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827화 (827/1,214)
  • 827화. 탐욕

    눈 깜짝할 사이 용암 호수에는 20마리도 되지 않는 적염수만 남고 사라졌다. 그들은 이곳을 지키라는 명령을 받았는지 멀리 달아나는 흑곰 요괴를 향해 포효할 뿐, 그를 쫓아가지는 않았다.

    “흑 도우가 적염수를 대부분 유인했으니 우리도 어서 움직입시다!”

    복공이 전음으로 외치더니 피화막을 거두고는 조용히 지심화련이 있는 곳으로 향했고, 심협과 귀천세, 용아 등도 바로 뒤를 따랐다.

    이들은 각자 다른 방향으로 가서 지심화련을 캐기 시작했는데, 이는 태을의 적염수가 공격해 와도 일망타진당하지 않기 위해 사전에 의논했었다.

    심협은 순양검과 연연나금의를 최대한으로 발동해 주위의 엄청난 고온을 완벽히 차단하고는 재빨리 화련 옆으로 다가가 소매를 휘둘렀다.

    연연나금의의 소매가 바람을 타고 늘어나 한 뭉텅이의 지심화련을 휘감았다.

    귀천세의 속도도 매우 빨랐다. 심협과 거의 동시에 지심화련 옆에 도착한 그는 손에서 투명한 푸른 빛을 쏴서 지심화련을 뒤덮었다. 탐욕스런 그 거북이는 황금색 불꽃마저도 휘감았는데, 그 안에 있는 구판화련까지 챙길 속셈이었다.

    황금색 불꽃은 격렬하게 요동치더니 금색 화뢰(火雷)를 뿜어내 귀천세의 푸른 빛을 가볍게 찢었다.

    콰콰쾅!

    다음 순간, 황금의 화뢰가 폭발하자 귀가 번쩍 뜨이는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기묘한 흔들림이 느껴졌다.

    귀천세는 머리가 웅웅 울려 일순 혼절할 뻔했고, 체내의 법력 흐름도 순간적으로 멈춰 은신한 모습이 드러났다.

    심협 등은 비록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그들의 귓가에도 굉음이 들려왔다. 또한 이들 역시 법력의 운공이 멈추면서 은닉 신통이 사라졌다. 그들의 놀란 표정까지 훤히 드러났다.

    네 사람의 모습이 드러나자 10여 마리의 적염수가 분노하며 돌진해왔다.

    심협은 가슴이 철렁했지만, 이미 발각된 이상 더는 숨을 생각이 없었다. 그는 손을 휘둘러 산하사직도를 꺼냈다. 순식간에 수백 배로 커진 산하사직도는 하늘을 가릴 만큼 거대한 하얀색 광막으로 변하여 그곳의 모든 지심화련을 뒤덮었다. 모든 화련을 한꺼번에 흡수할 기세였다.

    한데 그때, 황금 불꽃 안에서 갑자기 금빛이 반짝이면서 부채 모양의 금빛이 날아오더니 하늘에서 내려오던 산하사직도를 막아냈다. 동시에 심협 등을 뒤덮어 꿈쩍도 하지 못하게 했다.

    황금의 불꽃도 주위로 흩어지면서 진짜 모습을 드러냈는데, 그것은 구판화련이 아닌 황금색 궁전이었다.

    이 광경을 본 심협은 불길한 예감이 들어 바로 산하사직도를 거두는 동시에 모든 힘을 발휘하여 주위의 금빛을 부수려 했다.

    콰쾅!

    부채 모양의 금빛에서 갑자기 방금 전보다 훨씬 강렬한 굉음이 울려 퍼졌고, 심협 등은 다시 머리가 흔들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오감도 완전히 혼란에 빠지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부채 모양의 금빛이 이 틈에 빠르게 줄어들자 네 사람은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한 채 황금색 궁전 안으로 빨려 들어갔고, 눈앞이 빙글빙글 돌았다.

    * * *

    정신을 차렸을 때는 백옥의 대청 안이었다.

