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832화 (832/1,214)

832화. 심마괴뢰(心魔傀儡)

심협은 바닥의 그림자를 바라봤다.

검은 그림자는 기운이 완전히 사라졌고, 머릿속의 신혼도 참마검의 날카로운 검기에 잘려 완전히 소멸했다.

몸의 검은 기운이 빠르게 사라지면서 본모습이 나타나자 심협은 깜짝 놀랐다. 바닥에 쓰러진 것은 용아가 아닌 신기요였다.

“신기요? 이자가 여기는 왜?”

심협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신기요가 축융분지에 나타났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신기요는 그리 위협적이지 않았고, 그저 지심화련을 찾으러 온것으로 여겨 신경 쓰지 않았다. 한데 이곳에는 어찌 나타났단 말인가.

그때, 가느다란 목소리가 산하사직도에서 흘러나와 그의 귓가에 들려왔다.

“도우, 조심하시오! 이건 혹심천마(惑心天魔)의 독문 수단인 심마괴뢰(心魔傀儡)로, 죽음을 대신하는 효과가 있소. 적은 아직 살아 있을 거요!”

목소리가 들려온 곳은 보라색 화로 안이었다.

심협은 의아한 표정으로 신식을 보내 보라색 화로 안을 들여다봤다. 안에는 보라색의 화인(火人)이 있었는데, 외형은 어린아이와 같았지만 입이 없었고, 보라색의 눈과 작은 코만 있는 기이한 모습이었다.

그는 신중한 표정으로 산하사직도의 힘을 이용해 보라색 화로를 겹겹이 감싸서는 그 화동(火童)이 날뛰지 못하게 했다.

이와 동시에 머리 위에서 금빛이 반짝이며 천두금준이 나타나면서 수많은 금빛이 떨어졌고, 기혈번도 나타나 10여 장에 이르는 거대한 깃발로 변하여 그의 주위를 빠르게 감쌌다.

화로 안 화동의 말이 사실이든 거짓이든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리라.

한데 그가 몸을 보호한 순간, 두 개로 나누어진 신기요의 몸이 갑자기 폭발하면서 짙은 하얀색 안개가 되어 그를 덮쳤다.

이 안개에는 강력한 환력(幻力)이 담겨 있어서 그의 몸은 알 수 없는 이유로 뜨거워졌고, 눈앞에는 환상이 하나둘 나타났다. 화려한 색깔과 수많은 물체가 떠다니는 게 꼭 만화경 같았다. 게다가 이 하얀 안개는 매우 견고하여 마치 단단한 결계 같았다.

표정이 어두워진 심협은 서둘러 부주진신법으로 눈앞의 환상을 제압하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신기요는 이미 죽었을 텐데? 시체에 남아 있던 신기루가 이렇게 강한 환력을 가지고 있다니!”

“이 하얀 안개는 신기요의 환력뿐만 아니라 심마대법의 신통이 담겨 있소. 그대는 이미 심마에 걸렸으니 서둘러 심마의 폭주를 막고 주위의 환상을 깨트리시오. 지금 그자가 선부 석비를 연화하고 있는데, 그 속도가 엄청나오!”

보라색 화로에서 화동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는데, 매우 다급해 보였다.

심협의 눈에서 빛이 번득였다. 이어서 그가 소매를 휘두르자 산하사직도가 소매에서 빠져나와 순식간에 몇 배로 커졌다.

그림에서 하얀 빛이 반짝이더니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엄청난 흡입력이 나와 주위의 하얀 안개를 순식간에 그림 속으로 빨아들이면서 안개는 금방 옅어졌다.

이와 동시에 심협은 현황일기곤을 꺼내 발천난봉을 시전했다.

수많은 곤봉의 허상이 사방을 공격하자 썩은 나뭇가지처럼 주위의 안개 결계가 부서졌고, 시야도 이전으로 돌아왔다.

심협은 나오자마자 선부 석비를 돌아봤다. 보라색 화로 속의 목소리가 말한 대로 누군가가 그 위에 서 있었는데, 그 모습은 방금 돌기둥에서 나왔던 그 그림자와 똑같았다.

상대의 몸에서는 나오는 대량의 검은 기운, 매우 순수한 마기가 선부 석비 안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빠르게 금제를 연화하고 있었다. 그 짧은 순간에 벌써 3할 이상을 연화한 후였다.

검은 그림자는 심협이 이렇게 빨리 빠져나오자 놀랐는지 온몸의 검은 기운이 흔들렸다.

심협이 현황일기곤에서 금빛을 뿜어내자 빠르게 커져 순식간에 금색의 거대한 봉이 되었다.

“가랏!”

