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8화. 적염수
심협은 통로를 바라보다가 시선을 거두고는 황금색 용암 옆으로 와서 구판화련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강력한 기운이 구판화련 위에 나타나 잡으려 하자, 구판화련이 갑자기 깨지면서 다시 태양진화로 변하여 심협의 법력을 단숨에 태워버렸다.
심협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거대한 손을 연달아 떨어트려 태양진화의 공격을 이리저리 흔들었다.
전방 멀지 않은 곳에서는 용아가 심협을 놔둔 채 동굴 통로 쪽으로 달렸다.
복공도 동굴 안으로 들어왔다가 심협의 행동을 보고는 눈을 치켜떴지만, 그 역시 이어서 서둘러 통로로 향했다.
이 공간 법보는 위험하겠지만, 태양진화와 같은 진귀한 보물이 더 있을지도 모른다. 복공은 화속성 신통을 수련하지 않았기에 태양진화에는 큰 관심이 없었고, 심협이 이미 선수를 쳤으니 굳이 경쟁할 필요는 없었다.
복공과 용아가 모두 사라지자 심협은 안도했다. 혼자 남았으니 마침내 모든 수단을 동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순양검이 그의 소매에서 뿜어져 나왔다. 그가 결인하자 대량의 홍련업화가 거대한 불꽃손으로 변하여 태양진화를 움켜쥐었다.
홍련업화도 천화였기에 태양진화에도 불타지 않았다.
태양진화는 바로 금색 불뱀으로 변하여 힘껏 발버둥 쳤지만, 안타깝게도 홍련업화에게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이리 와!”
심협이 낮게 외치며 화염의 커다란 손을 힘껏 끌어당기자 10여 줄기의 태양진화가 주춤주춤 끌려왔다.
용암 구역 주위 허공에서 은빛이 반짝이면서 법진이 만들어지자 강렬한 공간 파동이 뿜어져 나왔다. 바로 공간 법진이었다.
법진과 하나로 합쳐진 태양진화는 화염 손이 힘껏 당기는데도 쉽게 버텨냈다.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군.”
심협의 손에서 하얀 빛과 함께 한 폭의 그림이 나타났다. 산하사직도였다.
한 손으로 산하사직도의 끝을 잡고는 법력을 주입하자 열 배 이상 커져 길이가 10장에 이르는 거대한 그림으로 변했다.
심협이 팔을 휘두르자 산하사직도가 거대한 채찍처럼 은빛 법진을 공격했고, 이어 웅장한 공간의 힘이 솟구쳤다.
파지직!
무언가 깨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은빛 법진은 격렬하게 흔들렸다. 법진은 절반이 무너졌지만, 남은 절반은 건재했다.
심협은 눈을 치켜뜨고는 다시 산하사직도의 공간의 힘을 발동했다. 그러자 은빛 법진은 완전히 무너졌다.
이어서 홍련업화의 커다란 손이 다시 잡아당기자 10여 줄기의 태양진화가 전부 끌려왔다.
“이렇게 견고한 공간 법진이라니, 산하사직도가 없었다면 부수지 못했겠어.”
심협은 다행이라고 생각하고는 무언가를 또 하나 꺼냈다. 바로 무명공법을 담은 하얀 석갑이었다.
이 석갑에는 흡수 능력이 있어 홍련업화를 흡수할 때도 사용했다. 그동안 연구한 결과 진즉 석갑의 금제를 전부 익혔기에 바로 법력을 운공하여 발동했다.
석갑에서 하얀 빛이 비치더니 탁 소리가 나며 열렸고, 흡입력이 뿜어져 나와 10여 개의 태양진화를 빨아들이고는 탁 소리와 함께 닫혔고, 하얀 빛도 사라졌다.
심협은 석갑 안에 얌전히 있는 태양진화를 느꼈다. 다행히 석갑에는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았기에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태양진화에도 전혀 손상이 없다니, 역시 좋은 보물이로군.”
그는 석갑을 쓰다듬으며 흡족해했다.
그동안 그는 이 별것 아닌 듯한 하얀 석갑을 자세히 연구했지만, 아직도 어떤 재료로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심협은 생각을 접고 석갑을 챙겼다.
지면의 용암 구역은 태양진화가 사라지자 갑자기 빠르게 굳기 시작했다.
심협은 신식으로 용암 구역 안을 자세히 살폈지만, 특이한 점이 없었기에 이내 통로 쪽으로 빠르게 달렸다.
복공과 용아가 한발 앞섰으니 안에 있는 보물을 두 사람이 남김없이 차지하기 전에 최대한 빨리 가야 했다.
물론 그 와중에도 경계는 늦추지 않고 신식으로 수시로 주위를 살폈다.
통로는 그리 길지 않아서 금방 끝에 도착했다. 저 앞에서 빛이 반짝이더니 황금색 대전이 나타났다.
