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0화. 다른 속셈
심협도 복공의 목소리를 듣고는 눈이 반짝거렸다.
복공은 선부 주위의 공간 장벽을 부술 수 없다고 했는데 지금은 공간 장벽을 부쉈을 뿐만 아니라 육합천문진을 단숨에 이곳으로 옮겨 왔다. 이 상황에 강한 의문이 들었지만, 지금은 초적염수를 죽이는 게 먼저였다.
심협은 양손을 산하사직도 위에 올려놓았다. 휙 소리와 함께 다시 열 배 이상으로 커진 그림에서 영롱한 하얀 빛이 눈부시게 번득였다.
산하사직도는 곧장 돌돌 말려 끝과 끝이 닿아 하얀색 거대한 고리가 되어 암홍색의 대인을 안에 가두었다.
하얀 고리 안의 공간이 마치 굳어버린 것처럼 바로 열 배 이상으로 무거워지자 암홍색 대인과 초적염수는 모두 안에 갇혀서 꿈쩍도 할 수 없었다.
이 연속된 술법은 복잡하지 않았지만, 이를 마친 심협은 안색이 창백해졌다. 산하사직도는 천도의 지보였기에 지금 그의 경지로 발동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었으며, 영력 소모도 매우 컸다. 한데 연달아 두 번이나 발동했으니 그의 법력은 6할이나 줄어든 상태였다.
육합천문진 안. 복공은 심협이 초적염수를 제압하자 깜짝 놀랐다.
하지만 이내 그는 시선을 돌려 화소에게 눈짓하고는 조용히 석문 허상에서 나와서 근처의 금색 원기둥 옆으로 다가가 안으로 녹아들었다.
화소는 다시 소매를 휘둘러 또 하나의 푸른 꼭두각시를 불러내 복공이 원래 서 있던 곳에서 법진을 발동하게 했다.
육합천문진 안이 눈부신 하얀 빛으로 가득해지자 신식이 더는 펼쳐지지 않았고, 바깥에 있는 사람은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었다.
한편, 산하사직도에 봉인된 초적염수는 무언가를 감지했는지 안색이 변하더니 입에서 단약 같이 생긴 주먹만 한 붉은 구슬을 꺼내 암홍색 대인에 집어넣었다.
암홍색 대인은 크게 번쩍이면서 다시 3할 정도 커져 전력을 다해 산하사직도의 봉인에서 벗어나려 했다.
하지만 산하사직도가 어떤 보물인가! 대인이 아무리 흔들어도 하얀색 거대한 고리는 전혀 무너질 기세를 보이지 않았다.
“이놈! 이건 도대체 어떤 보물이란 말이냐!”
초적염수는 초조해졌는지 다시 심협에게 호통 치듯 물었다.
심협은 그를 무시한 채 대전 안을 향해 손을 휘둘렀다. 세 개의 빛, 순양검, 참마검, 구유가 날아왔다.
현황일기곤도 벽에서 빠져나와 그의 앞으로 다가왔다.
지금 심협은 모든 법력을 동원하여 산하사직도를 제어하고 있었기에 네 개의 보물은 우선 소매 안으로 거두었다.
“이놈, 네놈이 복공과 무슨 관계인지 모르겠지만, 복공이 광성선부의 금제를 전부 장악하면 네 생사도 저놈의 수중에 떨어지는 데 그래도 괜찮단 말이냐?”
초적염수가 소리쳤다.
“뭐라고? 선부를 장악하다니?”
심협이 당황하여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모르고 있었나?”
초적염수는 심협의 표정을 보고는 반문했다.
“나와 복공은 이곳의 지심화련을 따러 온 것뿐이다.”
“하! 역시 그랬군. 저 교활한 놈이 진실을 숨겼어. 도우, 잘 듣게. 여기 광성선부는 선교의 대능지사(大能之士), 광성자(廣成子)가 만든 선부인데, 수년 전 마겁 때 이리 떨어졌네. 복공은 본래 이 선부를 지키는 수호 영수인데, 그간 여러 번 이곳에 잠입하며 선부의 금제를 연화시키려 했네.
