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834화 (834/1,214)

834화. 연기 대사

“어쨌든 내 충분한 양의 지심화련을 얻었소. 한데 복공이 죽었으니 아무래도 다른 사람을 찾아서 연단을 해야 할 것 같구려.”

심협은 초적염수에게서 받은 구슬을 꺼내며 말했다.

“우리 보타산에도 연단 대사들이 있긴 한데, 그들에게 화련단의 단방이 있을지는 모르겠소.”

“단방 말이오?”

심협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신식을 산하사직도 안으로 넣어 복공의 시체를 훑다가 허리춤의 하얀 옥대에서 저물법기를 발견하고는 살펴봤다.

옥대 안에는 수많은 진귀한 영재와 법보, 단약 옥간, 서책 등이 있었다.

심협은 다른 것은 신경 쓰지 않고 곧바로 옥간과 서책 등을 살폈다.

“심 도우, 지금 화련단의 단방을 찾고 있는 거요? 그럴 것 없소. 그 단방은 내가 복공에게 알려준 것이니까. 옥간이나 서책에는 없다오.”

명화연노에서 화령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 단방을 알고 있다고?”

심협은 눈빛이 반짝였지만, 그러면서도 계속해서 옥간과 서책을 찾았다. 저물 공간에는 옥간과 서책이 많지 않았기에 금방 모두 살펴볼 수 있었는데, 실제로 화련단의 단방은 없었다.

“아무래도 심 도우는 아직도 날 못 믿나 보오. 뭐, 그것도 당연하겠지. 누가 정체불명의 이상한 기령의 말을 믿겠소?”

화령자는 가볍게 한숨을 쉬고는 씁쓸한 목소리로 말을 맺었다.

“화련단 단방을 알고 있다면 알려주겠나? 답례는 섭섭하지 않게 할 테니까.”

“하하! 그게 무슨 말이오? 이런 단방 따위 내게 별 쓸모도 없소. 그저 날 조금이라도 더 신뢰해줄 수 있다면 기꺼이 주겠소. 자, 받으시오.”

화령자가 밝게 웃더니 심협의 머릿속으로 의념을 전송했다.

심협은 화령자에게 감사를 전하고는 빈 옥간을 꺼내 화련단 단방의 기록을 새겼다.

그는 화령자가 자신을 속이는 것은 아닌지 걱정되기도 했지만, 이 단방의 진위 여부는 보타산의 연기 대사들이라면 바로 알아볼 것이다.

“단방은 여기 있소. 그럼 연단에 대해서는 흑곰 도우에게 부탁하겠소.”

심협은 두 그루의 구판화련만 남기고 옥간과 대부분의 지심화련이 담긴 저물 팔찌를 흑곰 요괴에게 넘겼다.

“내게 맡기시오.”

흑곰 요괴는 옥간과 저물 팔찌를 받고는 가슴을 쿵쿵 치며 말했다.

두 사람은 이내 둔광으로 변하여 날아갔다. 그리고 반나절 후에는 심협은 동해 용궁으로, 흑곰 요괴는 보타산으로 돌아갔다.

심협은 임시 동부로 돌아와 바로 밀실로 향했다.

번천인에 당한 내상이 아직 완치되지 않았기에 서둘러 치료할 생각이었다.

꼬박 하룻밤이 지나고 나서야 심협은 두 눈을 떴다. 부상은 모두 회복된 상태였고, 눈에는 생기가 흘렀다.

양손을 결인하여 밀실 안에 두 겹의 금제를 더하고서야 그는 몇 가지 물건을 꺼냈는데, 바로 번천인과 명화연노, 금색 소검 등이었다.

심협은 먼저 번천인을 들어 신식으로 안을 들여다봤다. 그러나 강력한 저항력에 튕겨 나왔다.

“역시 상고의 중보로군. 연화하지 않으면 발동은 말할 것도 없고 탐색조차 못 하겠어.”

그는 전혀 놀라지 않았다. 초적염수도 화령의 힘을 이용하여 강제로 번천인 금제의 일부만을 연화하여 발동했기 때문이다.

한편, 명화연노 안의 화령자는 이런 모습을 보고는 씩 웃었다.

번천인을 연화하려면 반드시 선교의 옥청연보결(玉淸煉寶訣)을 써야 한다. 그리고 광성자가 연화한 기령인 자신은 옥청도법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다.

심협의 호감을 사고 싶었던 화령자가 막 입을 열려는 순간이었다.

심협이 양손을 빠르게 결인했다. 그러자 현묘한 법결이 끊임없이 번천인 안으로 들어가면서 대인이 허공에 떠올랐고, 겉에는 암홍색 빛이 흘렀다.

