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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807화 (807/1,214)
  • 807화. 잠입

    심협의 소매가 다시 떨리자 금빛이 바닥을 스쳐 지나갔고, 온갖 재료가 담긴 10여 개의 옥합이 바닥에 나타났다.

    이 재료들은 모두 천살시왕을 완성하는 데 필요한 영재들로, 천기성에 있을 때 조금씩 몰래 사들인 것들이었다.

    심협은 눈을 감고 정신을 가다듬은 뒤, 연제 과정을 머릿속으로 다시 한번 점검해 틀린 부분이 없는 걸 확인한 후에야 뭔가를 읊조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미간에서 정광이 반짝였고, 수십 개의 혼사가 뿜어져 나와 천살시왕의 몸 곳곳을 찔렀다.

    심협이 양손으로 재빨리 맺은 결인은 평소에 시전하던 법결과는 사뭇 달랐다.

    그의 결인은 천기성의 독문 비결을 끊임없이 천살시왕의 몸에 주입했다.

    천살시왕의 몸에서는 언문이 살아 있는 것처럼 조금씩 빛나기 시작했고, 그 몸이 관에서 천천히 떠올랐다.

    심협은 고개를 살짝 끄덕인 뒤 회신주를 꺼냈다.

    귀언이 모아놓았던 신혼은 모두 인형의 성에 넣은 탓에 회신주는 텅 비어버렸지만, 다행히 심협이 연이어 네댓 명의 진선 수사와 수십 명의 대승 수사를 죽이고 신혼을 모았기에 천살시왕에 사용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심협이 연이어 회신주를 향해 몇 개의 법결을 결인하자 구슬이 갑자기 노란 빛을 반짝이며 천살시왕의 머리로 날아갔고, 곧이어 노란 광체가 되어 안으로 들어갔다.

    천살시왕의 머리가 갑자기 번득이더니 감고 있던 눈을 번쩍 떴다. 두 눈에서는 두 줄기 노란 빛이 뿜어져 나왔다.

    이를 본 심협은 안심했으나 표정은 엄숙했다. 이제 천살시왕의 제련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회신주와 천살시왕을 하나로 융합시켜야 했다. 게다가 편하게 조종하기 위해 동시에 자신의 신혼을 주문으로 만들어 천살시왕의 몸에 주입해야 한다.

    심협은 양손을 차륜처럼 결인한 뒤, 법결을 빠르게 천살시왕의 체내에 불어넣었다. 그러자 그의 미간에서 혼사가 끊임없이 시왕의 체내로 주입되었다.

    이와 동시에 심협이 입에서 뿜어낸 금색 불꽃이 옆에 있는 옥합을 감쌌다. 옥합이 열리더니 은색 가루가 금색 불길에 타들어 가면서 일제히 천살시왕의 몸으로 녹아들었다.

    * * *

    반나절 뒤, 동굴에서 갑자기 쾌활한 바람 소리가 들려오더니 눈부신 노란 빛이 뿜어져 나갔다. 이 노란 빛 안에는 커다란 금빛 날개를 가진 괴인(怪人)이 있었다. 온몸에서는 짙은 시기(尸氣)를 뿜어냈는데, 휘황찬란한 금빛 날개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금빛 날개의 괴인이 두 날개를 펼치자 빛이 번득였고, 거의 동시에 순간이동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가 백 장 밖에서 나타났다.

    괴인은 끌끌 하며 이상한 웃음소리를 내더니 날개를 다시 움직였다. 그러자 그의 모습이 희미해지더니 동쪽에 나타났다가 다시 서쪽에 나타나기를 반복했다. 그 움직임은 귀신같았고, 좀처럼 따라잡을 수 없었다.

    “금둔술(金遁術)은 역시 남다르군. 오행둔술 중 가장 빠르다고 할 만해.”

    푸른 빛이 동굴 안에서 날아올랐고, 심협의 얼굴에는 화색이 가득했다.

    이번 천살시왕 연제 과정은 생각했던 것보다 순조로웠다. 귀언이 그동안 완벽하게 준비해둔 덕일 수도 있고, 심협이 언갑 제조에 천부적 자질이 있는 것일 수도 있었다. 어쩌면 그의 신혼이 강력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유야 어떻든 심협은 순조롭게 천살시왕을 만들어냈다. 앞으로 그의 전력에 큰 도움이 될 것은 분명했다.

    심협이 손을 들자 천살시왕이 둔행을 멈추고 그의 옆으로 돌아왔다.

    그는 웃음을 머금고 천시를 보다가 소매를 휘둘러 붉은 빛과 함께 소요경 안으로 거두었다. 그에게는 숨겨둔 패이니 당연히 숨겨놨다가 중요한 순간에 꺼내야 했다.

    “간다!”

    심협은 바로 순양검을 꺼낸 뒤 붉은 검광이 되어 다시 호수로 향했다.

    ‘천살시왕을 만드느라 시간을 너무 많이 허비했다. 보리선조님이 무사하셔야 할 텐데…….’

    심협은 연연나금의를 두르고 몸에 은신부를 붙인 뒤 조심스럽게 호수로 돌아갔다.