만약 저자가 여기를 장악하고 선부 안의 도천현화대진(都天玄火大陣)을 이용하면 태을의 존재도 쉽게 죽일 수 있으니 그대와 나는 빠져나갈 길이 없다네. 복공이 이 사실을 도우에게 말하지 않은 걸 보면 일이 성사된 후 살인멸구할 계획이었던 게야!”
초적염수가 내심 기뻐하며 거듭 충고하듯 말했다.
“복공이 이 선부의 수호 영수라면 어째서 지금 선부가 그대의 수중에 있는 거지?”
“저 고리 같은 산맥은 본래 본존의 기반이지. 광성선부가 이곳에 떨어졌으니 당연히 본존의 기연인데 내가 왜 복공의 손에 넘겨야 하겠나?”
초적염수가 이를 악물며 답했다.
심협은 대화를 시작할 때부터 유명귀안으로 초적염수를 관찰했는데, 조금의 거짓은 있을지 몰라도 대부분은 사실일 터였다. 이에 그는 가슴이 철렁했다. 초적염수는 이간질할 의도이기도 했지만, 분명 일리가 있었다. 복공은 광성선부의 수호 영수라 이곳에 대해 그렇게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귀천세가 태양진화에 죽을 때도 복공이 몰랐을 리가 없다. 그런데도 지켜만 봤으니 어떤 자인지 알 만했다.
게다가 복공은 가장 중요한 목적을 숨겼고, 초적염수를 붙잡아두라고 했다. 이는 자신을 이용하려는 속셈이 분명했다.
“도우, 그대와 나는 아무런 원한도 없네. 그대는 이 선부를 탐내지도 않지. 그러니 서로 한 걸음씩 물러나는 게 어떻겠나? 내게 천 그루 정도 되는 지심화련과 열 그루의 구판화련이 있는데, 전부 도우에게 주고 이곳에서 무사히 내보내 주지. 도우는 그저 이 법보에서 나를 내보내주기만 하면 되네. 어떤가?
초적염수는 심협의 표정이 변하자 재빨리 덧붙였다.
“나를 이곳에서 나가게 해주겠다고?”
“본존은 이곳에서 계속 선부의 금제를 연화했네. 완전히는 아니어도 일부를 장악했으니 도우를 내보내는 것쯤은 문제도 아닐세.”
심협이 뭐라고 말하려는 순간, 먼 곳의 육합천문진에서 갑자기 하얀 빛이 뿜어져 나와 빠르게 퍼져 나갔고, 순식간에 대전 전체를 뒤덮었다.
하얀 빛에 휩쓸리자 주위의 모든 것이 기이하게 변해갔다.
심협은 시야가 흐려지면서 끝없는 환상에 빠져들었으나, 초적염수는 산하사직도가 주위를 에워싸고 있어서 육합천문진의 힘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심협은 이를 악물어 부주진신법을 운공한 후에야 머릿속이 맑아졌다.
“나까지 가두려 하는 걸 보니 복공은 정말로 다른 속셈이 있는 모양이군!”
그는 차갑게 식은 눈으로 몸을 흔들어 산하사직도 안으로 들어가더니 초적염수 옆에 나타났다. 이제 육합천문진의 힘도 그에게 영향을 주지 못했다.
“어떻게 된 거지? 왜 갑자기 심협이 사라진 거야? 저 그림은 도대체 무슨 보물이기에 육합천문진의 힘을 차단할 수 있는 것인가!”
육합천문진 안에서 화소가 놀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의 주위 다섯 개 진안에는 소삼자 외에는 무혼 꼭두각시만 보였다.
사실, 심협의 추측은 정확했다. 복공과 화소는 심협 등을 이용하여 광성선부를 빼앗을 생각이었다. 지금까지 계획은 순조로웠고, 초적염수는 육합천문진에 갇혔으니 심협 등은 이제 필요가 없게 됐다. 청청은 이미 자신의 신통에 갇혔으니 이제 심협 차례였다.
