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2화. 자신감
뜨거운 기운이 주작 신조의 허상에서 폭발하자 부근의 양의미진진 공간이 완전히 무너져 다시 본래의 동굴로 돌아왔다. 산은 모두 녹아 용암으로 변했으나 다행히 동굴은 아직 산하사직도의 보호를 받고 있었기에 무사했다.
눈부신 불빛이 빠르게 사라지자 붉은 비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순양검이었다.
순양검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색깔은 이전보다 더 짙어졌고, 검자루에는 수많은 깃털 무늬가 생겼으며, 뿜어져 나오는 붉은 빛에는 불꽃의 태동이 흐르고 있었다.
빼곡한 영문 금제가 검 주위를 흘렀는데, 무려 60여 개나 되었다.
주작 알에 있던 충만한 불의 원기는 순양검의 품급을 상급 법보 중에서도 최상급으로 끌어올려 준 것이었다.
그러나 심협이 가장 기뻤던 것은 방금 그 알에 있던 주작 원령이 순양검으로 녹아들어 기령(器靈)이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기령은 극소수의 상급 법보만 가질 수 있는 것으로, 보통 요수의 신혼을 안에 봉인하고 법보와 일체화한다. 이를 통해 법보의 위력은 크게 정진하고, 교룡이나 거대 구렁이, 맹호 같은 각종 기령이 형태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게다가 생전의 능력을 그대로 갖추고 있으니 법보의 위력을 높이는 지름길이었다.
순양검은 이제 주작 기령이 생겼으니 극한으로 발동하면 주작 진령을 만들어낼 수 있고, 위력은 단순한 검기나 검망보다 열 배는 강력할 것이다. 또한 주작 진령은 주작진화를 시전할 수 있어 만물을 녹일 수 있으니 평범한 검기로는 따라잡을 수 없을 터였다.
기령을 융합하는 성공 확률은 높지 않았고, 강한 요수의 신혼일수록 성공 확률이 더 낮다. 한데 무려 주작 영기가 생겼으니 심협이 기뻐하는 것도 당연했다.
심협은 산하사직도를 거두고는 양손으로 결인했다. 그러자 순양검이 하늘 높이 올라가며 주위를 날아다니던 주작 진령과 하나가 되었다.
날카로운 울음소리와 함께 주작 진령은 바로 실체가 되었고, 몸도 순식간에 수십 배로 커져 백 장에 이르는 거대한 주작이 됐다. 온몸은 주홍색 불꽃, 주작진화로 타올랐다. 주작진화는 산을 가볍게 녹이고는 동굴 밖으로 빠져 나갔다.
“간다!”
심협도 함께 날아오르더니 외침과 함께 법력을 운공했다.
거대한 주작이 두 날개를 활짝 펼치며 허공을 뚫고 올라가자 어검비행보다 몇 배는 빨랐다. 번개나 돌풍 같은 말로도 부족할 정도였다. 구름을 뚫고 우뚝 솟아 있는 천 장 높이의 붉고 거대한 산도 단번에 지나쳤다.
거대한 산이 종잇장처럼 허리가 잘리면서 돌과 바위가 쏟아졌다.
하지만 주작 진령이 두 날개를 한 번 펄럭여 뜨거운 기운을 뿜어내자 모든 돌이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거대한 산은 마치 원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곳은 텅 비어 있었다.
이 광경을 본 심협은 크게 감격했다. 축융분지 안의 산들은 끝없는 열기에 달구어지고 단련되어 평범한 돌보다 몇 배나 더 단단하고 뜨거운데도 주작 진령의 화력 앞에서는 종잇장처럼 그대로 증발한 것이었다.
진령의 위력은 심협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현재 그에게는 수많은 법보가 있지만, 그중 공격력만 놓고 보면 이제 순양검이 단연 최고일 것이다.
심협은 기쁨을 간신히 억누르고는 손을 휘둘러 금빛을 뿜어냈다. 이 금빛은 동부 안의 양의미진진 진기 도구를 전부 거두었다.
한데 심협은 떠나기 직전 갑자기 의심쩍은 얼굴로 어딘가를 돌아봤다. 일순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던 것이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흠, 착각이었나?”
심협은 작게 중얼거리고는 다시 손을 휘둘렀다.
주작 진령이 날갯짓을 하며 돌아와 그를 감쌌다. 그러자 심협의 눈이 커졌다.
불의 신수인 주작이 감싸자 축융분지의 뜨거운 기운과 화독들이 전혀 느껴지지 않은 것이다. 이제 한교주로 막을 필요도 없게 됐다.
“좋군!”
