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835화 (835/1,214)

835화. 흑백의 두 가지 물건

“명화연노가 연기로라고 했지? 여기서 마기가 느껴지던데, 혹시 마보인가?”

심협은 명화연노를 바라보며 물었다.

“심 도우는 감이 매우 뛰어나구려. 이 연기로는 진짜 마기를 담고 있지만, 마보는 아니오. 마기의 파동이 느껴지는 건 이 안에 분마열염(焚魔烈焰)이 있기 때문이지.”

“분마열염?”

심협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이름이었다.

“일종의 마도진화(魔道眞火)인데, 그 위력이 절정의 지화와 비슷하오.”

“마도진화? 그럴 리가! 광성선부에서 복공이 이 연기로의 불꽃을 사용하는 걸 봤어. 그건 마화가 아니었는데…….”

“내 말을 천천히 들어보시오. 이 명화연노는 광성자, 그 작자가 수백 년을 들여서 선, 마, 무(巫) 등 아홉 종의 다른 속성의 재료를 모은 뒤, 또 아홉 종의 속성에 맞는 영화를 찾아내 그것들을 하나로 합쳐서 만든 연기로라오. 광성자, 그 미치광이는 연기술에 푹 빠져서 이 연기로로 연기의 도의 극한을 추구했지.”

화령자의 목소리에는 일말의 감탄과 존중도 섞여 있었다.

“복공이 광성선부의 진부석비를 연화할 때 사용한 것은 자심지화(紫心地火)로, 연기뿐만 아니라 금제를 빠르게 연화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오.”

“그랬군. 연기의 극한을 추구한 광성자 선배의 열성이 그 정도였다니, 후배로서 존경스럽군.”

“광성자, 그 작자의 성격이 어떻든 연기의 도를 추구하던 마음은 진심이긴 했소.”

화령자는 인정하기 싫은 듯 말끝에 흥 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너도 연기술에 능하니 부탁을 좀 하지. 이 소검 안에 있는 구천금정을 꺼내서 여기 두 개의 법보 안으로 넣어줄 수 있겠느냐?”

심협은 천두금준과 현황일기곤을 꺼냈다.

“천두문(千斗門)의 천두금준…… 이 곤봉은 매우 특이한 게 동해 용궁의 진해빈철곤을 모방한 것 같구려. 다만 금제의 설치가 섬세하지 못하오. 이 두 개의 법보 모두 구천금정이 필요하지만, 소검에 담긴 금정의 양은 너무 부족하오. 둘 중 하나의 위력만 조금 높일 수 있을 정도요. 어떤 걸 택하겠소?”

화령자는 쓱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두 법보에 대해 자세히 간파해냈다.

“그럼 현황일기곤으로 하지.”

심협은 잠시 생각한 끝에 천두금준을 챙겨 넣었다.

“좋소. 그럼 맡겨주시오.”

화령자는 현황일기곤과 금색 소검을 가지고 명화연노 안으로 들어갔다.

심협은 화령자에게 화력 지원이 필요한지 물으려 했지만, 그의 말투로 봐서는 필요해 보이지 않았다.

명화연노에서 빛이 번쩍이더니 몇 배로 커져 바닥으로 내려왔다. 그 안의 금제가 웅웅거리며 돌아가기 시작했다.

연기로 안에서 다양한 색깔의 불꽃이 타오르더니 화염법진이 되어 빠르게 발동하기 시작했다.

법진이 발동하자 열기와 함께 불의 영력이 빠르게 모여들기 시작했고, 연기로 상공에서는 공간의 파동이 일렁였다. 공간을 뛰어넘어 불꽃이 모여든 것이다.

“공간을 넘어 화염을 모아오다니, 이래서 화력의 지원이 필요 없었던 게로구나. 이 정도 경지라니, 광성자 선배의 신통은 상상 이상이야!”

심협은 크게 감탄하더니 이어서 동부의 금제를 발동하여 명화연노를 뒤덮고는 광성선부에서 얻은 붉은 구슬, 반쪽짜리 초적염수의 화단을 꺼냈다.

화단에는 매우 순수한 화염 영력이 담겨 있어 주작단과 비교해도 별로 손색이 없었다.

“순양검 안의 불의 영력이 완전히 잠잠해지면 이 화단을 흡수해봐야겠군. 이 화단의 영력이면 순양검을 한층 정진시킬 수 있겠어.”

심협은 흡족해하며 화단을 챙겨 넣고는 복공의 옥대를 꺼냈다.

화련단의 단방을 찾을 때 시간이 없어서 이 저물법기를 자세히 보지 못했다.

광성선부의 수호 영수인 복공은 선부를 떠난 이후로 수많은 지식을 바탕으로 동해를 수십 년간 돌아다니며 엄청난 자원과 부를 모았다.

