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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859화 (859/1,214)
  • 859화. 길을 막다

    통로를 지나자 거대한 보물창고가 눈앞에 나타났다.

    보물창고는 엄청나게 커서 동해 용궁 보물창고의 6할에 이르렀다. 나무와 옥으로 만든 선반들이 즐비했는데, 그 수가 수백 개였다.

    선반마다 영광이 뿜어져 나오는 보물이 가득했다. 그중에는 영재도 있고 법보도 있서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했다.

    심협은 재산이 풍부했지만, 눈앞에 펼쳐진 보물창고에는 조족지혈(鳥足之血)도 되지 못할 정도였다. 더욱이 자신 같은 외부인이 들어올 수 있는 곳이라면 정말 중요한 보물은 다른 곳에 있을 터였다. 그러니 대당 왕조는 역시 천조상국(天朝上國)답게 그 저력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숙은 이곳에 한두 번 와본 게 아니었기에 다른 물건들은 신경도 쓰지 않고 곧장 붉은 옥으로 만든 선반으로 다가갔다. 화홍색 보호막으로 덮여 있음에도 그곳에 놓인 세 개의 영재에서는 강력한 순양의 기운이 느껴졌다.

    각각 주홍색 옥석, 옅은 금색 대나무 그리고 2척 길이의 목재로, 겉에는 불꽃과 같은 붉은빛이 감돌고 있었다.

    심협은 다른 두 개의 재료보다는 2척 길이의 붉은 목재에서 한순간도 눈을 떼지 못했다. 바로 그가 꿈에도 바라던 화린목이었다. 더욱이 오장관에서 얻은 것보다 순양의 기운이 훨씬 강한, 만 년 된 화린목이 확실했다.

    이숙이 금색 영패를 흔들자 금빛이 선반 주위의 금제로 들어갔고, 이어서 붉은 보호막이 몇 번 깜빡이더니 완전히 사라졌다.

    “심 오라버니, 현화옥과 금양죽(金陽竹) 그리고 화린목이에요. 모두 순양의 영재예요.”

    “공주님과 국사님께 감사드립니다. 한데 혹시 다른 만년 화린목이 있습니까? 이 영재는 제게 매우 중요해서 다른 두 영재 대신 화린목을 더 갖고 싶군요.”

    만년 화린목은 무게가 상당해서 두 자루의 순양검을 만들기에 충분했지만, 위력이 강력한 순양검진을 시전하려면 적어도 열 자루의 순양검이 필요했다.

    이숙은 옥간을 꺼내 살펴봤다. 보물창고 안에 있는 영재 목록인 것 같았다.

    잠시 후,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미안해요. 화린목은 이게 전부네요.”

    심협은 못내 아쉬웠지만, 이것만으로도 큰 수확이었기에 세 개의 영재를 챙겼다.

    “심 오라버니, 만년 화린목이 필요하세요?”

    “네, 법보를 만드는 데 필요합니다.”

    “그럼 황실 사람들한테 만년 화린목을 발견하면 모아달라고 말해둘게요.”

    “부탁드립니다. 가격은 얼마가 돼도 상관없으니 많을수록 좋습니다. 이렇게 보여도 제가 나름 모아놓은 재산이 많습니다.”

    “알겠어요.”

    “구천금정이 급히 필요한데 혹시 그것도 부탁드릴 수 있을까요?”

    심협이 생각하더니 다시 말했다.

    “구천금정이요? 그건 삼계에서도 거의 자취를 감춘 영재라 찾기 어려울 거예요.”

    이숙의 눈이 조금 커졌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우연히, 정말 우연히라도 찾게 된다면 알려주십시오.”

    “알겠어요. 기억해둘게요.”

    이숙은 그저 알아보기만 해주면 된다는 말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보물도 받았으니 더는 머물 필요가 없었기에 심협은 인사를 남기고 돌아섰다.

    한데 그가 외딴 문을 통해 황성을 나와 대당 관부로 돌아가던 중 세 사람이 나타나 길을 막았다.

    선두에 선 자는 장천이었고, 뒤로는 키가 크고 작은 두 사람이 서 있었다. 키가 큰 사람은 금의를 입은 노인으로, 표정이 얼음장 같았다. 키가 작은 사람은 아홉 살쯤 되어 보이는 어린아이로, 붉은 복장에 기이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진선 중기의 존재였는데, 특히 홍의(紅衣)의 아이는 진선 후기를 코앞에 둔 상태였다.

    “장천 도우, 무슨 일입니까?”

    심협은 세 사람을 보자 귀찮게 됐음을 직감하고는 말했다.

    “이놈, 네가 무슨 삼계무도회의 우승자라는 말은 들었으나 본 도령에게는 그딴 건 상관없다. 잘 들어라. 이숙 공주에게서 떨어져라. 그러지 않으면 좋은 꼴은 못 볼 게다. 알겠느냐?”

