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9화. 적염수와의 싸움
이후로도 심협은 한 마리 또는 한 무리의 화염흉수들을 만났는데, 녀석들은 구체적인 형태가 없는지 불새와 불 짐승, 심지어 사람 모양의 화영(火靈)도 있었다.
놈들은 하나같이 몸을 화염으로 바꾸는 능력이 있어서 죽이기는 어려웠지만, 대신 모두 같은 약점이 있었기에 진창해 신통으로 제압할 수 있었다.
심협은 갈 길이 바빠 제대로 싸우지 않고 매번 연연나금의로 피했다. 그러지 못한 경우에만 어쩔 수 없이 싸워가며 한 시진을 이동한 끝에야 어느 협곡 근처에 도착했다.
협곡 양쪽은 두 개의 활화산으로, 하늘을 향해 용암과 검은 연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협곡 안은 암홍색 용암이 가득하여 용암 호수를 이루었는데, 그곳에서는 숨 막히는 고온이 뿜어져 나왔다.
협곡 근처 용암 호수의 어느 돌 틈에 두 그루 적홍색 연꽃이 자라고 있었다. 이 연꽃은 그리 크지 않아서 더없이 연약해 보였고, 꽃잎이나 줄기 모두 반투명 형태를 띠고 있었다. 그 안에는 구름 모양의 붉은 빛이 흘렀는데, 그 모습은 마치 환상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역시 천지 영물이로구나!”
기뻐하며 화련으로 다가가 캐려던 순간, 심협은 경계심에 반사적으로 멈추었다.
촤악!
발아래 용암이 갑자기 갈라지더니 두꺼운 붉은 불꽃 기둥이 뿜어져 나왔고, 불기둥이 지나는 곳마다 그 열기에 공간이 일그러졌다.
다행히 심협은 미리 대비하고 있었기에 곧장 뒤로 물러났고, 동시에 순양검을 꺼내 붉은 검홍으로 불기둥을 막아냈다.
치익!
불기둥은 반으로 갈라졌고, 심협은 순양검과 함께 10여 장 정도 날아간 후에 몸을 가누었다.
방금 그는 분명히 연연나금의로 행적을 감춘 상태였고 조금의 법력도 운공하지 않았으니 같은 경지의 수사라도 속일 정도였다. 그런데도 발각됐다.
더 놀라운 것은 방금 신식으로 주위를 살펴봤는데, 용암 호수 아래에는 분명 아무것도 없었다. 화염흉수가 자신의 감지를 피한 것이다.
평온하던 용암 호수가 갑자기 꼬르륵 하더니 거대한 소용돌이가 만들어졌고, 온몸이 불꽃으로 타오르는 괴수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 괴수는 입이 매우 컸고, 거대한 몸을 웅크리고 있어서 마치 두꺼비 같았다. 등에는 매우 단단해 보이는 비늘이 가득했고, 위로는 불꽃이 타올랐다. 이마에 달린 두 개의 뿔이 가끔 떨릴 때마다 붉은 빛줄기가 일렁였다.
“수호영수(守戶靈獸)?”
심협은 이런 흉수를 처음 봤기에 눈을 반짝였다.
“넌 누구냐? 어째서 우리 적염(赤焰) 일족의 성련을 노리는 것이냐?”
두꺼비 괴수는 볼록 튀어나온 눈으로 심협을 바라보며 사람의 말을 했다.
“말을 하는 걸 보니 영지가 이미 열린 모양이구나. 지심화련을 넘겨라. 그럼 목숨만은 살려주마.”
심협은 내심 놀랐지만, 내색하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
“건방진 놈! 죽여주마!”
화염흉수는 하나같이 성질이 급했는지 분노로 포효하며 등에서 불꽃을 뿜어냈다. 그러자 아까와 같은 10여 개의 거대한 불기둥이 뿜어져 나와 흉흉한 기세로 심협을 덮쳐왔다. 부근의 용암도 움직이더니 수십 개의 거대한 용암이 갑자기 솟아올라 성난 파도처럼 심협을 향해 휘몰아쳤다.