    복공과 귀천세, 용아 등도 나타났는데, 다들 갑작스런 상황에 멍한 표정이었다.

    심협은 주위에 금제가 없음을 확인하고는 조금 안심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대청은 폭이 30여 장으로 매우 넓었고, 천장에 박힌 수십 개의 주먹만 한 야광주가 마치 어두운 밤하늘의 별처럼 환하게 비추고 있어서 매우 아름다웠다.

    “여긴 어디지?”

    다른 사람들도 차례로 정신을 차리고는 주위를 둘러봤지만, 놀라서 함부로 돌아다니지는 못했다.

    주위를 살펴본 복공의 손에서 하얀 빛이 반짝이더니 소삼자가 들고 있던 것과 똑같이 생긴 하얀 깃발이 나타났다. 뒤이어 그가 결인하자 하얀 깃발에서 은백색 빛이 뿜어져 나와 사방으로 흩어졌다.

    이 광경을 본 심협은 방해하지 않기로 했다.

    “아무래도 공간 법보 안인 것 같군요. 제 예상대로라면 불꽃 안에 있던 황금색 궁전 안일 겁니다.”

    복공은 술법을 멈추고는 천천히 말했다.

    “복 도우는 두 개의 공간 법보를 가지고 있고 신서라는 영서까지 가지고 있으니 공간 신통에 능하시지 않습니까? 이곳을 빠져나갈 방법은 없는 겁니까?”

    역시 이곳이 황금색 궁전 안이라 생각하는 심협이 조심스레 물었다.

    “심 도우께서 저를 너무 높게 보시는군요. 공간 신통은 천도와 통하여 매우 현묘합니다. 저는 그저 두 개의 공간 법보를 가지고 있을 뿐, 공간 신통에 능한 것은 아닙니다. 이곳은 두꺼운 공간 장벽에 막혀 있어서 뚫고 나갈 방법이 없습니다.”

    “복 도우, 황금색 불덩이 안에 구판화련이 있다고 하지 않았소? 한데 왜 황금색 궁전이 있으며, 어찌하여 우리를 여기로 빨려 들어오게 한 것이오?”

    귀천세가 불만을 토하자 심협은 못마땅한 눈빛으로 그를 노려봤다. 방금도 이 요족이 탐욕을 부리느라 황금색 불덩이를 건드리지 않았다면 모두가 이곳으로 들어오지 않았을 것 아닌가! 한데 지금 다른 사람을 질책하는 꼴을 보자 속이 뒤틀리는 기분이었다.

    “저도 이곳에 이런 공간 법보가 있을 줄은 몰랐군요. 제 실책으로 세 도우를 곤란하게 만들었습니다.”

    복공은 화내지 않고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곤란이고 뭐고 어서 이쪽으로 와보십시오!”

    용아가 대청의 한쪽 벽에서 외쳤다.

    모두가 산맥에서 합류한 뒤로 용아는 줄곧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큰 소리로 외치자 모두가 내심 의아해하면서 서둘러 다가갔다.

    “이건……?”

    복공이 놀란 듯 반짝이는 눈으로 바라보자 심협 또한 법력을 눈에 주입하여 벽을 살폈다. 벽 안은 마치 다른 세상이 있는 것 같았지만,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유명귀안 신통을 운공하자 그 너머의 상황이 이전보다 더 선명하게 보였다. 동굴 같은 그 공간은 이 대청보다도 훨씬 넓었다.

    동굴 가장 안쪽의 땅에는 황금 같은 금빛이 반짝였는데, 뜻밖에도 용암 구역이었다. 그 안에는 10여 그루의 지심화련이 자라나 있었다.

    그리고 그 화련은…….

    “구판화련!”

    꽃잎이 아홉 개나 되는 구판화련이었다.

    귀천세는 크게 기뻐하더니 푸른 빛을 뿜어내 벽을 부수려 했다.

    “잠깐! 이 공간 법보의 출현은 뭔가 이상합니다. 어쩌면 태을의 적염수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니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는 게 좋겠습니다.”

    심협이 나서서 제지했다.

