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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843화 (843/1,214)
  • 843화. 빼앗다

    심협은 심혈구이주의 다른 쪽으로 날아가 그들이 구슬을 빼앗지 못하도록 경계했다.

    “넌 누구냐? 용족의 혈맥이 약하지 않으나 몸은 이미 마기로 물들었구나. 마기는 네 실력을 높여주지만, 용족의 힘과는 어울리지 못한다. 네 경지가 높아질수록 두 힘은 더욱 강력하게 충돌해 버티지 못하고 죽게 될 게다.”

    심혈구이주 안의 늙은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는데, 자신의 정체를 인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았다.

    “지도에 감사드립니다. 후배가 이미 선조님을 부활시킬 방법을 알아냈습니다. 저희 두 사람과 함께 떠나실 의향이 있으십니까?”

    만성공주는 표정이 살짝 변했지만, 이내 평온해지더니 공손하게 말했다.

    “조룡 선배님, 저 여자는 마제 치우와 관련이 있습니다. 지금 천하는 선도가 번창하고 마도가 쇠퇴하여 치우와 관련된 것들은 삼계가 힘을 합쳐 물리치고 있습니다. 절대로 저들의 감언이설에 넘어가셔서는 안 됩니다!”

    심협이 나서서 말했다.

    그 말에 만성공주의 눈에는 살기가 흘렀지만, 조룡 앞인 만큼 감히 드러내지 못하고 바로 억눌렀다.

    “허허, 인간족 애송아. 걱정하지 말거라. 난 조룡의 용혼, 이미 동해 용궁과 계약을 맺어 평생 배반하지 않기로 약조했다. 너희 두 사람도 날 부활시키려 노력할 것 없다.”

    늙은 목소리는 허허 웃었다. 마지막 말은 오흠과 만성공주를 향한 것이었다.

    “선조님께서 그리 하시겠다면 저희도 더는 방해하지 않겠습니다. 가자.”

    만성공주는 오흠에게 말하고는 하늘로 날아갔다.

    오흠은 심협을 노려보고는 바로 쫓아갔다.

    심협은 두 사람을 막고 싶었지만, 법력은 거의 다 소모됐고 부상도 심해 그저 저들이 멀어지는 것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오형을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심협은 두 사람이 모두 떠난 걸 확인하고는 심혈구이주를 향해 포권했다.

    그의 말이 끝났을 때, 용궁 보물창고는 조용했고,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오홍은 여전히 의식이 없었고, 그의 앞에 있던 혈색 광막도 이미 사라진 후였다. 다만 핏빛 소용돌이는 여전히 천천히 회전하고 있었다.

    잠시 후, 혈색 소용돌이에서 다시 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넌 용족도 아니거늘 어찌 용족의 혈맥을 가지고 있는 것이냐?”

    그 목소리는 엄숙했고, 경계의 뜻이 담겨 있었다.

    심협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잠시 머뭇거렸다.

    “너는 그와 맹우(盟友)인가?”

    그가 머뭇거리는 사이 늙은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그렇습니다.”

    심협은 맹우라는 말에 조금 부끄러웠지만, 그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를 구하고 싶다면 더 가까이 와서 네 혈맥의 힘을 내게 빌려다오. 서두르지 않으면 그는 상처가 심해서 죽을 것이다.”

    심협은 머뭇거렸다. 혈맥의 힘을 빌려주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상고 시대의 존재에 대한 본능적인 경계심 때문이었다.

    “왜? 맹우라 하지 않았나? 이게 바로 과거 헌원 씨가 걱정했던 세태의 풍조인가? 과거 우리와 싸웠을 때와는 너무도 다르군. 만약 이놈이 나의 순수 직계 용족 혈통이 아니었다면 나도 얼마 남지 않은 혼력을 쓰지는 않았을 게다.”

    “선배님, 제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심협은 속으로 한숨을 쉬고는 한 걸음 다가왔다.

    “뭘 할 필요도 없다. 더 가까이 오너라.”

    심협이 주먹을 꽉 쥐고 오홍에게 다가가서 멈추려는 순간, 뒤에서 어떤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면 안 돼…….”

    심협은 오중의 목소리를 알아듣고는 무의식적으로 뒤로 피하려 했지만, 부상 탓에 그리 빠르지 못했다.

    오홍의 머리 위에서 혈광이 갑자기 밝아지더니 핏빛 소용돌이에서 갑자기 일고여덟 개의 붉은 실이 빠르게 늘어나 휙 하고 심협의 이마에 꽂혔다.

    심협은 바로 몸이 굳어지더니 순식간에 전신의 피가 흐름을 멈췄다.

    방금 보물창고에 들어온 오중은 이 광경을 보자 절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미 늦었어…….”

    오중은 핏빛 소용돌이를 향해 비틀거리며 다가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선조님, 제가 대신할 테니 오홍은 놔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내 존재를 알고 있었느냐?”

