘되어 있었다.

    심협과 구혼마면은 이곳에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아래로 내려갔다. 무명귀성 2층은 1층과 비슷했는데, 공간이 더 넓었고, 건물도 더 크고 높았다.

    “이곳의 건축 양식이 음조 지부와 매우 비슷해 보이는데, 원래 여기에 있던 건물이 아닌가 보오?”

    심협이 지하 2층을 둘러보며 물었다.

    “심 도우의 말이 정확하오. 무명귀성은 본래 음조 지부의 것이 아니오. 수천 년 전에 지부 전체가 흔들리는 일이 있었는데, 그때 갑자기 여기 나타났소. 그때 내가 아직 탄생하기도 전이라 아는 것은 많지 않소. 전적들에서 관련된 기록을 본 게 전부요.”

    심협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몇 개의 거대한 돌기둥을 살폈다.

    돌기둥 위에는 오래된 문로가 새겨져 있었는데, 서로 연결된 것이 어떤 법진 부문 같았다. 하지만 그가 알고 있는 그 어떤 언어와도 확연히 달랐다.

    그뿐이었으면 그리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세상에는 신기한 것들이 많으니까. 허나 이 문로는 어딘가 친숙했고. 본 적이 있는 것만 같았다.

    “어, 이것은……?”

    불현 듯 화령자가 깜짝 놀랐다.

    “화령자, 이 진문을 알고 있어?”

    심협이 다급하게 물었다.

    “이건 상고무문(巫紋)이오. 설마 아직까지 존재할 줄이야. 도우의 모습을 보니 이 무문을 본 적이 있나 보오?”

    “무문!”

    화령자의 말에 심협의 머릿속에서는 번개가 내려쳤다. 어디서 이 문로를 봤는가 했더니 바로 꿈속 세계에서 십이 무기(巫器) 중 하나인 전신편을 얻을 때 본 진문과 배우 비슷했다.

    “여기는 무족(巫族)의 유적인가?”

    조용히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그의 두 눈이 반짝거렸다.

    꿈속 세계에서 십이 무기인 전신편과 십이도천신살대진을 얻으면서 상고 시기 패권을 차지했던 집단에 대해 줄곧 궁금했는데 여기서 무족의 유산을 만나게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터였다. 아무래도 그는 무족과의 인연이 상당히 깊은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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