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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825화 (825/1,214)
  • 825화. 부활

    멀지 않은 곳. 화소는 허공에 서 있었다. 그의 앞에는 몇 장 크기의 회색 상자가 떠 있었는데, 그가 뭔가를 읊조리자 나무 상자에서 회색 빛이 반짝이더니 빽빽한 회색 쥐들이 상자에서 쏟아져 나와 빠르게 동굴 가장 깊은 곳으로 향했다. 금빛으로 반짝이는 이 쥐들의 이빨은 벽을 마치 빵처럼 갈아먹었다.

    그러나 이 쥐들은 진짜 요족도 아닌 데다 이빨이 탄탄한 것 외에는 별다른 능력이 없는지 뜨거운 돌을 갉아먹다가 열기를 견디지 못하고 죽어갔다.

    한데 화소의 회색 상자는 어떤 보물인지 모르겠지만 그 안에서는 쥐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앞다투어 달려가 동굴을 갉아 먹는 쥐들이 법보로 땅을 파는 것보다 훨씬 더 빨랐다.

    심협은 이 광경에 크게 감탄했다.

    “나와 심 도우는 동해 사람이 아니라서 축융분지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지만, 복 도우는 이곳에 대해 잘 아는 것 같으니 설명 좀 해주십시오. 이 고리 같은 산맥의 안쪽은 어떤 곳입니까? 지심화련은 여기에 있는 게 확실합니까?”

    흑곰 요괴도 눈앞의 상황에 조금 놀랐지만, 그는 천성적으로 쥐를 싫어했기에 이내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심협도 그를 바라봤다.

    “이 산 안쪽은 사실 특별한 게 없습니다. 그냥 불바다지요. 다만, 그 안쪽은 온도가 매우 높고 불길이 허공에 가득 차서 불의 영역이라 할 수 있습니다. 축융분지 안의 지심화련은 그 안에 있고요.”

    “이곳을 그리 잘 아는 걸로 봐서는 이전에도 와보신 모양입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그때는 지심화련을 따지 않은 겁니까? 설마 이곳의 화련도 강한 화염수가 지키고 있는 겁니까?”

    “허허, 심 도우 말이 맞습니다. 산맥 안은 화령이 짙어서 화염수가 매우 많습니다. 두 분 도우께서도 마주쳤을 적염수들의 본거지가 바로 이곳이지요. 대략 백 마리는 있을 겁니다. 그중 진선에 맞먹는 자가 절반이고, 그들의 우두머리인 초(超) 적염수는 거의 태을급입니다. 저도 이전에 우연히 여기 왔지만, 그 적염수들의 적수가 되지 못했기에 이렇게 강자들을 모은 겁니다.”

    복공이 쓰게 웃으며 말했다.

    “백 마리의 적염수에 태을 존재의 초적염수라니요!”

    흑곰 요괴의 표정이 변했고 심협도 눈살을 찌푸렸다. 순양검에 60도 금제가 생기면서 상품 법보가 되어 그의 실력은 크게 높아졌지만, 자만하기에는 일렀다. 지금 그의 실력이면 대여섯 마리의 진선급 적염수를 상대하는 것은 무리가 없지만, 열 마리를 넘기면 상대하기에 조금 위험할 것이고, 20마리의 적염수라면 도망칠 수밖에 없다. 한데 백 마리에 태을급 적염수라니!

    “그리 강력한 적염수가 있는데 우리만으로 상대가 되겠습니까?”

    “확실히 그렇게 많은 적염수라면 지금의 두 배 이상을 모아 와야 상대할 수 있겠지요. 허나 우리 목적은 그들을 죽이는 게 아니라 지심화련을 따는 겁니다. 제가 미리 대비를 해왔습니다. 잠시 후, 벽을 모두 뚫은 다음 이곳에 대진을 설치하여 적염수들을 유인할 겁니다. 그럼 우리는 두 조로 나누어서 한쪽은 대진을 운공하여 적염수들을 막고, 다른 조는 지심화련을 따는 겁니다.”

    흑곰 요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작전이라면 성공할지도 모른다.

    심협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이 계획을 실현하려면 사람이 더 필요할 것 같은데, 다른 사람들은 안 왔습니까?”

    그 말에 심협은 내심 찔렸다. 용아는 그의 손에 죽었고 청청과 귀천세는 지심화련을 빼앗기고 도망쳤으니 두 사람은 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던 것이다.

    “안 왔습니다. 아무래도 귀 도우 쪽은 순조롭지 않은 모양입니다.”

    흑곰 요괴도 그냥 한번 물어본 것이지 귀천세 등에게 큰 관심이 없었기에 복공의 대답에 고개만 끄덕였다.

    “두 분 도우께서는 오시는 길에 법력 소비가 컸을 테니 우선 회복을 하시죠. 길이 모두 뚫리고 귀 도우 등이 오면 바로 계획을 실행합시다.”