용암과 불기둥이 합쳐지자 마치 용암의 세계가 공격해 오는 것 같았고, 그 위세는 실로 대단했다.
심협은 입술을 꽉 다문 채 양손에서 푸른 빛을 뿜어내며 크게 휘둘렀다.
뼈를 찌르는 한기가 폭발하자 수백 장 크기의 푸른색 빙산이 나타나 용암과 불기둥을 막아냈다.
콰쾅!
굉음이 울려 퍼졌고, 푸른 빙산이 강하게 흔들리며 균열이 생겨났다. 그러나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았다.
이와 동시에 대량의 하얀 안개가 생겨나 눈 깜짝할 사이 모든 것을 뒤덮어 시야를 흐렸다. 심협의 모습도 안개에 가려졌고, 기운마저 완전히 사라졌다.
적염수는 그 자리에 엎드려 꿈쩍도 하지 않았다. 머리 위의 뿔만 빛났다. 이것은 그의 탐지 신통으로, 뜨거운 환경 속에서는 쉽게 심협의 위치를 찾아낼 수 있었다.
다음 순간, 적염수는 심협이 안개 속에서 은밀한 상태로 변해 어딘가로 빠르게 잠복하려는 것을 발견했다.
‘저 인간족은 은신 신통으로 몸을 숨기는 게 특기인가 보군. 하지만 오늘 나를 만난 것이 너의 불행이다. 우리 적염 일족은 감지에 가장 능하단 말이다!’
적염수는 속으로 냉소하면서도 겉으로는 망연자실한 척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심협이 10여 장 가까이로 다가오자 적염수는 그제야 고개를 휙 돌리고 입을 벌렸다.
가늘고 날카로운 무언가가 번개처럼 날아가 심협의 몸을 꿰뚫었다. 적염수의 붉은 혀에는 불꽃이 흐르고 있어서 심협의 몸을 뚫는 동시에 옆의 산 벽을 깊게 찔렀다. 마치 난공불락의 비검 같았다.
한데 하얀 안개 속에서 나타난 심협은 겁먹은 기색 없이 오히려 씩 웃었고, 갑자기 펑 하는 소리와 함께 폭발하며 짙은 푸른 안개로 변했다.
“아니!”
깜짝 놀란 적염수는 바로 혀를 움츠렸다.
하지만 심협이 변한 푸른 안개가 이 혀를 휘감더니 극한의 기운을 뿜어냈다.
콰지직!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적염수의 혀는 얼음 덩어리로 얼어붙었고, 혀 안의 피와 살은 한기에 얼음이 되어 완전히 괴사했다.
입안에까지 한기가 침투하자 깜짝 놀란 적염수는 불꽃을 강하게 뿜어내 한기를 막아내려 했다.
하지만 옆의 허공에서 파동이 일더니 푸른 비검이 나타났고, 뼈를 찌르는 한기가 담긴 10여 장 길이의 푸른 검기가 번개처럼 적염수의 몸을 휘감았다.
진창해의 한기를 막아내려 애쓰던 적염수는 예상치 못한 기습에 미처 피하지 못하자 몸을 반으로 갈랐다.
괴수의 두 동강 난 몸은 불꽃으로 변하여 허공으로 녹아 들어가 푸른 비검의 두 번째 공격을 피했다.
다음 순간, 백 장 밖에서 두 개의 불꽃이 나타나더니 순식간에 하나로 합쳐져 다시 두꺼비 모양의 적염수로 변했다. 하지만 기운은 적잖이 줄어든 상태였다.
“화둔지술(火遁之術)?”
허공에서 조용히 나타난 심협은 눈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그는 연연나금의의 은닉 신통을 최대한 발동하여 마침내 적염수의 감지를 피할 수 있었다. 방금 적염수의 혀에 관통당한 것은 그의 무명공법 신통 수혼술(水魂術)로 만든 분신이었다.
