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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858화 (858/1,214)
  • 858화. 보물

    “국공께서 실종되셨다니요? 어제 대전 때 가장 먼저 대안탑을 지키러 가시지 않았습니까?”

    심협이 깜짝 놀란 듯 물었다.

    “우리도 영문을 알 수 없어서 미칠 지경이네. 이미 사람을 보내 대안탑 근처를 수색했는데, 아무런 소식이 없네.”

    육화명의 얼굴에는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국공 대인은 경지가 높으시니 별일 없을 겁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러길 바라네. 그나저나 심형은 무슨 일로 왔나?”

    육화명이 한숨을 쉬더니 물었다.

    “성에 나타난 균열을 조사하고 수소문을 해본 결과, 어떤 정보를 얻었습니다.”

    심협은 장정이 봤다는 상황을 육화명에게 전했다.

    “대당 관부도 사람을 보내 균열을 조사했지만 별다른 단서가 없었는데, 심 도우가 알아낸 정보가 매우 중요해 보이는군. 이 일은 바로 원 국사께 알려야겠네. 육 현질, 자네가 심 도우와 함께 가보게.”

    가장 침착해 보이는 황목상인이 말했다.

    “알겠습니다.”

    두 사람이 도착해보니 흠천감에서는 국사 원천강이 법단 위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었다. 무슨 술법을 시전하는 것 같았다.

    한쪽에는 제자로 보이는 두 사람이 서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은 이숙(李淑)이었다.

    여러 해 동안 만나지 못한 사이에 이숙은 이전보다 경지나 외모 모두 더 성숙해 보였다. 이미 대승 후기에 도달해 진선기까지 멀지 않은 듯했다.

    심협은 속으로 감탄했다. 이숙은 수련 자질이 그리 출중한 편은 아니었다. 한데 마지막으로 보타산에서 만났을 때 응혼기에 불과했던 그녀가 백여 년 만에 이 정도 경지에 도달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다른 한 명은 황금색 옷을 입은 청년이었다. 아홉 마리의 용이 수놓인 옷은 대당 황족 복식과는 조금 달랐다. 날카로운 눈매와 뚜렷한 눈빛. 외모는 준수했지만, 눈빛에서 은근히 흘러나오는 거만함은 누가 봐도 신분이 높아 보였다.

    이 청년은 진선기였지만, 아직 초입이었는지 기운이 조금 불안정했다.

    육화명은 멀리서 이 광경을 보고는 걸음을 멈췄다.

    “화명, 심 도우. 왔는가? 어서들 들어오게.”

    원천강이 술법 시전을 멈추고는 두 사람을 반겼다.

    “예.”

    육화명이 대답하고는 심협과 함께 들어갔다.

    “심 오라버니.”

    이숙은 심협을 보자 눈이 반짝였는데, 옆에 있던 금색 옷의 청년은 이를 보고 불쾌한 듯 싸늘한 눈빛으로 심협을 노려봤다.

    “숙 공주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심협의 날카로운 감각은 금의(金衣) 청년의 적의를 눈치챘지만, 신경 쓰지 않고 이숙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국사님, 심 도우가 성에서 균열을 조사하다가 어떤 정황을 발견했다 합니다. 중요한 정보인 듯해 함께 보고를 드리러 왔습니다.”

    육화명은 두 사람과 자주 만나는 사이였는지 개의치 않고 심협이 알아낸 정보를 자세하게 설명했다.

    “이리 중요한 정보를 알아내다니, 이로써 더 많은 사실을 점칠 수 있게 됐군. 심 소우, 큰 공을 세웠네.”

    “과찬이십니다. 그저 지금의 난국을 하루빨리 해결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소동은 가라앉았지만, 이 소동의 근원을 알아내지 못한다면 머지않아 다시 일어날 겁니다.”

    심협은 기뻐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심형의 말은 이런 일이 또 일어날 수 있다는 건가?”

    육화명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어제 그 여우 요물이 삼계의 평화를 무너트리겠다고 호언장담하지 않았소? 게다가 소란의 규모가 컸지만 어딘지 모르게 용두사미로 끝난 느낌이었소. 뭔가 또 다른 일을 벌일 것 같다는 예감이 드오.”

    “설마……?”

    육화명은 믿을 수 없다는 눈치였다.

    “아니, 심 소우 추측이 정확하다. 화명, 자네는 바로 대당 관부의 모든 장로에게 알려 성안의 경계를 강화하도록 해라. 숙아, 천아. 너희는 다른 종파의 도우들에게 더욱 조심하라고 이르거라.”

    원천강이 신중해진 표정으로 이숙 그리고 금의의 청년에게 말했다.

    “네, 스승님.”

