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3화. 나가다
사람들은 눈앞의 광경에 경악했다.
공도선사는 진정한 태을 경지의 수사였다. 비록 자비를 베푸는 출가인이지만, 금강 방호(防護)로 명성이 자자했다. 아무리 살상력은 강하지 않다 해도 그 공격은 아무나 쉽게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한동안 모두가 도요요의 정체를 추측하기 바빴다.
그 무렵, 심협은 머릿속에 무언가가 떠올랐다. 고서에 적혀 있던 상고 시대의 소문이었다. 거기에는 ‘도요요’라는 제목의 고문(古文)이 있었다. 천지 만물이 처음 탄생할 때 첫 번째로 태어난 복숭아나무로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복숭아나무의 선조라 하였다.
‘어여쁘게 핀 복숭아꽃, 그 빛이 찬란하구나(桃之夭夭, 灼灼其華)’라는 고시(古詩)도 있었다.
예로부터 모든 복숭아나무는 사악함을 물리치는 성물로 여겨졌다. 도가와도 깊은 연관이 있어서 역대 천사(天師)들은 모두 요물을 베는 보검과 오뇌(五雷) 영패, 심지어 법인까지 복숭아나무로 만들었다.
천지 창조 초창기의 물건으로서 특별한 게 없을지라도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는 것만으로도 분명히 예사롭지 않을 터였다.
콰쾅!
또 한 번의 굉음과 함께 공도선사가 변한 금강은 다시 뒤로 밀려났고, 몸의 금빛이 줄어들면서 몸이 점점 원래대로 돌아왔다.
선사는 손을 세우며 말했다.
“도요요 시주의 도법은 하늘에 닿았으니 빈승이 뚫을 수가 없군요.”
“대승께서 많이 양보해주신 덕분이죠.”
도요요는 여전히 웃으며 말했다.
“도요요, 너와는 싸우고 싶지 않아.”
청련선자가 앞으로 나서며 한숨을 내쉬었다.
“싸우고 싶지 않으면 안 싸우면 되잖아. 그냥 담소나 나누자. 오랜만에 만났잖아.”
그때, 괴마왕이 자신의 민머리를 만지작거리며 청모사왕에게 말했다.
“다들 무슨 말이 저리 많은지…… 한 명이 안 되면 연합하면 될 것을……. 청사 도우, 어떻소? 우리가 연합하여 공격하면 우리 소행이라는 의심이 덜어지지 않겠소?”
청모사왕은 잠시 생각하더니 앞으로 나섰다. 동의한다는 뜻이리라.
“청련, 잠깐만 기다려. 저들을 해치우고 나서 다시 얘기하자.”
도요요는 전혀 두렵지 않은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청모사왕과 괴마왕은 그녀가 자신들을 얕잡아보자 눈빛이 싸늘하게 변했다. 자존심이 상했으리라.
두 사람이 막 돌진하려는 순간, 심협이 불쑥 나섰다.
“멈추시오. 더는 싸워서는 안 되오.”
모두가 그를 바라봤다.
“하! 진선기 애송이가 낄 자리가 아니다.”
괴마왕이 눈살을 찌푸리며 화를 냈다.
“그런 말은 주위를 둘러보기나 하고 하시오.”
심협의 목소리에 사람들은 황급히 주위를 살펴봤다. 그리고는 땅 곳곳에 퍼져 있는 균열 일부가 저 멀리 궁벽과 대전까지 뻗어 있는 것을 보고 가슴이 철렁했다.
“어떻게 된 거지? 나무가 다 죽었잖아!”
본래 푸르던 나무가 회백색으로 변하여 이미 말라죽은 상태였다. 심지어 바닥의 들풀도 마찬가지였다.
“도요요, 네 짓이구나!”
청련선자가 눈살을 찌푸렸다.
“호호! 가장 먼저 알아챈 게 당신일 줄은 몰랐네. 그래, 내 나무뿌리는 이미 장안성 아래 깊숙이 박혀 있고, 그 뿌리는 장안성 전체에 펴져 있어. 언제든지 지맥의 힘을 뽑아와 내 힘으로 쓸 수 있지. 뭐, 지금의 나는 불패불사라고나 할까?”
도요요는 의외라는 눈빛으로 심협을 바라보고는 웃었다.
“이렇게 일을 키웠다가는 다시는 돌이킬 수 없을지도 모르는데 두렵지도 않은가?”
이정이 근엄한 목소리로 꾸짖듯 말했다.
“나도 이러고 싶지 않으니까 더는 나를 난감하게 하지 말아줘. 정말 나를 몰아세워서 장안성의 모든 지맥의 힘을 뽑아낸다면 천년고성이 완전히 폐허가 될 거야.”
