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3화. 백부
검은 빛이 지나가는 곳마다 선부 안의 공간은 마치 거울처럼 깨져나갔고, 안의 수많은 궁전과 바닥도 완전히 무너져 가장 작은 원기의 알맹이가 되었다.
심협은 가슴이 철렁하여 서둘러 양팔에서 금색과 청색의 빛을 뿜어내 진시천리 신통으로 빠르게 고리 모양 산맥을 향해 날아갔다.
이와 동시에 세 사람이 안에서 빠져나왔다. 초적염수의 분신과 화소 그리고 소삼자였다.
세 사람이 빠져나오는 순간, 광성선부가 완전히 무너지면서 검은 태양이 허공에 나타났다. 이어 태양 부근의 허공이 덩달아 크게 흔들리면서 균열이 생겨났고, 곧 완전히 무너질 것 같았다.
꽝!
다음 순간, 검은 태양이 폭발하자 하늘을 뒤흔드는 소리가 울려 퍼졌고, 무수한 검은 빛이 뿜어져 나와 반경 10리를 완전히 뒤덮었다.
심협 등은 검은 빛의 위험을 감지하고는 서둘러 뒤로 물러났다. 지심화련 따위는 돌아볼 겨를도 없었다.
용암 호수 안에 모여 있던 적지 않은 적염수들은 이미 영지가 열린 상태였기에 검은 빛의 위험을 감지하고는 서둘러 달아났다.
한데 그때, 주위의 허공이 크게 흔들리더니 푸른 파도가 나타나 순식간에 검은 태양과 폭발하는 검은 빛을 뒤덮었다. 바닷속에서 출렁이는 눈부신 푸른 빛은 엄청난 위력이 담긴 물의 파동이었다.
폭발하는 검은 빛은 주위의 푸른 바닷물에 닿자 바로 흡수되어 사라졌다.
심협은 이 광경을 보고는 몸이 굳었다.
푸른 바닷물 옆에서 금빛이 반짝이더니 금빛 존재가 나타났다. 그는 황금색 옷을 입은 노인으로, 머리에는 금색 용뿔이 달려 있었으며, 몸에는 용의 비늘이 있었다. 비록 늙었지만, 그 위엄은 대단했다.
다만 그의 안색이 불안정한 게 몸에 병이 있는 듯했다.
“저분은……? 저분이 여기에 왜……?”
심협은 노인을 보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황금 옷의 노인은 꿈속 세계에서 만났던 동해 용왕 오광(敖廣)이었다.
오광은 나타나자마자 지심화련을 보고는 기뻐하더니 이내 꽃밭을 빠르게 훑어보며 무언가를 찾았다.
그러나 그의 표정은 금세 일그러졌다.
“이런, 없잖아!”
오광이 차갑게 외치고는 무언가 생각이 났는지 갑자기 먼 곳에 있는 심협 등을 보고는 소매를 휘둘렀다.
금빛이 소매에서 빠져나와 지심화련을 뒤덮고는 순식간에 전부 가져갔다.
오광이 지심화련 수집을 마친 순간, 푸른 바닷물 안에서 요동치는 검은 태양이 갑자기 폭발했다. 그 중심부에서는 엄청난 굉음이 울려 퍼졌다.
육안으로 보일 정도의 검은 기운이 사방으로 뿜어져 나오자 푸른 바닷물은 완전히 찢겨 나갔다. 찰나의 순간 강력한 소용돌이로 변하여 주위의 바닷물까지 전부 휘감고는 반경 수십 리의 모든 것을 휩쓸었다.
심협 등은 미처 방비하지 못하고 있다가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갔다.
화소는 소용돌이에 휩쓸려 날아가는 틈을 타 한 손으로는 소삼자를 잡았고, 다른 한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푸른 빛이 나타나 두 사람을 받쳤는데, 바로 푸른 비주였다. 비주 양쪽에는 푸른 나무 날개가 달려 있었다. 바로 복공이 사용했던 벽해운주였다.
벽해운주에서 영광이 번득이자 두 개의 대풍익도 푸른 빛으로 빛났고, 순식간에 지개가 되어 하늘 저 멀리 사라졌다. 믿을 수 없는 속도였다.
심협은 두 사람을 붙잡아 의문을 풀고 싶었지만, 한발 늦고 말았다. 게다가 화소와 소삼자는 복공의 조력자일 뿐, 죽을 정도의 죄를 지은 것도 아니었다.
“대풍익은 역시 대단하구나. 비주의 속도가 두 배나 빨라졌어.”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오광의 갑작스러운 등장이었다. 심협은 마침 심혈구이주를 빌리러 왔는데 안타깝게도 동해 용궁에 머무는 동안 오광을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한데 여기서 마주쳤으니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갑자기 아래의 땅이 아무런 징조도 없이 강렬하게 흔들리더니 주위의 고리 모양 산맥처럼 강하게 흔들렸다. 더없이 뜨거운 기운이 아래에서 솟구쳤고, 고리 모양의 산맥은 온도가 몇 배나 치솟았다.