심협은 순양검을 발동하여 먼 하늘로 날아갔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후 일각 정도 지나자 허공에서 푸른 빛이 반짝이더니 신기요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머리 위에는 푸른색 깃발이 떠다니고 있었다.
“위험했다. 심협 저자의 정진이 이렇게 빠를 줄이야. 벌써 진선기라니. 게다가 신식은 왜 이렇게 예민한 거야? 창령설우의 은닉 신통으로도 들킬 뻔했잖아.”
신기요는 이전에 아찔했는지 식은땀을 흘렸다.
운몽택에서 심협은 대승기라 상대할 만했는데 어느새 진선기에 도달했고 기령이 담긴 상품 비검까지 있으니 이젠 절대로 상대가 되지 못할 터였다.
“아무래도 주작의 알은 심협에게 넘어갔고 벌써 비검에 연화했군. 운 좋게 뺏을 수 있다고 해도 소용이 없겠어.”
신기요는 중얼거리며 마옥반을 결인했다.
몇 호흡 뒤, 검은 빛이 마옥반에서 뿜어져 나와 신기요의 머릿속으로 들어갔고, 머릿속에서 작은 글씨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잠시 후, 그는 난처한 표정이 되어 짧게 외쳤다.
“뭐? 비검까지 빼앗으라고!”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그로서는 한숨을 내쉬며 다시 푸른 깃털을 발동하여 심협이 날아간 방향으로 쫓아갔다.
신기요가 떠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근처 허공에서 파동이 일어나더니 마기가 나타났다. 이 마기의 한가운데에는 검은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이 마안은 신기요가 날아간 방향을 바라보더니 두 번 깜빡거리고는 펑 하며 사라졌다.
* * *
수백 리 떨어진 산 정상. 웅크리고 앉은 주작 진령 옆에 선 심협의 미간에서는 검은 기운이 반짝였다. 그 안에는 검은색 마안이 있었다. 마안에는 어떤 화면이 떠 있었고 심지어 소리까지 흘러나왔다. 화면에 있는 사람은 바로 신기요였다.
좀 전에 그는 신기요의 기척을 알아채지 못했지만, 경각심에 몰래 치우무결에 기록된 천마안(天魔眼) 신통을 사용하여 그곳의 동정을 살펴본 것이다.
천마안은 마족의 탐색 비술로, 높은 경지까지 수련하면 모든 금제를 염탐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공간까지 꿰뚫어볼 수 있다. 심협은 이 비술을 수련하지 않았고 수련할 계획도 없지만, 염탐의 눈을 만들어 몰래 허공에 심어두는 정도는 가능했다.
“신기요잖아! 여기는 왜 온 거지? 설마 주작의 알을 노리고 온 건가? 내가 먼저 얻어서 다행이군.”
심협은 중얼거렸다.
신기요에 대해서는 그리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이 요물은 환술에 능통할 뿐 전투력은 부족하니 적수가 아니었다. 다만 좀 전의 상황으로 미루어 이 요물은 다른 누군가와 결탁한 듯했다. 배후가 있다면 우습게 볼 상황이 아니었다.
“와라. 네 배후에 누가 있는지, 목적이 뭔지 낱낱이 파헤쳐주마.”
심협은 주작 진령을 향해 결인했다. 그러자 거대한 주작이 붉은 빛과 함께 몸이 줄어들더니 날갯짓을 하며 날아갔다.
거대한 주작을 유지하는 것은 법력 소모가 상당했다. 게다가 눈에 너무 띄기도 하니 크기를 1장 정도로 줄였는데, 이 정도면 충분했다.
심협은 주작의 등에 앉아 두 번째 지심화련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주작의 알을 연단하느라 하루를 허비했군. 다른 자들이 모두 캐갔으면 어쩌지?’
한참을 날아가는데 전방에서 갑자기 꽥꽥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붉은 구름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한 무리의 닭이었다. 전에 만났던 무리보다 수도 몇 배는 더 많았고 크기도 훨씬 컸다.
심협과 주작 진령을 발견한 닭들이 바로 방향을 바꿔서 험악한 얼굴로 돌진해왔다.
“마침 잘 왔군. 순양검의 위력을 시험해보고 싶었다!”
심협의 눈이 반짝거렸다. 주작 진령의 몸이 갑자기 커져서 다시 수십 장에 이르는 거대한 주작으로 변하면서 속도도 더 빨라졌다. 그러더니 특별한 공법 따위 없이 운석처럼 그대로 닭 무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수백 마리의 닭들은 저항조차 못 하고 부딪히자마자 몸이 부서지더니 불꽃이 되어 주작 진령에게 흡수되었다.