적염수의 실력은 그의 생각 이상이었고, 지리적 이점도 있었다. 또 그는 축융분지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진짜 실력을 발휘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이렇게 여러 수를 쓰고서야 겨우 일격을 날릴 수 있었다.
어렵게 우위를 점한 심협은 긴장을 늦추지 않고 양손을 결인했다.
푸른 비검이 나타났고, 수많은 푸른 검의 허상이 터져 나와 검산(劍山)으로 변하더니 곧장 아래를 압도해 나갔다. 검의 허상마다 무서운 한기를 뿜어냈는데, 바로 진창해 한기였다.
이 검의 이름은 수운검(水雲劍)이었다. 사타령 진선 요족의 저물법기에서 찾아낸 이것은 중품 수속성 법보로, 위력이 약하지 않았다. 진창해 신통과 함께 시전하여 적을 상대할 수 있었다.
“망할 놈! 건방 떨지 마라!”
적염수의 입에서 불꽃 덩어리가 뿜어져 나와 푸른 검의 허상과 강하게 충돌했다. 그 충격의 음파만으로도 어지간한 건물은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푸른 검산은 너무도 쉽게 무너졌고, 비검은 튕겨 날아갔으며, 빛이 약해졌다.
“병화신뢰(丙火神雷)?”
심협은 눈썹을 찌푸렸다.
병화신뢰는 화속성 공법을 최고 경지까지 수련해야만 깨달을 수 있는 신통이었다. 적염수는 불꽃에서 태어났으니 이 신통을 시전할 수 있는 것이야 놀라운 일이 아니지만, 그 위력은 생각 이상이었다.
수운검의 위력이 약하지는 않지만 그 재료가 참마검은커녕 순양검과 비교해도 한참 부족한 정도였기에 병화신뢰의 일격에 영성이 손상되고 말았다.
적염수는 기세를 몰아 온몸에서 불꽃을 뿜어냈고, 다시 입을 쩍 벌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일고여덟 개의 불빛이 뿜어져 나왔는데, 그 안에는 광포한 화력이 담겨 있었다. 운수검을 휘감은 채 완전히 부술 기세였다.
수속성 법보가 많지 않았던 심협은 이 수운검을 아끼고 싶었고, 서둘러 결인했다. 그러자 붉은 검광의 순양검이 뿜어져 나오면서 주위를 붉은빛으로 물들였고, 순양검이 그 불꽃을 베었다.
이와 동시에 검은색 작은 깃발이 소매에서 빠져나가 검은 구름으로 변하더니 불꽃들을 휘감으려 했다.
하지만 불꽃들은 갑자기 방향을 바꿔 순양검과 기혈번의 제지를 피했고, 쏜살같이 날아가 심협이 몸을 숨긴 곳을 강타했다.
콰쾅!
불꽃들이 폭발하자 순식간에 생겨난 불바다가 심협을 덮쳤다.
형용할 수 없는 뜨거운 기운은 허공을 태워버릴 기세였고, 불바다에서 빠져나온 수많은 병화신뢰가 사방으로 몰아치며 허공이 흔들렸다.
연연나금의는 불바다에 뒤덮이고 수많은 병화신뢰에 공격을 당하자 은신이 풀렸다.
“드디어 찾았다! 이제 죽어라! 지옥열화(地獄烈火)!”
적염수가 심협이 나타난 것을 보고는 싸늘하게 웃으며 외쳤다. 그러자 온몸에서 불꽃이 타올랐다.
불바다에서 나타난 한 줄기 붉은 진문은 팔각형 대진으로 변했고, 강력한 봉인의 힘을 뿜어내 주위의 허공을 완전히 봉쇄했다.
“법진?”
안색이 변한 심협은 천두금준을 꺼내 금빛으로 몸을 뒤덮는 동시에 바깥으로 빠져나가려 했다.