    장천이 한 걸음 성큼 다가와 손가락으로 심협의 가슴을 쿡쿡 찌르며 말했다.

    “그건 걱정하지 마시오. 나와 이숙 공주는 그저 친구일 뿐이오. 이전에 몇 번 만난 인연일 뿐, 남녀의 사사로운 정은 없소. 세 분 도우께서 이해했으리라 믿겠소.”

    심협은 화내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

    “허허, 삼계무도회의 우승자 심협이란 자가 매우 대단해서 천궁도 안중에 두지 않는다고 듣긴 했지만, 지금 보니 정말 그런 모양이군.”

    홍의동자(紅衣童子)가 소매에서 붉은 빛을 쏘아 장천을 뒤로 끌어내고는 허허 웃으며 말했다.

    장천은 홍의동자의 행동에 화가 치밀었지만, 아무 말도 못 하고 꾹 참았다.

    “과찬이시오. 귀하는 뉘시오?”

    심협이 상대를 돌아보며 물었다.

    “천궁의 장로, 화동(火童)이오.”

    홍의동자가 거만하게 말했다.

    “화동 도우였구려. 그나저나 내 길을 막다니, 뭐 하자는 게요?”

    “심 도우 일은 우리도 어느 정도 알고 있소. 본래 그대를 난처하게 할 생각은 없었는데 숙 공주 일로 우리 도련님이 불쾌해 하시니 호위인 우리가 손을 놓고 있기는 좀 그렇지 않겠소? 이해하시겠지요?”

    화동이 허허 웃으며 말했다.

    “제가 어떻게 해야 만족할지 말해보시죠.”

    심협이 두 팔을 활짝 벌리며 말했다.

    “이곳은 대당의 수도이니 외부인인 우리가 여기서 남의 시선을 끌 만한 행동을 하기는 좀 그렇지 않겠소? 그러니 이렇게 합시다. 그대와 내가 세 합을 겨루는 게요. 심 도우가 내 세 합을 받아내면 우리는 바로 돌아가겠소. 허나 심 도우가 받아내지 못한다면 앞으로 다시는 숙 공주와 만나지 마시오. 어떻소?”

    돌려서 말하긴 했지만 말투는 더없이 거만했다. 심지어 장천의 기고만장함은 더더욱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쯤 되자 심협도 화가 치밀었고, 표정도 차갑게 변했다.

    “하! 내가 진다면 그리 하겠으나, 내가 이긴다면 겨우 그 정도로 넘어갈 수 없지.”

    “뭐라고? 네놈이 감히! 죽고 싶은 게냐?”

    장천은 버럭 화를 냈지만, 심협은 그를 철저히 무시한 채 화동을 바라봤다.

    장천은 심협이 자신을 무시하자 화가 머리끝까지 솟구쳤다. 천궁에서 그가 어떤 신분인가? 이런 대우를 받아본 적이 없는 그는 바로 법보를 꺼내려 했다.

    하지만 그의 팔이 움직인 순간, 옆에서 말없이 서 있던 노인이 막았다.

    “도련님, 대당 관부와 황실은 세력이 막강한 반면 우리 천정은 이번 마겁으로 세력이 크게 손실되었고, 삼계의 모든 세력이 지금 천정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습니다. 지금은 대당 황실에 밉보일 때가 아닙니다.”

    금의 노인이 전음으로 말했다.

    “저놈이 날 무시하는데 이대로 넘어가란 소리요?”

    “화 장로가 축일검(逐日劍)에 금조정백(金鳥精魄)을 봉인하는 데 성공하여 기령이 되었습니다. 금조진화(金鳥眞火)의 위력은 도련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러니 저놈을 상대하는 것은 화동 장로에게 맡겨두십시오.”

    금의 노인은 심협을 흘끗 바라봤다. 두 눈에서는 차가운 빛이 흘렀다.

    “하긴…….”

    그 말은 들은 장천은 기분이 풀려 미소를 짓기까지 했다..

    “하면, 심 도우는 무엇을 바라시오?”

    화동이 문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보상 같은 건 필요 없소. 내가 세 합을 받아낸다면, 세 사람은 앞으로 내 이름을 듣는 순간 바로 내 눈앞에서 사라지시오!”

    심협의 표정도 차갑게 변했다.

    “허! 배짱이 두둑하군! 좋소!”

    화동의 얼굴에 붉은 기운이 스쳐 지나가자 오른손에서 금색 불꽃이 활활 타올랐다.

    이 불꽃은 매우 순수하여 잡색(雜色)이 전혀 없었다. 안에서 은연중에 보이는, 발이 세 개 달린 신조의 허상에서 태양처럼 뜨거운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심 도우, 조심하시오. 저건 금조진화인데 위력이 그대의 주작진화보다 약하지 않소. 금조가 아직 존재할 줄은 몰랐군.”

