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809화 (809/1,214)
  • 809화.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싸움

    “심협!”

    심협의 얼굴을 보는 순간, 금시대붕과 육아상왕이 동시에 소리쳤다.

    두 사람의 원망은 손오공보다 심협에게 더 컸다. 심협만 아니었다면 현재 사타령의 모습은 많이 바뀌어 있었을 것이다.

    “감히 내 앞에서 모습을 드러내다니, 죽으려고 작정했구나!”

    육아상왕이 분노로 포효하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이를 보고도 심협은 당황하지 않고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검은 빛이 빠르게 날아갔다.

    암기 법보일 거라 생각한 육아상왕은 창으로 쳐내려 했다.

    그때, 검은 빛에서 짙은 살기가 뿜어져 나오더니 가느다란 사람 그림자가 튀어나와 천살시왕으로 변했고, 등에서 촤악 하며 황금색 날개가 펼쳐졌다.

    육아상왕은 화들짝 놀라 거대한 창으로 시왕의 머리를 내리쳤다.

    천살시왕은 맨손으로 공격을 막아내더니 입에서 짙은 시화(尸火)를 뿜어내 거대한 창을 뒤덮었다.

    불꽃이 휘몰아치자 이 창의 강력한 위력은 크게 약해졌다.

    거센 기세를 자랑하던 거대한 창은 시왕의 팔에 닿았을 때 이미 힘의 절반이 사라졌고, 시왕은 가볍게 막아냈다.

    뒤이어 육아상왕의 눈앞이 흐려졌고, 천살시왕의 모습이 사라졌다.

    “형님, 뒤쪽이오!”

    금시대붕이 소리쳤다.

    육아상왕은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온 힘을 다해 창을 뒤로 휘둘렀다.

    그의 뒤에서 황금색 날개가 순식간에 펼쳐지면서 창을 막았고, 시왕은 발을 크게 뻗었다.

    퍼퍽! 퍽!

    거의 동시에 두 번의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졌고, 두 사람은 서로를 날려버렸다. 그야말로 막상막하였다.

    갑자기 나타난 태을급의 천살시왕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어 있을 때, 심협은 한창 싸우고 있는 손오공과 육이미후를 향해 돌진했다.

    육이미후가 이전에 각안에게 당한 손오공의 상처를 움켜잡으려는 순간, 심협의 온몸에서 마기가 폭증했다. 그는 그렇게 현양화마한 몸으로 앞을 막아섰다.

    푹!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피가 뿜어져 나왔다.

    심협의 입에서는 신음이 흘러나왔지만, 이를 악물고 참았다.

    현양화마의 몸은 매우 단단했지만, 육이미후의 일격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라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상처를 통해 심장이 보일 정도였다.

    이번에도 손오공을 죽이지 못하자 육이미후는 크게 분노했고, 곤봉으로 심협의 심장을 부수려 했다. 한데 이 인간의 입가에 미소가 떠오르는 것이 아닌가!

    다음 순간, 심협은 자신의 무기를 거두고 양손으로 육이미후의 칠흑 같은 마곤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동시에 가슴의 살이 빠르게 회복되면서 마곤을 겹겹이 휘감았다.

    이 광경에 육이미후는 깜짝 놀랐고, 본능적으로 곤봉을 뽑아서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그가 당겨도 뽑히지를 않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그가 당황하고 있을 때, 손오공이 심협의 위에 나타나더니 여의금고봉을 크게 휘둘렀다.

    육이미후는 즉시 마곤을 놓고 아래로 도망치려 했다.

    “기다렸다!”

    이를 본 심협이 웃으며 말했다.

    육이미후의 몸이 내려가는 순간, 몸 아래에는 어느새 나타난 검은색 고리가 마치 오랫동안 기다린 함정처럼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심협은 그를 지켜보고 있다가 구유에 들어가는 순간 화염을 발동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육이미후는 이제 도망칠 방법이 없음을 알았는지 더는 내려가지 않고, 몸을 쭉 펴서 머리 위에서 내려오는 금고봉을 그대로 맞받았다.

    심협은 그가 자기 눈앞에서 올라가는 순간, 불현듯 뭔가 잘못됐음을 느꼈다. 육이미후의 얼굴에는 두려움은커녕 오히려 웃음이 가득했던 것이다.

    땅에 있는 금시대붕 등은 이 광경을 지켜보면서도 누구도 나서려 하지 않았다. 심지어 마왕채의 지영 장로가 나서려고 하자 옆에 있던 화십낭이 막는 게 보였다.

    ‘뭔가 이상해, 무슨 음모가 있는 게 분명하다!’

    퍼뜩 떠오르는 것이 있어 심협이 큰소리로 외쳤다.

    “죽이면 안 됩니다!”

    하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손오공의 여의금고봉은 거침없이 떨어졌고, 육이미후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대로 충돌했다.

    펑!