    “그렇습니다. 조상 대대로 선조님의 행적을 전해 들었습니다. 제 부왕은 동족에게 배신당하여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러니 부디 제 동생을 놔주십시오. 제가 그를 대신하겠습니다.”

    “동생을 아끼는 모습이 보기 좋구나. 허나 네 경지가 이 아이보다 높아도 넌 나의 가장 순수한 피를 이어받지 못했으니 내가 부활하기에는 네 아우가 더 적합하다. 하지만 안심하거라. 너희의 적이 누구든 내가 쓸어버리고 용족의 영광을 되찾을 것이다.”

    늙은 목소리에서 호승심이 피어올랐다.

    오중이 뭐라고 답하기도 전에 날카로운 호통이 들려왔다.

    “그만! 이제 이 아이에게 영혼을 옮기는 데 전념해야 한다. 나와 네 아우 둘 다 죽는 걸 보고 싶지 않다면 얌전히 입 다물고 있어라.”

    “…….”

    오중은 씁쓸했지만, 입을 다무는 수밖에 없었다.

    심혈구이주에 선조의 용혼이 봉인되어 있다는 사실은 용궁 사람 대부분이 알지 못했다. 줄곧 동해 용왕 일족은 이 비밀을 지켜왔다. 심지어 다른 삼해 용왕도 모르던 사실이었다.

    오중은 과거에 부왕인 오광에게 어째서 다른 용혼의 힘으로 선조의 부활을 돕지 않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때 오광의 대답은 모호했다. 그저 선조는 과거에 사실 헌원검에 죽었기에 지금 부활한다면 동해나 용족에게 그리 좋은 일이 아니라고 하였다.

    오중은 선조가 배신하고 마지막에는 황제의 헌원검에 죽은 것이라 인, 선 양계에서 사해 용족이 차지하는 지위가 그리 높지 않은 게 아닐까 추측했다.

    한데 지금 보니 오광이 그때 선조의 부활을 원하지 않았던 이유가 아무래도 선조의 부활에는 반드시 가장 순수한 혈통을 이은 후손이 필요해서였던 모양이다. 이전에는 삼태자 오병(敖丙)이었고, 지금은 구태자 오홍이 그들인 것이다.

    어쨌든 현재 그로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에 그저 오홍의 혼이 빼앗기는 모습을 보고 있어야만 했다. 방해했다가 영혼 전이가 실패한다면 오홍의 목숨마저 위험해지기 때문이었다.

    한편, 온몸이 굳어버린 상태에서도 심협은 오중과 용조의 대화를 모두 듣고 있었다. 그의 몸에는 용족의 피가 섞여 있었기에 지금 상대에게 저항할 힘이 없었다.

    한데 조룡의 혼은 그의 혈맥의 힘을 흡수하지는 않았다. 심협이 이에 대해 의아해하는 사이, 갑자기 심신이 떨리고 식해 공간이 강하게 흔들렸다.

    심협은 서둘러 심신을 들여다봤다. 식해 공간 안의 하늘에 먹구름이 몰려오고 번개가 치더니 두 줄기 금빛이 비스듬히 내려왔다.

    심협의 신혼 소인이 하늘을 올려다보자 먹구름 사이에서 거대한 황금용의 머리가 나타났다. 두 개의 황금색 눈동자는 촛불 같았으며, 날카로운 눈매는 마치 하찮은 개미를 내려다보는 듯했다.

    하늘에 드리워진 두 개의 금색 수염에서 번개가 뿜어져 나오자 심협의 식해는 천둥소리로 가득 찼다.

    머리만 나타난 거대한 용을 바라보는 심협은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신식에 투영되었을 뿐 본체가 아님을 알고 있음에도 천지가 짓누르는 듯한 압박감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황금용은 심협의 공포를 느꼈는지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던 금색 눈동자를 조금 움직여 그를 바라봤다.

    “인간족 따위의 식해가 이렇게 넓고 신혼 또한 단단하다니, 꽤 괜찮은 영양분이로구나.”

    “영양분? 나를 흡수할 생각인가?”

    심협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렇다. 내 앞에 다가와 침투당한 순간, 넌 내 부활의 디딤돌이 될 운명이 된 것이다. 영광으로 알아라.”

    황금용의 목소리가 천둥처럼 울려 퍼졌다.

    “날 겁주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너한테 정말 그럴 능력이 있었다면 곧장 내 신혼을 흡수했겠지. 그런 간드러진 말로 내가 다가오게 하려 애쓴 걸 보면 넌 그럴 힘이 부족한 게 분명하다.”

    심협이 차갑게 비꼬자 황금용은 웃었다.

    “하하! 멍청한 놈은 아니었구나. 그렇다. 남아 있는 내 혼력은 좀 전에 이놈을 살리느라 거의 다 소모했다. 네가 가까이 오지 않았다면 방법이 없었을 게다. 허나 지금은 외부에서 누가 강제로 개입하지 않는 한 넌 절대 혼자의 힘으로 벗어나지 못한다.”