    심협과 흑곰 요괴는 밖에서 한참을 분주히 날아다녔기에 법력의 소모가 확실히 적지 않았다. 그래서 사양하지 않고 각자 빈곳을 찾아 가부좌한 후 회복에 집중했다.

    흑곰 요괴는 복공이 이전에 준 회령단을 먹었고, 심협은 다른 회복 단약을 먹었다. 복공을 의심해서가 아니라 신중한 성격답게 만일에 대비한 것이다.

    그렇게 반 시진이 지났을 때였다.

    콰쾅!

    굉음이 동굴 앞쪽에서 들려오자 심협과 흑곰 요괴는 눈을 떴다. 법력이 어느 정도 회복된 두 사람은 바로 안으로 들어갔다.

    그사이 통로는 10여 리나 더 뚫렸고, 마침내 산 벽 너머 화염의 세계가 펼쳐졌다.

    세찬 불길이 마치 파도처럼 출렁였고, 허공에는 수많은 불구름과 열화가 가득하여 서로 충돌할 때마다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매우 뜨거운 열기가 마치 맹수처럼 밀려왔는데, 바깥보다 몇 배는 뜨거웠다. 심협 같은 진선의 존재들도 몸이 무거워지고 숨쉬기가 힘들 정도였다.

    “엄청난 열기로군!”

    심협은 순양검과 진창해 신통을 6할 이상 운공해야만 몰려오는 고온을 견딜 수 있었다.

    흑곰 요괴는 한교주를 발동했다. 그리고 어떤 비법을 시전했는지 머리 위로 떠오른 한교주에서 열 배나 더 밝은 빛이 뿜어져 나왔고, 이내 푸른 한광(寒光)이 주위를 뒤덮어서 고온을 막아줬다.

    “이렇게 뜨겁다니, 설마 지폐지화(地肺之火)가 폭발하고 있는 건가?”

    화소의 몸에서도 하얀 빛이 떠올라 주위의 열기를 막아냈다.

    소삼자는 이미 하얀 깃발 안으로 피신했다. 그에게는 특이한 능력이 있는 것인지 깃발 안의 공간에서도 그 깃발을 운공할 수 있는 듯했다.

    복공은 동굴 바깥에서 귀천세 등을 기다리고 있었다.

    심협과 흑곰 요괴는 화소가 말한 지폐지화의 폭발이 뭔지는 몰랐지만, 대략 짐작은 할 수 있었다.

    “화 도우, 통로가 뚫렸으니 이제 어떻게 하면 됩니까?”

    심협은 주작진령으로 몸을 보호하고 있었기에 지폐지화를 전혀 개의치 않았다.

    “절대 경거망동해서는 안 됩니다. 지폐지화가 폭발하면 산 내부 화령의 힘이 몇 배로 강해집니다. 적염수들의 실력 또한 마찬가지이지요. 재수 없으면 아무런 수확 없이 돌아가야 할지도 모르겠군요.”

    화소의 설명을 들은 심협의 표정이 돌변했다.

    그의 수중에는 10여 그루의 지심화련뿐이라 단약을 만들기에는 부족했다.

    “상황이 그렇게 좋지 않은 겁니까? 다른 방법은 없습니까?”

    흑곰 요괴도 태을기로 돌파할 마지막 수단인 화련단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두 도우께서는 포기하길 원치 않는 듯하니 제가 이곳의 상황을 복공에게 말해보겠습니다. 그가 오면 다시 얘기해 보시죠.”

    화소는 전송 옥패를 꺼내 몇 번 결인했다. 옥패에서 하얀 빛이 반짝였다가 이내 평온해졌다.

    심협과 흑곰 요괴는 조용히 기다렸다.

    얼마 후, 뒤에서 복공의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하얀 빛이 빠르게 날아왔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복공에 이어 세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는데, 바로 귀천세, 청청 그리고 용아였다.

    귀천세의 잘린 오른팔은 다시 자라났고 몸의 기운도 처음 상태로 회복되어 있었다. 심지어 용아의 부서졌던 몸도 다시 합쳐졌고, 이상이 없어 보였다.

    심협은 깜짝 놀랐다.

    ‘어떻게 다시 살아난 거지?’

    ‘누가 위장한 건가? 설마…… 신기요가?’

    심협은 그런 의심에 신식으로 자세히 살펴봤으나, 상대는 진짜 용아였다.

    어찌 된 일인지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심협은 내색하지 않고 담담하게 세 사람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오히려 귀천세 등은 혹시라도 심협이 다시 공격해올까 두려운 듯 심협을 경계했는데, 특히 용아의 눈빛에는 분노와 함께 두려움이 담겨 있었다.

    “복형, 마침 잘 왔소. 화령의 힘이 기이할 정도로 팽창한 것이 아무래도 지폐지화가 폭발하려는 것 같은데, 어쩌면 좋겠소?”

    화소가 묻자 복공은 깜짝 놀라 산 안쪽을 들여다보더니 이내 안색이 변했다.

