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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816화 (816/1,214)

816화. 조력자

흑곰 요괴도 몸을 돌리다가 심협을 보더니 커다란 눈이 더 커졌다.

“아니, 심협! 자네가 여기는 어쩐 일인가?”

흑곰 요괴는 냉큼 심협에게로 다가왔다.

“하하하! 호법 선배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개인적인 일이 있어서 오홍 도우를 찾아왔는데, 여기서 선배님을 뵙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심협 역시 반가워 껄껄 웃었고, 해야차는 두 사람이 아는 사이인 것을 알고는 방해하지 않고 옆으로 물러섰다. 두 눈은 무척 흥미로워 보였다.

“나도 자네가 여기 있을 줄은 몰랐…… 뭐여, 자네 진선기로 돌파했는가!”

흑곰 요괴는 심협의 어깨를 두드리다가 갑자기 그 경지를 알아채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요행히도 돌파했습니다.”

“진선기가 요행으로 돌파할 수 있는 경지인가! 나도 대승기에서 진선기로 돌파할 때 대략 300년이 걸려서 나름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심 도우와 비교하면 한참 멀었구먼.”

흑곰 요괴가 한숨 쉬며 말했다.

“과찬이십니다. 선배님.”

심협이 공수하며 말했다.

“같은 진선기 수사이니 이제 선배가 아니지. 이제 같은 배(輩)이니 흑곰이라고 부르게.”

심협은 수선계의 경지로 배를 따지는 일에 이미 습관이 되었기에 겸손을 떨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흑 도우는 왜 동해 용궁에 있는 겐가?”

“자네에게 줄 물의 영물을 찾고 있었지! 한데 이제 진선기로 돌파했으니 평범한 물의 영물로는 안 되겠군. 다시 찾아봐야겠네.”

흑곰 요괴는 힘없이 말했다.

“그랬군. 아닌 게 아니라, 이전에 수련하던 수속성 공법은 끝에 도달하여 이제는 방촌산의 황정경 공법을 수련하고 있네. 그러니 더는 물의 영물은 찾지 않아도 될 걸세.”

심협은 이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기에 미안해하며 급히 말했다.

그 말에 흑곰 요괴는 깜짝 놀랐는데, 심협을 바라보는 시선이 또 달라졌다.

공법을 바꾸는 것을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한 공법의 수련이란 단순히 법력을 쌓는 것이 아니다. 그 공법을 수련하는 동시에 공법이 말하는 도법의 심오함을 깨닫는 일이었다.

예를 들어, 흑곰은 지금껏 뇌속성 공법을 수련하면서 뇌전의 심오함을 깨달았는데, 만약 다른 공법으로 바꾸려 한다면 어찌 되겠는가? 같은 뇌속성 계열이라면 이전의 수련 경험이 있으니 도움이 되겠지만, 속성이 다른 공법이라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얼마나 많은 생각과 시간이 걸릴지 헤아릴 수 없다.

흑곰 요괴는 견문이 넓어 방촌산의 황정경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심협이 수속성 공법에서 법체쌍수(法體雙修)인 황정경으로 바꾸는 것은 거의 모든 것을 바꾸는 셈이니 기백과 정력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다만 흑곰 요괴는 심협이 이미 전부터 황정경을 수련해왔고 꿈속에서의 수련 경험까지 있다는 점은 알지 못했다.

“방촌산의 황정경은 나도 조금 알고 있지. 당대에 가장 정묘한 법체쌍수 공법이 아닌가. 다만 이 공법의 수련은 매우 어려워 방촌산 전체에서도 완벽한 성취를 이룬 이가 몇 없다네. 심 도우는 자질이 훌륭하니 황정경을 수련한다 해도 문제는 없겠지만, 그래도 연체류(煉體類) 단약의 도움이 필요하겠군?”

“그렇다네. 그래서 마침 해야차와 동해 용궁 해시에 가볼 참이었네.”

“그랬나? 나도 그리로 가던 길이었으니 같이 가지. 큰 기연이 마침 심 도우를 기다리고 있다네.”

흑곰 요괴가 씩 웃으며 말했다.

“기연?”

“지금 말하면 재미없지. 날 믿는다면 따라오게. 절대 손해는 안 볼 걸세.”

흑곰 요괴가 뜸을 들였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흑 도우라면 당연히 믿어야지.”

심협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그럼 서두르세. 야차, 자네는 오지 않아도 되네. 내가 심 도우와 함께 가겠네.”

흑곰 요괴는 옆에 있는 해야차에게 말하고는 심협과 함께 둔광으로 변하여 날아갔다. 해시에 한두 번 가본 게 아닌 모양이었다.