하지만 끝없는 거대한 산 같은 강력한 힘이 사방에서 몰아치자 머리 하나도 빠져나갈 수 없었다. 지금 그의 실력으로도 쉽게 움직일 수 없을 정도였다.
“이제 와서 도망가려고? 이미 늦었다! 너에게 우리 적염 일족의 팔흉법진(八凶法陣) 위력을 보여주마! 으하하하!”
적염수의 커다란 웃음이 밖에서 들려왔다.
팔각형 법진의 여덟 모서리에서 불빛이 반짝이자 붉은 문양이 떠올랐는데, 하나같이 흉악한 흉신의 모습이었다. 법진 안에서는 갑자기 기이할 정도의 음산한 기운이 흐르기 시작했다.
심협은 저도 모르게 몸이 떨려왔고, 법력의 운공도 몇 배나 느려지면서 엄청난 피로감이 몰려왔다. 머릿속은 잿빛으로 변했고, 신혼의 힘도 더없이 무거워졌다.
“이건 무슨 공격이지?”
심협의 표정이 돌변했다.
여덟 개의 흉신 무늬에 자극을 받은 불바다는 뜨거운 기운 또한 갑자기 열 배나 강력해졌고, 병화신뢰의 위력도 폭증하여 폭풍우처럼 심협에게 쏟아졌다.
땅! 땅! 땅!
수많은 병화신뢰가 금빛 보호막을 공격할 때마다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 연달아 흔들리는 금빛 보호막은 버티기 어려워 보였다.
심협은 또다시 놀랐다. 천두금준의 방어력은 진선 뇌겁에도 충분히 버틸 수 있었는데, 지금 적염수의 신뢰 공격에 위태로워진 것이다.
“여기서 법력을 소모하기 싫었건만, 네가 명을 재촉하니 원대로 해주마!”
분노가 일어난 심협의 몸에서는 금빛이 번쩍였고, 갑자기 강렬한 힘이 터져 나왔다.
천두금준에도 강력한 법력이 흘러 들어가자 금빛 보호막은 바로 안정을 되찾았다. 이어서 거대한 곤봉이 금빛 보호막을 뚫고 나와 사방의 팔흉법진을 공격했다.
쾅! 쾅! 쾅!
연이은 굉음과 함께 팔흉법진은 마치 종잇장처럼 부서졌고, 네 개의 흉신 무늬도 사라졌다.
“이럴 수가!”
이를 본 적염수는 깜짝 놀라더니 곧바로 등에서 불기둥을 더 강하게 뿜어내 불바다로 주입했다. 팔흉법진을 다시 안정시킬 생각인 듯했다.
심협은 차갑게 비웃은 뒤 양손으로 결인했다. 멀리 떨어져 있던 순양검과 수운검이 날아올랐다.
두 검에 강력한 법력이 흘러 들어가자 위력은 순식간에 몇 배나 강해졌고, 붉은색과 푸른색 검광을 뿜어내며 적염수를 향해 돌진했다. 순양검에서는 홍련업화가 타올랐다.
적염수는 수운검에 고전한 기억이 있기에 곧장 입에서 불기둥을 뿜어내 수운검부터 막았다. 더욱이 순양검에서 불꽃이 타오르는 것을 봐서는 화속성 비검일 터이니 자신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순양검은 품질과 금제의 단계 모두 수운검보다 한단계 위였기에 더욱 빨리 적염수 코앞까지 도달했고, 번개처럼 스쳐갔다.
핏!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적염수의 몸이 반으로 잘렸다. 그의 얼굴은 마치 형용할 수 없는, 원초적인 공포 앞에 선 것처럼 겁에 질린 표정이었다.
다음 순간, 적염수의 눈에서는 빛이 사라졌고, 잘린 몸에서는 기운이 완전히 사라졌다. 허무하게도 그렇게 죽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