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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842화 (842/1,214)
  • 842화. 살아 있는 송장

    단전은 수련자들에게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곳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변화가 생겼고, 씨앗이 뿌리까지 내려 쉽게 뽑아낼 수도 없게 된 것이다. 이게 복이 될지 아니면 화가 될지는 누구도 알 수 없었다.

    그때였다.

    “크아악!”

    처절한 비명이 들려왔다. 퍼뜩 정신을 차린 심협이 돌아보니 이미 사람 모습으로 돌아온 오홍의 체내로 핏빛 음표가 끊임없이 파고들어 법력과 격렬하게 충돌하고 있었다. 방금 심협이 겪은 상황과 비슷했다.

    오홍의 두 눈은 붉게 번득였고, 얼굴에서는 피가 잔뜩 흘렀으며, 온몸 곳곳의 상처에서는 피가 쉬지 않고 흘러 금방이라도 폭발하여 죽을 것 같았다.

    이 광경을 본 심협은 전력을 다해 현양화마 신통을 운공했다. 몸이 빠르게 커지더니 두 눈은 각각 적과 금으로 빛났고, 몸의 절반은 뼈의 갑옷이, 절반은 용의 비늘이 뒤덮었으며, 머리에는 용의 뿔과 마족의 뿔이 하나씩 자라났다.

    그가 이번에 시전한 현양화마 신통은 크게 개선된 터라 변신한 뒤에도 이전처럼 흉악하지 않았고, 이전처럼 중후하고 무거운 느낌이 없었다. 폭주하는 마기와 법력도 순식간에 평온해져서 매우 강력한 기운을 폭발시켰다.

    이런 복잡한 변화가 일어났음에도 실제로는 겨우 두세 호흡의 시간밖에 걸리지 않은 터였다.

    멀지 않은 곳의 오흠도 피리 소리의 영향으로 고통스러워 보였지만, 바로 조룡의 금광으로 몸을 뒤덮어 핏빛 음표의 절반을 막아낼 수 있었다. 남은 절반은 체내로 파고들었지만, 그 정도는 버틸 만했다.

    심협과 오홍이 피리 소리의 영향으로 괴로워하고 있을 때 도망치려던 그는 갑자기 어딘가로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이 꽂힌 곳에서는 심협의 몸이 몇 번 흔들리더니 갑자기 크게 변하기 시작했다.

    오흠은 심협의 변신에 표정이 굳었고, 머릿속에서 의문이 떠올랐다.

    “어떻게 저놈의 마기가 나보다 더 강한 거지?”

    심협은 오흠이 멍해 있는 사이 오홍에게 다가가 등 뒤에 두 손을 댔다.

    금빛과 검은 빛이 화려하게 번쩍이며 오홍의 몸을 뒤덮자 핏빛 음표가 차단되었고, 한 줄기 검은 빛이 오홍의 체내로 들어가더니 핏빛 음표를 흡수했다.

    마기가 사라지자 오홍은 체내가 금세 평안지면서 이내 이상을 회복하고 일어났다.

    “그만! 저들은 이미 피리 소리를 막아낼 수단이 생겼으니 멈춰도 된다!”

    이 광경을 본 오흠이 차갑게 소리쳤다.

    보물 창고 안의 피리 소리가 뚝 끊겼고, 곳곳을 날아다니던 핏빛 음표도 점점 사라져갔다.

    “아직 저항할 힘이 남아 있을 줄은 몰랐군. 허나 놀 만큼 놀았으니 이제 죽여주마!”

    오흠이 차갑게 말하고는 두 눈을 기이하게 번득였다. 그의 구부러진 손이 손톱으로 변하더니 허공을 움켜쥐었다.

    손바닥에서 뜨거운 불빛이 생겨났는데, 가운데에서 푸른 빛이 빠르게 회전하고 있었다. 거대한 푸른 빛의 덩어리가 허공에 떠오르자 희미한 용의 허상이 안에서 헤엄치며 고래가 물을 삼키듯 주위의 천지영기를 흡수했다.

    하늘을 뒤흔드는 흡입력이 폭발하자 주위의 허공이 강하게 흔들렸다.

    “심형! 오흠이 용혼으로 사해의 물의 기운을 흡수하고 천지영기를 끌어당기고 있소! 그 힘이 내 예상을 뛰어넘으니 절대 막아낼 수 없을 듯하오!”

    오홍이 상처를 돌볼 틈도 없이 굳은 얼굴로 몸에서 빛을 뿜어내며 다시 용의 모습으로 변했다.

    심협도 살짝 표정이 변해 현황일기곤에서 금빛을 뿜어냈다.

    “죽어라!”

    맞은편에서 오흠이 소리치면서 손을 내밀었다.

    “크아아!”

