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820화 (820/1,214)
  • 820화. 신수의 알

    불바다 속, 심협은 발천난봉으로 주위의 법진과 불바다를 완전히 부수려다가 불현 듯 바깥의 상황을 눈치채고는 깜짝 놀랐다.

    적염수가 죽자 불바다는 거대한 불꽃이 되어 사라졌다. 안에 있던 팔흉법진도 마찬가지였다.

    심협은 불바다에서 빠져나와 적염수의 시체로 다가갔다. 이 괴수의 잔뜩 찌푸려진 얼굴로 보아 자신이 왜 죽는지조차 깨닫지 못한 게 분명했다. 사실 이는 심협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순양검을 발동한 것은 단지 적염수에게 혼란을 주기 위함이었다.

    “왜 죽은 거지? 순양검의 위력이 강하긴 해도 단번에 죽일 정도는 아닐 텐데……?”

    생각에 잠긴 그는 순양검에서 타오르는 홍련업화를 보다가 퍼뜩 깨달았다.

    적염수는 화영(火靈)으로 만들어진 생물체로, 몸은 실체가 되었다가 허상이 되기를 반복했다. 그래서 수속성 외의 어떤 오행신통의 공격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하지만 생령에는 신혼이 있다. 그리고 홍련업화는 그 신혼을 불태운다. 그러니 적염수에게는 상극인 셈이었다.

    그러나 홍련업화가 신혼을 태우려면 적의 체내로 파고들어야만 한다. 더욱이 이 천화는 공격력이 부족하여 적의 방어를 뚫기가 어려웠고, 이 부분이 심협에게는 고민거리였다. 그래서 홍련업화를 얻은 지 오래되었어도 정작 전투에서는 그 위력을 거의 발휘하지 못했다.

    한데 적염수는 자신의 몸을 화영의 허화 상태로 만들어 순양검의 공격을 피하려고 했고, 덕분에 홍련업화가 체내로 침투한 것이다.

    이렇게 진창해보다도 효과가 좋은 공략법을 찾아낸 심협은 기뻐했다.

    “이 두 가지 신통이 있으면 앞으로 더 강한 화염흉수가 등장해도 두려울 것이 없겠어.”

    심협은 흡족해하며 적염수의 잔해를 살폈다.

    적염수의 경지는 진선기 수사와 견줄 만했고, 시체에는 무궁무진한 순수한 화염의 힘이 담겨 있었다. 그는 비록 화속성 신통에 능통하지 않고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도 없지만, 이렇게 좋은 물건을 버리고 갈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심협이 당황한 것은 적염수의 시체에서 화염의 힘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지금껏 몇 마리의 화염흉수를 죽이고 그 잔해를 거두려 해봤지만, 화염흉수는 죽으면 화염의 힘이 빠르게 사라졌다. 그것을 막을 방법도 결국 찾지 못했는데 이 적염수 시체에서는 화염의 힘이 사라지지 않았다.

    심협은 의아했지만, 원인을 밝히기보다는 우선 소요경에 적염수의 시체를 넣으려 했다.

    한데 그때, 맑은 울음소리가 적염수의 잘린 하반신에서 들려오더니 붉은색의 무언가가 빠르게 빠져나왔다. 새의 형태를 한 그것은 좌우로 움직이며 소요경의 정광을 부수려 했다.

    뜨거운 힘이 붉은 정광을 통해 전해지자 소요경은 뜨겁게 달아올랐고, 심협은 하마터면 손을 델 뻔했다.

    “이게 뭐지?”

    심협은 서둘러 법력을 운공하여 뜨거운 기운을 차단하고는 소매를 휘둘렀다.

    순양검이 붉은 노을빛으로 변하더니 적염수의 하반신을 향해 날아갔다.

    하지만 붉은 새의 허상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날개를 펼쳐 곧장 순양검을 향해 돌진하더니 맹렬히 충돌했다.

    까깡!

    금속음이 울려 퍼졌다.

    붉은 새의 허상은 생각보다 단단하여 순양검의 일격을 막아냈다. 다만 현재의 순양검은 그 위력이 범상치 않았기에 붉은 새의 허상은 크게 떨렸고, 몸이 상당히 희미해졌다.

    심협은 빠르게 검결을 바꿨다.

    순양검에서 붉은 빛이 스쳐갔고, 주위의 허공에서 네 개의 똑같이 생긴 검의 허상이 나타났다. 이 검의 허상들의 기운은 순양검과 똑같았는데, 바로 순양화영검이었다.

    진선기에 들어서면서 그의 순양검식에도 장족의 발전이 있었다.

    네 검의 허상은 붉은 새의 허상을 포위하더니 순식간에 교차하며 날아갔다.

    그때, 구슬픈 비명이 적염수의 시체 안에서 들려오더니 붉은 빛이 잔해 안으로 완전히 들어가 모습을 감췄다.

    “정체가 뭔지는 모르겠다만, 당장 나와라!”