있는 힘껏 던진 금색의 거대한 봉에서 하늘을 찌르는 괴력이 쏟아졌다.

그림자의 검은 기운이 괴력에 압도되어 크게 흔들리며 요동쳤고, 이미 연화한 선부 석비의 진문이 바로 빛나기 시작했다.

주위의 열두 돌기둥에서 다시 짙은 불빛이 밝아졌고, 열두 마리의 화룡 조각상이 살아나 불기둥을 뿜어내 현황일기곤과 충돌했다.

현황일기곤의 위력이 아무리 강해도 번천인과 비교할 바는 아닌지라 연이은 굉음과 함께 바로 열두 개의 불기둥에 막혔다.

검은 그림자는 기뻐하며 열두 개의 불기둥으로 현황일기곤을 가두는 동시에 전력으로 도천현화대진을 발동했다. 수많은 하얀색 불꽃이 치솟아 하늘을 뒤덮은 불바다가 되어 심협을 덮쳐왔다.

허나 그때, 검은 그림자 뒤의 허공이 일렁이더니 금색 날개가 달린 노란색 존재가 나타나 차가운 빛으로 번득이는 노란 손을 휘둘렀다.

검은 그림자는 깜짝 놀라 서둘러 옆으로 피하면서 입에서 피로 물든 검은 비도를 뱉어내 노란 존재를 베려 했다. 그 속도는 놀랍도록 빨랐다.

하지만 간시(干尸)는 등에 달린 두 날개에서 금빛이 반짝이더니 순식간에 허공에서 사라져 비도의 공격을 피한 뒤 곧바로 검은 그림자 앞에 나타났다.

간시의 양쪽 손가락이 갑자기 날카롭게 변하여 몇 촌 길이의 노란 손톱이 되더니 다시 빠르게 검은 그림자의 가슴을 노렸다.

검은 그림자는 깜짝 놀라 서둘러 몸에서 마기를 뿜어냈다. 칠흑 같은 마염이 떠오르며 음산하고 괴이한 기운이 쏟아져 나와 노란색 간시를 막으려 했다.

‘이 구음마염(九陰魔焰)은 모든 영력을 부식시킬 수 있으니 피하는 게 좋을 거다.’

검은 그림자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의기양양해 했다.

하지만 간시는 전혀 피할 생각이 없는 듯 양손에서 잿빛 시화(屍火)를 뿜어내 계속해서 검은 마기를 파고들더니 마치 앞에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몇 겹의 마기를 뚫고 검은 그림자의 가슴까지 찔렀다.

칠흑의 마염은 간시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고, 잿빛 시화에 닿자마자 흡수되었다.

검은 그림자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몸에 파고든 손을 내려다봤다.

노란색 간시의 손에 잿빛 시화가 더 강해지면서 순식간에 검은 그림자의 몸을 뒤덮었고, 순간 그는 잿더미가 되어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이어 피로 물든 비도가 툭 떨어졌다.

검은 그림자가 죽자 도천현화대진은 다시 제어를 잃었고, 대전 안의 불꽃도 모두 사라졌다.

심협은 환하게 웃었다. 간시는 당연히 천살시왕이었다. 그가 아까 산하사직도에서 나올 때 만일을 대비해 몰래 꺼내서 옆에 숨겨뒀는데, 요긴하게 써먹은 것이다.

천살시왕의 시화는 역시 태우지 못하는 것이 없었다. 마기도 예외가 아니었다.

“천살시화! 언문! 설마 도우가 이런 고급 절기를 익혀 태을의 꼭두각시를 만들어냈을 줄은 몰랐소. 감탄했소! 태을 꼭두각시의 도움이 있다면 선부 석비를 전부 연화하여 광성선부를 장악하는 것도 가능하겠소!”

보라색 화동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넌 누구냐? 왜 그 안에 있는 거지?”

심협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이 보라색 화동은 한눈에 천살시왕을 알아봤다. 식견이 보통이 아니었다.

“난 화령자(火靈子)요. 상고 시기의 잔혼(殘魂)에 불과하지. 광성자, 그 작자에게 이 명화연노(冥火煉爐) 안에 연화되어 이 화로의 기령이 되었소. 도우는 날 경계하지 않아도 되오. 본인은 현재 아무런 바람도 없소. 그저 살아 있는 동안 이 세상의 변화를 지켜보고 싶을 뿐이오. 이제 이 화련노가 도우의 수중에 들어갔으니 나와 화련노는 그대와 평생을 함께하겠소. 안심이 안 된다면 이 명화연노를 연화해도 좋소.”

보라색 화동이 서둘러 말했다.

심협은 그 말에 눈빛이 반짝였지만, 화령자의 말대로 명화연노를 연화하지는 않고 그대로 산하사직도 안에 봉인해두었다.

