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856화 (856/1,214)
  • 856화. 백호살력(白虎殺力)

    말을 마친 유동은 몸을 꿈틀거려 천천히 유광 옆으로 다가가 어깨에 올라탔다.

    뒤이어 심협과 원천강이 의아한 눈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유동의 벌레 같은 몸이 혈광과 함께 흐려지더니 조금씩 유광의 몸으로 녹아들었다.

    그러자 유광의 얼굴에 곧장 변화가 일어났는데, 준수했던 외모가 순식간에 사라지더니 얼굴에 주름이 생겨나 백 살은 먹은 듯한 노인으로 변했다. 또한 본래 뱀의 꼬리 같았던 하반신에 피와 살이 뭉쳐지더니 두꺼운 두 개의 다리가 생겨났다. 웅장한 기운이 증폭하자 그는 두 발로 선 한 마리의 도마뱀처럼 변했다. 또한 진선 후기 절정이었던 경지는 단숨에 태을 초기까지 치솟았다.

    “원천강, 어떠냐? 이래도 대진을 포기하지 않을 셈이냐? 끝까지 화신으로 맞붙으려 든다면 오늘은 죽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경지가 올라간 유광은 자신감이 극에 달했는지 심협은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자신 있으면 해보던가.”

    원천강의 화신은 껄껄 웃었다. 또한, 말을 마친 그의 몸 아래에서 갑자기 하얀 빛이 번쩍이니 순식간에 제자리에서 사라졌고, 다음 순간 유광 앞에 나타났다. 그의 손에서는 보경이 다시 한번 하얀 빛을 뿜어 유광의 몸을 뒤덮었다.

    “빠르다!”

    지금까지보다 훨씬 빨라진 속도에 유광은 미처 피하지 못하고 다시 한번 빛에 휩싸여 몸이 굳어버렸다.

    동시에 그의 뒤에 심협이 나타났다.

    불꽃이 타오르는 적홍색 검을 찌르자 날에서는 청명한 소리가 울려 퍼졌고, 한 마리 화조(火鳥)의 형상이 나타나 유광의 몸을 갈기갈기 찢으려 했다.

    한데 일순 당황한 것처럼 보였던 유광이 갑자기 씩 웃더니 몸을 살짝 흔들었다. 그러자 온몸을 뒤덮은 하얀 빛은 마치 거울처럼 깨지며 흩어졌다.

    이어서 뒤에 죽 늘어져 있던 꼬리를 휘둘러 그대로 심협의 허리를 휘감더니 허공으로 내던졌다.

    밀려나지 않으려 버티던 심협의 갈비뼈가 부러졌고, 그는 고통에 일순 숨도 쉬지 못했다.

    이와 동시에 유광이 양손을 휘둘러 흑과 옥의 두 색깔 쌍검을 꺼내 서로 교차시켰다.

    꾸르릉!

    천둥소리가 울리더니 검에서 갑자기 용솟음친 시커먼 뇌전이 원천강의 화신을 향해 날아갔다.

    원천강의 화신은 뭔가를 작게 읊조리고는 보경을 앞으로 내밀었다. 거울에서 뿜어져 나온 하얀 빛이 팔각형 빛의 방패가 되어 앞을 막았다.

    콰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방패가 부서졌다. 강력한 전광도 흩어지만, 사라지지는 않은 채 거미줄처럼 퍼져서 원천강의 화신을 위에서부터 뒤덮으며 내려왔다.

    이를 본 원천강의 화신은 몸을 피하려 했다.

    그러나 미처 피하기도 전에 뒤에서 돌풍이 휘몰아치더니 유광이 순식간에 다가와 뇌검으로 찔러왔다.

    이 절체절명의 순간!

    “뭐냐!”

    유광의 몸이 우뚝 멈췄고, 장검은 원천강의 등 바로 앞에서 간발의 차이로 멈췄다.

    고개를 돌려 보니 어느새 심협이 양손으로 그의 꼬리를 꽉 움켜쥐고는 힘껏 잡아당기고 있었다.

    “정녕 죽고 싶은 게냐!”

    유광은 분노로 일갈했고, 앞에 있는 원천강의 화신을 향해 검을 휘둘러 거리를 벌린 후 긴 꼬리로 다시 심협을 감싸 자신의 앞으로 들어 올렸다.

    유광이 양손의 장검을 가위처럼 교차하며 심협 쪽으로 내밀었다.

    두 자루 장검이 교차하자 실오라기 같은 시커먼 뇌전이 끊임없이 모여들어 점점 강렬하게 떨리는 검은색 뇌구(雷球)가 만들어졌고, 뇌구에서 퍼져 나오는 강력한 영압에 허공마저 일그러졌다.

    심협은 그 안에 담긴 살기와 위력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하앗!”

    그는 기합을 내지르며 전력으로 현양화마비술을 발동했다. 치우 마기와 순양의 힘이 동시에 솟구치자 몸이 순식간에 변해갔다. 용린과 마갑이 동시에 몸을 덮었고, 머리에는 뿔이 솟았으며, 미간에 세로의 눈이 생겨났다.