    심협이 소매를 휘두르자 네 검의 허상과 순양검이 적염수의 잔해를 향해 날아갔다. 두 조각의 잔해는 순식간에 10여 조각으로 변하여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가 소매를 휘두르자 금빛이 번개처럼 날아가 잔해들을 감싸더니 순식간에 잘게 다질 것처럼 맹렬히 움직였다.

    적염수의 잔해는 금빛에 둘러싸여 짓눌렸고, 불꽃이 되어 사라졌다. 한데 그 와중에 붉은색의 무언가가 튀어나왔는데, 바로 거대한 알이었다.

    알은 길이가 1척 정도였고, 겉에는 불같은 붉은 빛이 번득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아까 나왔던 붉은색 새와 똑같았다.

    알껍데기에는 빼곡한 검은색 부문이 새겨져 있었다. 그것은 마문, 그것도 매우 복잡한 마진(魔陣)이었다.

    심협은 진즉 신식으로 잔해 안에 무언가가 더 있음을 알아챘지만, 그것이 알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이 알과 그 위의 마문 대진을 자세히 살피던 그는 금빛을 발동하여 그것을 휘감았다.

    거대한 알은 새의 허상이 받은 충격으로 손상을 입었는지 반항하지 않고 얌전히 그의 손으로 들어왔다.

    “으음!”

    거대한 알을 쥔 심협은 화상을 입은 듯 화끈한 느낌에 곧장 손으로 법력을 불어넣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뜨거웠다. 마치 불 속에 손을 집어넣은 것 같았다. 그는 재빨리 알을 소요경 안에 넣었다.

    붉은색 알이 사라지자 주위에 널려 있던 적염수의 잔해는 일제히 터져버렸고, 수많은 화염에 휩싸여 사라졌다.

    “적염수의 시체에서 화염의 힘이 사라지지 않은 것은 이 알 때문이었나보군.”

    붉은 알은 화염의 힘을 모으는 힘이 있는 듯했고, 분명히 더 현묘한 부분도 있을 것이다. 다만 지금은 자세히 살펴볼 때가 아니었기에 그는 서둘러 두 그루의 지심화련으로 다가가 다시 소요경을 발동했다.

    붉은 정광이 두 그루의 화련을 뒤덮자 빛과 함께 소요경 안으로 들어갔다.

    이를 마친 심협은 붉은 빛으로 변하여 날아갔고, 금세 용암 호수로부터 백 리 정도 떨어진, 열기가 조금 약한 산속으로 들어갔다.

    그는 순양검을 발동하여 날카로운 검기를 뿜어냈고, 산 벽에 동굴을 만들고는 그 안으로 들어갔다.

    동굴은 비록 용암 화산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그래도 열기를 감당할 수 없었다.

    심협의 소매에서 하얀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진기들이 동굴 곳곳에 떨어져 금세 대진을 만들었다. 바로 양의미진진이었다.

    이 대진은 운몽택에서 구두충에게 절반이나 망가졌지만, 다행히 핵심인 양의미진부가 부서지지 않은 데다 그동안 부단히 재료를 모은 덕에 다시 고칠 수 있었다.

    심협이 결인하자 수많은 하얀 빛이 쏟아져나와 주위를 뒤덮었다. 그러자 눈앞 광경도 변하여 푸른 초원이 펼쳐졌고, 사방을 감싼 열기도 법진에 완전히 차단되었다.

    심협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가부좌를 튼 채 붉은색 거대한 알을 꺼냈다.

    잠깐 사이에 거대한 알의 붉은 빛은 많이 밝아졌고, 순양검에 베인 원기도 완전히 회복되어 있었다.

    “이렇게 빨리 회복되다니! 아까 그 새의 허상으로 미루어 어떤 영금(靈禽) 신수의 알일지도 모른다!”

    심협의 눈이 반짝거렸다.

    하지만 그는 이쪽 방면에는 견문이 넓지 않아 이 알의 정체를 알 수 없었다.

    대신 치우무결 덕분에 그는 알에 새겨진 마문을 조금 깨달을 수 있었는데, 아무래도 흡수류의 마진 같았다. 신식을 차단하는 효능도 있는 듯했다.

    심협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법력으로 손을 보호한 뒤 마진에 대고 천천히 법력을 주입했다.

    마진의 부문이 갑자기 번쩍이더니 검은 빛을 뿜어냈고, 웅웅 하며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법력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붉은색 거대한 알의 광막이 조금씩 밝아졌다.

    “역시 흡수류 마진이었어!”

    그는 바로 손을 거두고는 황급히 몇 장 밖으로 물러났다.

    심협은 마족 신통이 얼마나 흉악한지 잘 알고 있었다. 만일 이 마진이 자신의 모든 정기를 흡수라도 하면 큰일이 일어날 것이다. 마족의 성품을 생각하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았다.

    다행히 이 마진은 그렇게까지 흉악하지는 않은지 그의 손이 알에서 떨어지자마자 마진의 검은 빛은 바로 어두워졌고, 알의 붉은 빛도 다시 처음처럼 돌아갔다.