    한데 완전히 가까이 가기도 전에 요마들의 외침이 들려왔다. 다만 싸우는 소리 같지는 않았다.

    심협은 바위 뒤로 내려와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밀고 살폈다.

    이전 싸움으로 생긴 구덩이 주위에는 돌이 흐트러져 있었고, 본래 그곳을 덮고 있던 금제는 완전히 무너져 요마들이 완전히 점령한 상태였다.

    보리성수도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부서졌는지 보리선조가 다른 곳으로 옮겼는지는 알 수 없었다.

    구덩이 안에서는 금빛 기둥이 하늘 몇 장 높이까지 솟아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금빛 기둥에서는 강렬한 영압이 끊임없이 흘러나와 반사동과 사타령의 제자들은 감히 접근조차 못 하고 있었다.

    구덩이 주위로는 화십낭, 육아상왕, 금시대붕이 나란히 서서 눈살을 찌푸리고 금빛 기둥을 지켜보고 있었다.

    마왕채의 장로 지영은 세 사람보다 약간 뒤로 물러나 있었다.

    “두 분 대왕님이 힘을 합쳐도 저 금제를 부술 방법이 없는 건가요?”

    화십낭이 물었다. 안색이 창백한 것이 심협의 곤토인뇌부에 근본은 다치지 않았어도 원기가 적잖이 소모된 듯했다.

    “이건 방촌산이 신마의 우물을 봉인하기 위해 설치한 금제다. 쉬울 것 같으면 당신이 직접 해보던가.”

    육아상왕의 목소리에는 불만이 가득했다. 먼저 방촌산을 공격하고 신마의 우물을 열자고 한 것은 반사동인데 그녀들의 동주(洞主)는 직접 나오지도 않고 제자들과 대장로 한 명만 보낸 것부터가 불만이었다. 결국 화십낭은 보리비경의 문을 여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았고, 지금은 쓸데없는 소리나 해대니 불만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상왕께서는 그리 노하지 마십시오. 대왕님들도 못 부수는 금제를 연약한 여자인 제가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다만, 우리 반사동에는 혈제(血祭)를 이용한 파금지법(破禁之法)이 있는데, 그걸 사용해볼까 합니다.”

    “그럼 어서 하지 않고 뭘 기다리는 것이오?”

    “방법이 있으면 서둘러 하시오. 천궁 쪽에서 눈치라도 채는 날에는 가만히 두고 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오. 시간을 끌면 끌수록 불리한 건 우리요.”

    금시대붕도 재촉했으나 화십낭은 전혀 개의치 않고 웃었다.

    “그럼 잠시만 기다려주시죠.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허나 몸을 돌린 그녀의 표정은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그녀는 설백의 장검을 꺼내 바닥에 꽂은 뒤 구덩이 주위로 부문을 그리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꽃송이 같은 부문 대진이 완성되었고, 구덩이 주위로 천천히 떠올랐다.

    장검을 거둔 화십낭은 붉은 원석들을 꺼내 대진의 진각에 박았다.

    원석이 박힐 때마다 대진은 암홍색으로 빛나기 시작했고, 그녀가 7749개의 원석을 전부 정해진 위치에 박자 대진 전체가 희미한 붉은 빛으로 반짝이더니 다시는 꺼지지 않았다.

    금시대붕 등은 옆에 서서 지켜보다가 그녀의 손이 멈추자 물어봤다.

    “다 된 건가?”

    “거의 다 끝났습니다. 그런데 제물이 부족하군요.”

    그녀가 뒤이어 손뼉을 치자 뒤에 있던 요마가 수십 명을 끌고 왔다.

    “이 짐승 같은 놈들아! 절대 곱게 죽지 못할 것이다!”

    끌려오던 방촌산의 제자가 큰소리로 욕을 퍼부었다.

    “이거 놓지 못하겠느냐? 난 너희와 함께 온 능파성의 장로인데 어찌 이리 대한단 말이냐?”

    능파성의 장로도 큰 소리로 노발대발했다.

    “놔라, 망할 것들! 우리 석문종(石門宗)의 상종(上宗)은 대당 관부와 관계가 밀접하다. 이런 짓을 하면 대당 관부가 가만히 있을 것 같으냐?”

    마른 청년 하나가 고래고래 소리쳤다.

    그들과 다른 크고 작은 문파는 반사동의 회유에 넘어갔고, 능파성도 가담했다. 본래 이번 공격으로 이익 좀 챙길까 했건만, 이런 꼴이 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아무리 욕을 하고 소리쳐도 누구도 그들을 상대하지 않았다.

    그들은 짐승의 힘줄로 만든 특별한 밧줄에 묶여 있거나 금제 부적이 붙어 있어서 반항할 힘이 없었고, 결국 구덩이 옆으로 끌려와 굴욕적으로 무릎을 꿇었다.

    심협은 사람들 속에서 자신을 첩자라고 모함하고 모욕했던 각오를 발견했다.

    하지만 그자는 다른 사람들처럼 묶여 있지 않았고 오히려 환하게 웃으며 요마들 옆에 서 있었다.

