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850화 (850/1,214)
  • 850화. 거리낌 없이

    “괴마왕, 빙빙선자, 양전, 청모사왕, 사건의 경위에 이의가 있습니까?”

    정교금이 말을 마치고는 양전 등을 돌아보며 물었다.

    “없습니다.”

    양전은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가장 먼저 말했다. 그의 말투는 건조했다.

    “반사동의 동주이자 한 종문의 장문인이지만, 저는 정말로 이번 일에 대해 몰랐습니다. 제 사저 화십낭의 단독행동이었지요. 같은 도종의 종문에 많은 피해을 끼친 점, 정말 송구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빙빙선자의 눈에는 부끄러운 기색으로 가득했다.

    “없습니다.”

    청모사왕은 굳은 얼굴로 짧게 말했다.

    방촌산 공격은 그도 알고 있었고 심지어 동의한 일이었다. 자신의 의동생이 이번 일은 천궁의 허락을 받았으니 아무런 후환도 없을 거라 호언장담했기 때문이다. 한데 일이 이 지경이 되고 천궁의 재판에 넘겨져 처벌을 받게 될 줄이야 어찌 알았겠는가?

    그때, 괴마왕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일에 제 책임이 크니 본래 이견이 없어야 하나, 우리 몇몇 종문만 책임을 지는 것은 조금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오, 괴 도우의 말은 무슨 뜻이오?”

    정교금이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우리 마족은 일찍이 선족 아래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니 선족의 허락이 없었다면 우리가 감히 이런 일을 저질렀겠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괴마왕이 여전히 담담한 목소리로 말하자 아래에 앉아 있는 사람들 중 적지 않은 사람이 눈살을 찌푸렸고, 현장의 분위기가 굳어졌다.

    “그대의 말은, 우리 천궁이 그대들에게 방촌산을 공격하게 했다는 겐가?”

    이청의 싸늘한 목소리와 함께 중후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고, 강력한 압박감이 사방에 휘몰아쳤다.

    심협은 몸을 일으키려다가 다시 멈췄다.

    “이 천왕, 그리 겁박하지 마시오. 이번 연화대회는 본래 이치를 따지기 위함이지 주먹구구식이 아니지 않소? 게다가 난 천궁이 명했다는 말은 하지 않았소. 그저 우리에게만 책임을 묻는 것은 부당하다 이 말이오.”

    괴마왕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냉소했다.

    “그럼 그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오?”

    “방촌산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는 모두가 알고 있을 게요. 그들은 인간족이든 선족이든 마족이든 요족이든 오는 자는 모두 거절하지 않고 제자로 거두었소. 각 종족의 규칙을 깨트리고 삼계를 제패하겠다는 야심을 확연히 드러낸 게지요. 게다가 보리선조는 경지가 높은데 산하사직도까지 보유하고 있으니 삼계 모든 종문이 꺼려왔소. 그러니 우리가 한 일은 삼계의 민심에 호응한 것뿐이오.”

    괴마왕이 두 손을 벌리며 말했다.

    이 말은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진 것처럼 큰 파문을 일으켰다.

    대 아래에서 갑자기 큰소리가 터져 나왔고, 그중에는 격렬한 저주도 섞여 있었다.

    심협도 표정이 싸늘하게 변했고, 손에는 어느새 힘이 들어갔다.

    그는 이번 대회가 순조롭지 않을 것임을, 변고가 일어날 것임을 예상했지만, 이렇게 빨리 일어날 것은 알지 못했다.

    괴마왕은 사람들의 저주를 비웃으며 갑자기 한 걸음 앞으로 나오더니 대 아래 보라색 수염을 기른 노인에게 외쳤다.

    “자소(紫宵), 욕설이 아주 찰지구나. 네가 방촌산 출신인 걸 알고 있다. 허나 넌 떠들 자격이 없어! 너희 자양종(紫陽宗)은 방촌산에서 가장 가까우니 방촌산이 포위됐을 때 몰랐을 리가 없다. 한데 왜 지원을 가지 않았지?”

    보라색 수염의 노인은 지명되어 욕을 먹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으나,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어서 괴마왕이 대 아래 모인 사람들을 둘러보자 욕설이 차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자신이 호명되어 공개적으로 모욕을 당하게 될 것이 두려워 괴마왕의 시선을 피하는 사람도 많았다.

    반박하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자 괴마왕은 만족한 듯 큰소리로 웃었다.

    “하하! 보시오. 방촌산이 큰 죄를 지은 것이 분명하지 않소이까. 우리는 그저 저들이 원하던 것을 대신 해줬을 뿐이오. 방촌산을 습격한 것은 우리가 책임을 지겠지만, 방촌산의 문제도 절대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게요. 듣기 거북하겠지만, 파리는 금 가지 않은 달걀에는 꾀지 않는다 하였소.”