한데 화소의 예상과 달리 심협을 가두지 못했다. 심협에게는 육합천문진에 대항할 법보까지 있었던 것이다.
“본존의 말이 맞지 않은가? 복공이 그대를 공격하기 시작했는데도 도우는 계속 버틸 생각인가?”
“좋아, 풀어주겠다. 단, 먼저 지심화련을 넘겨라.”
심협이 딱딱한 목소리로 말하자 초적염수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붉은 구슬을 넘겼다.
“좋아. 받게.”
심협이 신식으로 구슬을 살펴보니 그 안의 커다란 저물공간에는 지심화련이 빼곡했다. 그중 열 개는 눈부신 붉은 빛을 뿜어냈으니, 바로 구판화련이었다.
초적염수가 이렇게 시원시원하게 나오니 심협도 더는 질질 끌 필요가 없었다. 그는 바로 결인하여 산하사직도의 봉인을 풀었다. 그러자 산하사직도는 다시 줄어들어 한 폭의 그림으로 변하여 그의 주위를 맴돌았다.
“하하! 통쾌한 자로군. 그렇다면 약속대로 내보내주지.”
초적염수는 봉인에서 벗어나자마자 머리 위의 암홍색 대인에서 빛을 뿜어내 육합천문진의 하얀 빛과 충돌시켰다.
꽈르릉!
굉음과 함께 초적염수의 앞발이 부근의 금색 기둥에 닿았다. 기둥에서 갑자기 눈부신 붉은 빛이 나오더니 심협의 몸을 뒤덮었다.
눈앞이 흐려졌던 심협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다른 암홍색 대전 안이었다.
이곳의 배치는 금색 대전과 똑같아 보였지만, 바닥과 벽이 전부 암홍색이었다. 도무지 무슨 재료인지 알 수 없었다.
대전 안에는 바닥과 벽처럼 암홍색인 열두 개의 둥근 돌기둥이 주천(周天)의 순서대로 우뚝 솟아 있었고, 똑같이 적룡이 새겨져 있었다.
금색 대전과의 유일한 차이라면 열두 개의 붉은 돌기둥 중앙에 반 장 크기의 붉은 돌비석이 세워져 있다는 점이었다. 이 비석 위에는 복잡한 진문이 새겨져 있었고, 가운데에는 열두 마리의 화룡이 서로 뒤엉켜 있는 그림이 있었다.
“선부를 지키는 비석인가?”
인형의 성에서 봤던 비석이 떠올랐다. 조금 차이가 있긴 해도 이곳이 선부의 금제 핵심인 것만은 분명했다.
누군가 비석 위에 가부좌를 하고 있었는데, 바로 복공이었다. 그의 앞에는 발이 세 개인 보라색 화로가 떠 있었다. 화로에는 흉악하게 생긴 세 마리의 소머리가 새겨져 있어서 매우 사악해 보였다. 그의 결인을 따라 보라색 불꽃이 보라색 화로에서 쏟아져 나와 아래 비석의 금제를 끊임없이 연화했다. 이미 절반의 금제 부분이 보라색 불꽃에 뒤덮여 보랏빛을 번쩍이고 있었다.
“너는! 네가 어떻게 여기에 온 거지?”
복공도 거의 동시에 심협의 존재를 알아채고는 눈에서 살기를 번득였다.
심협은 주위를 둘러봤다. 사방이 막혀 있어서 출구의 흔적이 전혀 없었다.
‘아무래도 또 초적염수에게 놀아난 모양이군. 나를 이곳으로 보내서 복동과 싸우게 하려는 게지.’
어부지리를 얻을 속셈이리라.
“난 복 도우와 초적염수 사이의 싸움에는 관심이 없소. 이 선부를 차지할 생각도 없지. 비석의 절반을 연화한 걸 보니 금제를 적잖이 장악한 것 같은데, 날 내보내 주면 아무런 간섭도 하지 않겠소. 어떻소?”
“여기까지 와놓고 나가겠다고? 더 좋은 방법이 있지. 여기서 죽는 거야!”