해야차는 공수하고는 그 자리에 멀뚱히 서 있었다.

흑곰과 심협은 금방 동해 용궁 서북쪽에 있는 해저 협곡에 도착했다. 이곳은 용궁의 중요한 영역에서는 꽤 떨어져 있었기에 지키는 용궁 병사가 적었다. 협곡 전체는 거대한 푸른 광막으로 덮여 있어서 바닷물을 막았다. 협곡 양쪽에는 상점이 늘어서 있었는데, 그 크기는 장안성의 서시보다도 커 보였다.

해시 안의 건물에는 거의 다 용족 문양과 신룡의 조각 등이 새겨져 있어서 모르고 보더라도 동해 용궁 소속임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시가에는 수많은 동해 용족과 인간족 수사들이 모여 있어서 매우 떠들썩했다.

심협은 신식으로 해시를 살폈다. 상점 안에는 대부분 동해의 특산물을 팔고 있었는데, 바다 위 섬에 있는 시가들의 물건보다 진귀하고 수준이 높았다.

밖에 진열된 물건들은 그의 눈에 들오지 않았지만, 상점 안 금제 안의 보광이 충만한 물건들은 그와 같은 진선기 존재들에게도 큰 도움이 되는 물건들이었다.

“상점의 물건들은 대부분 평범한 영물들이니 별 볼 일 없네. 진짜 보물이 있는 곳으로 안내하지.”

심협이 자세히 살펴보기도 전에 흑곰 요괴는 그를 이끌고 빠르게 이동했고, 골목을 몇 번이나 돌아 시가 가장 안쪽의 한 상점에 도착했다.

슥 보기에는 영재를 파는 평범한 가게 같았다. 이름은 복공루(福公樓)였고, 폭이 50여 장이나 될 정도로 넓은 데다 담벼락 높이가 10여 장에 이르렀다. 마치 별들 가운데 달처럼 상점들로 둘러싸인 곳으로 이 구역에서 가장 눈에 띄었다.

피부색이 다르고 외모가 다른 수족과 인간족 수사들이 드나들었다. 누군가는 얼굴에 화색이 돌았고 누군가는 우울해 보였지만, 어쨌든 이곳은 문전성시를 이루었고, 장사가 매우 잘됐다.

“큰 상점이로군. 여기인가?”

“그렇다네. 따라오게.”

흑곰 요괴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정문이 아닌 복공루 뒤쪽 옆문을 열고 들어갔다.

이곳은 편청(偏聽) 같았고, 손님이 없어서인지 열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년이 나른하게 졸고 있었다.

“소삼자(小三子), 스승님은 계신가? 조력자를 데려왔으니 그 일을 더는 미루지 않아도 될 것 같구나.”

흑곰 요괴가 소년을 토닥이는 모습으로 보아 둘은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인 것 같았다.

“흑곰 선배님 오셨군요. 주인님께서 안에서 기다리신 지 오래예요. 절 따라오세요.”

소년이 일어나더니 의외라는 듯 심협을 힐끗 보고는 별말 없이 앞장서서 편전 안쪽의 작은 문으로 다가갔다.

심협은 신식으로 소년을 살폈는데, 경지는 출규기에 불과했지만 신기하게도 그 기운에서는 인간족과 요족의 힘이 동시에 느껴졌다. 두 종족의 혼혈 같았다.

작은 문 뒤쪽은 석실이었다. 소년이 조개 모양의 하얀 법기를 꺼내 벽에 대자 하얀 빛이 번득이더니 석벽에서 갑자기 빛이 떠올랐고, 가벼운 소리와 함께 아래로 통하는 계단이 나타났다.

소년은 별다른 설명 없이 앞장서서 내려갔고, 흑곰 요괴도 자연스럽게 따라갔다. 한두 번 와본 게 아닌 듯했다.

“흑 도우, 이제 슬슬 누굴 만나려는 건지, 도대체 무슨 일인지 설명해주면 안 되겠나?”

심협도 뒤를 따라가며 전음으로 흑곰 요괴에게 물었다.

“심 도우, 지심화련(地心火蓮)이라고 들어봤나?”

“지심화련? 옛 서책에서 본 적이 있네. 화속성의 영력이 짙은 화산 지대에서 자라는 진귀한 영련이었던 것 같은데…….”

“역시 견문이 넓군. 그 말이 맞네. 지심화련은 화산 용암에서 자라는 천재지보라네. 이 지심화련을 흡수하며 자라서 불의 영력이 가득해진 물건을 제련하여 단약을 만들면 약력도 뛰어나고 우리 같은 진선기 수사에게 유용하지. 몸을 단련시키는 데 아주 뛰어나다네. 연체 공법을 수련하는 인간족 수사나 나와 같은 요족은 꿈에도 그리는 영단인 셈이지.”