    그의 말이 끝나자 이제는 꾸짖음보다 호응하는 목소리가 더 크게 울려 퍼졌다.

    “옳소! 방촌산도 결국은 인간족 문파라 이겁니까? 만약 마족이나 요족이었으면 진즉 뿌리째 제거되었을 겁니다.”

    마족 중 누군가가 외쳤다.

    상황을 지켜보던 이정은 괴마왕의 창끝이 천궁을 향하지 않았음을 알고는 표정이 조금 부드러워졌다.

    “조용!”

    정교금의 외침에 광장은 다시 조용해졌다.

    “이번 사건이 비록 방촌산의 그릇된 행동 때문에 일어났다 하나, 요마와 두 종족의 행동은 그래도 용납할 수 없는 일! 엄벌을 받아 마땅하오.”

    이어서 나온 이정의 말은 괴마왕의 발언이 옳음을 확인시켜주는 꼴이었다.

    이 말을 들은 정교금과 원천강의 눈이 마주쳤다. 그들의 눈에는 석연치 않은 빛이 스쳐갔다. 이들도 이정이 이렇게 나올 줄은 예상치 못한 것이다.

    쾅!

    가뜩이나 화가 났던 심협은 결국 참지 못하고 팔걸이를 내리쳤다. 의자는 박살이 났고, 심협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방촌산이 대회에 참가 하지 않았다고 저들이 멋대로 지껄이도록 내버려두는 겁니까?”

    심협이 분노를 담아 일갈했다.

    “심 소우.”

    정교금이 서둘러 그를 만류했다.

    “심 소우, 충동적으로 나서지 말게. 이는 마족의 이간책이네.”

    원천강이 전음으로 말했다.

    먼 곳에 서 있던 육화명은 눈살을 찌푸렸다. 얼굴에는 머뭇거리는 기색이 역력했다. 스승인 정교금은 전음으로 그에게 심협을 말리라 하였으나, 지금까지의 대화를 들은 그도 분노가 솟구치고 있었기에 뭐라고 어떻게 말려야 할지 몰랐던 것이다.

    “방촌산이 어떤 그릇된 행동을 했다는 겁니까?”

    심협이 정교금과 원천강의 만류를 무시한 채 반문하자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파리는 금 가지 않은 달걀에는 꾀지 않는다고요? 무엇이 금이 간 달걀이오?”

    심협의 계속된 물음에도 역시 대꾸는 없었다.

    이정은 눈살을 찌푸리며 심협을 바라봤고, 괴마왕은 냉소했다.

    양전은 그를 말리려다가 멈췄다.

    “그럼 방촌산이 아무런 잘못도 없다는 말인가?”

    이정이 차갑게 물었다.

    “그게 잘못이라면, 방촌산이 처음 연맹에 가입하고 마족에 대항할 때 왜 지적하지 않았습니까? 지보를 지키기 위해, 산하사직도가 마족의 수중에 넘어가는 것을 막을 때, 왜 잘못이라 지적하지 않았습니까? 신마의 우물을 지키기 위해 방촌산 제자들이 학살당할 때, 왜 잘못이라 지적하지 않았느냐 말이오!”

    “심협!”

    정교금이 눈살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그러나 심협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고, 그의 노여운 눈빛도 무시했다.

    괴마왕이 일부러 이런 자리에서 저렇게 말을 한 것은 인간족과 선족의 내부 갈등을 격화시키기 위한 것임을 그는 잘 알고 있었지만, 대국이라는 명분 때문에 넘어갈 수는 없는 일이라 여겼다.

    “요족과 마족! 뭐라? 방촌산을 공격한 게 누구를 위한 거라고? 너희가 무슨 짓을 했는지 내 모를 줄 알았느냐?”

    심협이 차갑게 외치자 연무대 위 사람들의 표정이 일순 차게 굳었다.

    괴마왕도 안색이 변해 의외라는 눈빛으로 심협을 바라봤다. 방촌산에서 아무도 참가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는 속으로 매우 기뻐했다. 그리고 심협이 나타났을 때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삼계의 평화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 모든 종족과 종문들의 공통된 생각이니 아무런 거리낌 없이 아까와 같은 말로 그 사건은 방촌산의 자업자득이라고 몰아가려던 것이었다.

    천궁과 대당 관부는 자신들의 이익과 삼계의 안정이라는 명분이 있기에 그의 거짓말을 폭로할 리가 없고, 이번 방촌산 공격이 신마의 우물을 노린 것임을 말할 리가 없었다.

    한데 이런 거짓된 평화를 전혀 믿지 않는 심협이 직접 나서서 이를 갈기갈기 찢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정교금의 말대로였다면 심협도 그저 지켜만 보고 그대로 넘어갔을 것이다. 허나 괴마왕이 상황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으니 심협은 참을 이유가 없었다.