    동시에 그의 경지도 빠르게 폭증하여 순식간에 진선 중기 절정에 도달했다.

    갑작스러운 심협의 변화를 본 유광은 내심 놀랐지만,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현뇌비술(玄雷祕術)을 마저 완성시켰다.

    “죽어라!”

    유광이 포효와 함께 교차한 양손의 검을 내리치자 더없이 단단한 시커먼 뇌구가 심협의 심장을 향해 곧장 날아갔다.

    한편, 심협이 온몸의 기운을 개방하자 폭음과 함께 무형의 기운이 폭발하더니 유광의 꼬리를 떨쳐냈다. 다만 심협은 날아오는 뇌구를 피하기에는 늦었음을 알았기에 오히려 허공을 딛으며 수중의 순양비검을 크게 휘둘렀다.

    “이미 늦었다!”

    유광이 비릿하게 비웃었다.

    검은색 뇌구와 순양비검이 충돌하기 전에 팔각 청동거울이 날아와 눈부신 하얀 빛을 뿜어내며 그 사이로 끼어들었다.

    눈부신 하얀 빛에 시공이 느려지면서 마치 모든 것이 멈춘 것 같았다.

    다음 순간, 하늘에서 폭음이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퍼펑!

    이어서 하얀 빛은 도자기처럼 산산조각이 났지만, 별처럼 떨어져 내리면서도 그대로 사라지지 않고 점차 거대한 소용돌이처럼 변해 검은색 뇌구가 뿜어내는 번개를 미친 듯이 흡수했다.

    흑백의 빛이 교차하면서 대량의 검은 번개가 흡수되자 소용돌이 중심부의 하얀 빛은 점점 강렬해졌다.

    퍼펑!

    폭발음과 함께 소용돌이는 흩어졌고, 팔각형의 청동 거울도 함께 폭발했다.

    강력하기 그지없는 충격파가 거울에서 뿜어져 나오자 이미 모든 힘을 소모한 검은색 뇌구도 완전히 부서져 사라졌다.

    검은 번개가 섞여 있는 소용돌이가 폭발한 여파는 진선 수사에게 중상을 입힐 정도로 광포했다.

    그때, 폭풍 속에서 붉은 불꽃이 반짝였고, 이 불꽃은 순식간에 커지더니 그 안에서 심협이 소용돌이를 뚫고 나와 유광의 머리를 향해 장검을 크게 내리쳤다.

    위험을 감지한 유광의 눈이 살짝 떨려왔다.

    그가 피하기도 전에 하늘에서 갑자기 맹호의 포효가 들려오더니 하얀 빛의 기둥이 서쪽 하늘에서 쏟아져 내려왔다.

    “이건…… 백호살력(白虎殺力)!”

    유광이 기겁했다.

    그는 원천강이 사상 중에서 살상력이 가장 강한 백호의 힘을 단독으로 끌어낼 줄은 몰랐다. 사상천시대진의 균형이 없는 상황에서의 이 힘은 시전자가 정확하게 이끌지 못한다면 인과 마의 구분 없이 모든 것을 도륙하는 진정한 파멸의 힘이 된다.

    “원천강, 네가 미쳤구나! 장안 백성까지 다 죽일 셈이냐?”

    유광이 소리쳤다.

    “네가 받아낼 수 있을까?”

    제단에 가부좌를 튼 원천강의 두 눈과 귀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에게도 큰 부담인 것만은 분명했다.

    한데 유광은 이내 하얀 빛의 기둥이 향한 것은 자신이 아니라 허공에 뛰어오른 사람임을 알아챘다.

    “진짜 미쳤군!”

    유광은 짧게 외치고는 달아나려 했다.

    하얀 빛의 기둥 속, 심협의 온몸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더니 순식간에 하얀 빛에 타서 사라졌다. 그의 미간에 있는 세로로 새겨진 눈은 굳게 감겨 있었지만, 거기서도 피가 흐르고 있었다. 다만 얼굴에는 사악한 미소가 가득했다.

    그의 몸을 뒤덮은 하얀 빛의 기둥이 점점 줄어들었고, 마침내 그의 순양비검에 모여들었다. 이제 순양비검은 하늘을 찌르는 하얀 검광이 되었다.

    “죽어라!”

    살의가 가득한 외침과 함께 심협은 검을 양손으로 크게 휘둘렀다. 한 줄기 하얀 빛이 천 장 길이의 검광이 되어 하늘에서부터 유광을 향해 떨어졌다.

    겁을 집어먹고 달아나던 유광은 짙은 살의가 자신의 몸을 뒤덮었음을 뒤늦게 알아챘다.

    황궁 영역에서 막 벗어났을 때, 설백의 검광이 그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도저히 피할 수가 없었다.

    “안 돼!”

    그는 두 자루 검을 교차하여 막으려고 했다.

    그러나 두 개의 검은 속수무책으로 부서졌고, 하얀 검광이 그의 몸을 가로질렀다.

    “크아악!”