    다만 방금 그 순간, 심협의 신식이 알 안으로 침투해 은연중에 안에 한 마리의 주황색 불꽃에 휩싸인 붉은색 어린 새를 보았다. 그 새는 눈을 부릅뜨고 심협을 노려봤는데, 눈에는 살기가 충만했고 매우 살벌했다.

    “붉은 색 어린 새라……. 역시 신수인가?”

    심협은 중얼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무궁무진한 불의 힘이 담긴 거대한 알을 적염수가 몸속에 가지고 있었으니 그렇게 강력한 화속성 신통을 시전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이 알은 이제 심협의 손에 들어왔지만, 그는 화속성 신통에 능통하지 않은 데다 이렇게 거대한 것을 몸에 숨길 수도 없으니 잘 활용하려면 다른 수단이 필요했다.

    우선은 이게 도대체 무슨 알인지 알아내야 했다.

    심협은 통령역요 술법을 시전하여 통령수동을 열었다. 금방 파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심 도우,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인가요?”

    파사는 매우 나른한 표정으로 다소 퉁명스레 물었다.

    그녀는 심협에게서 두 가지 보물을 얻은 뒤 바로 돌아가 연화했고, 경지가 더 정진하여 진선기까지 한 걸음만 남기고 있었다. 계속해서 폐관하며 원래 경지를 회복하려 했는데 하필 그때 심협이 다시 부른 것이었다.

    심협으로서는 당장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 중 가장 견문이 넓은 데다 상고 파사 일족의 혈통이라 알의 내력에 대해 알지도 모르는 파사를 부를 수밖에 없었다.

    “별일은 아니고, 방금 커다란 알을 얻었는데 범상치가 않소. 혹시 이게 무엇인지 도우라면 알지 않을까 하여 귀찮게 불렀소.”

    심협은 옆의 붉은색 알을 가리키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으나, 방금 전까지 심드렁했던 파사는 그 알을 보자 눈이 두 배로 커졌다.

    “아니, 이럴 수가! 이렇게 순수한 선천진화(先天眞火)라니! 신수가 아니면 이럴 수가 없어요! 이건 신수의 알이에요!”

    “역시 그랬군. 한데 선천진화라니, 그게 무엇이요?”

    “선천진화는 화속성 신수 체내의 진화를 통칭하는 말이에요. 신수 체내 혈통의 힘은 하늘과 땅 사이에서 탄생하기 때문에 선천지물(先天之物) 혹은 선천진화라고 부르죠. 이 진화를 우습게봐서는 안 돼요. 절정급 신수가 발휘하는 선천지화의 위력은 천화보다도 강력해요.”

    심협은 이 알의 위력을 직접 겪어봤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 알을 얻게 된 경위를 숨김없이 털어놓았다.

    “주홍색 불꽃에 붉은색의 어린 새라……. 아무래도 주작의 알 같아요.”

    모두 들은 파사가 단호하게 말했다.

    “주작! 사방신 중 남쪽을 지키는 신수!”

    심협은 깜짝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주작 신수의 명성은 그도 일찍부터 들어서 알고 있었다. 온갖 전설로도 남아 있는 존재였다. 태양의 불을 뿜을 수 있고, 뿜어낸 불꽃은 산 하나를 통째로 태워버릴 수도 있으며, 기다란 꼬리를 흔들면 큰 강이 증발한다는 전설의 새. 가장 강력한 불의 신수였으나,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다고 알려져 있다.

    “심 도우의 말대로라면 분명해요. 다만 알껍데기의 흡수 마진에 대해서는 저도 모르겠네요. 어쩌면 누군가 주작 알의 원기를 흡수하려고 새긴 건지도 모르죠.”

    “그럴 수도 있겠군요. 파사 도우가 보기에 이 주작 알이 네게 쓸모가 있겠소?”

    심협도 마진의 역할을 짐작하지 못했기에 그 생각은 나중에 하기로 했다.

    “심 도우가 화속성 신통을 익혔다면 신수의 정화를 흡수해 신통이 크게 증진하고 경지가 비약적으로 늘어났을 거예요. 어쩌면 주작 혈통의 힘까지 얻게 될 수도 있고요. 하지만 도우가 익힌 것은 수속성 공법이니 주작의 알은 계륵과도 같아요.

    물과 불은 상충하니 억지로 이 알의 정수를 흡수하면 이익은커녕 오히려 심각한 피해를 입을 수도 있어요. 차라리 알에 표식을 새겨서 부화한 뒤에 영수로 삼는 게 나을 거예요. 아니면 팔아버려요. 화속성 공법을 익힌 수사들이라면 전 재산을 털어서라도 사려고 할 거예요.”

    심협은 속으로 혀를 찼다. 강력한 신수일수록 성장은 느리다. 이 주작의 알은 이미 영성이 있으니 부화까지 얼마나 걸릴지 모르나 부화한다고 할지라도 얼마나 많은 자원을 들여서 또 얼마나 오래 키워야 할지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

    파는 것도 그리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그는 이미 거부라 할 만큼 재산은 넉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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