    ‘저자는……? 조종당하는 것 같지 않은 것을 보면 각명과 각안처럼 배신한 것인가? 그래서 그때 나를 모함한 것이로구나. 그런 거라면 을목팔괘선진이 부서진 것도 저자와 연관이 있겠지.’

    심협은 눈살을 찌푸리고 주먹을 움켜쥐었다.

    ‘저놈은 반드시 죽인다.’

    그는 굳게 결심했다.

    “시작해라!”

    화십낭의 명에 수많은 요마가 바로 앞으로 다가와 꼼짝도 못 하고 묶여 있는 각 문파의 장로들과 제자들의 목에 무기를 가져다댔고, 이어서 단칼에 목을 베었다.

    10여 개의 잘린 목에서 솟은 피가 샘물처럼 구덩이를 향해 쏟아졌고, 대부분은 땅바닥에 뿌려져 부문 대진을 핏빛으로 물들였다.

    땅에 가득한 피는 부문을 따라 흘렀고, 짙은 피비린내가 순식간에 사방으로 퍼졌다.

    화십낭은 웃음을 머금은 채 이 광경을 지켜보았고, 지영이 앞으로 다가와 취한 것처럼 허공에 가득한 피비린내를 깊게 들이마셨다.

    목이 잘린 수사들은 바로 죽지 않았다. 다만 피가 모두 말라서 기력이 완전히 사라지자 땅에 엎드린 채 입을 벌리고 숨을 헐떡였다. 간간이 숨을 들이쉬는 소리만 들려왔고, 현재 이들은 아무렇게나 도륙되는 가축과 다를 바 없었다.

    “계속!”

    한 무더기의 피가 어느 정도 흐르자 화십낭은 하품을 하며 대충 손을 흔들었다.

    요마 제자들은 앞으로 다가와 목이 잘린 수사들을 세게 걷어찼고, 아직 죽지 않았던 사람들은 구덩이로 떨어져 금빛 기둥에 부딪히더니 잿더미가 되었다.

    뒤이어 또다시 수십 명이 끌려왔고, 방금 그들처럼 전부 땅에 무릎을 꿇었다. 누군가는 큰소리로 욕을 했고, 누군가는 눈물, 콧물을 흘려가며 무너져버렸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개가 되라면 되겠습니다. 제가 첩자가 될 테니까 제발 살려주세요!”

    백발의 장로가 울면서 애원했다.

    각오가 그 말을 듣자 갑자기 눈살을 찌푸리더니 가까이 다가가서는 한 손으로 백발 장로의 멱살을 잡고 위로 당기고는 칼을 그의 목에 댔다.

    “오직 나만이 대왕님들의 충성스러운 개가 될 자격이 있다! 감히 네놈이 그 자리를 노려? 넌 죽어 마땅하다!”

    그는 독설을 퍼붓고는 목을 베었다.

    다른 요마들도 뒤따라 움직였고, 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도륙을 당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심협은 화가 솟구쳤지만, 간신히 충동을 참아냈다. 현재 저쪽에는 태을 존재가 있으니 혼자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었다. 섣불리 달려들면 헛되이 죽을 뿐이었다.

    점점 더 많은 피가 흘러 땅의 혈제파금대진(血祭破禁大陣)의 빛은 점점 더 밝아졌다. 구덩이 주위는 고리 모양의 광막이 되어 하늘 높이 솟구쳤다.

    붉은 빛에 이끌려 온 혈운은 금빛의 기둥을 서서히 뒤덮었다.

    * * *

    이때, 구덩이 깊은 곳.

    커다란 단상에는 방촌산 제자와 장수촌의 사람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앉아 있었다. 이들이 언제 이곳으로 왔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중에는 나은도 있었는데, 어떻게 중상을 입었는지 모르겠지만 현재 의식을 잃고 기절해 있었다.

    모두의 몸에는 상처가 가득했고, 사기도 완전히 떨어져 있었다.

    “젠장, 각오 그놈이 적에게 투항할 줄이야!”

    고양이 요괴 장로가 다시 분노를 터뜨렸다. 그의 등에는 극도로 부패한 상처가 있었는데, 비검 같은 무기에 습격당해 큰 상처가 생긴 듯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각오가 금제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자신들을 공격하고 금제 안의 진추를 파괴했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놈이 배신하지만 않았다면 을목팔괘선진이 그렇게 짧은 시간에 부서지지는 않았을 텐데……. 그나마 구덩이 안의 금제가 한 겹이 아니었던 것이 천만다행이지, 자칫하면 물러설 곳도 없었을 겁니다.”

    계 장로도 화난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는 왼팔이 잘린 상태였지만, 상처에 초록색 부적이 붙어 있어서 더는 피가 흐르지 않았다.

    “적의 기량이 한 수 위인 걸 이제 와서 원망한들 무슨 소용이겠나.”

    보리선조는 부상이 커지지는 않았지만, 기운은 더 쇠퇴해 있었다.

    고양이 요괴 장로와 계 장로는 노기(怒氣)가 담긴 보리선조의 목소리에 모두 입을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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