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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818화 (818/1,214)
  • 818화. 각개전투

    반나절 후, 벽해운주는 이번 여정의 목적지인 축융분지에 도착했다.

    “여기가 축융분지인가?”

    심협은 앞을 둘러봤다. 이미 흑곰 요괴에게 설명을 들었음에도 놀라웠다.

    그곳은 어느 산 위였는데, 정상 앞쪽 바닥은 갑자기 움푹 파여 매우 커다란 분지를 이루었다.

    분지 안의 모든 것, 땅과 산, 돌, 공기는 마치 타오르듯 눈부신 붉은 빛을 띠었고, 보기만 해도 몸이 타오르는 것 같았다.

    뜨거운 바람이 휘몰아치면서 엄청난 고온에 주위의 바닷물이 증발해 물이 없는 공간이 생겨났다.

    심협 등은 분지 밖에 있었지만, 그 뜨거운 열기가 생생하게 느껴졌다. 마치 화로 옆에서 익어가는 고기가 된 느낌이었다.

    “여기가 바로 축융분지입니다. 이곳은 매우 넓고 또 1년 내내 뜨겁습니다. 깊은 곳으로 갈수록 온도가 높아져 분지 중심 구역에서 가장 큰불이 타오르고 있지요. 이 불은 평범한 불꽃과는 달리 지살화독(地煞火毒)을 품고 있고, 분지 밖보다 열 배나 더 뜨겁습니다. 아무리 진선의 존재라 해도 절대 방심해서는 안 될 겁니다.”

    복공은 엄숙한 표정으로 심협과 흑곰 요괴를 힐끗 보며 말했다.

    “화독 외에도 분지에는 불꽃이 천만 년간 타오르다 보니 많은 화염흉수(火焰凶獸)가 생겨났습니다. 그들은 막강하여 심지어 진선급 흉수도 여럿 있지요. 게다가 놈들은 화염의 힘을 가지고 있어 영체와 실물의 중간 존재인 만큼 죽이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가만 듣던 심협은 문득 궁금증이 생겨 물었다.

    “분지 안에 그리 많은 번거로움이 있다면 어찌하여 분지 위쪽 해역을 통해 바로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 겁니까?”

    이 말에 복공과 귀천세 등 동해에서 상주하는 자들은 기이한 표정으로 심협을 바라봤고, 용아는 비웃음을 감추지 않았다.

    “심 도우는 축융분지를 잘 모르시겠지요. 축융분지는 바닷속의 용암이 관통하고 있어서 항상 불타고 있습니다. 바닷속의 독기가 화력을 타고 위로 솟아올라 위쪽 바닷물을 뒤덮어 독해(毒海)를 이루고 있죠. 이 독해는 축융분지 안의 지살화독보다도 열 배는 강하니 그리로 가는 것은 더 위험합니다.”

    “그렇군요.”

    심협은 전혀 창피해하지 않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복 도우, 모두가 아는 사실을 그렇게 일일이 설명하실 필요 있겠습니까? 그보다는 지심화련이 있는 곳을 어서 알려주시죠.”

    용아가 심협을 비웃고는 못마땅한 말투로 말했다.

    “모두가 동해에 오래 사셨으니 축융분지에 대해 당연히 자세히 알고 계시겠군요. 제가 말이 많았습니다. 하하하!”

    복공은 화를 내지 않고 껄껄 웃었다. 사람이 무척 좋아 보이는 웃음이었다.

    “제가 얻은 정보에 의하면 지심화련은 주로 축융분지 중심 구역에 모여 있고, 일부는 분지 다른 곳에 흩어져 있다 합니다. 모든 위치는 여기 옥간에 적혀 있으니 우선 살펴보시죠.”

    복공이 모두에게 옥간을 나누어주었다.

    심협도 신식을 넣어 살폈다. 옥간에는 중앙 구역 외에도 축융분지 곳곳의 10여 군데가 표시되어 있었다.

    “상당히 넓게 퍼져 있군요. 혹시 나눠서 찾는 겁니까?”

    용아가 물었다.

    “그렇습니다. 그게 합당하지 않겠습니까?”

    복공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서로를 바라봤는데, 당연히 어떤 이의도 없었다. 지심화련 같은 보물이니 당연히 다른 사람들과 나누지 않고 혼자서 움직이고 싶었다.

    “다들 이견이 없으니 그렇게 결정하겠습니다. 흩어진 지심화련은 도우들께 맡기고 저와 화 도우는 곧장 분지 중심으로 가겠습니다.”

    복공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용아와 귀천세 등은 마지막 말에 눈빛이 반짝였다.