복공은 갑자기 소리치더니 아래의 비석을 결인했다.
대전 주위의 기둥들에서 붉은 빛이 반짝이더니 무수한 화염의 영문이 나타나 대진을 이루었다. 이어서 대전 안에 눈부신 암홍색이 떠올랐고, 온도가 급격히 치솟았다. 곧이어 수많은 불꽃이 열두 개의 기둥에서 쏟아져 나와 빠르게 퍼지면서 대전 전체가 순식간에 천화의 연옥이 되었다. 뜨거운 열기의 파도가 휘몰아치면서 높아진 온도는 평범한 수사라면 곧장 말라비틀어질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고온에도 대전의 바닥과 벽은 녹아내릴 낌새조차 없었다.
심협의 경지로는 주위의 열기를 견디기 힘들었기에 서둘러 순양검과 한교주를 발동했다. 붉은 빛과 푸른 빛이 몸을 뒤덮자 그제야 주위의 열기가 차단되었다.
이를 본 복공은 피식 웃었다.
도천현화대진이 고작 이 정도 위력이라면 광성자의 눈에 들지도 않았을 것이고, 광성선부에 숨겨두지도 않았을 터였다.
그는 양손을 빠르게 결인하고는 이상한 주문을 읊었다.
주위의 불바다가 더 거세게 타오르더니 불바다 깊은 곳에서 우르릉거리는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와 동시에 열두 개의 돌기둥에 타오르던 불꽃이 순백색으로 변하면서 대전 안의 온도는 다시 한번 급격히 상승했다. 공기는 순식간에 말라버렸고, 강력한 흡입력이 열두 개의 불기둥에서 뿜어져 나와 심협까지 태워버리려 했다.
심협은 바로 법력을 운공하여 몸을 안정시키고는 양팔에서 풍뢰영광을 뿜어내 금빛 허상으로 변해서 복공에게 달려들었다.
순양검이 한발 앞서 날아갔다. 수십 장 길이의 붉은 검광이 위에서 번쩍이더니 주작의 허상이 나타나 불바다를 순식간에 베었다. 그 날카로움은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었다. 신마저 벨 기세였다.
복공은 기겁하며 머리 위에서 노란 빛을 반짝였고, 앞서 사용했던 노란색 대인을 꺼냈다.
대인의 사방에는 산수화조의 그림이 새겨져 있었고, 바닥에는 꽃무늬가 그려져 있었다. 초적염수가 사용했던 암홍색 대인의 복제품 같았다. 대인은 순식간에 열 배로 커져 작은 산만 해지더니 순양검 위로 강하게 떨어졌다. 돌풍이 공간 전체를 뒤흔들었다.
복공은 오른손을 동시에 뻗어 보라색 화로 안으로 넣었다. 화로에서 열두 개의 보랏빛이 뿜어져 나와 주위의 열두 개의 돌기둥을 때렸다.
각 기둥의 하얀 불꽃이 몇 배나 더 짙어지더니 화룡의 조각이 갑자기 살아났고, 일제히 새하얀 불기둥을 뿜어냈다. 수백 장 크기의 거대한 불꽃 그물이 사방을 휩쓸었다.
이 불꽃 그물은 현화천라망(玄火天羅網)으로, 도천현화대진의 현묘한 변화였다.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을 듯 충만한 위압감이 안에서 폭발하더니 심협을 뒤덮었다. 마치 하늘이 떨어지는 것 같은 기세였다.
꽈르릉!
굉음과 함께 불바다가 맹렬하게 용솟음쳤고, 참혹한 비명이 안에서 들려오더니 점점 줄어들었고 곧 완전히 사라졌다.
허나 심협이 이렇게 쉽게 죽을 리 없다고 생각한 복공은 여전히 굳은 표정으로 다시 결인했다.
현화천라망이 사라지면서 안은 텅 비었고, 심협은 잿더미가 되어 있었다.
복공은 눈살을 찌푸리며 잠시 주위를 살피더니, 심협의 흔적을 찾을 수 없자 관심을 끊고 다시 비석을 연화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