도요요가 웃음을 거두며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협박의 뜻이 전혀 없었지만, 누구도 그녀가 정말 그렇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심협이 눈살을 찌푸리고 있을 때, 소부자가 어느새 그의 뒤로 다가와 전음으로 몇 마디를 했다. 그러자 심협의 눈에도 화색이 돌았다.
그는 다시 걱정스런 표정으로 도요요에게 말했다.
“선배님, 그자가 선배님께 이곳에 있는 대능 수사들만 막아달라고 했지 우리 같은 사람들이 떠나지 못하게 하라는 말은 없지 않았습니까?”
도요요가 머리를 갸우뚱거리며 생각하더니 말했다.
“응, 없었던 거 같아.”
“그렇다면 우리를 보내줘서 백성들을 돕게 해주실 수 있습니까? 저들은 아무런 죄가 없습니다.”
심협의 말을 들은 도요요는 머뭇거렸다.
“백성들은 해마다 선배님이 계신 곳을 찾아가 복숭아나무 숲에서 술을 마시고 봄을 즐겼습니다. 그들 중 적지 않은 사람이 선배님의 단골일 겁니다. 선배님은 그런 백성들이 고통에 빠지는 데 일조하실 생각입니까?”
심협의 말에 도요요는 눈빛이 흔들렸다.
“좋아, 태을 아래의 수사는 다 나가도 좋아. 막지 않겠어.”
이어서 그녀가 손을 휘두르자 광장 서쪽의 분홍색 안개 장벽에 천천히 둥근 통로가 생겨났다.
“감사합니다.”
심협은 그녀를 향해 공수하고는 뒤돌아보지도 않고 나갔다.
호불귀도 빙빙선자에게 무슨 말인가를 건네고는 바로 뒤를 따랐다.
곧이어 광장에 있던 다른 태을 아래의 수사들이 일제히 그곳으로 빠져나갔다.
어린 호족 미소도 지금의 변고에 놀라 정신을 놓고 있다가 두 어른 손에 이끌려 빠져나갈 수 있었다.
모두가 떠나자 광장은 텅 비어버렸고, 도요요는 열었던 통로를 다시 막았다.
* * *
대당 관부에서 빠져나온 심협은 관부 밖의 광경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거리에는 거대한 균열이 백여 장까지 늘어나 있었고, 균열 사이에는 검은 피와 그을린 흔적이 있었으며, 또 기이한 생물의 말라붙은 가죽이 적잖이 보였다.
그가 상황을 살피고 있는데 뒤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그건 사마가 죽고 마혈이 사라지면서 가죽만 남은 시체요.”
심협이 돌아보자 호불귀가 서 있었다.
“심형은 내가 반사동 제자이기 때문에 내게 적개심이 생긴 것이오?”
심협이 아무런 말도 없자 호불귀가 안타깝다는 듯 혀를 찼다.
“적의가 아니라 그저 지금은 받아들이기 힘들 뿐이오.”
심협은 그를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내가 만약 우리 동주님은 이 사실에 대해 전혀 몰랐고 모두 화 장로가 독단으로 저지른 일이라고 하면 심형은 믿을 것이오?”
호불귀도 부끄러운 기색으로 말했다.
“내가 믿고 안 믿고는 중요하지 않소. 또 지금은 그런 걸 말할 때도 아니오.”
심협의 말이 끝날 때쯤 멀리서 다시 비명이 들려왔다.
그가 움직이기도 전에 호불귀가 벌써 그쪽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호불귀는 심협이 따라오지 않음을 알았고,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앞에서 대당 관부 제자 복장의 청년이 늑대 머리의 마수에게 몸이 눌려 있는 것을 보고는 곧장 달려들었다.
가까이 다가갔을 때, 그의 두 눈에서 갑자기 분홍색 이광(異光)이 번득였다.
그러자 마수의 두 눈에서도 이에 호응하듯 이광(異光)이 떠오르면서 눈빛이 바로 흐려졌고, 호불귀의 날카로운 발톱이 날아오는 동안에도 여전히 멍하니 있었다.
뒤이어 세 개의 차가운 빛이 마수의 몸을 스쳐 지나가자 사방으로 피가 튀면서 몸이 산산조각 났다.
죽고 나서야 마수의 눈에서 이광(異光)이 사라졌다.
마수의 시체에서 갑자기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마혈이 순식간에 증발하면서 금방 가죽만 남은 시체가 되었다.
한편, 심협은 거리를 빠르게 누비며 흠천감을 향해 날아갔다.
성안은 그의 예상보다 훨씬 심각하게 파괴된 상태였다. 특히 성을 뚫고 지나는 황실 정원 흥경호(興慶湖)의 강기슭은 아비규환이었다.
본래 벽돌로 쌓은 강기슭은 마치 거대한 생물과 연속으로 부딪힌 것처럼 연안은 전부 무너져 있었고, 맑은 강물은 온통 혼탁했다.