하얀 옥대 안에는 선옥만 해도 수십만 개가 있었고, 다른 진귀한 재료도 매우 많았다. 대부분은 가치가 상당한 것들이었다.

심협은 이 물건들을 종류대로 정리하고는 임랑환으로 옮겨 담았다.

옥대 공간에는 적지 않은 법보와 단약이 있었다. 법보들은 품급이 모두 높지 않아서 눈에 들어오지 않은 반면 단약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법력을 회복하거나 부상을 치료하는 데 꽤나 효능이 좋은 단약들이었다.

이것들을 모두 챙겨 넣은 뒤, 옥대 공간에는 이제 세 개의 옥간과 두 권의 도서(道書) 그리고 회색 나무 상자만 남게 됐다.

세 개의 옥간에는 공법과 비술이 담겨 있고, 두 권의 도서는 법진에 관한 내용이 쓰여 있었다. 모두 광성자가 쓴 것들이었다.

도서 안에는 많은 정묘한 법진이 기록되어 있었다. 육합천문진도 그중 하나였다. 다만 아쉽게도 법진을 만드는 과정이 너무 복잡하고 재료도 많이 필요했기에 심협은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어서 회색 상자를 꺼낸 그가 열려고 하니 위에서 회색 빛이 나와 그의 힘을 튕겨냈다.

“허! 재미있군.”

심협은 눈을 치켜뜨고는 손에서 금빛을 뿜어내 나무 상자를 뒤덮어 천천히 연화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회색 빛은 금방 사라졌고, 나무 상자는 쉽게 열렸다.

안에는 두 개의 물건이 있었다. 하나는 하얀 옥석으로, 달걀만 했고, 겉에서는 은은한 형광을 발했으며, 영력 파동은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다른 검은색 물건은 호두만 한 팔각형 모양의 것이었는데, 꼭 씨앗 같았다.

심협은 하얀 옥석을 들어서 눈앞에 두고 자세히 보니 무언가 있는 것 같았는데 잘 보이지 않았다.

심협은 잠시 생각하더니 유명귀안을 운공하여 하얀 옥석을 다시 살폈다. 다만 유명귀안은 이전과 달리 푸른 빛 영광에 은은한 검은 빛이 섞여 있었다.

유명귀안에 하얀 옥석 안의 물건이 보였다. 하늘을 향해 길게 울부짖는 하얀 구미호 그림이었다. 비록 몇 획밖에 그리지 않았지만 진수(眞髓)가 담겨 있었다.

심협은 꿈속 세계 적뢰산에서 옥호 일족과 함께 지낸 적이 있었기에 호족을 잘 알았다. 호족은 요족 중에서도 세력이 매우 큰 종족으로, 옥호족, 향호족(香狐族), 흑호족(黑狐族) 등 여러 갈래가 있었다.

지금 수선계에서 가장 큰 호족은 청구호족(靑丘狐族)으로, 사타령이나 반사동의 요족 세력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 다만 청구호족은 세상일에 거의 관여하는 일이 없기에 알고 있는 자가 많지 않았다. 심협도 적뢰산의 옥호족 전적에서 기록을 한 번 본 게 전부였다.

심협은 계속해서 하얀 옥석을 살펴봤지만, 별다른 특별한 점은 없었다. 그는 옥석을 다시 집어넣고 검은색 씨앗을 살폈다.

계속해서 유명귀안으로 살펴보며 신식을 안에 넣은 그는 깜짝 놀랐다.

유명귀안으로는 검은색 씨앗의 구체적인 것까지 알 수는 없었지만, 신식으로는 탐색할 수 있었다. 검은색 씨앗 안은 혼돈으로 가득했고, 마치 매우 넓은 공간 같아서 그의 신식으로도 끝까지 살펴볼 수 없었다. 게다가 마치 허무 그 자체처럼 텅 빈 것만 같았다.

계속해서 살펴도 마찬가지였다.

“복공이 이것들을 그토록 은밀하게 숨겼다면 분명 범상치 않은 물건일 터. 한데 알 길이 없다. 오랫동안 복공과 함께했던 화령자라면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현황일기곤 제련을 마치고 나오는 대로 물어봐야겠군.”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그는 검은 씨앗을 다시 나무 상자에 넣었다.

여기까지 마친 심협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팔을 휘둘렀다.

물의 장막이 허공에 나타나 그의 모습을 비추었다. 두 눈에는 푸른 빛이 흘렀는데, 어렴풋이 검은 빛이 섞여 있었다.

이 검은 빛은 지난번 천마안을 시전한 이후로 생겨났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는 이 빛의 출처를 잘 알고 있었다.

“마기…….”