    매서운 용의 포효와 함께 푸른 빛 덩어리가 잔영을 남기며 심협 등을 향해 곧장 날아왔다. 입을 쩍 벌리고 집어삼키려는 듯한 금룡의 허상이었다.

    심협은 오흠의 공격이 이토록 빠를 줄은 예상하지 못했기에 황급히 손을 움직였다. 그러자 현황일기곤에서 금빛과 검은 빛이 솟아올랐다. 절반은 황금빛, 절반은 검은 빛인 광막이 나타나 본래 서로 공존할 수 없는 두 종류의 힘이 기이할 정도로 완벽한 균형을 이루었다.

    하지만 약간 늦고 말았는지 흑금의 광막이 위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기도 전에 푸른 빛 덩어리를 맞이해야 했다.

    꽈르릉!

    두 힘이 충돌하자 폭음과 함께 보물창고가 강렬하게 흔들렸다.

    폭발의 빛에 용궁 보물창고 천장에는 백여 장에 이르는 구멍이 생겨났다.

    그리고 폭발의 중심에 있던 심협과 오홍은 뒤로 튕겨나갔다.

    심협보다 반응이 조금 늦었던 오홍은 제때 신통을 발휘하지 못해 더욱 충격이 컸다. 입에서는 피가 연신 흘렀고, 몸의 비늘도 일부가 부서졌다. 뿜어져 나온 피는 허공에서 사방으로 튀어 화려한 혈화(血花)를 이루었다.

    심협도 폭발의 충격으로 튕겨나갔지만, 다행히 현황일기곤으로 미리 폭발의 충격을 절반쯤 막아낸 데다 이미 현양화마 신통을 시전한 상태라 방어가 매우 견고했다.

    심협이 오홍의 상태를 살피려는데 폭발의 중심에서 갑자기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3척 길이의 금색 교룡이 금색 비검처럼 곧장 오홍의 머리를 향해 날아왔다.

    금색 교룡은 평범해 보였지만 강렬한 파멸의 기운을 뿜어냈다. 이 공격이 들어간다면 오홍은 목숨을 잃게 될 터였다.

    일촉즉발의 순간, 심협은 길게 생각할 틈도 없이 몸을 날려서 오홍의 앞을 막아서고는 가슴을 편 채 금색 교룡을 맞이했다.

    콰직!

    경쾌한 소리와 함께 심협 가슴의 갑옷이 뚫렸고, 피가 튀었다. 뒤이어 또 한 번 같은 소리가 울리며 교룡이 등의 갑옷도 뚫고 나왔다.

    이쯤 되자 교룡의 힘도 소모가 컸지만, 여세를 몰아 뒤쪽의 오홍에게로 나아갔다.

    콰직!

    오홍은 미간에 강한 충격을 받아 고개가 뒤로 젖혀졌는데, 머리가 뚫린 건지 목이 부러진 건지 알 수 없었다.

    금색 교룡이 마침내 사라지자 오홍도 땅에 쓰러졌다. 생사를 알 수 없었다.

    이를 본 오흠은 긴장이 풀리면서 바닥에 주저앉을 뻔했다. 체내에서는 조룡의 기운도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고, 몸의 금색 갑옷도 조금씩 사라졌다. 힘의 절반을 소모했다.

    그때였다. 오흠은 갑자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어딘가를 바라봤다. 심협은 물론 오홍마저 죽지 않았는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데 어딘가 이상해 보였다.

    오홍의 온몸에서 암홍색 혈기가 자욱하게 피어올라서 몸 밖으로 솟아올랐는데, 마치 피가 증발하는 것 같았다. 그는 두 눈을 감은 채였고,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금색 교룡에게 공격당한 미간에는 핏빛 자국이 남아 있었다.

    심협은 방금 관통당한 것 같았지만, 위기의 순간에 연연나금의를 사용하여 교룡의 공격을 피했기에 큰 상처를 입지는 않았다.

    “오형, 괜찮은 겁니까?”

    그는 오홍의 기이한 상태를 보고 물었다.

    하지만 오홍은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몸을 흔들거리는 게 마치 살아 있는 송장 같았다.

    “상태가 어떻건, 이번 기회에 죽여야 한다.”

    오흠이 싸늘하게 외치며 몸을 날렸다.

    허공에서 하얀 그림자가 일렁이더니 설백의 장검이 오홍을 향해 번개처럼 날아갔다.

    검 끝은 얼음과 눈으로 만들어져 있어서 극한의 기운을 뿜어냈고, 주위 허공이 쩌적 하며 얼어붙었다.

    심협은 불러봐도 오홍이 깨어나지 않자 얼른 몸을 날려 순양분검결로 오홍의 앞을 막아섰다.

    “천룡파성창(天龍破城槍)!”