    “심 도우의 말에 일리가 있습니다. 귀 도우, 경거망동은 삼가시오.”

    복공도 동의했다.

    “그럼 어쩌라는 건가? 여기서 가만히 기다려? 유인당한 적염수들이 곧 돌아올 테니 더는 지체할 시간이 없단 말이다!”

    귀천세는 손의 푸른 빛을 거두지 않고 외쳤다.

    “심 도우, 무슨 계획이라도 있으십니까?”

    복공은 좋은 수가 떠오르지 않자 심협을 바라봤다.

    “제 생각에는 우선 이 대청을 살펴보는 게 좋겠습니다. 출구를 찾으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면 힘을 합쳐서 이 벽을 부숴서 누군가의 음모에 대비하는 겁니다. 또한 바깥의 적염수 무리는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힘을 합치면 저 정도 적염수는 충분히 뚫고 도망칠 수 있을 테니까요.”

    “심 도우의 말이 타당합니다. 더 좋은 방법이 없다면 그의 말대로 하시죠.”

    복공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귀천세는 비록 불만이 많았지만 복공이 이렇게 말하자 더는 할 말이 없었다.

    네 사람은 바로 대청 곳곳을 둘러봤지만 별다른 수확이 없었기에 결국 다시 벽 쪽으로 모여들었다.

    “내 진즉 헛수고라고 말하지 않았나! 다 같이 벽이나 부수자고!”

    귀천세가 콧방귀를 뀌며 진한 푸른색 강철 곤봉을 꺼내더니 벽을 강하게 내리쳤다. 공기가 파문을 일으키면서 천지를 뒤집을 기세를 뿜어냈다.

    이를 본 심협은 미간을 찌푸렸다. 귀천세의 무예는 상당해 보였다. 곤법은 추법(錘法)보다 위인 듯했고, 저 보물인 강철 곤봉도 이전에 꺼냈던 팔각금과보다 뛰어나 보였다.

    심협도 현황일기곤을 꺼내 벽을 내리쳤다.

    용아는 신화선(神火扇)을 꺼내 발동했다. 부채 전체가 은은한 금빛으로 반짝였고, 활짝 펼쳐지면서 마치 진짜 같은 수놓은 듯한 암금색 산이 나타났다.

    이어서 입에서는 법력을 뿜어냈고, 그러자 부채가 금빛으로 반짝이더니 암금색 산이 안에서 날아와 몇 장 높이의 금색 산으로 변하여 벽을 내리쳤다.

    복공도 중형(重型) 법보를 꺼냈는데, 노란색으로 빛나는 대인(大印)이었다. 이 대인은 수십 배로 커지더니 태산을 누를 기세로 벽을 내리쳤다.

    네 사람의 법보가 충돌하자 벽은 마치 영성이 있는 것처럼 두꺼운 하얀 빛을 뿜어냈다. 그 위에는 어떤 고명한 금제가 있는 듯했으나, 모두가 힘을 합친 일격을 버텨내지 못하고 하얀 빛은 금이 가기 시작했다.

    네 개의 법보가 벽을 내리치자 굉음이 울려 퍼졌고, 벽은 마침내 무너졌다. 수많은 돌이 무너지면서 안의 동굴 공간 안으로 들어가자 연기가 피어올랐다.

    귀천세는 연기가 사라지기도 전에 푸른 빛으로 변하여 동굴로 뛰어들었다.

    “귀 도우, 조심하시오!”

    복공이 다급하게 외쳤으나, 귀천세는 듣지 못한 것처럼 곧장 소매에서 푸른 빛을 뿜어내 구판화련을 휘감아 거두려 했다.

    한데 그때, 갑자기 흔들리던 구판화련이 금색 불꽃으로 변하더니 귀천세가 쏜 푸른 빛을 가볍게 태워버렸다. 이어서 금색 불꽃은 금빛 불뱀으로 변하여 번개처럼 귀천세 몸을 휘감았다.

    “으아악!”

    귀천세는 순식간에 금색 불덩이에, 휘감겼고 고통스러운 비명과 함께 발악하며 빠져나오려 발버둥 쳤다.