    “심 도우!”

    정교금이 나서서 심협을 막으려 했다.

    “방촌산의 명성을 더럽히지 마십시오!”

    심협은 정교금을 돌아보고는 다시 괴마왕을 보며 당당하게 말했다.

    괴마왕의 얼굴에 웃음이 떠오르자 새하얀 송곳니가 드러났다. 심협을 노려보는 두 눈에는 갑자기 금빛이 돌기 시작했다. 강력하기 그지없는 신념이 소리 없이 흘러나와 심협에게 돌진했다.

    심협은 몸을 곧게 폈고, 눈길을 피하지 않고 괴마왕을 차갑게 노려봤다.

    다음 순간, 괴마왕의 신념이 곧장 심협의 식해를 파고들었고, 검은색 번개가 흐르는 날카로운 삼지창으로 변하여 심협의 신혼 소인을 향해 곧장 날아갔다.

    꽈르릉!

    심협의 식해 안에 천둥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웅장한 산이 갑자기 나타났다.

    삼지창이 산과 충돌했다.

    쿠르릉!

    산이 크게 떨리면서 백 장 길이의 균열이 생겼고, 삼지창은 부서져서 빛이 되어 허무하게 사라졌다.

    심협은 몸을 움찔하더니, 귓가에 충격음이 들려왔고, 눈앞이 까매졌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반면 맞은편의 괴마왕의 안색은 다시 변했고, 눈의 금빛은 흩어지지 않고 오히려 더 밝아졌다. 그는 진선기 수사 따위는 신혼의 힘으로 단숨에 제압할 수 있을 거라 여겼는데 예상치 못하게 공격이 막혀버리자 살의가 드러났다.

    “지금 뭐하는 짓인가?”

    괴마왕의 눈에서 금빛이 뿜어져 나가려는 순간, 호통이 들려왔다.

    호통이 울려 퍼지자 모든 사람의 신혼이 크게 흔들렸고, 어지러워졌다. 연무대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몸이 흔들렸고, 신혼에 큰 충격을 받았다.

    괴마왕은 신념 비술이 중단된 채 꺼림칙한 눈빛으로 원천강을 바라봤다.

    “이번 대회는 잘못한 사람을 벌하고 방촌산에 어떻게 보상할 것인지 의논하는 자리이지 그대들이 싸우는 자리가 아니오!”

    원천강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또렷하게 그곳에 있는 모두의 귀에 파고들어 한 치의 의심도 허락하지 않았다.

    허나 원천강을 돌아보는 심협의 눈에는 굴복의 뜻이 전혀 없었다.

    원천강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고는 심협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더는 충동적으로 나가지 말라는 뜻이었다.

    심협도 한바탕 쏟아내고 나자 어느 정도 분이 풀렸기에 침착함을 되찾았다. 정말로 각 종족 사이의 갈등이 격화되어 더 큰 충돌이 일어난다면 누구에게도 좋을 게 없기 때문이다.

    “마왕채의 발언은 이미 충분해 보이오. 만약 부족하다면 괴마왕은 나와 함께 흠천감으로 가서 더 이야기하시겠소?”

    원천강은 심협이 진정하자 괴마왕을 돌아보았다.

    “하하! 흠천감에 원 도우께서 제천함성법진(諸天陷星法陣)을 설치했다는 걸 모르는 사람도 있소? 거기서 얘기하느니 안 하는 게 낫지.”

    괴마왕이 씩 웃으며 말했다.

    “좋습니다. 더 할 말이 없다면 이번 사건의 주요 책임자들을 데리고 오겠습니다.”

    이 광경을 본 정교금이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그의 말이 끝나자 양전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말없이 연무대 가운데 섰다.

    뒤를 이어 몇 개의 둔광이 연달아 빛나더니 십여 명이 그의 옆에 나타났다.

    심협이 둘러보니 그들은 바로 사타령의 금시대붕, 육아상왕, 반사동의 화십낭 그리고 마왕채의 지영 장로 등이었다. 다른 요족과 마족의 몇몇 장로 그리고 그들을 따랐던 중소 종문의 장로들이 서 있었다.

    현재 그들은 특수한 정금으로 만든 곤선(捆仙) 사슬에 묶여 있었다. 몸에는 적지 않은 금속 금부가 걸려 있었다. 특히 금시대붕의 몸에 가장 많이 걸려 있었는데, 무려 아홉 개였다.

    금시대붕과 육아상왕 등의 눈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심협에게 집중되었다. 다만 표정은 모두가 달랐는데, 누구는 원망을, 누구는 분노를, 누구는 꺼림칙함을 느끼는 듯했다.

    그러나 심협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그들을 하나하나 마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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