    오흠이 포효하자 칠흑의 용창이 나타났다. 매우 오래되어 보였으며, 창날부터 끝까지 암홍의 혈흔으로 물든 것이 수많은 살육을 경험했음이 틀림없었다.

    그는 기세를 줄여 창과 혼연일체가 되었다. 여기에 조룡의 힘까지 둘러 한껏 날카로워진 기세로 심협을 향해 돌진했다.

    눈살을 찌푸린 심협은 곧장 변초를 써서 몸을 앞으로 날렸다. 수중에서는 순양검의 불꽃이 폭증하여 그의 몸을 뒤덮었다. 다음 순간, 사람과 검이 하나가 되었는데, 그 기세는 오흠보다 강력했다.

    “순양순살검!”

    한 줄기의 불꽃이 갑자기 질풍처럼 날아가더니 허공에서 금속이 충돌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검은색 용창과 오흠은 충돌로 비스듬히 비껴나갔고, 심협과 순양검은 튕겨나가는 기세를 멈추지 못하고 옆의 벽에 충돌했다.

    쿠르릉!

    한편, 허공에서 금빛이 폭발하면서 수많은 얼음 결정이 날아와 막아선 바람에 하얀 장검은 오홍에게 닿지 못했다.

    땅에 내려서는 심협은 안색이 창백했고, 숨이 고르지 못했다. 연이은 격전에 체내의 법력이 거의 대부분 소모됐고, 더는 싸울 힘도 없었다.

    그때, 오흠이 돌진하더니 망설임 없이 오홍의 머리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 손에는 자금색 번개로 만들어진 빛이 들려 있었다. 힘을 최대한 압축한 것으로, 저 정도 거리에서 공격을 당한다면 오홍은 죽을 수밖에 없을 터였다.

    안색이 변한 심협은 오홍을 돕고 싶었지만, 이미 늦었다.

    오흠의 손에서 생겨난 자금색 빛 덩어리가 오홍의 미간에 닿기 직전이었다.

    그리고 그때!

    임랑환 안에서 붉은 빛이 번쩍이더니 심혈구이주가 튀어나와 붉은 잔상이 되어 믿을 수 없는 속도로 날아가더니 순식간에 오홍의 이마 앞에서 눈부신 붉은 빛을 뿜어냈다.

    오흠의 용의 발톱이 다가온 순간 자금색 빛에서 뿜어져 나온 번개는 정확하게 심혈구이주에 떨어졌다.

    파지직!

    자금의 번개가 폭발하는 순간 핏빛 광망에서 광막이 생겨나 오홍을 보호했다.

    자금색 빛이 폭발할 것 같은 순간, 핏빛 광막에 갑자기 소용돌이가 나타나더니 번쩍이는 번개와 자금색 빛을 전부 흡수했다.

    모든 것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오흠이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그의 손이 어떤 힘에 이끌리듯 핏빛 소용돌이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 이게 뭐야!”

    오흠이 당황한 듯 외쳤다.

    곧이어 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오흠의 팔에서 피와 살이 흩어지기 시작하더니 형용할 수 없는 형체로 변하여 핏빛 소용돌이 안으로 빨려 들어간 것이다.

    반면 광막 안의 오홍은 상처가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르게 회복되었다.

    경악한 오흠은 전력을 다해 발버둥 쳤지만, 소용없었다. 그의 손바닥은 이미 뼈만 남았고, 핏빛 소용돌이는 그의 팔을 타고 올라갔다.

    당황한 그는 이를 악물더니 왼손으로 오른팔을 잘라내고는 재빨리 10여 장 밖으로 도망쳐 지혈한 후, 놀란 표정으로 핏빛 소용돌이를 바라봤다.

    심협도 이 광경에 놀라서 감히 접근하지 못했다.

    그때, 노쇠한 목소리가 핏빛 소용돌이 안에서 들려왔다.

    “아직도 내 기운을 가진 자가 있는 건가?”

    이 목소리를 들은 오흠은 표정이 급변해 위를 올려다봤다.

    “심혈구이주? 어떻게 인간족 수사에게 있는 거지? 네가 차지한 게 아니었나?”

    만성공주가 하늘에서 내려와 오흠의 옆에 섰다.

    “전설에 따르면, 선, 마, 인의 탁록 전쟁 때 용족의 선조는 한발(旱魃)과 손을 잡고 풍백(風伯)과 우사(雨師)와 싸웠으나 결국 전사했고, 풍백의 팔천손풍(八千巽風)에 8001조각으로 잘려 조룡의 혼이 흩날렸다고 하죠. 조룡의 추종자인 아홉 마리 이룡(螭龍)이 자신들의 정혈을 이용하여 힘을 합쳐 심혈구이주를 만들어 조룡의 힘을 보존했다고 들었습니다. 귀하가…… 조룡입니까?”

    만성공주는 오흠을 무시한 채 심혈구이주를 향해 공손하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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