“이건 무슨 제련 법문이지? 옥청연보결보다 더 정교하다니…… 설마 전설의 선천연보결이라도 된단 말인가?”

화령자는 깜짝 놀라 두 눈이 커지더니 자신도 모르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심협은 화령자가 놀란 것을 느꼈지만, 아랑곳 않고 계속해서 선천연보결을 운공하여 번천인을 제련했다.

번천인 안의 금제는 오늘날 수선계의 법보 금제와는 매우 달랐다. 더 복잡했고, 제련하기가 훨씬 까다로웠다. 전력을 다해 선천연보결을 시전해도 금제 1도를 제련하는 데만 며칠이 걸릴 것 같았다. 번천인의 금제는 또 다른 특징이 있었다. 바로 금제 하나하나가 독립적이라 금제가 도대체 몇 도까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1도씩 차례로 연화해야만 했다.

한참을 제련해도 진도가 나가지 않자 심협은 우선 멈췄다. 시간을 두고 천천히 제련하기로 한 것이다.

번천인을 챙겨 넣은 그는 금색 소검을 들어 신식으로 살펴봤다. 매우 강렬한 경금(庚金)의 영력이 느껴졌는데, 매우 예리하여 하마터면 신식이 베일 뻔했다.

“엄청 강력한 금속성의 영재로군. 이건 무슨 재료지?”

“이 검은 요금석(耀金石)으로 만든 것으로, 안에는 많은 양의 구천금정(九天金精)이 담겨 있으니 예리할 수밖에 없소. 다만 아쉽게도 이 검을 제련한 자의 재주가 영 별로여서 구천금정의 효과를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소. 그래서 경금의 기운이 이렇게 밖으로 새어 나오는 것이오.”

화령자가 불쑥 끼어들어 이 소검을 만든 사람을 비웃었다.

“구천금정!”

심협은 놀랐다.

“그렇소. 구천금정이오. 한데 왜 그러시오? 무슨 문제라도 있소?”

화령자는 심협이 놀라는 모습에 궁금해졌다.

심협이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가 가지고 있는 두 개의 법보인 천두금준과 현황일기곤 모두 완전해지려면 구천금정이 반드시 필요했다. 그러나 구천금정은 매우 희귀하여 천기성의 재력으로도 찾을 수 없었으니, 반쯤 포기한 상태였다. 한데 오늘 이렇게 우연히 찾게 되었으니 놀라지 않으면 이상한 일이리라.

“내 법보들 중 마침 구천금정이 꼭 필요한 것들이 두 개나 있지. 한데 보아하니 연기술을 좀 아는 모양이군그래?”

심협은 길게 말하기 싫어 화제를 돌렸다.

“당연하오! 기령이 되기 전에 난 연기사였소. 광성자보다도 위였지. 그러니 광성자 그자가 나를 기령으로 연화한 것 아니겠소?”

화령자가 오만하기까지 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 대단하군.”

“절정급의 연기로인 명화연노 안에 오래 갇혀 있으면서 할 일이 없었기에 연기술을 더 깊이 연구했다오. 하여, 연기의 수단이 이전보다 훨씬 더 정진했지. 혹시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내게 맡기시오.”

화령자의 자신만만한 목소리를 들으며 심협은 크게 기뻤다. 마침 주위에 연기에 능통한 사람이 없어 아쉬웠는데 만약 화령자가 정말 진심으로 자신을 위해 나서준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하다.

“화령자, 정말 날 도와줄 건가?”

심협이 진중한 목소리로 물었다.

“명화연노는 지금 도우의 손에 있으니 내가 목숨을 부지하려면 복종하는 수밖에 없지 않겠소?”

화령자는 몇 번이고 호의를 표했음에도 심협이 그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아 애가 타던 참이었다. 한데 마침내 심협이 부탁을 해오니 매우 기뻤다.

“음, 네 견문과 능력을 나를 위해 써주겠다니, 기쁘구나. 다만, 지금까지 네가 따르던 복공이 내 손에 죽었다. 그러니 우리 사이에는 좀 더 신뢰가 필요하겠지. 무슨 말인지 이해하겠나?”

“그…… 뭘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이오?”

화령자의 표정이 굳었다.

“내가 계약 금제술을 알고 있는데, 표식을 영혼에 새기면 상대의 언행을 구속할 수 있다. 계약만 위반하지 않으면 상대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지.”

심협은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

“직접 명화연노를 연화하면 나를 제어할 수 있을 텐데 왜 굳이 계약 금제를……?”