    처절한 비명은 유동의 것이었다. 그는 검광이 떨어지는 순간 유광의 몸에서 나와 도망치려 했지만 실패했고, 그렇게 생을 마감했다.

    두 사람의 몸은 결국 설백의 검광에 그대로 잿더미가 되었다.

    광장에서는 심협이 추락해 땅에 처박혔다. 이미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그의 몸에는 어떤 상처도 없었지만, 얼굴은 창백했고, 두 눈에는 실핏줄이 가득했다. 기혈이 텅 비어버린 것이다.

    “괜찮은가?”

    원천강이 물었다.

    그의 화신은 아까 폭발을 무릅쓰고 팔각형의 청동 거울로 심협에게 떨어지는 일격을 막아내느라 법력이 모두 소모되어 더는 유지할 수 없었다.

    “살아 있긴 합니다.”

    그는 온몸의 뼈가 부서진 것처럼 격렬한 고통이 느껴졌고 땅에 누워서 꿈쩍도 할 수 없었기에 힘없는 목소리로 그렇게 답했다.

    노란색 단약이 그의 앞까지 천천히 날아왔다.

    “지금은 쉬고 있을 때가 아니니 서둘러 정양하고 회복하게. 서둘러 도요요를 봉인해야 해. 대안탑 쪽에서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난 게 느껴지는군.”

    심협은 크게 한숨을 쉬고는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고통에 절로 표정이 일그러졌지만, 이를 악물고 참아내고는 단약을 먹었다.

    뜨거운 기운이 천천히 뱃속에서 흐르기 시작하자 그는 바로 가부좌를 틀고 정양을 시작했다.

    영력이 충만한 게 등급이 매우 높은 단약임에 분명했다. 정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약력이 완전히 녹아들지 않았는데도 고통이 절반은 줄었고 단전의 공허감도 점점 사라졌다.

    “이제 됐나?”

    그가 약력을 완전히 흡수하기도 전에 원천강이 다시 재촉해왔다.

    “선배님, 진선기 수사에게 너무 가혹하신 거 아닙니까?”

    심협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답했다.

    “지금은 비상시라 어쩔 수 없네. 이리 와서 산하사직도를 꺼내게. 함께 발동하세.”

    원천강의 재촉에 심협도 서둘러 그의 옆으로 가서 가부좌를 틀었다.

    심협은 그제야 원천강의 두 눈과 귀의 핏자국을 발견했는데, 그 모습은 너무나 처참했다.

    “선배님…….”

    “난 괜찮으니 한눈 팔지 말고 전력을 다해 산하사직도를 발동하게. 내가 자네를 도와서 도요요를 봉인하지.”

    원천강은 가볍게 기침을 하고는 말했다.

    심협은 말없이 손을 휘둘러 산하사직도를 꺼냈다.

    그 순간, 보이지 않는 기류가 주위를 감쌌고, 하늘의 구름도 달라졌다. 그러나 지금 장안성은 혼란에 빠져 있는 데다 사상천시대진이 하늘을 덮고 있었기에 이 변화를 눈치챈 사람은 없었다.

    “시작하겠습니다.”

    심협이 손을 들자 산하사직도가 펼쳐지더니 조금씩 하늘 높이 올라갔다.

    이를 본 원천강이 무언가를 중얼거리자 몸이 번득였고, 바람 한 점 없는데도 보라색 도포가 펄럭이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원천강이 눈을 부릅떴다. 두 눈에서는 금빛이 뿜어져 나와 산하사직도로 향했다.

    사람의 허상이 두 줄기의 빛을 이끌며 날아갔고, 빛이 산하사직도 들어갔다. 그러자 원천강의 몸이 떨리더니 기운이 순식간에 절반으로 떨어졌다.

    “선배님!”

    심협은 가슴이 철렁하여 자신도 모르게 외쳤다.

    “집중하게!”

    원천강의 근엄한 목소리에 심협은 이를 악물고 두 눈을 감은 채 산하사직도에 집중했다.

    그때, 산하사직도가 갑자기 하늘 높이 날아오르더니 대당 관부 쪽으로 날아갔다. 두루마리는 대당 관부 위쪽 허공에 녹아들어 점점 허화되었다. 동시에 그림 속의 산수가 허공에 나타났는데, 여전히 수묵으로 그린 그림이었다.

    “도요요가 느껴졌는가?”

    “네.”

    “그럼 심신을 모아 산하사직도를 발동하게.”

    심협은 그 말에 따랐다.

    산하사직도 중앙에 구름이 몰려오더니 거대한 소용돌이가 생겨나 아래를 뒤덮었다.

    “누구냐!”

    멀리서 도요요의 외침이 들려왔다.

    뒤이어 관부 쪽에서 요란한 소리가 울렸고, 격렬한 천지영기의 파동이 용솟음치면서 요란하게 흔들렸다. 도요요가 저항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산하사직도는 이미 도요요의 결계 밖을 점령했고, 완전히 펼쳐졌으니 그 위능을 그녀가 막아낼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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