대전은 매우 거대하여 수백 장에 이르렀으나, 그 안에는 열두 개의 금색 둥근 기둥 외에 별다른 것이 없었다. 이 둥근 기둥에는 모두 적홍색 화룡이 새겨져 있었다.
대전 가장 안쪽에는 커다란 금색 의자가 있었는데, 그 양옆으로는 금색 기둥이 있었다.
금색 옷을 입은 남자가 의자 위에 앉아 있었는데, 나이는 서른 전후쯤 된 듯했다. 짙은 눈썹은 패기가 넘쳐 보였고, 한쪽 모서리가 없는 암홍색 소인(小印)을 쥐락펴락하며 가지고 놀고 있었다.
“허, 또 왔나? 오늘 광성선부(廣成仙府)는 정말 시끌벅적하군.”
금의(金衣)의 남자는 심협을 보더니 씩 웃으며 말했다.
심협은 금의의 남자를 보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대전에는 신식에 영향을 주는 금제가 가득하여 상대의 기운을 감지할 수 없었으나, 그의 직감은 매우 위험하다고 쉼 없이 경고했다.
금의의 남자를 경계하면서 주위를 둘러본 심협의 표정은 금세 굳어졌다.
멀지 않은 두 개의 금색 기둥 옆에 붉은 고치가 매달려 있었다. 고치를 이루고 있는 수많은 붉은색 실에서는 놀라운 화염의 영력 파동이 느껴졌다. 일종의 화염 신통 같았다.
붉은 고치 안에서는 끊임없이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렴풋이 두 사람의 모습이 보였는데, 바로 복공과 용아였다. 그들은 안에 갇혀 있었지만, 다행히 아직 살아 있었다.
심협은 속으로 적잖이 놀랐다. 자신이 태양진화를 거두는 데 걸린 시간은 길지 않았는데 저 사내는 그사이 복공과 용아를 완전히 가둔 것이었다. 게다가 싸우는 소리도 전혀 들리지 않았으니, 두 사람은 설마 순식간에 제압됐단 말인가?
“귀하는 어느 고인(高人)이십니까? 제 동료들을 귀하께서 가두신 겁니까?”
심협은 빠르게 머리를 굴리면서도 마음을 다잡고 물었다.
“그렇다면?”
금의의 남자는 여유롭게 웃으며 조롱 섞인 말투로 되물었다.
“도대체 누구십니까?”
심협이 눈살을 찌푸리며 다시 물었다.
“내가 누구 같은가?”
금의의 남자는 기지개를 켜며 심협의 말에 즉답하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적의를 보이지도 않았다.
심협은 그의 태도에 당황했지만, 경계를 풀지 않은 채 우선은 복공과 용아를 구할 방법을 생각했다.
“심 도우…… 조심…… 허공에…… 투명한 붉은…… 실…….”
복공의 목소리가 붉은색 고치 안에서 띄엄띄엄 들려왔다.
그 말을 들은 심협의 눈이 푸르게 빛났고, 다음 순간 그는 번개처럼 10여 장 뒤로 물러났다.
주위의 허공에는 언제 나타났는지 투명한 붉은 실이 그의 몸을 향해 빠르게 날아오는 중이었다. 하마터면 꼼짝없이 잡힐 뻔했다.
“반응이 빠르군. 허나 상관없다. 이 안에 들어온 이상 누구도 빠져나가지 못한다.”
금의의 남자는 나른하게 말하고는 불길 같은 붉은 빛으로 번득이는 손을 좌우로 흔들었다.
대전 밖의 통로에서 뿜어져 나온 금빛은 밀물처럼 통로를 따라 휘몰아쳤고, 지나는 곳마다 통로는 살아 있는 것처럼 가운데로 몰려왔다.
콰쾅!
이내 몇 장 높이의 통로가 조금의 틈도 남지 않고 완전히 닫혔다.
심협은 살짝 인상을 쓰며 통로 앞에 멈췄다. 그가 몸을 돌리자 온몸에서 붉은빛이 뿜어져 나왔다. 붉은 빛에서는 주홍색 불꽃이 타올랐고, 엄청난 고온이 솟아올랐다. 주작진령으로 투명한 붉은 실에 대응할 준비를 한 것이다.
머리 위에서 금빛과 검은 빛이 반짝이더니 천두금준과 기혈번이 나타나 순식간에 몸 주위로 두 겹의 방어를 펼쳤다.
하지만 그의 예상과 달리 투명한 실은 날아오지 않았다. 몇 장 밖에서 이빨을 드러내며 휘날릴 뿐이었다.
심협은 유명귀안을 최대한으로 발동한 후에야 원인을 알 것 같았다.