    “모두 오해하지 마십시오. 저와 복 도우가 독식하려는 게 아닙니다. 분지 중심 구역에는 지심화련이 많긴 하나 또한 많은 화염흉수가 모여 있습니다. 그것들은 실력이 막강하여 우리 모두가 가도 상대할 수 있을지 미지수지요. 그래서 저와 복 도우가 먼저 가서 그곳에 흉수들을 억제하는 대진을 설치해둘 것입니다. 도우들은 일을 마치고 합류하십시오. 함께 대진을 발동하여 화염흉수 무리를 제압한 후, 중심 구역의 지심화련을 똑같이 나눌 겁니다.”

    지금까지 아무 말도 않던 화소가 나서서 설명했는데, 목소리가 물처럼 부드럽고 매력적이라 절로 믿음이 갔다.

    설명이 끝나자 다른 사람들은 서로 눈짓을 보냈고,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이제 흩어져서 움직이죠.”

    복공은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자 오른손에 들고 있던 깃발에서 하얀 빛을 쏘아보냈고, 옆에 서 있던 소년이 그 빛에 휩싸여 흔들리더니 사라졌다.

    심협은 내심 놀랐다. 저 하얀 정광에서는 공간의 기운이 느껴졌다. 복공이 들고 있던 깃발은 소요경과 같은 종류의 보물이었던 것이다.

    “공간 법보!”

    귀천세가 깜짝 놀라서 말했다.

    “제 팔괘번(八卦幡)에는 아주 작은 공간이 하나 있는 것에 불과하니 공간 법보라고 부르기도 민망합니다.”

    복공은 허허 웃고는 모두에게 공수한 뒤, 화소와 함께 하얀 빛으로 변하여 날아갔다.

    다른 사람들도 각자 흩어져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날아갔다.

    심협과 흑곰 요괴도 서로에게 조심하라고 당부한 뒤 흩어졌다. 심협은 왼쪽으로 날아갔다.

    축융분지로 들어서자 갑자기 열기가 느껴졌다. 그의 강인한 육신으로도 입술이 바싹 마르고 얼굴이 조금씩 화끈거렸다.

    “엄청난 열기로군.”

    그는 혼잣말을 중얼거리고는 몸에서 푸른 빛을 번득였다. 그러자 물의 광막이 온몸을 뒤덮었고, 덕분에 열기가 한층 줄었다.

    주위의 열기는 정말 강렬했고, 조금씩 섞여 있는 기이한 화독은 아마도 복공이 말한 지살화독 같았다. 전력으로 광막을 운공해야만 막아낼 수 있었으나, 그랬다가는 법력 소모가 클 터였다.

    “이래서 불을 피하는 법보와 법력이 중요하다는 말이었군.”

    심협은 푸른색 여의(如意)와 반지를 꺼내 착용했다.

    이 두 가지 법보는 방촌산 대전에서 얻은 전리품으로, 한교주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모두 불을 막아내기에는 좋은 보물들이었다. 이런 특수한 상황에서는 조금의 법력이라도 아껴 쓰는 게 상책이었다.

    여의와 반지에서 푸른 빛이 반짝이자 몸 주위로 영롱한 푸른색 보호막이 만들어져 이전의 푸른색 광막을 대신하여 열기와 화독을 막아냈다.

    심협은 보호막의 효과에 흡족해하며 빠르게 날아갔다.

    축융분지는 매우 위험해 감히 전력으로 날지 못했고, 조심스럽게 분지의 붉은빛을 가로지르며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진선기로 돌파했기에 눈 깜짝할 사이 천 리를 날아 축융분지 깊은 곳에 다다랐다.

    복공의 말대로 축융분지는 깊은 곳으로 향할수록 온도가 높아졌다. 이곳의 화력은 바깥보다 몇 배나 뜨거워 두 개의 푸른 피화(避火) 보물로 만든 보호막도 열기를 다 막아내지 못해 위태로울 정도였다.

    반지가 상대적으로 재질이 좀 떨어졌는지 맹렬한 열풍이 몰아치자 푸른 빛을 빠르게 반짝이더니 곧 콰직 하는 소리와 함께 균열이 생겼다. 이어서 푸른 빛은 완전히 사라졌다.

    심협은 곧장 한교주를 꺼내 허리춤에 걸었다.

    하얀 한광이 쏟아져 나오자 한기가 가득해지면서 가볍게 주위의 열기를 막아냈다.

    심협은 한교주의 효과에 만족하여 고개를 끄덕이고는 계속해서 나아갔다.

    그때, 앞에서 붉은 구름이 나타나더니 그의 존재를 알아챈 것처럼 빠른 속도로 날아왔다. 구름 속에서는 기이한 소리가 들려왔고, 이곳의 원래 열기보다 더 강한 짙은 화염의 기운이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이에 인근의 대기마저 일그러졌다.

    심협의 몸 주위로 하얀색 한광이 빠르게 깜빡거렸다. 아무래도 붉은 구름의 화염 기운을 견디지 못하는 것 같았다.

    “화염흉수인가?”

    심협은 일단 멈춰 서서 상황을 살폈다.

