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821화 (821/1,214)

821화. 우연

“알겠소. 많은 것을 알려주어 고맙소.”

심협은 마음을 정하지 못했고 우선 통령수동을 열어 파사를 돌려보냈다.

이후 한참이나 주작의 알을 훑어보다가 마지막에는 다시 다가가 손을 대고 힘을 주입해보려 했다. 다만 법력이 아닌 마기를 운공했다.

알껍데기 위의 마진은 평범한 흡수 마진이 아니었기에 절대로 발동하지 않으려 했으나, 보고만 있기에는 속이 쓰렸다. 그래도 만일을 대비해 그는 순양검과 수운검을 꺼내 잔뜩 경계했다.

마기가 알에 들어가자마자 마른 장작에 불똥이 떨어진 것처럼 알의 마문이 열 배는 선명해졌고, 마치 실체가 있는 듯한 검은 빛이 번쩍였다.

검은색 마진이 천천히 떠오르면서 주위는 어두워졌고, 마치 끝없는 마역(魔域)에 들어선 것만 같았다.

“이건 무슨 마진이지?”

심협은 약간의 마기를 주입한 것만으로 이토록 큰 변화가 일어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기에 서둘러 뒤로 물러났다.

콰쾅!

굉음과 함께 마진에서 엄청난 흡입력이 흘러나와 반경 수십 장을 휩쓸었다.

심협은 다행히 제때 피했지만, 그럼에도 일순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 그는 황급히 입지생근(立地生根) 신통을 시전했다. 덕분에 금세 몸을 가누었지만, 허공에 떠 있던 순양검과 수운검은 흡입력에 휩쓸려 검은색 마진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심협은 깜짝 놀랐다. 수운검은 몰라도 본명법보인 순양검이 손상되면 그도 중상을 입게 된다.

“안 돼!”

그는 서둘러 순양검결을 운공하여 비검을 다시 회수하려 했다.

그러나 순양검은 마치 마진에 단단히 휩쓸린 것처럼 돌아오지 못했다.

심협은 굳은 얼굴로 참마검을 발동하여 마진을 부수려 했다. 그 순간, 주작의 알에서 붉은 빛이 뿜어져 나와 순양검과 수운검을 감싸더니 알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순양검이 끌려 들어가자 심협의 신식도 주작의 알로 들어가게 됐다.

그 붉은 빛은 알 안에 있던 어린 새가 쏜 것이었다.

이 어린 새는 입을 활짝 벌려서 주홍색 불꽃을 뿜어내고 있었는데, 두 비검은 그 불꽃에 휩싸인 채 불타고 있었다.

수운검은 불꽃에 휩싸이자 곧장 녹아서 푸른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주작의 진화인가? 중품 비검이 이렇게 바로 증발하다니!”

심협은 곧장 순양검 안의 홍련업화를 발동하여 주작의 진화를 막아내려 했다.

두 불꽃이 격렬하게 충돌하자 불빛이 두 불꽃 사이에서 연신 폭발했다. 수많은 불빛이 동시에 폭발하는 모습은 매우 화려했고, 그 힘은 막상막하였다.

“내 비검을 부수다니, 용서할 수 없다!”

심협은 노발대발하며 법결을 바꿨다. 그러자 홍련업화가 어린 새에게 달려들었다.

이 어린 새도 신혼을 태울 수 있는 천화, 홍련업화의 강력함을 감지했는지 서둘러 다시 주작진화를 뿜어내 맞서려 했다.

그 순간, 심협은 불꽃이 타오르는 열 손가락으로 현천공화결을 시전했다.

홍련업화가 갑자기 세 갈래로 나뉘면서 가볍게 주작진화를 피해 돌더니 어린 주작의 몸을 휘감았다.

주작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몸에서 주홍색 불꽃을 강하게 뿜어내 주위로 화염 방패를 만들었다. 이 방패는 세 갈래의 홍련업화를 막아냈다.

심협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홍련업화는 항상 공격력이 부족해 문제였는데, 그 문제가 또 나타난 것이다. 그가 현천공화결을 사용하여 홍련업화를 입신의 경지에 이르게 해도 적이 방어에 치중하면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심협은 기죽지 않고 홍련업화를 검 형태로 바꾸어 끊임없이 주작진화 방패를 공격했다. 순양검도 웅웅 떨면서 검기를 뿜어내 주위의 마진을 부수고 벗어나려 했다.

하지만 마진은 어찌나 견고한지 검기로 아무리 베어도 별 효과가 없었다. 오히려 마기가 검 안으로 조금씩 침투했다. 순양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었다.

심협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소매에서 금빛 검광을 뿜어냈다. 이 검광은 벼락과 같은 기세로 검은색 마진을 공격했다.