    “정말로 지폐지화가 폭발하려는 모양이군. 이런 일은 백 년에 한 번 일어날까 말까 하는데…… 아무래도 우리의 운이 안 좋은 모양이야!”

    복공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폐지화가 폭발한다 해도 여기서 물러날 수는 없습니다. 저와 흑곰 도우는 정말 위험해지면 도망가더라도 우선은 계획대로 진행해보자는 견해입니다. 복 도우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심협이 복공에게 물었다.

    적염수들이 정말로 그렇게 강하다면 그는 흑곰 요괴를 데리고 산 정상으로 가면 된다. 만독혼원주가 있으니 허공의 지폐화독 또한 걱정할 것 없었다.

    “두 분의 용맹함에 제가 부끄러워지는군요. 두 분께서 그러시다면 이번 일을 계획한 자로서 당연히 함께해야지요. 다른 분들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복공은 깜짝 놀랐지만 이내 호탕하게 한 마디로 답하고는 바로 귀천세 등을 돌아봤다.

    용아와 청청의 시선은 귀천세에게로 향했다. 그의 뜻을 따르겠다는 의미였다.

    귀천세도 산맥 안에서 폭발하는 화령의 힘에 놀랐지만, 지금껏 모은 지심화련을 전부 심협에게 빼앗겼으니 이대로 물러간다면 이번 여정은 헛수고가 될 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큰일에도 지장이 생길 터였다.

    “다른 분들의 뜻이 그렇다고 하니 나만 겁쟁이처럼 물러날 수는 없지요. 복 도우의 계획에 함께하겠소.”

    “좋습니다. 모두가 결정을 내렸으니 잠시 후 움직이도록 하겠습니다. 화 도우, 소삼자, 육합천문진(六合天門陣)을 설치하세. 육문 진안(陣眼)을 전부 설치해야겠군.”

    귀천세가 동의하자 복공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화소에게 말했다.

    화소도 말없이 하얀색 진반과 진기를 꺼내 통로 안에 빠르게 설치했다.

    하얀 빛이 통로에 나타났는데, 그 안에는 수많은 신문이 가득하여 매우 현묘해 보였다. 다만 그 빛의 신문은 나오자마자 허공으로 흘러들어 사라졌다.

    복공의 팔괘번에서도 진기가 뿜어져 나와 화소의 설치를 도왔다.

    심협은 이 광경에 내심 깜짝 놀랐다. 팔괘번 안의 소년은 출규기에 불과한데도 육합천문진을 설치하는 속도는 화소라는 진선의 존재보다 느리지 않았던 것이다.

    “육합천문을 설치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니 잠시 쉬고 계시죠.”

    그 말에 심협과 흑곰 요괴는 옆에서 조용히 기다렸고, 귀천세 등은 회령단을 먹고 법력을 회복했다.

    심협은 이미 법력이 거의 회복되었기에 눈을 감은 채 순양검결 중 마검지법을 운공하여 순양검 안의 화령의 힘을 정련했다.

    순양검의 붉은 빛은 약간 불안정하게 간간이 떨려왔지만, 심협이 쉬지 않고 마검지법을 운공하자 붉은 빛은 점점 잔잔해졌고, 더는 흔들리지 않았다.

    * * *

    금세 반나절이 지났고, 어느덧 육합천문진이 완성되었다. 한 줄기 하얀 빛이 출렁이며 통로를 전부 뒤덮고는 바깥 수백 장까지 뿜어져 나갔다.

    하얀 빛에서 어렴풋이 보이는 여섯 개의 석대(石臺) 허상은 수많은 하얀색 신문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매우 현묘해 보였다.

    “이 육합천문진은 천계에서 내려오는 대진으로, 허환(虛幻)을 겸비하고 있으며, 두 개의 신통이 가두고 있어 태을 존재라 해도 이 진에 들어오면 바로 도망치지 못합니다.”

    심협 등에게 대진에 대해 설명하는 복공의 얼굴에는 자긍심이 넘쳤다.

    “정말 현묘해 보이는군요. 보타산의 오행 대진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습니다.”

    흑곰 요괴는 법진의 도에 관심이 많았기에 이 대진을 이리저리 살폈다.

    “그럼 이전에 상의한 대로 적염수를 유인하는 조와 지심화련을 따는 조로 나눠야 할 텐데 어떻게 나누면 좋겠습니까?”

    심협은 바로 다음 계획에 관해 물었다.

    “육합천문진은 최소 세 사람이 힘을 합쳐서 발동해야 합니다. 그러니 화소 도우, 소삼자 그리고 청청 소저, 이렇게 세 사람이 남고 다른 도우들은 저와 함께 적염수와 지심화련의 상황을 살펴보시죠. 거기서는 또 적염수의 상황을 보고 다시 나누면 될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심협은 이견이 없었고, 귀천세는 모험을 하고 싶지 않았지만 모두가 지켜보고 있었기에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이견이 없자 복공이 선두로 날아갔고, 심협과 흑곰 요괴, 귀천세, 용아, 네 사람이 바로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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