심협은 표정이 돌변해 곧장 붉은 무지개로 변하여 도망치기 시작했다.
오광도 깜짝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는지, 황급히 물러났다.
콰쾅!
굉음이 울리더니 영겁의 세월 동안 잠들어 있던 화산이 갑자기 분화했고, 주위의 모든 것이 일제히 무너지면서 허공이 불길처럼 타오르기 시작했다.
한 줄기 거대한 불기둥이 땅에서 뿜어져 나와 위로 치솟았고, 바다를 뚫고 하늘 위로 치솟았다.
바다 위의 세상은 깊은 밤이었고, 칠흑처럼 어두웠던 밤하늘이 갑자기 붉게 변했다. 타오르는 불꽃이 구름을 뚫고 지나가면서 귀를 찢을 듯한 바람 소리가 들려왔고, 번개가 쳤다. 이 짧은 순간 변한 날씨는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잠시 후, 불이 타오르는 돌들이 비처럼 떨어지자 인근에 있던 수사와 요족들은 아연실색했다.
축융분지의 중심인 고리 모양 산맥도 거대한 불기둥에 흔들려 몇 군데가 무너져 내렸다.
무너진 산맥 입구에서 두 개의 둔광이 번개처럼 나왔다. 바로 심협과 오광이었다. 이들은 안전한 곳까지 물러나고서야 멈췄다.
심협의 온몸을 감도는 푸른 빛에서는 무서운 한기가 뿜어져 나와 주위의 바다에 얼음이 맺혔다.
진창해 한기로 몸을 보호한 덕에 그는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았다.
그러나 오광의 상태는 처참했다. 온몸이 붉게 달아올랐고, 황금 옷은 불에 타서 구멍투성이였으며, 어떤 곳은 화상을 입어서 그을린 냄새가 났다.
둔광을 멈춘 오광은 갑자기 얼굴이 새빨개지더니 격렬하게 기침했다. 그러더니 몸을 보호하고 있던 영광이 사라지면서 밑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괜찮으십니까?”
심협은 서둘러 푸른 빛으로 오광을 부축했으나, 오해를 살까 봐 함부로 다가가지는 않았다.
오광은 심협에게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푸른 단약을 꺼내 복용했다. 단약은 푸른 안개가 감돌았고, 주위에 하얀 안개를 만들어냈다.
‘엄청난 한기다. 치료 단약이 아닌 것 같은데……?’
심협은 그 광경에 눈이 커졌다.
단약을 먹은 오광이 가부좌를 하자 단전 부근에서 푸른 빛이 떠올랐고, 단약이 녹아서 빠르게 몸 곳곳을 흘렀다.
노인의 얼굴에는 푸른 빛이 감돌았고, 흐트러진 기운도 진정되기 시작했다.
이를 지켜보던 심협은 깜짝 놀랐다.
오광을 부축했던 푸른 빛은 사실 심협의 진창해 신통으로, 그 안에는 한기가 담겨 있었다. 한데 오광의 몸에서 갑자기 흡입력이 흘러나와 빠르게 푸른 빛 안의 한기를 흡수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오광의 기운은 훨씬 빠르게 진정되기 시작했다.
이를 본 심협은 의아했지만, 서둘러 진창해를 운공하여 푸른 빛의 한기를 대폭 늘렸다. 엄청난 양의 한기가 오광의 몸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오광은 기운을 되찾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우의 도움에 감사드리오.”
노인은 심협에게 포권했다.
“어려운 일도 아니었습니다. 도우께서는 동해 용족의 일원이시지요? 동해 용궁 오홍 전하의 벗으로서 당연한 일을 했을 뿐입니다.”
“오, 홍아의 벗이오? 그렇다면 귀하가 심협?”
오광이 조금 놀란 듯 물었다.
“그렇습니다. 잠깐…… 홍아라면…… 설마 동해 용궁의 주인이신 오광 선배님이십니까?”
심협은 짐짓 놀란 척 되물었다.
“선배는 무슨! 심 도우는 홍아의 벗이니 개의치 않다면 백부라고 부르게나.”
오광은 심협의 첫인상이 나쁘지 않았는지 허허 웃으며 말했다.
“네, 백부님.”
오광과 가까워지고 싶었던 심협 또한 사양하지 않고 바로 친근하게 굴었다.
“홍아에게 듣기로 심 소우는 대당의 수사라 했는데 왜 축융분지에 있는 건가? 방금 저 검은 태양은 무엇인지 알고 있나?”
“말씀드리자면 좀 깁니다. 며칠 전 몇 명의 벗과 함께 여기로 지심화련을 구하러 왔는데…….”
