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860화 (860/1,214)
  • 860화. 무명귀성(無名鬼城)

    대당 관부 근처의 외딴 골목. 허공에 초록 빛이 번득이더니 심협이 나타났다.

    그는 조심스레 산하사직도를 꺼냈다. 이 그림에는 금색 불꽃이 늘어나 있었으니, 바로 금조진화였다.

    “심 도우, 잘했소. 이렇게 진화 금조를 얻을 줄이야. 하하하! 실로 감탄했소!”

    화령자가 찬사를 보냈으나, 심협은 득의양양하지 않았다. 화동의 금조진화는 위력이 막강하여 만약 산하사직도라는 천도의 지보가 없었더라면 이리 쉽게 금조를 얻지 못했을 터였다.

    “화 도우, 혹시…… 이 불꽃의 불순물을 제거하고 본래의 순수한 금조진화로 연화해줄 수 있을까?”

    “그야 가능은 한데…… 어디에 쓰려는 게요?”

    “나중에 알게 될 거야.”

    심협이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명화연노를 꺼냈다.

    화령자가 뭔가 중얼거렸지만, 잘 들리지 않았다. 심협은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명화연노를 발동한 후 산하사직도에 넣었고, 금조진화는 연노에 넣었다.

    심협은 연노를 집어넣고 다시 거처로 돌아갔다.

    “심 오라버니, 오셨어요? 왜 이렇게 오래 걸리셨어요?”

    미소가 기다렸다는 듯 뛰어나오며 입을 삐죽거렸다.

    “요마에 대해 조사하느라 시간이 걸렸구나. 아무 일도 없었지?”

    심협이 그 작은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미소는 기분이 좋아졌는지 환하게 웃으며 애교를 부리듯 눈을 깜박이고는 고개를 저었다.

    “고생하셨어요, 오라버니. 뭐 좀 찾으셨나요?”

    심협은 숨기지 않고 그간의 일을 대략적으로 설명했다.

    “사실 저도 요마를 어떻게 조사해야 할까 고민했는데, 마침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요. 어쩌면 가능할 지도 몰라요.”

    “어떤 방법인데?”

    심협의 눈이 조금 커졌다.

    “살아 있는 백성들은 모르지만 습격으로 죽은 백성들은 뭔가 알고 있지 않을까요?”

    “죽은 백성들! 그래,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심협이 무릎을 치며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곧장 탁자 앞에 앉아 임랑환에서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하얀 종이와 영재들을 꺼냈고, 빠르게 부묵(符墨)을 준비했다.

    잠시 후, 칠흑 같은 부묵이 갖춰졌고, 붓의 움직임에 따라 금세 검은색 부적이 완성되었다. 여기에 법력을 운공하여 주입하자 부적이 갑자기 소리 없이 바스러지면서 검은 안개가 흘러나와 끊임없이 회전하는 어두운 소용돌이로 변했다.

    휙!

    바람 소리와 함께 거대한 말 얼굴이 튀어나왔다. 심협이 일찍이 인연을 맺은 구혼마면이었다.

    검은색 부적은 구혼마면이 이전에 그에게 줬던 통령 계약이었다. 오래전 이미 다 써버렸지만, 지금 그의 경지로는 직접 만드는 것쯤이야 일도 아니었다.

    미소는 어리긴 해도 경지가 높은 편이었기에 구혼마면을 보고도 무서워하기는커녕 오히려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봤다.

    “누가 날 불렀…… 심협!”

    구혼마면은 심협의 얼굴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마면 도우, 오랜만이오.”

    “아이고, 그러게 말이오. 한 백 년쯤…… 어엇! 경지가……?”

    구혼마면은 반가워하다가 심협의 경지를 알아채고는 깜짝 놀랐다.

    “그간 고인의 도움을 받고 또 기연을 만나 진선기에 들어섰소.”

    심협은 경지를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말했다.

    구혼마면은 입이 떡 벌어졌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도 그동안 지부의 일을 성실하게 처리하고 기연을 만나 경지가 적잖이 정진하여 이미 대승기로 돌파했는데, 이는 지부의 수많은 음신 중 정진이 빠른 편이었다. 한데 심협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경지가 높아진 것이었다.

    “심 도우…… 아니, 심 선배님. 무슨 일로 저를 소환하셨습니까?”

    구혼마면은 헛기침을 하고는 공손하게 물었다.

    “우린 오랜 인연이 있고 내 마면 도우의 많은 도움을 받지 않았소? 그러니 그리 딱딱하게 굴지 말고, 그냥 호칭은 서로 도우로 합시다.”

    심협이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염치없지만 그리 부르겠소.”