투명한 실은 금색 원기둥의 화룡 조각상에서 나온 것이었는데, 10장 정도까지만 늘어날 수 있는 듯했다. 그가 서 있는 곳은 그럭저럭 안전할 터였다.
“귀하가 바로 초적염수였군. 우리를 이곳으로 끌어들인 건 일망타진하기 위해서이고?”
심협은 약간 마음을 놓으며 금색 의자 위의 사내를 바라봤다.
“오, 이곳은 신식을 펼칠 수 없을 텐데 어떻게 내 정체를 알아챘지?”
금의의 남자는 다소 의외였는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는 이제 여유가 아닌 살기가 가득했다.
“우리가 지심화련을 딸 때 이 공간으로 들어왔다는 건 누군가 의도한 것이라 생각했다. 신식으로는 당신의 기운을 알아낼 수 없었지만, 방금 통로 안의 금제를 발동할 때 손의 그 불빛은 적염수와 똑같더군. 이리 명백한데도 당신의 정체를 모른다면 바보겠지.”
심협은 잔뜩 경계했지만 평온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랬군. 너희 인간족은 역시 머리 회전이 빨라. 허나 이 대전은 이미 내 수중에 있으니 그 똑똑한 머리도 소용없다. 본존에게 항복하면 목숨을 살려주겠다.”
초적염수는 거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그 말을 들은 심협의 입꼬리가 움직였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오른손을 아무런 조짐도 없이 앞으로 뻗었다.
금과 적의 검광이 두 개의 붉은 고치를 향해 쏜살같이 날아갔다.
“네놈이 감히!”
초적염수는 노발대발하며 소매를 휘둘렀다.
두 개의 고치에서 붉은 빛이 번득이더니 붉은 실로 만들어진 두 개의 커다란 손이 갑자기 튀어나와 두 개의 비검을 잡았다. 놀라운 속도였다.
순양검과 참마검은 미처 피하지 못하고 붉은 실의 거대한 손에 잡혔다.
붉은색 가느다란 실이 빠르게 두 검을 감싸기 시작하자 점점 작은 고치로 변해갔다. 이 붉은 실은 매우 견고하여 두 비검의 날카로움에도 잘리지 않고 두 비검을 꽁꽁 묶어버렸다.
심협은 깜짝 놀랐지만 당황하지 않고 법결을 바꿨다.
등 뒤로 돌아간 왼손이 검은색 마환을 꺼냈다. 마보 구유가 아무도 모르게 허공으로 흘러 들어갔다.
발온갑도 그의 소매에서 나와서 조용히 열렸다.
붉은 고치 안의 순양검에서 갑자기 주작진령이 타오르자 마치 녹아내리는 것처럼 주위의 공간이 흔들렸다. 순양검의 날카로움에도 멀쩡했던 붉은 실이지만, 주작진령의 기세에는 버티지 못하고 빠르게 녹아내렸다.
참마검 고치 옆 허공에서도 파동이 일더니 구유마환이 나타나 고치를 감쌌다.
칠흑의 마화가 구유에서 폭발하여 붉은 고치를 태워버리자 붉은 실은 마치 마기가 침투한 것처럼 순식간에 검게 물들더니 일순 녹아내렸다.
“주작진령! 구유마염!”
초적염수는 눈살을 찌푸리더니 무언가를 꺼내 유성처럼 쏘아 보냈다. 순식간에 순양검 상공에 나타난 그것은 짙은 붉은색의 청동 거울이었다.
두 줄기의 거대한 정광이 거울 안에서 뿜어져 나오더니 주작진령과 구유마염을 뒤덮었다.
붉은 정광에는 특이한 봉인의 힘이 담겨 있는지 두 불꽃이 바로 봉인되더니 마치 얼어붙은 것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 광경을 본 심협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온몸에서 금빛을 뿜어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그가 양손으로 허공을 잡는 모습만 희미하게 보일 뿐이었다.
콰쾅!
금색 뇌전과 푸른색 풍인이 폭발하더니 두 갈래의 거대한 풍인과 뇌전이 성난 파도처럼 붉은 정광을 향해 몰아쳤다.
그러나 붉은 정광의 범위로 들어서자마자 풍인과 뇌전은 우뚝 멈춰버렸다.
초적염수는 차갑게 웃었다. 이 구혼경(拘魂鏡)은 축융분지에서 모은 수많은 진귀한 광석과 광성선부의 법으로 만든 것으로, 매우 강력한 봉인의 신통이 있다. 이런 평범한 공격으로는 결코 부술 수 없다.
그가 다른 신통을 시전하기 위해 거울을 향해 결인하는 순간이었다. 구혼경 위에서 하얀 빛의 파동이 일어났고 누군가 나타났다. 바로 심협이었다.
심협은 금색 포(砲) 같은 것을 들고는 구혼경을 조준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