이 마기는 천마안 신통을 시전한 이후로 거머리처럼 그의 눈에 달라붙어 아무리 제거하려 해도 사라지지 않았다. 이전까지 맥과 단전에만 머물던 치우 마기가 왜 눈까지 왔는지는 그도 알 수 없었다.

“마침내 내 몸의 다른 부분까지 침투하기 시작한 건가? 망할 치우 마기!”

그는 낮게 욕을 내뱉었다.

다행히 눈의 마기는 그에게 큰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오히려 유명귀안의 탐색 능력을 더 높여주기까지 했다.

눈의 푸른 빛을 없앤 뒤 마기에 대해 고민하던 그는 한참 후에야 한숨을 길게 내쉬었고, 남은 이틀 동안 동부에서 폐관수련을 이어갔다.

그사이 화령자는 현황일기곤의 제련을 마쳤는데, 그 안의 금제는 52도까지 늘어나 상품 법보의 단계에 도달해 위력도 놀랍도록 강해졌다. 구천금정이 현황일기곤 내부의 여러 재료가 융합되도록 도울 거라던 소부자의 말은 정확했다. 이번에 융합한 구천정금은 양이 적었음에도 큰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이제 크기를 조절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형태로 바꿀 수도 있게 된 것이다.

심협은 기다렸다는 듯 나무 상자 안의 하얀 옥석과 검은 씨앗을 보여줬지만, 아쉽게도 화령자 역시 그 두 가지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심협이 동부에서 수련하고 있는데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어보니 준수한 외모에 금색 비늘 갑옷을 입은 청년이 서 있었다.

“오형, 할 일은 끝났습니까?”

“아직 못 끝냈소. 오늘은 부왕의 명으로 심형을 모시러 온 게요.”

오홍의 목소리에는 호기심이 가득했다. 동해 용왕이 갑자기 자신을 불러서는 심협을 데려오라고 했으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심협이 여기 왔다는 사실을 그는 부친에게 말한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용왕님의 부름이라면 당연히 가야죠. 지금 바로 갑니까?”

심협은 크게 설렜지만, 내색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마차가 준비되어 있으니 심형만 괜찮다면 바로 갑시다.”

심협의 반응으로 미루어 동해 용왕과 만난 적이 있는 듯했으니 더욱 궁금해졌지만, 오홍에게는 굳이 다른 사람의 비밀을 캐는 취미 같은 것은 없었기에 캐묻지는 않았다.

두 사람이 산장 밖으로 나오자 여섯 마리의 해마가 이끄는 전차가 서 있었다. 마차를 모는 것은 순해(巡海) 야차였다.

두 사람이 마차에 오르자 순해 야자는 바로 궁 안쪽으로 마차를 몰았다.

마차는 금세 거대한 수정궁에 도착했지만,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크게 돌아 궁전 뒤편의 편전 앞에 멈춰 섰다.

심협과 오홍이 마차에서 내려 안으로 들어가보니 동해 용왕이 청옥으로 빛나는 탁자에 홀로 앉아 상어 가죽으로 만든 그림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부왕, 심 도우를 모셔왔습니다.”

오홍의 목소리에 용왕은 웃으며 일어섰다.

“후배 심협이 용왕님을 뵙습니다.”

“그리 예의 차리지 말고 어서 앉게.”

심협이 포권하며 인사하자 용왕 오광이 웃으며 자리를 권했다.

심협 역시 가볍게 웃고는 맞은편에 앉으며 재빨리 눈앞의 동해 용왕을 살폈다. 그의 안색이 좋지 않았고, 혈색도 이틀 전보다 더 좋지 않았다.

‘구판화련이 소용없었나?’

심협은 내심 걱정하며 오광이 들고 있는 그림을 힐끗 봤다. 빼곡한 선들이 그려져 있는 게 일종의 부문 도진 같았다.

“백부님, 분부하실 일이라도 있는 겁니까?”

“심 소우는 우리 동해 용궁의 귀한 손님인데 어찌 분부 같은 게 있겠는가? 오늘 소우를 부른 건 구판화련에대한 고마움도 전할 겸, 사실 한 가지 부탁도 할 겸 해서라네.”

오홍은 역시 두 사람이 만난 적이 있음을 확인하고는 더욱 궁금해졌다.

한편, 심협은 겸손하게 포권하며 답했다.

“무슨 일이든 힘닿는 대로 도와드리겠습니다.”

“심 소우는 실력은 범상치 않으니 본왕의 내상을 알아봤을 걸세.”

오광은 고개를 끄덕여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는 그렇게 말했다.

“분명 백부님의 건강이 안 좋아 보이십니다. 축융분지에 구판화련을 찾으러 가신 것도 그 때문입니까? 한데 화련이 효과가 없었습니까?”

“구판화련으로 치료됐다면 소우를 이렇게 귀찮게 하지도 않았겠지.”

오광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고, 심협은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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