    머리를 긁적이면서도 구혼마면은 속으로 내심 안도했다. 그는 자존심이 강했고 또 여러 번 심협과 함께 일한 사이였기에 그를 선배라 부르고 싶지 않았다.

    “오늘 마면 도우를 부른 것은 어제 장안성이 습격당한 일 때문이오. 이미 알고 있을 거 같은데……?”

    “그 일로 천하가 뒤숭숭하고 삼계가 모두 알고 있으니 나도 당연히 알고 있소.”

    “지금 대당 관부에 협력하여 원인을 파악하고 있는데 아무런 단서를 찾을 수가 없었소. 이 소란으로 수많은 백성이 죽었으니 그들의 영혼도 이미 지부로 들어갔지 않소? 그들이라면 뭔가 알고 있을지도 모르니, 내 지부로 가서 그들 혼백과 대화를 나눠보고 싶소. 혹시 도와줄 수 있소?”

    “그게…….”

    구혼마면은 머뭇거렸다.

    “마면 도우, 안심해도 좋소. 그들을 다시 양지로 데리고 오겠다는 게 아니라 그저 이번 일에 관해 물어보기만 하고, 마치면 바로 돌아올 거요. 도우에게 해가 되지 않을 거라 약속하오.”

    “심 도우, 오해하지 마시오. 그대를 돕기 싫은 게 아니라, 어제 죽은 장안 백성들의 혼백은 어째서인지 지부로 오지 않고 명계의 무명귀성(無名鬼城)이라는 곳으로 옮겨졌소. 모든 음신과 음조 지부 제자들이 지금 그곳을 찾고 있지만, 아직도 찾지 못했소.”

    “어찌 그런 일이! 그럼 마면 도우가 그리로 나를 데려가줄 수 있겠소? 사람 찾는 데는 내 일가견이 있으니 어쩌면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오.”

    “지부가 모두 그 일로 골머리를 앓고 있으니 심 도우가 도와준다면야 당연히 환영이오.”

    구혼마면이 기뻐하고는 곡상봉(哭喪棒)을 들고 읊조리더니 허공에 휙 그었다.

    많은 양의 검은 기운이 몰려오더니 곡상봉을 둘러싸고 빠르게 회전하자 눈 깜짝할 사이에 허공에 검은색 소용돌이가 나타났다.

    “지금 장안성은 위험하니 함부로 나가지 말고 내가 돌아올 때까지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

    “네.”

    심협의 당부에 미소가 살갑게 대답했다.

    심협은 미소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는 구혼마면과 함께 검은 소용돌이 안으로 들어갔다.

    눈앞에 검은 기운이 솟구치더니 몸이 수직으로 떨어지기 시작했고, 한참 뒤에야 멈췄다.

    두 사람은 이미 지부의 어느 황량한 평원에 서 있었다. 멀리서 파도 소리가 들려오고 음기가 느껴지는 것이 아무래도 명하 부근 같았다.

    “심 도우, 날 따라오시오.”

    구혼마면이 앞서 날아갔다.

    주위의 모든 것이 빠르게 물러났지만, 심협에게는 너무 느렸다.

    “급박한 상황인 만큼, 마면 도우는 길을 알려주시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심협의 소매에서 금빛이 나와 두 사람을 감싸더니 지금까지보다 몇 배는 더 빠르게 날아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그들은 아무런 흔적도 없이 멀리 사라졌다.

    구혼마면은 깜짝 놀랐다. 그는 이전에 음조 지부의 진선기 장로와 동행한 적이 있는데, 심협의 속도는 그보다 훨씬 더 빨랐다.

    ‘심협은 실력이 도대체 얼마나 높아진 걸까? 설마…… 진선 중기? 안 본 지 얼마나 됐다고……. 정말 불가사의하다니까!’

    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쉬지 않고 길을 안내했다.

    반 시진쯤 후, 두 사람은 검은 숲속 부근에 도착했다.

    이 숲은 끝이 없었다. 나무들은 너무도 커서 열 명이 둘러싸야 할 정도였으며, 두꺼운 수관과 나뭇잎이 숲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게다가 이 나무들은 모두 검은색이라 숲 전체가 어두웠고, 안에 무엇이 있는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숲 안의 음기는 매우 짙고 또 이상하게 끈적끈적한 느낌을 주었으며, 이로 인해 신식으로 탐색하는 데도 큰 지장을 받았다.

    “무명귀성은 저 숲 깊은 곳에 있소. 심 도우, 이 암산림(暗山林)을 조심하시오. 이곳의 음기는 특이하여 신식에 영향을 준다오. 게다가 저 안에 살아가는 음수는 지부의 귀물들과 달리 그림자에 숨어 있다가 습격하는데, 그 종적을 알아채기 어렵소.”

