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826화 (826/1,214)
  • 826화. 구판화련(九瓣火蓮)

    고리 모양의 산맥 안으로 들어가자 뜨거운 불길이 덮쳐왔다. 각자의 법보로 몸을 보호했음에도 마치 뜨거운 칼로 베는 것처럼 온몸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이곳의 강력한 화령의 힘은 우리 같은 수사에게 제한이 너무 큽니다. 저에게 불을 피하는 장막이 있는데, 불을 막아내는 능력이 상당하니 모두 안으로 들어오시죠.”

    복공은 모두가 고통스러워하자 서둘러 붉은 그물망으로 모두를 뒤덮었다.

    명주실로 된 그물망이 은은한 붉은빛으로 번득이며 주위에서 몰려오는 화령의 힘을 절반이나 막아주었고, 그제야 모두는 안심했다.

    “도우의 이 피화막(避火膜)은 화(火) 계열의 신수를 재료로 만든 겁니까?”

    심협은 주위의 붉은색 그물망을 바라보며 물었다.

    피화막은 주위의 고온을 그저 막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끊임없이 흡수하고 있었다. 이는 주작진령과도 유사했다.

    “심 도우의 법보에 관한 지식은 훌륭하군요. 도우의 말대로 이것은 화촉반잠(火燭盤蠶)의 실로 만든 겁니다. 다른 능력은 보잘것없지만, 불꽃을 막아내는 효과는 탁월합니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 심협은 속으로 복공의 내력에 흥미가 생겼다. 상대는 경지도 높고 재산이 많아 각종 법보가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니 정말 놀라웠다.

    “적염수의 둥지는 고리 모양 산맥 아래에 있고 지심화련도 그곳에 있으니 지금 바로 가시죠. 다만, 괜히 들켜서 좋을 건 없으니 기운을 숨기는 게 좋겠습니다. 피화막에도 은폐 능력이 있지만 그리 절묘하지 않으니 각자 기운을 숨기시죠.”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피화막을 결인했다. 붉은 빛으로 반짝이는 피화막은 빠르게 허공에 녹아들었고, 그 안에 있는 심협 등의 모습도 사라졌다. 이어서 모두가 각자의 술법으로 기운을 숨겼다.

    당연히 연연나금의를 발동한 심협의 기운은 금방 사라져서 조금도 새어나가지 않았다. 이는 다른 사람보다 훨씬 뛰어난 은폐술이었다.

    복공은 깜짝 놀란 눈으로 심협을 보고는 피화막을 발동하여 나아갔고, 금세 아래로 내려왔다.

    그곳은 구릉지대로, 곳곳에서 대량의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으며, 이미 반쯤 녹은 땅은 수시로 거품을 뿜어내고 있었다.

    이 구릉지대 앞은 거대한 용암 호수였다. 용암은 황금빛을 띠었고, 그 위에서 타오르는 불꽃도 마찬가지였다.

    용암 호수 위에서 100여 마리의 적염수가 흥분한 상태로 날뛰며 황금색 불꽃을 흡수했고, 그들이 뿜어내는 기운이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치솟았다.

    다만 이 화염수들의 힘은 강해봐야 진선 후기였고, 태을기의 적염수는 보이지 않았다.

    용암 호수 한쪽에는 붉은 화련이 3백 송이 정도 피어 있어서 화려한 꽃밭 같았다.

    꽃밭의 가운데에는 10여 장 크기의 황금색 불꽃이 떠 있었는데, 그 안에는 무엇이 들었는지 신식으로도 알아볼 수 없었다.

    거대한 불덩이는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의 심장처럼 끊임없이 커졌다가 줄어들기를 반복했고, 그때마다 엄청난 흡입력으로 황금색 불꽃을 대량으로 빨아들였다.

    심협 등은 이 광경을 보고는 기쁨 반, 걱정 반의 표정이 되었다. 대량의 지심화련이 있으니 기뻤고, 예상보다 많은 데다 더 강력한 적염수들이 있으니 걱정이 된 것이다. 더욱이 태을의 적염수는 어디에 숨어 있는지 아직 모습도 드러내지 않았다.

    “복공 도우, 이제 어쩌면 좋겠습니까?”

    흑곰 요괴는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전음을 보냈다.

    “적염수들이 폭발하는 지폐지화의 정화를 흡수하고 있군요. 저들의 난폭한 성격대로면 조금만 건드려도 쉽게 유인에 걸려들 겁니다. 다만, 태을기 적염수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니 그게 좀 걸리는군요.”

    “저 움직이는 불덩어리 안에 있는 게 아니겠소?”