화영의 힘이 곧장 순양검 안으로 주입되면서 비검의 위력이 몇 배나 커졌다.
“주작 진령이 화영의 힘도 흡수할 수 있는 것인가? 이상한 일은 아니지. 주작 기령은 부화하지 않은 어린 주작이었으니 화영을 연화하여 원기를 보충하는 것쯤이야 일도 아닐 테니까. 어쨌든 순양검도 함께 강해지니 좋군. 정석대로 하는 것보다 백배는 빠르겠어. 축융분지에서 마음먹고 돌아다닌다면 순양검의 64도 금제까지 금방 연화할 수 있겠어!”
심협은 기뻐하며 다시 순양검을 발동했다.
주작 진령이 입을 벌리자 수백 개의 길고 거대한 검기가 쏘아져 나와 보이는 닭들을 모두 죽이며 불 구름 안을 헤집고 다녔다.
주작 진령이 입을 크게 벌리자 닭의 영력들이 빨려 들어왔다.
엄청난 화영의 힘이 주작 진령을 통해 흘러 들어가자 순양검의 힘은 또다시 강력해졌다. 다만, 이 닭들에게는 화영의 힘이 그리 순수하지 못했기에 순양검은 원기가 커진 대신 불안정한 기미를 보였다.
“강렬한 힘에는 역시 많은 폐해가 따르는구나.”
심협은 무거운 표정으로 한손으로 결인했고, 더는 순양검으로 붉의 닭을 죽이지 않았다.
주작진령은 두 날개를 펼치더니 붉은 무지개가 되어 불구름을 뚫고 유성처럼 하늘 끝자락으로 사라졌다. 불의 닭들은 미처 반응조차 하지 못했고, 심협이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며 꽥꽥거릴 뿐이었다.
그때, 푸른 둔광이 날아들었다. 이는 신기요였는데, 화가 잔뜩 나 있던 불의 닭들은 또 다른 생령이 나타나자 화풀이라도 하듯 다짜고짜 달려들었다.
신기요는 당황했지만, 그는 심협처럼 바로 뚫고 지나갈 힘이 없었기에 서둘러 멈춰 서서는 공격에 대비해야 했다.
한편, 심협은 뒤의 상황은 신경도 쓰지 않고 날아가며 마검지법을 운공하여 순양검 안의 주체 못 할 원기를 정화했다. 그의 표정도 조금씩 침착함을 되찾았다.
아직 마검지법으로 정화하는 과정이었지만, 주작진령 덕분에 순양검은 보통의 양검이나 마검보다 몇 배는 빠르게 강해지고 있었다. 64도 금제에 도달하는 날도 머지않은 듯했다.
순양검은 상품 법보가 되더니 천두금준보다도 품급이 높아졌다. 게다가 주작기령까지 더해지자 속도는 또다시 폭증했다.
심협은 반 시진 만에 두 번째 지심화련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이곳 역시 용암이 흘렀으나, 누가 이미 따갔는지 지심화련은 찾을 수 없었다.
심협은 내심 실망해 바로 다음 장소로 날아갔지만, 이번 역시 허탕이었다.
뒤이어 그는 연달아 대여섯 군데를 돌아다닌 후에야 지심화련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곳은 매우 넓은 동굴이었고, 내부는 뜨거운 용암이 가득했다. 용암의 한가운데에는 크기가 몇 장에 이르는 시커먼 바위가 있었고, 그 가장자리에 다섯 그루의 지심화련이 보였다.
허나 먼저 온 자들이 있었으니, 귀천세와 용아 그리고 그의 사매인 청청이었다. 이들은 세 마리의 적염수와 싸우고 있었다.
녀석들은 하나하나가 심협과 싸웠던 적염수보다 훨씬 더 크고 기운도 강력하여 각종 화염 신통으로 귀천세 등을 상대로 우세를 점하고 있었다.
귀천세 등은 표정이 좋지 않았다. 세 사람은 같이 움직이며 이미 네댓 곳의 지심화련을 긁어모았기에 수확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무려 다섯 그루의 지심화련을 눈앞에 두고 강력한 적염수들을 상대하느라 시간이 지체되는 중이었다.
사실 세 사람 모두 비장의 법보가 있지만, 다른 사람 앞에서 공개하고 싶지 않아 버티다 보니 상황이 꼬여버린 것이었다.
그때, 붉은 빛이 나타나자 세 사람은 동굴 입구로 시선을 돌렸다.
심협은 현재 실력이 크게 정진하여 굳이 연연나금의로 기척을 가리는 것도 귀찮았다. 그는 도착하자마자 펼쳐진 동굴 내부의 상황에 당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