    이숙과 청년은 대답한 뒤 각자 전송 법기를 꺼내 한쪽에서 술법을 시전했다.

    “심 소우, 경지의 진전이 빨라서 벌써 진선기로 돌파했군. 그럼 이전의 그 우환은 해결되었나?”

    원천강이 이전에는 상황이 급박해 묻지 못했던 것을 물었다.

    “아직입니다. 뇌겁으로 절반 정도 줄였지만, 다시 빠르게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다행히 몇 개의 순양 법보를 더 얻었고, 순양의 힘을 깨달아 그 우환을 억제할 수단을 찾았으니 당분간은 문제없을 것 같습니다.”

    심협은 원천강이 말한 우환이 무엇인지 이해하고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진선 뇌겁의 힘으로도 제거할 수 없다니…….”

    원천강은 가볍게 신음하더니 중얼거렸다.

    “스승님, 무슨 우환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심 오라버니가 어디 아픈가요?”

    이숙이 관심을 보이며 다가오자 금의의 청년도 재빨리 뒤를 따랐는데, 심협을 보는 눈빛은 여전히 싸늘했다.

    “별것 아닙니다. 그저 국사님과 담소를 나눴을 뿐입니다. 국사님께서 바쁘실 테니 저는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심협은 자신의 몸에 마기가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기에 그렇게 말하고는 가보려 했다.

    “심 소우, 서두르지 말게. 방금 자네가 알려준 정보는 매우 가치가 크다네. 게다가 어제 요마의 소란 때도 큰 도움이 되었는데, 조정에서 감사를 표하지 않을 수 없지. 숙아, 심 도우와 함께 황가의 보물창고로 가서 현화옥(玄火玉)과 화린목을 비롯해 순양 보물 몇 가지를 내어주거라.”

    원천강이 심협을 불러 세우고는 말했다.

    심협은 이미 재산이 많았고 이번 일은 보수를 노린 것이 아니었기에 사양하려다가 ‘화린목’이라는 말을 듣고는 얼른 입을 다물었다. 비록 그간 순양검의 위력을 끌어올려 기령까지 생기게 됐지만, 아무리 경지가 올라도 진정한 고수 앞에서는 순양검결의 초반 3식으로는 부족했다. 그 문제는 특히 동해 용궁의 싸움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그러니 후반부 검결 수련을 서둘러야 했다.

    후반부 검결 수련에는 더 많은 비검이 필요했기에 그동안 줄곧 두 번째 순양검을 만들 재료를 찾아다녔다. 한데 다른 재료는 모두 찾았지만 주재료는 여전히 부족했다. 첫 번째 순양검이 화린목을 주재료로 했기에 두 번째 비검도 같은 화린목으로 만들고 싶었지만, 워낙 희귀한 영재라 지금까지 찾지 못했다. 그러니 이런 기회를 사양하기는 힘들었다.

    “네, 스승님. 심 오라버니, 저와 같이 가요.”

    심협은 들뜬 마음을 숨기며 원천강과 육화명에게 인사를 남기고는 이숙을 따라 황성 깊은 곳의 은밀한 대전으로 향했다.

    굳게 닫힌 암금색 문 위로 구룡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제각기 고개를 들거나 숙인 채 서로 뒤엉킨 아홉 마리의 신룡은 정말로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이곳을 지키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지만, 신식으로 살펴보니 주위에 몇 개의 강력한 기운이 숨어 있었다. 모두 진선기였고, 심지어 한 명은 진선 후기였다.

    ‘대당 관부 외에도 황실에 이리 많은 고수가 있다니, 이전에는 느껴본 적 없는 기운이다. 새로 영입한 것인가?’

    심협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숙이 금색 영패를 꺼내 결인하려 하는데 멀리서 누가 재빨리 날아와 두 사람 옆에 섰다. 바로 금의의 청년이었다.

    “장 사형, 여기는 왜 오셨죠?”

    이숙은 불쾌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애써 예의를 차렸다.

    “스승님께서 자염수(紫焰髓)을 가져다 달라 하셨소.”

    금의 청년의 말에 이숙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영패를 발동했다.

    “어제 요마의 난 때 멀리서 보니 사매가 상처를 입은 것 같던데, 여기 이 고본배원단(固本培元丹)을 복용하시오. 원기가 상하는 걸 막아줄 것이오.”

    금의의 청년은 작은 백옥 병을 꺼내 이숙에게 은밀히 건네주었다.

    “작은 상처이니 괜찮아요.”

    이숙은 단칼에 거절했다.

    “작은 상처라고 무시해서는 아니 되오. 고본배원단은 얻기 쉬운 게 아니오. 상처 치료 외에도 수련에 크게 도움 되니 어서 드시오.”