심협은 바닥에 흐르는 피와 강가의 시체를 보며 눈에서 분노가 일렁였다.
그가 황궁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도착했을 때, 갑자기 앞에서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그곳을 돌아보니 산발에 피로 얼룩진 장안 백성들이 황실 정원 밖의 문에 몰려 있는 게 보였다. 그리고 일고여덟 명의 우영위가 무기를 들고 백성들을 막아선 채 소리치고 있었다.
“죽고 싶은 것이냐? 감히 황실 정원에 들어오려고 하다니, 썩 물러가라!”
“아이고, 어르신. 부디 자비를 베푸셔서 안으로 들여보내 주십시오. 집은 요괴들에게 무너졌고 이제 피할 곳도 없습니다. 제발 안으로 들어가게 해주십시오. 요괴들이 모두 사라지면 바로 나가겠습니다.”
백발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비틀거리며 말했다.
“모두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 수사와 군사들의 보호를 기다리라는 관부의 명령이 있었다. 무턱대고 뛰어나오지 말고 안에서 기다려라. 괜히 명령을 어기고 밖으로 나오면 목숨을 잃을 수 있다. 어서 돌아가!”
우영위가 노인에게 명했다.
“병사들은 요괴를 막기는커녕 자기 목숨 하나 지키지 못하는데 누굴 보호한다는 겁니까?”
누군가가 큰소리로 외쳤다.
“이럴 때 가장 안전한 곳이 황궁인 걸 누가 모른단 말입니까? 우리는 그저 몸만 좀 피하겠다는 건데 그것도 못 해준단 말입니까?”
한 부인이 눈물을 흘리며 소리쳤다.
“으아앙!”
그녀 품에 있던 아기가 요란스레 울기 시작했다.
“어서 아이 좀 못 울게 하시오. 요괴들이 몰려올 거요!”
겁에 질린 청년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야수 같은 포효가 수로에서 들려왔다.
수로 한가운데서 물이 일렁이더니 거대한 지느러미가 튀어나왔고, 이내 이쪽을 향해 빠르게 돌진해왔다.
“괴수다!”
누군가 놀란 목소리로 외치자 사람들은 혼란에 빠졌고, 황실 정원의 문을 당기기 시작했다.
우영위로서 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병사가 큰소리로 외쳤다.
“물러가라! 어서 물러가. 지금 황실 정원에도 사마가 들어온 흔적이 있어서 찾고 있다. 너희가 이렇게 몰려오면 살아남아도 나중에 다 죽는단 말이다!”
“당장 죽게 생겼는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
“대당은 백성을 사랑한다며! 어서 들여보내 줘!”
“어서 문을 열어!”
각종 울부짖음이 울려 퍼졌고, 모두가 절망에 포효했다.
그때 수로에서 물보라가 일더니 3장 길이의 검은색 그림자가 심협의 머리 위를 지나 사람들에게 달려들었다.
“어서 비켜!”
두 명의 우영위는 백성들의 저지도 신경 쓰지 않고 서둘러 사람들 사이를 뚫고 지나가 각자의 법도를 꺼내서 위에서 떨어지는 사마를 향해 내리쳤다.
괴물은 마치 거대한 메기 같았지만 꼬리가 가늘었고, 몸에는 네 개의 날카로운 발이 달려 있었다. 녀석은 그 발로 두 우영위의 머리를 잡으려 했다.
챙! 챙!
두 번의 금속음이 울려 퍼졌다. 두 명의 우영위 수중의 장도에서 붉은 빛이 번득이더니 두 줄기 화염이 몇 장 길이의 호를 그리며 메기 마수의 몸을 내리쳤다.
메기 마수는 이를 보고도 피하지 않고 그대로 머리 위로 떨어졌다.
화염이 마수의 몸을 베면서 금속이 충돌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고, 불꽃은 바로 사라졌다. 이제야 모두의 눈에 메기 마수의 몸이 금속 비늘로 덮여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메기 마수가 날카로운 발톱을 휘두르자 세 줄기 푸른 빛이 뿜어져 날아가 두 명의 우영위를 쓰러트렸다. 뒤이어 입에서는 새빨간 혀가 순식간에 튀어나와 겁에 질려 있는 청년을 향해 곧장 날아갔다.
“어서 피해!”
우영위 몇 명이 소리치며 바로 달려왔다.
그중 한 명은 청년의 옷을 잡고 뒤로 끌어냈고, 다른 두 명은 좌우로 앞을 막아서며 날아오는 기다란 혀를 도(刀)로 내리쳤다.
챙!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메기 마수의 기다란 혀와 우영위의 도가 충돌했다. 순식간에 우영위가 뒤로 날아갔고, 그의 도는 부식되어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