    귀천세가 그렇게 물었다. 심협 또한 처음부터 저 불덩어리가 신경 쓰였기에 나름 일리 있는 추측이라 생각했다.

    “그건 아닐 겁니다. 제가 얻은 정보에 의하면 저 불덩어리에는 아홉 개 꽃잎의 화련, 즉 구판화련(九瓣火蓮)일 겁니다. 다만 오랫동안 이곳에서 화령의 힘을 흡수해 저런 불덩어리 같은 형상으로 변했다고 들었지요.”

    “구판화련! 이런 보물이 이런 곳에 있다니!”

    귀천세는 복공의 말에 흥분했다.

    심협은 귀천세의 심상치 않은 태도에 전음으로 흑곰 요괴에게 물었다.

    “흑곰 도우, 구판화련과 평범한 지심화련이 그리 다른 것이오?”

    “나도 구판화련에 관해서는 잘은 모르지만, 어디선가 본 바로는 보통의 지심화련은 꽃잎이 여섯 개인 데다 천 년에 꽃잎 하나가 자라는데, 구판화련은 지심화련이 극한까지 진화한 것이라 하오. 약효도 보통 지심화련보다 백배는 더 강하고 다른 묘용(妙用)도 있다던데, 그게 뭔지는 나도 모르겠소.”

    흑곰 요괴도 구판화련이라는 말에 깜짝 놀란 목소리로 대답했다.

    “복공 도우가 축융분지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것이야 알고 있었지만, 이곳의 상황까지 모두 알고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정말 감복했습니다.”

    심협은 복공에게 말했다.

    다른 세 명의 요족도 반짝이는 눈빛으로 복공을 바라봤다.

    “심 도우, 그게 아닙니다. 제가 이곳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은 어떤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이 신서(神鼠) 덕분입니다.”

    복공은 네 사람의 눈빛에 조금 당황했다가 허리춤에 달아 둔 하얀 주머니를 툭 쳤다.

    주머니에서 은빛이 반짝이자 한 마리 은백색 쥐가 나타나더니 심협 등을 향해 찍찍 울고는 마치 인사하듯 앞발을 모았다.

    이 은백색 쥐는 영이 열린 요물로, 크기는 작아도 그 실력은 출규 후기의 경지였다.

    심협은 신서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었지만, 이 쥐의 주변에서 허공의 힘이 마치 부드러운 수면처럼 약하게 출렁이는 것을 감지했다. 이 신서는 언제든지 허공으로 숨어들 수 있으리라.

    “신서! 보타산 전적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신수는 아니지만 혈통에 기이한 공간의 신통을 가지고 있어서 공간의 힘을 조종하여 원하는 곳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지요. 다만, 이 신서는 선천의 힘이 부족하고 진귀한 혈맥의 힘을 짊어지는 것이 어려워 경지가 올라봐야 응혼기라 들었습니다. 한데 도우의 신서는 출규기에 도달했다니, 정말 드문 일이로군요.”

    흑곰 요괴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흑 도우가 신서에 관해 이렇게 자세히 알고 있을 줄은 몰랐군요. 저도 우연한 기연으로 이 신서를 기르게 되었습니다. 평소에는 위험한 곳을 탐색할 때 쓰는데, 남들 앞에 보이기에는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복공은 의외라는 눈빛으로 흑곰 요괴를 바라보다가 심협 등에게 더는 보여주고 싶지 않았는지 바로 신서를 거두었다.

    이를 본 심협은 의문이 들었다.

    ‘복공은 저 신서를 매우 아끼는 것 같은데, 설마 다른 이능이라도 있는 건가?’

    “화제가 너무 멀어졌군요. 이제 조를 나눌 것입니다. 제 생각에 두 도우가 적염수를 도발하여 저것들을 유인하고 남은 세 도우가 지심화련을 따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어떻습니까?”

    “복 도우의 말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태을급 적염수가 아직 나타나지 않았으니 사람이 많이 남는 게 좋겠죠. 흑곰 도우와 용아 도우가 속도에 자신 있으니 적염수를 유인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적염수들을 유인하는 일은 보기에 위험해 보이지만, 사실 조금만 조심하면 큰 위험은 없었다. 반대로 남아서 지심화련을 따는 사람들은 어딘가에 숨어 있을지 모르는 적염수를 대비해야 했고, 조금만 방심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심협은 자신의 벗인 흑곰 요괴가 위험한 곳에 남기를 원하지 않았고,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기이한 수단을 갖춘 용아를 다른 곳으로 보내버림으로써 변수를 줄이고자 했다.