    심협의 머릿속에 화령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금조진화라…….’

    이 말을 들은 심협의 머릿속에 갑자기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우선 일 합이오!”

    화동이 우렁차게 외치며 손을 휘두르자 허공이 크게 일그러졌다.

    심협도 손을 들어 올렸는데, 그 위로 짙은 푸른 빛이 감돌았다. 바로 진창해 신통이었다.

    진창해 신통은 끊임없이 정진하여 한기가 함축되고 깊어지기 시작했기에 시전할 때 이전처럼 강력한 한기의 위세가 느껴지지 않았다.

    꽝!

    금(金)과 청(靑)의 두 손이 충돌하자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심협의 손에 맺힌 푸른 빛은 금조진화를 완벽하게 막아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조금씩 상대를 제압하기 시작했다.

    “아니!”

    화동은 깜짝 놀랐지만 이내 침착함을 되찾았다.

    그는 다른 손으로도 금조진화를 발동하더니 그대로 공격했다. 첫 번째 공격보다 두 배는 강했고, 새의 울음소리 또한 더욱 선명하게 들려왔다.

    심협의 오른손도 푸른 빛으로 번득였고, 손에서 어렴풋이 빙산의 허상이 보였다.

    꽈르릉!

    천둥 같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심협은 화동의 두 번째 공격도 어렵지 않게 받아냈다.

    금조진화는 발버둥 치며 푸른 빛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빙산의 허상이 더욱 무겁게 옥죄어온 탓에 조금도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화동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됐다가, 이내 분노로 이를 갈았다. 그의 온몸에서 뿜어져 나온 금색 불꽃이 순식간에 반경 수십 장을 뒤덮었다.

    “금조강세(金鳥降世)!”

    화동이 짧게 외치면서 손을 휘둘렀다.

    주위의 금색 불꽃이 모여들더니 순식간에 수십 장 길이의 발이 세 개 달린 금조 형상을 이루어 날개를 활짝 펼친 채 심협을 향해 돌진했다.

    금조가 날아오기도 전이었는데 심협 주위의 허공은 붉게 물들었고, 격렬한 파동이 끊이지 않았다. 마치 공간까지 불에 타는 것만 같았다.

    이 광경을 본 심협은 놀라기는커녕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양손을 결인했다. 그러자 하늘을 찌르는 푸른 빛이 몸에서 폭발했는데, 그 안에는 미세한 하얀 빛이 섞여 있었다.

    휙!

    금조와 푸른 빛이 충돌했는데도 예상했던 굉음 대신 가벼운 바람 소리만 울렸고, 둘 모두 허공에서 사라졌다.

    “내 금조진화가 사라지다니! 저놈이 내 진화를 삼켰구나!”

    화동이 경악하더니 상황을 알아채고 분노를 담아 외쳤다.

    한편, 장천과 금의의 노인도 이 광경을 믿지 못하겠는지 눈이 휘둥그레졌다.

    금조진화의 위력은 그들이 잘 알고 있었는데, 상품 법보도 태워 버릴 정도였다. 한데 저자는 별로 강해 보이지도 않는 푸른 빛으로 어떻게 저리 쉽게 막아냈단 말인가?

    “약조한 삼 합은 지났소. 이제 된 거요?”

    심협은 옷을 툭툭 털며 푸른 빛을 없애고는 담담하게 말했다.

    화동은 핏빛으로 번득이는 두 눈으로 심협을 노려보았다.

    축일검 안의 금조진화는 6할이나 줄어든 상태였고, 금조 기령은 크게 손상되어 앞으로 회복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였다. 이 끓어오르는 분노는 삼강사해(三江四海)를 전부 퍼부어도 꺼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

    다만 심협의 신통이 너무도 신묘하여 어떻게 금조진화를 삼킨 것인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기에 계속 싸운다 해도 우위를 점하기는 어려울 듯했다.

    그때, 몇 개의 둔광이 황성 방향에서부터 날아왔다. 황궁의 수사들이 이곳의 움직임을 눈치챈 것이다.

    “갑시다!”

    화동이 옷을 펄럭이며 뒤로 돌더니 단숨에 멀리 사라졌다.

    장천도 심협은 자신이 상대할 수 있는 자가 아님을 깨닫고는 거만함이 사라진 얼굴로 금의의 노인과 함께 말없이 화동의 뒤를 따랐다.

    심협도 곧장 다른 방향으로 사라졌다.

    좀 전까지 이들이 있던 곳에 도착한 둔광에서는 조정의 관료들이 나타났다.

    이들도 고수답게 땅이 녹고 얼어붙은 흔적을 통해 술법을 시전한 자의 무시무시한 실력을 알아챘다. 이들은 주위를 살펴보고는 그곳의 흔적을 깔끔하게 정리한 뒤 원천강에게 보고하기 위해 흠천감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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