심협은 주작의 알이 손상될 것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한데 그때였다. 거대한 알 밖의 마진이 갑자기 해체되어 수많은 검은색 마문으로 변하더니 순식간에 주작의 거대한 알 속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심협은 당황하여 잠시 바라보다가 금세 정신을 차리고는 참마검을 멈추는 동시에 순양검을 발동했다.

모든 홍련업화가 순양검 주위로 모여들어 겹겹의 불의 장막이 되어 검은색 마문으로부터 검을 보호했다.

하지만 검은색 마문은 순양검을 신경도 쓰지 않고 어린 주작에게로 향하더니 가볍게 주위의 진화 보호막을 뚫고 새의 몸으로 들어갔다.

어린 주작은 온몸에 수많은 검은색 마문이 나타났고,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입을 벌려 주작진화를 뿜어내려 했지만, 검은색 마문에 통제되었는지 꿈쩍도 할 수 없었다.

마문들은 강렬한 빛을 발하기 시작했고, 어린 새 주위를 빠르게 돌면서 타원형의 검은 공으로 변했다. 그러더니 순식간에 부풀어 올랐고, 수많은 마의 허상을 번쩍이며 끝없는 변화를 이루더니 빠르게 주작의 생기를 연화했다.

“마태전생대법(魔胎轉生大法)!”

심협은 마진의 정체를 알아챘다.

치우무결에서 마태전생대법에 대한 기록을 본 적이 있었다. 사실 치우무결은 단순한 마족 공법이 아닌 삼라만상을 담고 있었고, 가공의 신비로운 마공들이 적혀 있었다. 마태전생대법도 그중 하나로, 자기 몸을 다른 생령의 몸에 기생하여 생기와 혈통 등을 빼앗을 수 있는 극악무도한 마공이었다.

마족의 신통은 하나같이 극악무도하여 모든 것을 빼앗아 경지를 비약적으로 증진했는데, 이는 선도의 공법과 확연히 달랐다.

“아무래도 고위 마족이 마태전생대법을 대진으로 바꾸어 저 알에 새긴 뒤 주작의 혈통과 능력을 빼앗으려 했던 모양이군. 한데 이 알이 어떻게 적염수에게 넘어갔던 거지?”

심협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사실 그의 추측은 정확했다. 이 주작의 알에 새겨진 마태전생대진은 마족의 어느 고수가 새겨 놓은 것으로, 주작의 알로 환생해 주작 신수의 생기와 능력을 전부 빼앗으려 했던것이다.

한데 주작 알의 생기가 부족했다. 이에 마족 고수는 그것을 축융분지로 가지고 와 땅속 용암 깊은 곳에 숨긴 뒤 대진을 설치하여 용암에 담긴 화염의 힘을 흡수함으로써 주작 알의 원기를 회복시키려 했다.

허나 모든 일이 뜻대로 이루어지지는 않는 법. 그 마족 고수는 마겁 와중에 삼계의 고수에게 죽었고, 주작의 알은 그렇게 잊힌 채 축융분지 땅 깊은 곳에 잠들었다. 그러던 중 적염수가 우연히 찾아냈고, 알을 삼켜 연화하려 한 것이었다.

하지만 주작 알의 원기가 모두 회복되고 크게 성장한 상태였으니 적염수가 아무리 노력해도 연화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번에 심협에게 당한 것이었다.

“마태전생대법이 운공하기 시작했으니 이제 멈출 수 없다. 허나 내 근간 도법은 무명공법이고, 물과 불은 상충한다. 그러니 주작 알의 생명 정화를 흡수할 수 없을 텐데, 포기해야 하는 것인가?”

심협은 아쉬운 마음에 한숨을 내쉬다가 갑자기 눈을 반짝이더니 거대한 알 안의 순양검을 바라봤다.

순양검은 비검이긴 하나 화속성이니 주작 신수와 근원이 같았다. 속성이 충돌할 걱정은 없다. 게다가 비검이라고 해서 마태전생대법을 이어받을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주작진화의 위력은 홍련업화과 막상막하이니 순양검이 흡수할 수만 있다면 순양검은 동시에 두 개의 영화를 가지게 되는 셈이고, 그 위력은 훨씬 강해질 것이다.

생각할수록 가능성이 있을 듯했기에 심협은 바로 참마검을 거두고 양손으로 빠르게 마결(魔訣)을 맺어 검은 빛을 주작 알 안으로 흘려보냈다.

그는 마공을 익힌 적은 없지만 간단하게 마태전생대법을 제어하는 정도라면 가능했다.

그의 술법에 따라 어린 주작이 연화되면서 만들어진 원기가 순양검 안으로 흘러 들어갔고, 순양검의 붉은 빛은 순식간에 더욱 강해졌다. 게다가 밝아질수록 내부의 34도 금제 역시 기운이 충만해지면서 팽창했다. 일부는 비검의 폭증하는 힘을 견디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이를 본 심협은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순양검이 정말로 마태전생대법의 힘을 이어받을 수 있구나!’