    육이미후의 몸은 여의금고봉에 도자기처럼 부서졌고, 재가 되어 날아갔다.

    ‘설마 내 생각이 틀렸나?’

    심협이 의아해하는 사이 가슴에서 갑자기 통증이 느껴졌다.

    칠흑 같은 마곤이 그가 대비하기도 전에 갑자기 가슴에서 뽑히더니 날아갔다.

    뒤이어 육이미후가 타버린 잿더미에서 갑자기 극도로 순수한 마기가 뿜어져 나오더니 멀리서 날아온 마곤을 휘감았다.

    “손오공, 저번 영산대전에서 나를 죽였고 이번에도 나는 너에게 한 번 더 죽었다. 네놈에게 과거와 전생의 몸이 소멸했으니 이제 나는 마족의 몸으로 다시 태어날 터. 그때 내가 널 반드시 죽일 것이다!”

    육이미후의 목소리가 멀리서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심협이 그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의아해하는데 손오공의 설명이 들려왔다.

    “과거, 경전을 가지러 갈 때, 사부님을 향한 미움의 마음에서 육이미후가 태어났고, 후에 영산대웅 보전에서 내 손에 죽었지. 그때 내가 독하지 못해 저놈의 신혼까지 부수지는 않았다. 한데 지금 들어보니 내가 저놈의 전생의 몸이 완전히 소멸하는 것을 도운 꼴이 된 모양이다. 훗날 저놈은 순수한 마족으로 태어날 가능성이 매우 커졌고, 그때는 경지도 폭증할 게야.”

    심협이 근심에 빠졌는데, 다시 손오공의 말이 들려왔다.

    “걱정 마라. 다음에 다시 만나도 이번처럼 땅속에 묻어버릴 거니까.”

    그 말을 듣고도 심협은 도저히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한데 그때, 신음과 함께 갑자기 몸이 강하게 흔들렸다.

    고개를 숙여 보니 자신의 언갑 시왕이 갑자기 싸움에 끼어든 금시대붕의 장법에 맞아 가슴이 움푹 파여 매의 발톱 자국이 생겼고, 백여 장이나 날아갔다.

    “조심해!”

    손오공의 외침이 갑자기 들려왔다.

    심협이 황급히 몸을 뒤로 돌리자 설백의 골검이 그의 코끝을 스쳐지나 아래로 비스듬히 날아갔고, 검기의 잔상이 그의 옷을 그었다.

    뒤이어 강렬한 통증이 허리를 파고들었다.

    검은 골검이 아무런 기운의 파동도 없이 곧장 그의 허리를 찔러왔고, 강력한 힘이 관통하면서 뼈에서는 콰직 하는 소리가 났다.

    심협은 커다란 산이 허리에 충돌하는 느낌을 받았고, 다음 순간 그의 몸은 상공으로 날아갔다.

    위에서는 설백의 골검이 이미 방향을 바꿔 심협의 미간을 향해 날아왔다. 이 검날에서는 지옥에서 온 듯한 서늘한 기운이 흘렀다.

    심협은 검은색 검의 충격에 몸의 방향을 바꿀 수 없었고 곧장 설백의 골검을 향해 날아갔다.

    손오공이 서둘러 다가가 도와주려는데 금시대붕이 그의 앞을 막아서더니 손을 휘둘렀고, 금색의 발톱이 허공을 찢으며 날아왔다.

    손오공은 곤봉을 가로로 들어서 막아내고는 그대로 뒤로 밀려났다.

    “망할 원숭이, 그때 결판 내지 못한 승부를 오늘 내자!”

    금시대붕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손오공은 심협을 구하기에는 이미 늦은 것을 깨닫고는 분노가 솟구쳐 말없이 곧장 덤볐다.

    한편, 심협의 미간에 비검이 가까이 다가온 순간이었다. 갑자기 그의 눈동자에서 붉은 빛이 번쩍였다. 미간에서 불꽃이 튀었고, 순양비검이 튀어나와 설백의 골검과 충돌했다.

    까깡!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순양비검에서 뿜어져 나온 홍련업화는 상극인 설백의 골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한기를 막아냈고, 골검은 뒤로 밀려났다.

    심협은 그제야 몸을 가누었고, 현황일기곤으로 뒤에서 날아오는 검은색 골검을 튕겨냈다.

    흑백의 두 자루 비검이 검광으로 변하여 뒤로 날아갔고, 누군가 땅에서 천천히 떠오르더니 양손으로 검광을 쥐었다. 검광은 다시 비검의 모습으로 변했다.

    마왕채의 장로 지영이 비검을 흘끗 보고는 물었다.

    “네 몸의 마공은 어디서 익힌 것이냐? 마족도 아니고 요족도 아닌데 어떻게 순수한 마기를 몸에 지닌 거지?”

    지영은 심협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물었다. 심협에게 흥미가 생겨 바로 죽이지 않은 게 분명했다.