    복공은 심협이 자신은 남고 흑곰 요괴를 보내겠다는 말이 뜻밖이었다. 그는 본래 심협과 용아에게 적염수를 유인하게 하고 자신과 흑곰 요괴 그리고 귀천세가 남아서 적염수를 상대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복공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자존심이 강한 흑곰 요괴는 심협에게 무언가 따지려 했는데, 심협이 바로 전음을 보냈다. 그러자 흑곰 요괴는 잠시 말없이 심협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숙이며 뭔가를 중얼거렸다.

    “태을의 적염수가 아직 나타나지 않았으니 적을 유인하는 일은 저 혼자 충분합니다. 그러니 만일을 대비해 네 사람이 남으시죠.”

    흑곰 요괴는 금방 고개를 들고는 말했다.

    심협이 휙 돌아봤지만, 흑곰 요괴는 그의 시선을 무시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흑 도우께서 수고해주십시오. 몸조심해야 합니다.”

    복공은 흑곰 요괴와 심협이 눈빛을 교환한 것을 알아채고는 말했다.

    흑곰 요괴는 그의 말에 귀천세와 용아가 다른 말을 하기도 전에 검은색 뇌전으로 변하여 피화막을 뚫고 나가 허공으로 사라졌다.

    흑곰 요괴가 멀어지는 모습을 바라보는 귀천세의 안색은 어두웠지만, 지금 와서 무슨 말을 하기에는 늦었기에 그저 입을 다물었다. 대신 이제 지심화련을 빼앗을 준비에 치중했다.

    심협을 힐끗 보는 용아의 눈빛은 어두웠지만, 바로 거두고는 고개를 숙여 이어질 일에 대비해 힘을 비축했다.

    몇 호흡 뒤, 황금색 용암 위의 상공에 갑자기 광풍이 불어오더니 먹구름이 허공에 나타났다.

    용암 안의 적염수들은 바로 이상을 눈치채고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하지만 그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요란한 굉음이 울려 퍼졌고, 수천만 줄기의 검은 뇌전이 구름에서 폭우처럼 쏟아져 내려와 적염수들의 몸에 정확하게 떨어졌다.

    뇌전이 적염수는 몸에 떨어지면서 굉음이 울려 퍼졌고, 검은 뇌광이 번쩍일 때마다 적염수의 몸이 찢어져 수많은 잔불로 변하여 사라졌다.

    아래의 용암도 검은 뇌전이 닿자 검은색 번개가 빠르게 사방으로 뿜어져 날아갔고, 지나가는 곳마다 용암이 사방으로 튀었다.

    적염수들이 불타버린 잔불은 곧바로 다시 뭉쳐져 형태를 갖췄지만, 기운은 이전보다 더 약해졌다. 검은 뇌전에 원기가 상한 것이 분명했다.

    용암 안의 황금색 불꽃은 평범한 화령이 아닌 지폐지화의 폭발과 함께 솟아오른 땅속의 정화인 만큼 적염수의 수련에 엄청난 도움이 됐다. 한데 검은 뇌전으로 인해 수련이 끊기자 적염수들은 분노했고, 몸에서 불빛을 번쩍이며 허공의 검은 구름에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허공의 검은 구름은 순식간에 얕아졌고 힘도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한데 그때, 멀지 않은 곳의 지심화련 근처에 검은 뇌광이 반짝이더니 흑곰 요괴가 나타났고, 재빨리 10여 그루의 지심화련을 따고는 바로 다시 뇌전으로 변하여 멀리 날아갔다.

    “저놈이 지심화련을 훔쳐간다!”

    “쫓아라!”

    “살려두지 않겠다!”

    가뜩이나 수련이 끊겨 화가 나 있던 적염수들은 흑곰 요괴가 지심화련까지 훔쳐가자 펄쩍뛰었고, 그 절반이 무지개 같은 불빛이 되어 흑곰 요괴를 쫓아갔다.

    허공의 검은 구름에서 다시 뇌광이 번쩍이더니 천둥과 함께 대량의 번개 줄기가 다시 나타났다. 절반은 쫓아오는 적염수에게, 나머지 절반은 용암 위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 적염수들에게 떨어졌다.

    꽈르릉!

    적염수들은 황급히 입에서 불꽃을 뿜어내 검은 뇌전에 대항했지만, 뇌전은 민첩한 뱀처럼 재빨리 이리저리 대부분의 불꽃을 피하고는 다시 적염수 무리를 향해 떨어졌다.

    퍼펑!

    검은색 뇌광이 폭발하자 적잖은 적염수의 몸이 다시 찢겨 나갔다.

    용암 호수 안에서 두 번째 공격을 받은 적염수들은 갑자기 분노로 포효하더니 흑곰 요괴를 쫓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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