“명화연노를 제련하는 건 나중이고, 계약 금제가 먼저다. 어쩔 건가?”

심협은 조용히 웃었으나, 그 미소는 어쩐지 좀 싸늘했다.

화령자는 몇 번을 중얼거리다가 결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현명하군.”

심협은 만족스러운 듯 웃고는 정혈을 뿜어내 양손으로 결인했다.

정혈은 빠르게 변하여 수많은 부문으로 이루어진 핏빛 부적을 이루었다. 핏빛 부적 주위에는 작은 글자가 몇 줄 떠올랐다. 바로 계약 내용이었다. 심협에게 어떤 해악도 끼치지 않을 것이며, 다른 사람에게 심협에 관한 정보를 넘기지 않겠다는 내용 등이었다.

화련자는 꼼꼼히 훑어보고는 또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심협이 결인하자 핏빛 부적이 화령자의 머릿속으로 들어갔다.

화령자의 머리에서 혈광이 떠오르더니 열두 개의 핏빛 번개가 빠르게 세 바퀴 맴돈 후 사라졌다.

“좋아.”

심협은 안도하며 한결 따뜻해진 미소를 지었다.

방금 시전한 계약금제술은 천기권에서 익힌 서혈지제(誓血之祭)였다. 연신비전에 기록된 계약술보다 뛰어나 진선급 존재의 언행까지 통제할 수 있다. 그러니 화령자 같은 기령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화령자는 울상이 되어 고개를 떨구었다.

“화령자, 너는 복공을 따라다녔으니 그에 대해 잘 알고 있겠지. 내게 말해줄 수 있겠느냐?”

서혈지제의 제약이 생겼으니 심협은 안심하고 물었다.

“난 원래 광성선부의 연보전(煉寶殿)에 있었으니 복공과는 만날 일이 없었소. 한데 백여 년 전, 선부가 축융분지에 떨어졌고, 복공은 초적염수와 선부를 차지하기 위해 싸우다가 패했소. 그때 도망치면서 명화연노를 가지고 갔지. 그렇게 복공과 만나게 된 거요.”

화령자가 무기력하게 대답했다.

“그렇게 된 거로군. 복공은 몇 년 동안 광성선부를 빼앗으려고 시도한 건가?”

서혈지제의 금제에는 거짓을 탐색하는 능력도 있었기에 그는 화령자의 말에 거짓이 없음을 알 수 있었다.

“그렇소. 복공은 확실히 능력이 있지만 성격이 음험하여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사람만 믿었소. 그가 선부에서 죽었을 때 어찌나 통쾌하던지! 잘된 일이오!”

화령자는 복공에게 큰 원한이 있었는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통제할 수 있는 사람? 그럼 화소와 소삼자 모두 그의 신통에 통제된 건가?”

“복공은 어령(御靈) 신통에 능하여 요수나 인간족을 제어할 수 있었소. 그러니 화소와 소삼자가 복수하러 올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오. 도우가 복공을 죽였으니 아마 그들은 감사하고 있을 거요.”

화령자는 가라앉은 기분이 어느 정도 풀렸는지 눈을 치켜뜨며 말했다.

심협은 실제로 그런 걱정을 하고 있었다. 비록 화소와 소삼자의 실력은 그리 신경 쓸 필요가 없었지만, 그래도 걱정이 하나 줄어든 것은 좋은 일이었다.

“그럼 축융분지에 떨어지기 전에 광성선부는 누구의 것이었지? 선부는 왜 축융분지에 떨어진 거야?”

그는 또다시 궁금한 것이 생겨 물었다.

서혈지제에 걸렸다고는 하나 화령자는 상고의 기령이었다. 그에게 어떤 특수한 능력이 있을지 모르니 조금이라도 자세히 알아두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광성자의 제자 온량(溫良)이란 자의 것이었고. 그는 진선 후기의 수사였지. 나름 괜찮은 자였는데, 아쉽게도 인연이 아니었는지 마겁 대전 중에 마족 고수과 싸우다가 그만 양쪽 모두 크게 다쳤지 뭐요. 둘 다 축융분지로 떨어져서 죽었는데, 그때 광성선부도 같이 떨어졌소.”

“광성자의 제자? 그럼 광성자 본인은……?”

“누가 알겠소? 광성자는 수백 년 전에 선부를 그 제자에게 넘긴 뒤 줄곧 나타나지 않았으니. 어쩌면 이미 어디선가 죽었을지도…….”

그렇게 말을 맺는 화령자의 미소는 더없이 싸늘했다.

심협은 광성선부에 대해 어느 정도 알아냈으니 더는 묻지 않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