흑곰 요괴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설명했다.

“그럼 이 가게에 지심화련과 관련된 단서가 있는 겐가?”

심협도 눈에 화색이 돌며 물었다.

“그렇다네. 이 가게의 주인은 해시에서 명성이 자자한 인물인데, 그가 지심화련이 자라는 곳을 알고 있지. 다만, 듣기로는 그곳은 매우 위험해서 주인이 진선기 수사를 모집하여 채취하러 갈 계획이라 하네. 나는 이미 함께 가기로 했지. 내 마음대로 심 도우를 끌어들인 건데, 혹시 날 원망하나?”

“오히려 고마워해야 할 일이지 내 어찌 흑 도우를 원망하겠나! 다만, 진선기라고는 해도 나는 초입이라 흑 도우의 발목이나 잡지 않으면 다행이지.”

“심 도우, 뭘 그렇게 겸손하게 구는 겐가? 이전에 대승기에 들어서기 전부터도 법보의 힘으로 진선기 존재와 대적한 자네 아닌가? 이제 진선기에 도달했으니 나도 감히 자네를 이긴다고는 못 하겠는데…….”

“어찌 그 정도이겠는가? 과찬일세.”

심협은 습관적으로 겸손의 말을 했으나 표정은 담담했다. 그리고 그 표정을 본 흑곰 요괴는 가슴이 철렁했다. 그는 심협의 실력이 약하지 않음을 알아챘지만, 도대체 어느 정도인지는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방금 한 말도 사실 일부러 떠본 것이었는데 이런 담담한 반응이라니, 정말로 자신보다 강해진 게 아닌가 싶었다.

두 사람이 대화하며 걷다 보니 계단이 끝을 보였고, 돌문이 눈앞에 나타났다.

소년이 다시 조개 모양 법보로 돌문을 열자 밝은 대청이 펼쳐졌다.

아름다운 색상의 양탄자가 깔려 있었고, 새하얀 벽에 높이 걸린 등과 온갖 정교한 골동품이 휘황찬란한 그곳은 마치 속세 거부의 거실 같았을 뿐 수련계 같은 분위기는 아니었다.

이 방의 주인은 더 신기했다.

거실 중앙에 금이 박힌 커다란 탁자 주위로 10여 개의 의자가 놓여 있었는데, 그중 다섯 개에는 사람들이 앉아서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분위기로 미루어 결코 평범한 자들은 아닌 듯했다.

흑곰 요괴와 심협이 들어서자 몇 개의 날카로운 눈빛이 스쳐 지나갔다.

“벌써 와 계셨군요. 제가 좀 늦었습니다.”

흑곰 요괴는 그들과 이미 알고 있는 사이인지 해맑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심협은 굳이 눈에 띄고 싶지 않아서 말없이 흑곰 요괴 뒤에 서서 그들을 살펴봤다.

제일 바깥쪽에는 푸른 비단옷을 입은 사람은 몸이나 외모에서 요족의 특징을 전혀 찾아볼 없는, 세 갈래 수염에 청아한 외모가 눈에 띄는 인간족 중년 남자였다. 오른손에는 하얀 깃발을 들고 있었는데, 거기에는 신기묘산(神機妙算)이라는 네 글자가 쓰여 있어서 점쟁이 같은 느낌이었다.

그의 옆에 앉은 백의 공자는 늘씬한 체격과 준수한 외모가 같은 남자인 심협도 눈이 번쩍 뜨일 정도였다. 외모만 놓고 보면 심협이 만났던 남자 중 이 백의의 공자보다 뛰어난 자가 없을 터였다. 한데 이마에 산호 모양의 뿔이 한 쌍 있는 것으로 보아 해족인 듯했다.

맞은편에는 세 명이 앉아 있었다. 한 명은 푸른 옷을 입은 늙은 거북이로, 입술 위로 두 가닥의 긴 수염이 나 있는 것이 나이가 꽤 있어 보였다. 그는 상석에 앉은 데다 표정도 거만한 것이 한 수 위의 고수인 듯했다.

마지막 두 사람은 남녀였다. 남자는 서른 전후로 보였고, 검은 옷을 입은 데다 몸집이 크고 눈빛은 어두웠다. 푸른 옷을 입은 여자는 외모가 고왔는데, 특히 물방울처럼 둥글고 커다란 눈동자는 마치 두 개의 흑진주 같았다. 두 사람 모두 요족의 기운을 풍겼는데, 어느 종족인지는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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