    그 말에 심협은 방심했던 것을 후회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몰래 신식으로 오중과 대화를 시도했다.

    “쓸데없이 힘 빼지 마라. 네 신념은 내게 이미 봉인되어 식해에서 털끝 하나 빠져나가지 못한다. 게다가 저 아이는 용족에 해가 될까 봐 나서지 못하지. 그러니 얌전히 운명을 받아들여라.”

    심협은 고민에 빠졌다. 신식은 봉인되었고, 육체는 움직일 수 없으며, 법력도 운공할 수 없다. 심지어 진원 대선에게 연락하고 싶어도 이미 불가능했다.

    “와, 선배의 신통은 역시 놀랍군! 감탄했어! 이 하찮은 목숨은 그냥 살려주면 안 되나?”

    심협은 빠르게 머리를 굴리며 가부좌를 틀었다.

    “목숨을 살려주는 건 불가능하다. 다만, 네가 기꺼이 협력한다면 네 신식의 일부는 남겨주마. 그리고 내가 부활하여 용족을 다시 합친다면 너의 적이나 원수가 누구든 내 기꺼이 복수해주지. 남은 신식은 그 후에 제거해주마. 어떠냐?”

    황금용은 음흉하게 웃으며 말했다.

    “참으로 생각이 깊으십니다. 아, 확실히 죽이고 싶은 적이 있긴 한데, 선배님께서 가능하실지 모르겠군요.”

    “그게 누구냐?”

    심협은 고개를 들고는 웃으며 짧게 답했다.

    “마조 치우.”

    황금용은 그 말을 듣자 어리둥절하더니 이내 금색 눈동자에 분노가 일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농을 하다니, 배짱도 좋구나! 네 신혼을 넘겨라.”

    황금용은 으르렁대더니 거대한 머리로 돌진해왔다.

    심협의 신혼 소인은 고개를 들어 보고만 있을 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마치 모든 저항을 포기한 듯했다.

    황금용은 입을 크게 벌리고 심협을 집어삼키려 했다.

    그 순간, 심협의 신혼 소인이 갑자기 손을 앞에 모으고 조용히 중얼거렸다.

    황금용의 몸은 구름에서 절반이나 빠져나와 거대한 입으로 심협의 신혼 소인을 집어삼켰다. 거대한 용은 허공에서 빙빙 돌며 심협의 신혼의 힘을 흡수할 준비를 했다.

    그런데 그때, 나지막한 읊조림이 식해 공간 전체에 울려 퍼졌다.

    황금용이 날아다니던 식해의 하늘에 갑자기 먹구름이 더 많아지더니 공간 전체가 흔들렸고, 땅은 무너질 것처럼 진동했다.

    “하하! 아직 신혼의 힘을 얼마 흡수하지도 않았는데 식해 공간이 무너지려 하다니, 네 신혼은 겨우 이 정도였단 말이냐?”

    심협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읊조림이 점점 커져 종소리처럼 식해 공간 전체에 울려 퍼졌다.

    황금용은 뭔가 심상치 않음을 감지하고는 거대한 머리를 들어 금색 눈동자로 하늘 깊은 곳을 올려다봤다.

    식해 하늘 깊은 곳. 짙은 구름으로 가득한 그곳에서 마치 무언가 하늘 밖에서 압박하여 내려오는 것처럼 붉은 빛이 생겨났다. 그 빛은 점점 밝아졌고, 붉게 물든 빛무리 또한 갈수록 커졌다.

    동시에 매우 강력한 압박의 힘이 다가왔다.

    “이건……?”

    황금용은 오래된 기억이 떠올라 깜짝 놀랐다.

    하지만 다음 순간, 하늘이 완전히 타오르기 시작하더니 꿈틀대는 붉은 구름 안에서 비할 데 없이 거대한 산이 아래도 떨어졌다.

    “설마 부주산……?”

    황금용은 마침내 이 압박감의 근원을 떠올렸다.

    그것은 수신 공공(共工)이 부딪혀 만들어진 부주산이었다. 본래 하늘의 기둥으로서 사악한 악마를 제압하고 억만 년 동안 우뚝 서서 넘어지지 않았던 그 기적이 이제 겨우 진선기인 인간족 수사의 식해에 나타난 것이다!

    “후손들이 그 신념을 잊지 않기 위해 창안해낸 부주진신법이다. 어때?”

    심협의 목소리가 황금용 몸 안에서 들려왔다.

    “그래봐야 헛된 그림자에 불과한 것을……. 애송아, 그 지경이 돼서도 반항하는 게냐? 이미 늦었다. 신혼의 힘을 내놓아라! 크하하!”

    황금룡이 크게 웃자 심협을 둘러싼 금빛이 빠르게 회전하며 심협의 혼력을 연화하기 시작했다.

    “자신 있으면 해보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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