    구혼마면의 설명이 끝나고 막 심협이 대답을 하려던 때였다.

    “주인님, 그 음수들은 제게 맡겨주십시오. 흑연 미굴에서 흡수한 음수들의 힘은 이미 모두 연화했으니 이제 진선으로 돌파할 때입니다. 지금이 딱 대량의 음수의 힘을 보충해줘야 할 시기죠.”

    귀장 조비극의 목소리가 건곤대에서 들려왔고, 심협은 고개를 끄덕였다.

    “장안 백성들의 혼백이 어찌 이리 외진 곳으로 보내진 것이오?”

    “이번 일은 뭔가 묘했소. 장안 백성들의 혼백이 지부로 보내지는 순간 육도윤회반이 갑자기 이상해져서 그들의 혼백이 이곳으로 보내졌소.”

    “육도윤회반이 갑자기 이상해졌다?”

    그 말에 심협은 문득 과거 경하용왕의 일이 떠올랐다.

    그해, 경하용왕이 지부에서 당 황제의 혼백을 흡수하려 했을 때, 지부에서는 어떤 정체불명의 인물이 육도윤회반의 힘을 조정하여 경하용왕이 술법을 시전하도록 도왔다. 그때와 지금의 상황이 비슷하지 않은가!

    ‘설마 또 누군가 육도윤회반을 건드리고 장안성에서 요마들이 소란을 피우도록 도운 것인가?’

    심협의 표정이 굳어졌다. 만약 그의 생각대로라면 이번에 육도윤회반을 건드린 자는 누구일까? 그때의 그자들인가? 아니면 다른 사람인 것인가?

    “마면 도우, 나는 중상을 입어 백 년간 혼절해 있었소. 하여 마겁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데, 과거 마겁 때 이곳 음조 지부에서도 많은 싸움이 있었소?”

    심협이 생각에 잠겨 있다가 구혼마면에게 물었다.

    “물론이오. 치우는 실력이 강했을 뿐만 아니라 휘하에 수많은 마병과 마장이 따랐소. 게다가 동시에 삼계 각 세력의 기반을 공격하여 단숨에 삼계를 전멸하려 했지. 우리 지부도 그때 공격을 받았고, 마병과 마장들을 막는 과정에서 지부 음신과 음조 지부의 제자들을 3할이나 잃었소.”

    구혼마면이 깊게 탄식했다. 그 전쟁에서 죽어간 많은 동료와 벗들이 떠오른 것이리라.

    “내 듣기로, 마족은 사람의 마음을 조종하는 데 능하고 욕망을 이용할 수 있다 했소. 그 능력으로 각 세력에 많은 첩자를 심어놨다고 알고 있는데, 지부에도 그런 자가 숨어 있었소?”

    “첩자? 그런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그건 왜 물으시오?”

    구혼마면이 잠시 생각해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별일 아니오. 그냥 한번 물어봤소.”

    심협은 가슴이 철렁했지만,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다.

    ‘지부에서 첩자를 잡아내지 않았다? 그 말은 과거 그 정체불명의 인물이 아직도 여기에 있다는 뜻!’

    그렇다면 이번에 육도윤회반을 건드린 것도 그자의 소행일 가능성이 컸다.

    “마면 도우, 육도윤회반은 어떤 자들이 다룰 수 있소?”

    “육도윤회반? 그건 윤회사(輪回司) 안에 있는데, 윤회사는 지부의 금지(禁地)에 속하오. 매년 흑백의 저승차사들이 수많은 음병을 거느리고 지키고 있지. 이외에는 전륜왕(轉輪王) 대인이 있소. 그분은 육도윤회결을 수련하여서 육도윤회반을 조종할 수 있소. 그 외에는 설령 십전염왕이라 해도 어지간해서는 접근조차 할 수 없소. 심 도우, 설마…… 이번에 육도윤회반의 이상이 누군가의 의도 때문이었다고 생각하는 것이오?”

    “사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소. 과거 당황이 경하용왕에게 혼백을 빼앗겼던 일을 기억하시오? 그때 나도 그 사건에 휘말렸는데, 경하용왕이 어떤 정체불명의 인물과 함께 있는 걸 직접 봤소. 그때 그자가 경하용왕에 협력하여 육도윤회반의 힘을 조정함으로써 당황을 혼백 본원으로 전환하겠다고 말하는 걸 들었소.”

    심협은 구혼마면의 비상함에 내심 놀라며 당시의 일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는 지금 장안 백성의 혼백을 찾아야 했기에 음조 지부 안에 숨어 있는 첩자를 찾을 여유가 없었다. 구혼마면은 비록 경지는 높지 않아도 머리가 비상하니 직접 나서서 조사하면 그자를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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