그는 두 가지에 집중했다. 하나는 마태전생대법을 발동하는 것, 또 하나는 새로운 순양금제를 만드는 것이었다. 주작 신수의 원기가 전해질수록 새로운 순양금제는 빠르게 선명해졌고 잠시 후, 1도의 금제가 모양을 갖추게 되었다.

“하늘이 날 돕는구나! 주작 신수의 힘이 만년화린목과 같을 줄이야! 이대로라면 순양금제가 금방 모습을 갖추겠어!”

심협은 심호흡을 하며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주작의 알을 연화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데 축융분지는 매우 위험해 양의미진진 하나로는 안심할 수 없었다.

그는 무언가를 읊조리고는 소매를 휘둘러 산하사직도를 꺼냈다.

꿈속 세계에서 이 보물의 사용법을 익힌 적이 있었기에 그 안의 금제는 매우 잘 알고 있었다. 비록 아직 제련하지 않았고 법력도 꿈속 세계에 미치지 못하지만, 이 보물의 위능을 발휘하는 것은 가능했다.

산하사직도가 촥 펼쳐지면서 백배로 커지더니 거대한 그림으로 변하여 허공에 녹아들면서 순식간에 동굴과 주위의 양의미진진까지 뒤덮었다.

심협은 그제야 안도하고 다시 마태전생대법을 발동했다.

한데 그때, 축융분지 어느 곳에서 푸른 빛과 함께 푸른 인영이 나타났다.

만약 심협이 그 인영을 보았다면 깜짝 놀랐을 것이다. 그는 바로 운몽택에서 만났던 신기요였던 것이다.

신기요는 검은색 원반을 들고 있었는데, 그 위의 문로는 매우 복잡했다. 보기에는 심협의 흑옥반과 매우 비슷했다. 이 원반 가운데에는 검은색 점이 빠르게 반짝거리고 있었다.

“빌어먹을! 누군가가 벌써 주작의 알을 연화하고 있잖아! 대체 어떤 놈이냐!”

신기요는 잔뜩 화가 난 얼굴로 양손을 빠르게 결인했다. 검은색 원반에서 주작의 위치를 알아내려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시도해도 주작의 알의 위치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축융분지에 들어오기 전에는 분명히 표시가 나타났었는데…… 누군가 현묘한 금제나 법보로 마옥반(魔鈺盤)의 감지를 막고 있는 게 분명해!”

신기요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다행히 그는 주작 알의 대략적인 위치를 기억하고 있었다.

“어쩌면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니 바로 그쪽으로 가봐야겠다.”

생각을 마친 신기요는 바로 손을 휘둘렀다.

푸른 빛이 그의 머리 위에 나타났다. 영롱한 빛이 흐르는 푸른 깃털 법보였다.

“창령설우(蒼靈雪羽), 날아라!”

신기요는 입에서 순수한 원기를 뿜어내 기이한 푸른 깃털 안으로 넣었다.

깃털에서 갑자기 푸른 노을빛이 뿜어져 나와 신기요의 몸을 감쌌고, 그는 푸른색 무지개가 되어 순식간에 저 먼 하늘로 사라졌다. 엄청난 속도였다.

불과 반 시진 만에 신기요는 심협이 적염수와 맞붙었던 용암 호수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싸움의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여기인가 본데……?”

신기요는 바로 신식을 펼쳐서 주위를 샅샅이 살폈다.

* * *

어느덧 하룻밤이 지났다.

양의미진진 공간 안. 주작의 알은 이미 사라졌고, 마태전생대법으로 만들어진 마진도 보이지 않았다. 이제 눈부신 불꽃만이 그곳에 떠 있었는데, 무궁무진한 열기를 뿜어내는 것이 마치 작은 태양 같았다.

심협은 신중한 표정으로 양손을 빠르게 결인했다. 법결이 비처럼 눈부신 불꽃으로 녹아들었다.

불꽃은 마치 살아 있는 심장처럼 태동을 멈추지 않았고, 갈수록 강력한 불꽃의 기운이 안에서부터 흘러나오면서 주위의 법진 공간은 그 위능을 감당하지 못하겠다는 듯 점점 크게 떨려왔다.

또다시 반 시진이 지났다. 눈부신 불꽃의 태동은 조금씩 평온해졌고, 그 안의 힘도 안정을 되찾아갔다.

그제야 심협의 표정도 조금씩 풀어졌다. 그는 혀끝을 물어 정혈을 불꽃 안으로 흘려보냈다.

불꽃이 갑자기 강하게 빛나더니 맑은 울음소리가 안에서 폭발했고, 1장 크기의 붉은 새의 허상이 안에서 튀어 나왔다.

이 날짐승은 위엄이 넘쳤고, 온몸이 붉은색이었으며, 머리에는 화관(火冠)을 쓰고 있었다. 세 개의 붉은색 꼬리가 길게 늘어져 있었는데, 그 끝에서는 불꽃이 활활 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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