    “장 사형, 제가 말했죠? 평생 선도를 추구하기로 했으니 나한테 남녀의 사사로운 정을 갖지 마세요. 괜히 나한테 시간 낭비하지 말라고요!”

    이숙이 표정을 확 바뀌더니 더 화를 내려다가 간신히 억누르고는 돌아서서 계속 술법을 시전했다. 결국, 병은 받지 않았다.

    금의 청년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해졌고, 눈에는 원망의 빛이 떠올랐다가 이내 사라졌다.

    옆에 서 있던 심협은 이 광경을 모두 목격하고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이숙이 금색 영패를 발동하고는 손가락 끝을 그어 선혈을 한 방울 떨어트렸다.

    영패의 문로가 마치 살아난 것처럼 꿈틀거리더니 아홉 마리 용의 형상이 금빛과 함께 뿜어져 나와 문에 있는 구룡 벽화와 하나가 되었다.

    암금색 대문에서 갑자기 금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아홉 마리의 신룡이 빠르게 움직였고, 마지막에는 대문 한쪽에 자리를 잡았다. 이어서 머리와 꼬리가 서로 연결되었다.

    두껍고 커다란 문에서 끊임없이 찰칵거리는 소리가 울렸고, 일각이 지나서야 소리가 그치고 문은 천천히 열렸다.

    “심 오라버니, 들어가요.”

    이숙이 영패를 넣고는 심협의 소매를 잡아 끌며 들어갔다.

    심협은 내심 당황했다.

    ‘이숙 공주가 날 방패막이 삼아 저 청년을 떼어내려는 건 아니겠지……’

    그때였다.

    “심 오라버니, 저 짜증나는 장천(張川)이 포기할 수 있게 나 좀 도와줘요.”

    이숙의 목소리가 심협의 귓가에 들려왔다.

    심협은 어이없다는 듯이 이숙을 바라보더니 이내 말없이 그녀에게 이끌려 보물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이 손을 잡고 가는 것 같은 광경에 금의 청년, 장천의 얼굴이 벌게졌고, 목에는 핏줄이 섰다. 그러나 이내 길게 숨을 내쉬고는 간신히 평정을 되찾았고, 보물창고로는 들어오지 않고 돌아갔다.

    “갔습니다.”

    “심 오라버니, 정말 미안해요. 어쩔 수가 없었어요. 이해해 주세요.”

    이숙이 미안함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떻게 된 겁니까? 저자는 누구고요?”

    심협이 의외라는 듯 물었다.

    한때 대당의 공주였던 이숙이다. 백여 년이 지나 황제가 바뀌었으니 이숙도 더는 공주가 아니겠지만, 그래도 그녀는 황족 혈통이다. 게다가 원천강이라는 배후가 있으니 누구에게도 겁박을 받을 존재가 아니었다.

    “장천이라는 자예요. 천궁 문하 제자죠. 마겁이 사라졌어도 지금 삼계는 조금씩 혼란스러워져서 각 세력이 조금씩 태동하여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우리 대당이 남첨부주 절반을 제패했고, 장안성이 수련에 큰 도움이 되는 남첨부주의 용맥이 모이는 곳에 있다 보니 각 세력의 노림수에 시달리고 있죠. 그래서 몇 년 동안 조정은 전력을 다해 맹우를 만들었어요. 최근에 천궁은 대당과 좋은 관계를 맺게 됐지요.”

    “그렇군요. 그럼 장천과 공주님은 어떻게 된 겁니까?”

    심협은 대당도 삼계 분란의 영향을 받고 있을 줄은 몰랐기에 내심 놀라며 물었다.

    “장천은 천중의 중요 인물인데, 듣기로는 옥제의 친척이래요. 황실과 천궁의 관계를 돈독하게 하려고 장안에 머물면서 스승님의 제자가 되라는 명령을 받고 이곳으로 왔죠. 수선계에서 동시에 두 종문을 섬기는 것이 드문 일은 아니지만, 저자는 머리가 어떻게 됐는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나를 보자마자 혼인을 올리자고 쫓아다니고 있어요. 아무래도 천궁 사람이다 보니 스승님도 강하게 제지는 못 하시는 상황이고요.”

    이숙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심협은 일의 자초지종을 듣고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는 어디까지나 대당과 천궁 사이의 일일 뿐이다. 자신이 이숙과 친분이 있다고는 해도 그리 긴밀한 사이는 아니다. 게다가 이제 그는 이전의 산수가 아니라 보호해야 할 동문과 제자들이 있다. 이숙을 돕는 것은 오늘 정도로도 충분했다.

    이숙은 심협의 반응을 보고는 말없이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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