그는 검은 그림자가 잿더미가 된 곳으로 다가가 피로 물든 비도를 집어 들었다.

그것은 마기였다. 전체가 영롱한 검은빛이었고, 날은 차갑게 반짝여 매우 예리해 보였다. 안에는 52도 금제가 담겨 있었고, 혈성(血腥)의 힘이 뒤섞인 마기가 흘러나왔다. 그가 가지고 있는 마보보다 절대 약하지 않았다.

‘굉장한 마기(魔器)로군. 아까 그 검은 그림자의 짙은 마기로 미루어 분명히 마족이었어. 아무래도 용아는 본체가 아니었나 보군.’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전음으로 명화연노 안의 화령자에게 물었다.

“화령자, 좀 전에 혹심천마의 심마대법이라고 했는데, 혹심천마가 누구지? 나는 왜 그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는 건가?”

“혹심천마는 축록(逐鹿) 전쟁 때 마제 치우 휘하의 대장으로, 심마를 제어하는 데 능했소. 게다가 이미 심마지체를 수련하여 형태가 전혀 없기에 상대하기가 매우 까다로운 존재요. 천매마녀(天魅魔女), 전신형천(戰神形天), 성신과부(星神夸父)와 함께 명성이 자자한, 치우의 가장 강한 사대 마장이오.”

“사대 마장이라니? 치우 휘하에는 열두 마존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는데, 언제 또 사대 마장이 생겨난 거지?”

“사대 마장은 축록의 전쟁 때 모두 죽었으니 당연히 모를 거요.”

화령자는 거만한 표정으로 말했지만, 금세 자신의 처지를 깨닫고는 바로 표정을 풀었다.

“그런가. 다 죽어서 다행이군.”

심협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화령자의 건방진 태도는 신경 쓰지 않았다.

“혹심천마는 이미 죽었지만 신통과 공법은 남아 있소. 방금 그자도 분명히 혹심천마의 의발을 계승한 게 분명하니 언젠가 다시 만나면 조심해야 하오.”

“나중에? 그자가 아직 살아 있다는 건가?”

“확실하오. 심마대법을 수련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심마를 이용하여 걸어 다니는 심마의 괴뢰로 만든다오. 심마대법을 수련한 자가 심마 괴뢰의 몸에 달라붙어 괴뢰 본체의 모든 실력을 발휘하고 위험할 때는 바로 도망쳐 근처 다른 괴뢰의 몸에 달라붙으니 죽이기란 매우 어렵소.”

“다른 심마 괴뢰로 옮겨간다? 아! 청청!”

심협의 표정이 순간 변했다.

“청청? 저 위에 있던 그 파란 옷을 입은 여자 말이오? 이미 이곳을 빠져나간 게 느껴지오. 그녀의 몸에서도 마기가 느껴졌는데…… 심마 괴뢰였나? 음, 이런! 도우 어서 여기를 빠져나가야 하오!”

화령자가 표정이 굳어지더니 다급하게 외쳤다.

“무슨 일인데?”

심협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앞에 있던 선부 석비를 보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비석이 갑자기 강하게 흔들리더니 수많은 뇌전 같은 검은 빛과 함께 모든 것을 파멸시킬 기운이 흘러나와 빠르게 퍼져 나갔다. 이는 갈수록 격렬해졌다.

“마족의 대붕멸신통(大崩滅神通)이오! 방금 그 심마 괴뢰가 선부 석비를 연화할 때 마기를 이용하여 석비 핵심 금제 안에 남겨 두었소. 비석은 이미 무너졌으니 선부 전체가 곧 무너질 게요. 도우도 어서 여기서 빠져나가시오!”

화령자가 의념을 심협의 머릿속으로 전송하자 광성선부 금제에 대한 상황과 공간 지도를 뚫고 밖으로 지나가는 하얀색 선이 떠올랐다.

심협은 주저했다. 광성선부가 아까워서가 아니었다. 방금 전에도 복공과 초적염수에게 이용당했는데 지금 화령자를 믿어도 될지 의문이 든 것이다.

그때였다.

콰직!

저 앞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서둘러 돌아보니 선부 석비에서 번개 같은 검은 빛이 이전보다 몇 배 더 짙어졌다. 석비 위로는 균열이 생겨난 것이 아무래도 금방 붕괴할 것 같았다.

심협은 곧장 화령자가 알려준 방향대로 날아가면서 만일을 대비해 천두금준, 기혈번, 산하사직도 등의 보물로 몸을 보호했다.

다행히 그는 순조롭게 광성선부를 빠져나왔다. 뒤에서 굉음이 들려왔고, 성난 파도 같은 검은 빛의 파동이 빠르게 몰아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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