심협은 오광이 지심화련을 챙기는 장면을 떠올리고는 재빨리 머리를 굴렸고, 그간의 일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다만 번천인과 명화연노, 화령자 같은 민감한 정보는 뺐다. 광성선부에는 우연히 들어갔다가 마지막에 자신은 운 좋게 도망쳤다고 둘러댔고, 복공 등의 죽음은 언급하지 않았다.
“검은 태양은 선부가 폭발하면서 생긴 거였군! 광성선부! 그렇다면 광성자와 관련이 있는 건가?”
모두 들은 오광은 놀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건 저도 잘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야 그렇고…… 심 소우는 나보다 앞서 여기 왔으니 지심화련을 상당히 챙겼겠군. 혹시 그중에 잎이 아홉 개인 화련도 있나?”
오광은 이 일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 화제를 돌렸다. 다만 이 질문을 할 때 눈이 열정적으로 변했다.
“아홉 개 꽃잎의 화련이라면…… 구판화련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마침 운이 좋게 광성선부에서 두 개를 찾았습니다. 백부께서 필요하시다면 기꺼이 드려야지요.”
심협은 구판화련 한 그루를 건넸다.
“오, 진짜 구판화련이군. 축융분지에 진짜 있을 줄이야. 그자의 말이 맞았어.”
오광은 다급하게 화련을 받고는 중얼거렸다.
“그게 무슨……?”
심협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아, 별것 아니네. 이 구판화련은 내게 필요한 물건인지라 염치 불구하고 받겠네. 답례로 용궁의 특산물인 구절용골산호(九節龍骨珊瑚)를 주겠네. 안에는 진룡 혈맥의 힘이 담겨 있으니 단약을 연제하거나 법보를 제작할 때 큰 도움이 될 게야.”
오광은 정순한 혈광이 흐르는 혈홍색 산호를 꺼내 내밀었다.
“아닙니다. 겨우 지심화련 한 그루로 어찌 백부님과 거래를 하겠습니까?”
심협은 정색하며 손을 내저었다.
그는 사실 용골산호에 마음이 크게 흔들렸지만, 그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오광과 거리를 좁혀두는 것이었기에 사양했다. 후에 심혈구이주를 빌려야만 하지 않는가.
“소우가 그렇게 말한다면 내 이 화련을 고맙게 받겠네. 바쁜 일만 없다면 동해 용궁에서 며칠 머무는 게 어떻겠나? 내 극진히 대접하겠네.”
오광은 조금 의외였지만, 더 권하지 않고 화련과 용골산호를 챙기며 말했다.
“사실 이번에 동해에 온 것은 오홍 형을 보러 온 것이라 마침 동해 동궁에서 머무는 중이었습니다.”
“오, 그런가? 잘됐군. 지금은 급히 처리할 일이 있으니 내 나중에 일이 끝나면 들르겠네. 그때 대화를 나누세.”
오광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봤다.
몇 개의 둔광이 날아오더니 금세 도착했는데, 바로 용궁의 병사들이었다. 선두에는 진선 경지의 야차가 있었다.
“용왕님, 여기 계셨군요. 갑자기 불꽃이 하늘로 치솟던데,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어쨌든 무사하시니 다행입니다.”
진선의 야차는 오광이 무탈한 것을 보고는 안도하는 동시에 경계하는 눈빛으로 심협을 살폈다.
다른 병사들도 바로 오광 옆에 서서 보호하며 심협을 경계했다.
“벽수(碧水) 야차는 무례를 범하지 말게나. 여기는 심협 도우일세. 대당의 수사이자 본왕의 막역지교로, 방금 날 구해줬다네.”
“심 도우셨군요. 결례를 범했습니다.”
벽수 야차는 심협에게 황급히 예를 올렸다.
심협은 웃으며 포권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오광은 정말로 중요한 일이 있는지 인사를 남기고는 벽수 야차 등과 서둘러 떠났다.
심협은 조용히 그들을 배웅했다.
그때, 검은색 둔광이 멀리서 날아왔다. 흑곰 요괴였다.
“여, 심형. 무사히 나왔구려!”
“흑곰 도우도 무사했군요. 다행이오.”
심협은 흑곰 요괴가 무사한 것을 보고는 속으로 안도했다.
“방금 산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아니, 왜 혼자요? 다들 어딜 가고……?”
흑곰 요괴는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심협은 오광 때와는 달리 흑곰 요괴에게는 방금 있었던 일들을 더욱 자세히 설명했다. 다만, 이번에도 번천인과 명화연노, 화령자 얘기는 뺐다.
“복공이 그런 짓을 했다니…… 게다가 마족까지? 아무래도 평범한 선부가 아니었던 모양이오.”
흑곰 요괴는 고개를 끄덕이는 한편 놀랍다는 눈빛으로 심협을 바라봤다. 만약 자신이었다면 심협처럼 살아남지는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