    “알아도 넌 못 배운다.”

    심협이 웃으며 대꾸하고는 곤봉을 크게 휘돌려 자세를 잡았다. 순양비검도 뒤에 떠올라 기운을 숨길 수 있는 검은색 골검에 대비했다.

    먼 곳에서 손오공과 금시대붕이 싸우고 있었지만, 현재의 손오공은 부상이 워낙 커서 몸 하나 지키기 힘들어 보였다.

    태을급의 언갑 시왕 역시 육아상왕과 막상막하로 싸우고는 있었지만, 상대를 제압하지도 못했다. 그래도 한동안은 버텨내기에 충분해 보였다.

    하지만 구덩이 쪽 상황은 비관적이었다.

    한 무리에 이어 또 한 무리의 방촌산과 각 문파 제자, 장로들이 짐승처럼 학살당했고, 그들의 시체는 구덩이 안의 금빛 기둥에 의해 가루가 되어갔다. 그때마다 구덩이 전체의 혈기가 사방으로 퍼졌고, 살기가 하늘 높이 솟구쳤다.

    화십낭은 구덩이 밖의 혈제대진 위에 서서 두 눈을 감고 양손을 춤추듯이 움직였고, 뭔가를 끊임없이 읊조렸다.

    수십 명의 반사동 제자들이 구덩이 주위를 에워싼 채 화십낭과 함께 읊조리자 신비로운 노래가 울려 퍼졌고, 조금씩 뚜렷해지는 음파가 성난 파도처럼 금빛 기둥을 향해 몰아쳤다.

    거의 동시에 땅에서 부문의 빛이 번득이면서 잠잠하던 피비린내 나는 기운이 밖으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렇게 생겨난 핏빛 파도는 요동치는 음파와 함께 금빛 기둥을 공격했다.

    핏빛 파도가 금빛 기둥을 공격할 때마다 치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금빛 기둥은 강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고, 핏빛에 침식되어 점점 어두워져갔다. 빛기둥의 범위도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으며, 그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웅장한 기운도 약해지기 시작했다.

    금제대진이 위태로웠다.

    심협도, 손오공도 금제대진을 돌아볼 겨를이 없었고, 자기 몸 하나 지키기 어려웠다.

    심협에 대한 분노로 서둘러 눈앞의 언갑 시왕을 해결하고 싶었던 육아상왕이 금색 창을 휘두르자 눈보라처럼 빼곡한 광풍이 천지영기를 휘저으며 사방으로 휘몰아쳤다.

    천살시왕은 이 혼돈의 소용돌이에 휘말렸지만, 끊임없이 육아상왕을 향해 돌진해갔다. 몸이 어찌나 단단한지 거대한 창의 공격에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고, 쉬이 우열을 가리기 어려웠다.

    심협과 지영의 싸움도 쉽게 판가름 나지 않았다.

    흑백 골검과 태을 경지인 지영을 상대로는 현양화마 비술과 풍부한 전투 경험이 아니었다면 몇 합도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검은색 골검이 스쳐갔고, 치익 소리와 함께 심협의 등에 상처가 났다. 이번에는 검기에 베인 것이 아니라 진짜 칼날에 베인 터라 피가 솟구치면서 뼈까지 보일 정도였다. 허리부터 척추를 따라 베였기에 은은한 금빛이 도는 척추가 드러났다.

    하지만 심협은 현재 현양화마의 몸이었고, 등에는 비늘이 덮여 있어서 공격을 당하고 살이 찢겨도 그의 척추까지 미치지는 못했다. 물론 그렇다고는 해도 검은색 골검에 담긴 음살의 기운이 상처를 타고 체내로 흘러들어 오장육부를 크게 흔들었기에 심협은 가슴이 답답하고 토악질이 올라왔다.

    심협은 억지로 참으며 대개박술로 상처를 치료했고, 눈앞의 지영을 노려봤다.

    지영은 검은색 검으로 심협을 죽이려고 일부러 허점을 드러내고 공격을 유인했다. 그렇게 심협이 걸려들었고, 줄곧 그의 옆을 보호하던 순양비검이 지영의 단전을 향해 날아온 것이다.

    ‘기회다!’

    하지만 누가 예상했을까. 그의 단전을 향해 날아오던 심협의 비검이 갑자기 방향을 바꿔 단전이 아닌 그의 아랫도리를 지나 등의 명문을 노릴 것을…….

    지영은 크게 당황했다. 자신의 음살 경지에 있어 중요한 부분이 단전이 아니라 명문에 있다는 것을 심협이 어떻게 알았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황급히 대처하느라 필살의 기회조차 놓쳐버리고 말았다.

    심협의 순양비검이 곧장 그의 명문혈을 찔러왔다.

    하지만 지영은 태을의 수사답게 재빨리 방비한 덕에 약간의 충격만으로 버텨낼 수 있었다. 심협에 비하면 이 정도 부상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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