    붉은 구름은 속도가 매우 빨라 눈 깜짝할 사이에 근처까지 다가왔다. 심협은 그제야 그 내부를 제대로 볼 수 있었는데, 바로 온몸이 붉은색인 닭이었다. 온몸이 불꽃으로 타오르고 있었으며, 흉흉하게 반짝이는 두 눈동자에는 살기가 충만했다.

    이 닭은 수천 마리나 되었고, 무리를 이루어 달려드는 것이 협공에 익숙해 보였다.

    심협은 불꽃을 조종하는 고수와도 싸워봤고, 심지어 오화선으로 강력한 화염 공격을 시전해본 적도 있으니 화염 신통이 낯설지 않았다. 다만 수천 개의 불꽃으로 만들어진 불 구름은 놀라울 정도라 산을 태우고 바다도 끓인다는 표현으로도 부족했다.

    “대단하군.”

    그러나 그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진창해 신통을 시전했다.

    끝없는 극한의 기운이 폭발하며 덮쳐오자 닭들은 깜짝 놀랐고, 불 구름은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심협은 그 틈에 입에서 적과 금의 검광을 쏘아 보내고 양손으로 검결을 맺었다.

    두 개의 검광은 순식간에 열 배나 커져 백 장 길이의 교룡으로 변했고, 머리와 꼬리를 흔들며 닭 무리를 덮쳤다.

    꽥꽥 소리가 울려 퍼졌고, 눈 깜짝할 사이 백여 마리의 닭들이 죽어 불꽃으로 변하여 흩어졌다.

    상황이 생각보다 쉽게 흘러가자 심협은 다소 의외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때, 흩어졌던 불꽃이 갑자기 다시 뭉쳤다. 그러더니 마치 공격을 받은 적이 없는 것처럼 눈 깜짝할 사이에 다시 닭으로 변했다.

    “기이한 놈들이로군.”

    심협은 어이가 없다는 듯 혀를 차고는 무언가를 읊조린 뒤 손으로 법결을 맺었다. 왼손에서 풍뢰 영광이 반짝이더니 푸른색 풍인(風刃)과 금색 뇌전이 손에서 뿜어져 나갔다.

    동시에 오른손으로는 진창해 신통을 운공하자 푸른 불꽃과 수많은 얼음 결정이 쏟아져 나가 바람의 칼날 뇌전과 함께 불 구름을 공격했다.

    이 닭들은 숫자가 많아 불 구름의 위력도 강력했지만, 심협에게는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이번 기회에 화염흉수의 약점을 최대한 찾아낼 생각이었다.

    풍인과 뇌전이 먼저 불 구름을 공격했다. 닭들은 다시 한번 수많은 불꽃이 되어 사라졌지만, 불꽃들은 금방 다시 뭉쳤다. 이번에도 아무런 손상이 없었다.

    얼음 결정은 바람을 가르며 날아갔고, 순식간에 수십 마리의 닭을 관통했다. 얼음 결정에 담겨 있던 진창해 한기가 폭발하자 닭들은 비명과 함께 전부 사라졌다.

    “역시 화염흉수들은 화속성이니 수속성 신통과 상극이로군.”

    이를 본 심협은 마음을 놓았다.

    그에게는 절정까지 익힌 진창해 신통이 있으니 화염흉수들을 상대하기에 충분할 터였다.

    그때, 불 구름에서 백 마리 이상으로 이루어진 두 무리의 닭들이 갑자기 모여들더니 두 개의 거대한 대검으로 변해 빠르게 날아왔다.

    심협은 일순 당황했지만, 곧장 침착함을 되찾고는 순양검과 참마검을 발동하여 대응했다.

    쾅!

    굉음과 함께 불꽃이 사방으로 튀면서 순양검과 참마검이 대검을 막아냈다.

    남은 닭들은 휘리릭 하는 소리와 함께 뭉치더니 작은 산만 한 닭으로 변해 날개를 펄럭이며 거대한 부리로 공격해왔다.

    심협이 두 발에서 달빛을 반짝이며 사라지자 닭의 부리는 허공을 쪼았다.

    거대한 닭은 분노의 괴성을 지르고 날개를 퍼덕이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심협을 찾는 것이리라. 그러나 심협은 마치 증발한 것처럼 사라졌고, 두 개의 거대한 붉은 검도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수십 장 밖. 심협은 연연나금의 은신 신통으로 완전히 자취를 감춘 채 두 개의 비검을 다시 불러들여 빠르게 날아갔다.

    화염흉수의 약점을 찾아냈으니 더 이상 싸울 생각이 없었다. 최대한 빨리 지심화련을 찾는 것이 더 중요했다.

    저 닭들의 위력은 제법이었지만, 영지는 평범한 흉수와 비슷할 정도로 당연히 연연나금의의 은신 신통은 알아채지 못했고, 한참을 꽥꽥거리며 돌아다니더니 다시 불 구름으로 변하여 빠르게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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