    그러나 불뱀은 너무도 강력해 도무지 벗어날 수 없었다.

    “귀 도우!”

    복공이 곧장 팔괘번을 꺼내 강력한 흡입력을 발하는 하얀 빛을 쏘아 보냈다. 금색 불꽃을 흡수하려는 것이리라.

    허나 금색 불꽃은 통로에서 본 불꽃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하얀 빛은 이 불꽃에 닿자마자 사라졌다.

    복공이 깜짝 놀라는 동안 심협이 움직였다. 귀천세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두고 볼 수만은 없었던 것이다. 그는 바로 진창해 신통을 발동했다.

    푸른 한광이 손에서 폭발하더니 성난 파도처럼 귀천세의 몸을 휘감았다. 뼈까지 시린 한기가 금색 불꽃을 뒤덮어 없애려 했다.

    불꽃 속의 용암은 순식간에 열기를 모두 잃어 돌이 되었고, 한기에 얼어붙어서 콰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얼음의 뱀이 되었다.

    그러나 금색 불꽃은 진창해의 한기에 위력은 약해졌을지언정 완전히 꺼지지는 않았다.

    심협이 다른 수를 쓰려고 했으나, 어느새 귀천세의 비명은 끊겨버렸다. 검게 그을린 몸은 완전히 잿더미가 되어 사라져 뼈조차도 남지 않았던 것이다.

    심협과 용아, 복공은 동굴 밖에 서서 감히 들어갈 엄두도 낼 수 없었다.

    금색의 불뱀은 귀천세를 잿더미로 만들고는 다시 불꽃으로 변했고, 진창해의 한기 안에서 빠르게 커져 몇 호흡 사이에 원래대로 돌아왔다. 금색 불꽃이 태동하면서 태양과 같은 뜨거운 열기가 흘러나와 진창해의 한기를 휩쓸었고, 얼어붙었던 용암이 빠르게 녹아 다시 금색의 용암으로 변했다. 금색 불뱀은 다시 구판화련으로 변하여 조용히 피어났다.

    잠깐 사이에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갔다.

    심협 등은 이 광경에 표정이 더욱 무거워졌다.

    “태양처럼 순수한 기운의 황금색 화염이 만물을 태워버린다. 설마 전석의 십대 천화 중 하나인 태양진화(太陽眞火)?”

    복공이 눈을 반짝이며 혼잣말을 했다.

    심협은 조용히 황금색 화염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는 꿈속 세계에서 천존의 경지로 올라설 때 태양진화로 몸을 단련한 적이 있었기에 당연히 복공보다도 먼저 이 진화를 알아봤다.

    태양진화는 더없이 순수한 데다 극도의 양의 기운을 지니고 있어 천겁의 뇌전보다도 강력했고, 마기를 억제할 수도 있다. 이 진화를 거두어 비검으로 만들 수 있다면 그 위력은 순양검보다 강력할 것이고, 앞으로 마족을 상대하는데 더는 두려울 게 없을 터였다.

    다만 이 태양진화는 누군가에게 연화된 상태라 금제가 있었기에 꺼내기 쉽지 않아 보였다.

    “태양진화? 그래서 귀 도우가 불에 타죽었군요. 이 대청에는 출구가 없으니 앞이 위험하다고 해도 가보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용아는 그 말을 남기고는 성큼성큼 앞의 동굴로 들어갔다.

    심협은 다소 의외라는 눈빛으로 용아를 바라봤다. 지금의 용아는 어딘가 달랐다. 심지어 적지 않게 정진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용아를 자세히 살펴볼 때가 아니었기에 심협 역시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이전에 가로막고 있던 벽의 금제는 보이지 않았다. 동굴에 들어가자 심협은 이곳이 생각보다 더 넓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동굴 너머로는 전에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긴 통로가 뚫려 있었다.

    이곳은 하얀 대청과는 확연히 달랐다. 허공은 금제가 가득하여 신식을 멀리까지 펼칠 수 없었기에 그 안의 상황은 살펴볼 수 없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